Haven - 4 (b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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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n 4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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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n: 안식처, 피난처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날 꺼내 준 건,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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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목욕을 끝내고, 이른 시간부터
 아래층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남자가 몇 시쯤 올까 기대하면서.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이 퇴근하기도 전에 남자는
본인이 말한 대로 저녁에 집으로 들어 왔다.
그리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고
웃음 지으며 물었다.




저녁 먹었어요?”

”..

저한텐 안 물어 보네요

”..뭐라 불러야 할 지 몰라서요.”


내 말에 남자는 한 손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집안 사람들에게 나가라는 사인을 줬다.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다들 분주히 짐을 챙기고는
그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는 우리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별관으로 향했다.

남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내 옆에 느릿하게 앉으며 말했다.
맞네요, 우리 여태 호칭 정리도 안 했네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제 나이도 몰랐어요?
...
나이는 같아요, 편하게 경수씨,라고 불러요.
..그럼 경수씨도 제 이름 부르세요.
그렇게 해요.


남자는 피식 웃으며 대답을 하더니,
제 침대에서 책 읽을래요?라고 물었다.
,라고 대답을 하곤 남자와 함께 침실로 향했다.


남자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앉아선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남자는 책상 앞 의자에 가방을 내려 놓고는,
한 손으로 넥타이를 마저 풀어 옷장에 걸어 두었다.
흘깃 보니, 남자의 옷장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걸로 봐선
남자는 꽤나 깔끔한 성격인 것 같았다.

곧 남자는, 오른손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단지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왜 벌써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하는 걸까.

검은색 셔츠를 벗은 남자는, 곧장 옷을 박스에 던져 넣었다.
남자의 몸은 근육이 잘 잡힌 몸이었다.
물론 어제도 남자의 벗은 몸을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미처 하나하나 뜯어볼 정신이 없었다.
남자의 몸은 근육이 과하지도, 그렇다고 없지도 않은,
적당히 잔근육이 붙어 보기 좋은 몸이었다.

그렇게 남자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몸을 돌리는 남자에 화들짝 놀라 책을 보고 있던 척을 했다.
ㅇㅇ씨, 저 씻고 나올게요.
,라고 하자 남자는 가운을 집어 들고 욕실로 향했다.

책이 눈에 하나도 들어 오지 않았다.
자꾸만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신경 쓰였다.
뭔가 바뀐 것만 같다.
원래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남자 쪽이 아닌가.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는 가운을 걸치고 나와선 내 옆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책을 읽으면서 곁눈질로 남자의 노트북을 보자,
남자는 영어로 된 신문 기사들을 읽고 있었다.
아마 비서가 추려준, 디오그룹에 관한 기사들이겠지.

그리고 남자는 곧 보고서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집중한 채로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남자를 중간중간 쳐다보는 것도 모를 만큼.


곧 시시해져, 다시 책에 집중했다.
그리고 밤 열한 시쯤 되자, 일을 하던 남자가 내게 말했다.
ㅇㅇ씨, 일은 안 하고 싶어요?
고개를 돌리자, 약간 나른한 눈빛으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생각을 하다 남자에게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는데, 글 쓰고
책 읽고, 영화 보는 게 재밌어서요.
집에서 안 심심해요?
, 저것만 해도 하루가 모자라요.

내 말에 남자는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는,
일하고 싶으면 말해요, 아무 때나.라고 말했다.
...


새벽 한 시쯤 되자 남자는 타이핑을 멈추고 노트북을 치웠다.
그리곤 안경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벌써 일 그만하나, 보통 늦게 자던데.
남자가 욕실에서 나온 후 물어 보았다.
..경수씨, 평소에 몇 시쯤 자요?
.. 새벽 네 시쯤에요.
그럼 아침엔 언제 일어나요?
보통 여덟 시에 일어나요, 새벽에 집중이 잘 돼서.
안 피곤하세요?
원래 잠이 없어서, 저는 하루에 네 시간만 자도 충분해요.


남자는 여전히 가운을 입은 채로 내 옆에 눕더니
뒷목을 매만지며 나를 올려다봤다.
오늘은 되게 일찍 오셨네요.
, 비서한테 제 일을 좀 더 맡겼거든요.
왜 진작 안 그러셨어요?
뭐든지 제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남자의 말에,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었다.
그리곤 다시 남자에게 물었다.
그럼 오늘은 왜 그러셨어요?
이제 그러려고요, 그래야 다른 걸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남자는 내 눈을 맞춘 채로 책을 가져가더니
남자의 노트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곤 내 오른팔을 잡고 상체를 숙이게끔 하더니,
내 얼굴을 눈으로 한 번 찬찬히 훑고는
 내 뒷목을 잡고 입을 맞춰왔다.

그대로 남자의 위에 올라타 남자에게 입을 맞췄다.
곧 남자는 몸을 돌려 나를 눕히곤, 내 위로 올라왔다.

걸친 것이 아무 것도 없어졌을 때쯤,
남자는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잡아 당기더니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리곤 어제에 비해선 조금 배려없이
그리고 조금 거칠게 나를 탐했다.

남자가 말한 다른 것이, 이걸 말하는 거였나.


남자가 내게서 내려오고 난 후, 남자에게 물었다.
왜 항상 피임은 안 해요.
하자는 말 안 하길래요.
..경수씨는 안 해도 상관없어요?
결혼했는데 뭐 어때요.

남자의 말에 그런가요,라고 답했다.
하긴, 나중에 자신의 뒤를 이을 아이가 필요하긴 하겠지.
그리고 남자랑 하다 보면, 나도 자꾸만 피임을 잊게 된다.
그냥 내일부터 피임약을 먹든가 해야지.


몸을 완전히 돌려 누워
땀에 젖은 남자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남자는 그런 내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가 원래 땀 흘리는 걸 되게 싫어해요.
.. 그래요?
그래서 땀 흘리는 운동은 딱 질색이에요.
남자의 말에 눈썹을 치켜 뜨자,
그런데 이건 예외,라며 남자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손을 내려 남자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웃을 때 경수씨 입술 모양이 되게 예쁜 거 알아요?
그것 때문에 비서 놈이 매일 놀려요.
왜요, 예쁜데.
깨잖아요, 그래서 밖에선 안 웃어요.

남자의 말에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자 남자는 왜요,라며 내 머리를 끌어 당기곤
나를 자신의 품 안에 가뒀다.
남들은 쉽게 볼 수 없는 남자의 웃음을
나는 자주 볼 수 있단 사실이 기분 좋았다.

아직은 불규칙한 남자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비서 분이랑 친한 가봐요.
, 김종대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거든요.
.. 신기하네요.
원래 사람을 잘 못 믿어서, 주변 사람들은 제가 다 골라요.
..경수씨가 직접요?
. 운전기사나, 집사나..
다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남자는 내 머리에 
턱을 올리며 나를 더 꼭 끌어 안았다.

저랑은 왜 같이 사세요? 저를.. 믿으세요?
왜요, ㅇㅇ씨 믿으면 안 돼요?
..?
남 뒤통수치고, 치졸한 짓 하고, 그럴 사람 아니잖아요.

남자의 말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들렸다.
말없이 남자에게 기대고 있자, 남자는
 다시 내게 입을 맞춰왔고,
나는 다시 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입술을 벌리며 남자에게 화답했다.










17.


다음날 아침, 역시 남자의 방에서 눈을 떠보니
1층 거실에 있던 책꽂이와 그림이 어느새 
남자의 침실 안으로 옮겨져 있었다.
또 어느새 옮겼대.

샤워를 하려고 침대를 나서다,
남자의 욕실에서 씻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검은색 욕실 문을 열고 한 발짝 내딛었다.

화장실 타일도 전부 검은색이었다.
이 정도면, 검은색을 좋아하는 걸 넘어 
아예 다른 색은 싫어하나 보다.

샤워기 물을 틀고, 가지런히 정리된 선반에서
비닐을 뜯지 않은 바디워시를 꺼내 썼다.
복숭아 향이네, 딱 내 취향이다
..남자가 이런 취향은 아닐 것 같은데.

샤워를 끝내곤, 역시 선반에서 새 바디오일을 꺼내 썼다.
기분 좋은 복숭아 향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벽에 걸려 있던 가운 하나를 
걸치곤 식탁으로 향했다.

경수씨 침실 청소해 주세요.
, 사모님.
그리곤 포크를 들어 에피타이저를 먹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고는, 다시 경수씨 침실로 들어갔다.
욕실은 그새 깔끔하게 다 청소를 해 놨더라.
선반을 뒤적여 새 칫솔을 하나 뜯고는,
치약을 짜 입에 물었다.
그리곤 거울을 보며 양치질을 하다,
목덜미에 새겨진 키스마크를 발견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다, 남자가 키스마크를 
새긴 기억이 없단 걸 깨닫고는
잘 때 새겼구나, 하며 피식 웃었다.
깜찍한 면이 있네.


양치를 하고 나와선 오래간만에
 비즈니스리뷰를 한 권 꺼내 들었다.
흥미 있는 게 없나 싶어 한 장씩 넘기다,
해외 시장의 성공 케이스 스터디
Special Report,라는 타이틀을 보고는
기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 타이밍이 중요하겠지.
회사를 조금이라도 살려 보겠다고 
동남아 시장에 발을 들였다,
외국계 기업들이 시장을 잠식해버린 상황이어서
우리 기업이 그 때 한참 힘들었지.
빠른 의사결정.. 그걸 못해서 재작년에 주가가 또 떨어졌지.
변화 추진.. 그래, 이사들의 반대로
 혁신을 이뤄보려던 계획이 다 엎어지고
작년 초쯤 또 주가가 떨어졌었고.

기사를 읽다가,
너희 기업이 이래서 망했어,라는 걸
하나하나 꼬집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신경질적으로 보던 걸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8.




밤이 되고, 남자의 방에서 영화를
 보던 중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일찍 왔네요.
이제 계속 이 시간에 들어오려고 노력해볼게요.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남자는 가방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고 회색 셔츠의 단추를 풀며 물었다.
아침에 책꽂이 옮기는 것 때문에 깨진 않았어요?
, 저 원래 소리에 잘 안 깨요.
내 대답에, 남자는 그런 것 같았어요,라며 웃었다.

책꽂이 왜 옮겼어요?
이제 여기서 책 읽으라고요.
그리고 남자는 셔츠를 벗어 던지며 
씻고 올게요, 라고 말하곤 욕실로 들어갔다.

남자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다시 이어폰을 꽂고는
30분 남짓 남아있는 영화를 마저 봤다.
영화가 끝날 때쯤, 남자는 나와 같은 가운을 입고
흰색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무슨 영화 봐요?
루비 스팍스라는 로맨스 영화에요.
, 로맨스.. 재밌어요?
, 요즘 봤던 것들 중에 제일 재밌네요.
..로맨스 영화는 다 뻔하지 않아요?
.. 아니요, 이건 좀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그래요?
, 뭐 연인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내용이긴 한데..
내용 자체는 뻔하네요.
근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남자는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개의치 않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리곤 2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박스에 수건을 던져 넣고는
머리 뒤로 양손을 깍지 껴, 자세를 고쳐 누웠다.
그리고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는 그대로를 전부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요?

.. 정말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경험해 본 적 있어요?
? 아니요, 저는 아직.
저게 흔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아니요, 사람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들긴 힘드니까요.
그건 그렇죠.

그리고 남자는, 가능한 것도 같네,라고 중얼거렸다.
무슨 뜻이에요?
모든 면을 다 사랑해 주긴 힘들겠죠.
, 그렇겠죠.
그래도 사랑하니까, 단점까지 
다 포용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요.
.., 저는 잘 모르겠네요.


남자는 피식 웃으며 옆으로 돌아 누웠다.
그리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느릿하게 
한 손으로 내 허벅지를 매만졌다.
내 허벅지를 가만히 바라보며 남자가 말했다.
ㅇㅇ씨 연애사 듣고 싶어요.
.. 연애사요?
.

그리고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내 허벅지를 쓸었다.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는 느낌이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 저는 연애 한 번 밖에 안 했어요.
그래요? 어땠는데요?
.. 연애할 때는 좋고, 행복하고 그랬죠.
그럼 왜 헤어졌어요?
.. 사귄 지 2년 반 됐을 때쯤부터, 마음이 식더라고요.
..
내 허벅지에 고정되어 있던 남자의
 시선이, 이젠 내 눈을 향했다.


그래도 관계를 맺고 끝는 데는 
신중한 편이라, 쉽게 못 놨어요.
마음이 식은 걸 알았지만, 혹시나 권태기일까 싶어서
기다리면 돌아올까 하고 계속 기다렸는데..
결국 극복 못하고 그냥 헤어졌어요
사귄 지 4년쯤 됐을 때..”

”..그렇구나, 헤어진 거 후회해요?”

”.., 가끔 걔만한 사람을 못 만나겠단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마음이 없으니 못 사귀는 거죠, .
아쉽지만, 상대방이 괜찮다고 사랑도 없이 사귈 순 없잖아요.”

”..저한테 사랑도 없으면서 저랑 결혼했잖아요.”

”..아 뭐, 결혼은 연애보다 가벼운 거니까요.”


내 말에 남자는 마치 아이같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해맑아 보이면서도, 묘하게 뒤틀린 웃음이었다.
이내 남자의 손이 내 무릎 뒤로 향했고,
남자는 그대로 나를 잡아 당겨 내가 눕게끔 만들었다.

경수씨 연애사도 말해 줘요.
.. 저요?
남자는 말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내 허벅지를 만졌다.
숨을 삼키곤 그대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저는 연애해본 적이 없어요.
.. 정말요?
, 아직까지 사랑이 뭔지도 잘 몰라요.
남자의 손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가볍게 누굴 좋아한다, 정도는 있었어요.
그런데 왜 연애는 안 했어요?
저 같은 남자가, 평범한 연애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하긴.. 저도 그랬죠.

허벅지를 향해 있던 남자의 눈이 내게로 향했고,
남자는 눈이 좀 풀렸어요,라고 말하며 내게 입을 맞췄다.
동시에 남자의 손은 더 위로 올라왔고,
몸을 움찔하며 남자에게 팔을 감고 매달렸다.


남자는 가운의 끈만 풀고, 성급하게 내게로 들어왔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미간을 좀 찌푸린 채로.
, 인상, 써요.
손을 뻗어 남자의 미간을 문지르자,
남자는 아,하는 소리와 함께 눈썹을 더 찌푸리더니
다른 날보다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날 남자는 나를 하나도 배려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내겐 가장 좋았던 섹스였다.










19.


남자의 방에서 자기 시작한 이후로
남자에게선 단 한 번도 여자 향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늘 남자에게선 은은한 우디향이 났다.
향수를 원래 싫어했지만, 남자에게서 나는 향은 좋았다.


몇 달 간 우린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낮에 남자는 일, 나는 글 쓰고 공부하고.
저녁이 되면 남자는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한다.
남자는 일을 하고 나서 나를 탐하거나,
때론 나를 먼저 찾고, 내가 잠이 들면 일을 시작한다.

남자는 배려심이 많았다.
내가 생리를 할 때면, 뒤에서 나를 꼭 끌어 안고는
내가 잠에 들 때까지 배를 안아 주거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럼 나는 남자의 손길에 포근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남자는 내가 생리가 끝난 것 같을 땐,
이제 진짜 괜찮아요? 끝난 거.. 맞아요?라고,
몇 번이고 재차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면, 그제야 남자는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나를 안았다.
물론 다음날부터는, 평소와 다름 없는 섹스를 했지만.

참 신기하고도 웃긴 게, 거의 매일같이 섹스를 하는데도
단 한번도 그게 질리거나 지루하다 느껴진 적이 없었다.
딱히 별다른 것이 없었는데도,
매번 새로웠고, 매번 남자를 원했다.


우린 서로에게 무언가를 묻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남자가 우리의 관계에 대해 규정해 
주길 바란 적이 없었으며,
남자 역시 내 마음에 대해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린 딱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몇 달간 지냈다.

우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단순히 섹스 파트너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에겐 그 이상의 교감이 있었다.
또 그렇다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말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사랑한다면 점점 더 상대에 대해 알아가고 싶겠지.
하지만 나는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었다.
남자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남자에 대해 더 아는 것이 꺼려졌던 걸까.





그런 우리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건 순식간이었다.
의심이라는 싹이, 곧 균열을 만들었다.

.
.
.

※만든이 : HEART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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