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n - 2 (b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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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n 2
HEART



Haven: 안식처, 피난처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날 꺼내 준 건, 너였다.


.
.
.


9.


이 따위 생활엔 신물이 났다.
하지만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힘없는 자는 기어야지.


그렇게 몇 년을,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리려 애쓰며 살았다.
주가는 매번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듯 상승하다,
다시 또 바닥으로 내려가길 반복했다.
진짜 가망이 없나 보다, 싶을 때쯤엔 올라가고,
그러다 또 내려가버려 지칠 때쯤엔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더라.


내가 스물 일곱살이 되던 해에, 김종인이 회사로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대학원으로 진학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내게, 아빠가 상상도 못했던 제안을 하셨다.


평상시와 다름 없는 저녁 시간에,
와인을 마시며 아빠가 물으셨다.
ㅇㅇ아, 이런 생활 지긋지긋하지 않니?
아빠의 물음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 지겨워요.
그러자 아빠는 간만에 미소를 머금고는 말씀하셨다.
우리를 도와 주신다는 분이 계셔.
정말요?
, 그런데 대가가 필요해.
뭔데요?


아빠는 내 물음에 와인을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아빠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가가 나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나를 보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도경수라고 알지.
..디오그룹이요?
그래, 차기 회장이 될 그 집안 장남.
..알죠, 당연히.
니가 마음에 든단다, 넌 그 남자랑 결혼만 하면 돼.
그게 다예요?
그래, 그러면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갈 거다.


..알겠어요.


결혼이 뭐 대수인가.
어렸을 때부터 애초에,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결혼 따윈 꿈도 꾸지 않았다.


내 말에 아빠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잘 생각했다,라고 답하셨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싫다고 해도 하게 만드셨을 거잖아요.










10.




그 남자는, 무력해진 우리 집이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우리 입장에서 남자는, 딱 하나 밖에 
주어지지 않은 동아줄이었다.
그렇기에 우린 그게 멀쩡한 동아줄인지,
아니면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썩은 동아줄인지는
살펴 보지도 않고 덥석 붙잡았다.
방법이 없는데 어떡해, 설령 그게 
썩을대로 썩었대도 붙잡아야지.


구차하고 비굴한 삶을 살고 있는 내게,
남자는 비상구와 다름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깜깜한 사방에서,
유일하게 홀로 빛나고 있는 초록색 출구.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빠는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셨다.
그래, 질질 끌다 엎어지는 것보단
기회를 놓치기 전에 얼른 결혼하는 편이 낫지.
그 남자가 혹시 마음을 바꿀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사실 조금 의아했다,
우리 집안과의 결혼으로 얻을 게 하나 없을텐데,
대체 왜 나랑 결혼하겠다는 건지.

내가 마음에 들었다니, 그건 또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람.
디오그룹의 장남정도면 결혼은
 마음대로 못 할 게 분명하다.
고작 그 따위가, 결혼의 이유는 될 수 없단 거다.
우리에게 결혼은 철저히 감정은 배제된 채,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기업을
무슨 수로 일으켜 세운단 건지..


그래도 디오그룹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쭉,
우리나라에선 단연 최고이자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기업이었으니,
조금이라도 손을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납득은 안 갔지만, 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내게 남은 길이 없다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곧 약혼식을 올렸고,
온갖 미디어에 나와 남자의 사진이 떠다녔다.
반신반의했는데, 회사가 점점 제자리를 찾아 가더라,
정말 말도 안 되게.


그렇게 회사가 안정되고 나서,
남자와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당일의 설렘이나 떨림 따위는 없었다.
그저, 허울 좋은 연극을 한다는 느낌 뿐이었다.


디오호텔에서 결혼식을 마친 후,
파리로 신혼여행이라 불리는 것을 갔다.
일주일 남짓한 그 여행 기간 동안,
나는 남자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예약된 방은 스위트룸 두 개였다.
남자는 그 중 하나에 틀어 박혀, 하루 종일 일을 했다.
그리고 나는 경호원들을 데리고 혼자 여행을 했다.


이미 파리는 몇 번을 와 봤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했다.
가 볼 곳은 다 가 봤지만,
그렇다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는 싫었다.
그저 센 강변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근처 식당에 들어가 끼니를 때우는 걸 반복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러 오르세 미술관에 갔다가,
이미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밖에 걸려 있지 않은 걸 보고는
삼십분도 채 머무르지 않고 나왔다.

삼일 정도를 그렇게 밖으로 다녔을까,
사일 째부턴 나도 방 안에 박혀 영화를 보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11.


비로소 신혼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남자의 얼굴을 봤다.
퍼스트 클래스에는, 우리 둘만 탑승을 했다.


디저트를 먹고 새로 볼 영화를 
고르던 와중, 남자가 물었다.
내일부터 회사 나갈 거예요?
...그걸 왜 물어 보세요?
그런 질문을 하는 남자가 의아했다.
회사는 당연히 나가야겠지.


내 말에 남자는 표정 변화 하나없이 내게 말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요.
어떻게 그래요.
내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
원하는 건 다 해 줄 수 있어요.


남자의 말에 진실이 몇 프로일까 생각하던 와중,
남자는 아, 이혼하자는 것만 빼고,라고 덧붙였다.
저렇게 태연하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인 것 같기는 한데,
이런 걸로 농담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고.





대답이 없는 나를 물끄러미 보며, 남자가 물었다.
저 못 믿겠어요?
...안 나갈래요.
회사에 별로 미련이 없나봐요.
어차피 회장은 김종인이 될텐데요, .
회장 말고도 가질 수 있는 자리는 많잖아요, 사장이라던가,
저는 꼭대기가 아니면 관심 없어요.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자르곤 대답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남자는 피식 웃더니,
그럼 그렇게 해요,라고 답했다.










12.


다음 날부터 나는, 정말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는 했지만
남자를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사실 그의 말을 신뢰해서라기 때문인 것 보다는,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게 더 컸던 것 같다.


남자의 말을 덥석 물었던 건,
끔찍한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를 깔아 보던 그 시선들이,
이제 회사가 원위치로 돌아온 바람에
다시 나를 올려다보며 눈웃음 칠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졌다.
마치, 그랬던 내가 생각날 것만 같아서.


그리고.. 뭐든지 영원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자의 힘을 통해 회사가 돌아 왔지만,
언제 어떻게 다시 무너질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편안히 남자가 만들어 준 안식처 안에서만 지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비롯해,
그 어떠한 공식적, 비공식적인 자리에도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저지른 행동이지만, 휴대폰은 조용했다.
아무도 나를 찾는 사람이 없더라,
심지어 아빠조차도 내게 연락이 없었다.
미디어에 나에 관련된 기사는 단 한 줄도 올라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몰랐지만,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어렴풋이 짐작했다.
, 남자는 정말 생각했던 것 보다 힘이 막강하구나.
남자의 말대로 정말,
남자가 대한민국 안에서 원하는 건
뭐든 이뤄질 수 있겠구나,라고.


남자에게 고맙다는 말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도 내게,
이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마주치는 때도 극히 드물었다.


남자를 보는 건, 일주일에 불과 한두 번이었다.
아무 것도 해야 하는 게 없었던 나는,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여유롭게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하고 싶던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간혹 남자가 일찍 퇴근을 하고,
또 내가 그 시간에 1층에 있을 때만
 남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횟수로 따지자면 일주일에 한두 번이었다.
나를 마주치면, 남자는 늘 미소 지으며 
내게 간단한 인사만 건네곤
곧장 침실로 들어가버리곤 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한 달에 남자를 마주하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되었다.


한 집에서 살았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내 층에서 거의 머물렀고,
남자 또한 내 층으론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침 일찍 밥을 먹고 나갔고,
나는 점심 때는 되어야 일어나곤 했다.
또 남자는, 늦게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남자는, 집안 사람들이 전부 퇴근하고
별관으로 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 나와 한 끼도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단 거다.


내가 생각했던 결혼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았다.
꼭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사는 것 같아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란 걸
스물 일곱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에겐 늘 선택권이 없었다.
짜여진 일상 속, 짜여진 플랜대로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물론 부모님이 내 의사를 늘 물어 보시긴 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말을 거역해선 안 된다.
그걸 알기에, 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를 런던에서 다니는 것도,
고등학교를 어디를 다닐 지도,
또 대학 때 무슨 과에 입학할 지도
내가 아주 어릴 때 전부 결정되어 있었다.


내 삶에, 남자란 변수가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어느 그룹의 자제랑 결혼을 하겠지,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무려 디오그룹의 장남일 줄도 몰랐고,
또 정략결혼이 내게 안식처를 만들어 주게 될 것도 몰랐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하나 없는 결혼을 했을 뿐인데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다.
남자는 나를, 지긋지긋한 삶 속에서 꺼내 주었다.


한편으로는, 내게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단 사실이
꽤나 씁쓸하게 느껴졌다.
내 주위엔, 정말 진정으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 없었구나.


아빠야 뭐.. 나를 딸이 아니라, 부속품 취급을 했으니.
김민석은 감방에서 썩고 있을테고,
김종인 그 자식은 원래 정이라고는 없는 새끼고.
친구.. 그래, 나한텐 친구도 하나 없었지.
집에 있는 사람들이야.. 다들 그저 일하는
 아줌마들, 아저씨들, 집사.


집에 가만히 있으면,
이 넓은 집을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도
살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졌다.
대화 하나 없이 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은
그저 기계같이 느껴졌다.


,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 하나 있구나,
생각해보니 이 집에 머무는 것들 중
유일하게 남자에게만 표정이란 게 있다.


이런 생각을 했을 무렵부터,
남자에게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냥 단지 남자가
내 옆에 남은 유일한 사람이라 느껴져서일까.










13.


내 삶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와 같이 산 지
 무려 반 년 정도나 지났을 무렵부터,
남자를 가만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정말 관심이 생겼거든,
호감인지, 호기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결혼을 하고
그 대가로 회사를 살려 주고,
내가 집 안에서만 머물 수 있게까지 해 준 남자.
동시에 내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심지어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이 남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감히 남자에게 멋대로 굴 순 없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회사를 원위치로 돌린 게 남자였듯,
우리 집을 망하게 하고, 나를 다시
 그 집안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남자에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
혹여 남자의 심기를 그르쳤다
남자가 내게 그렇게 할 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남자가 거슬리지 않게,
혼자 가만히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를 보려고 마음을 먹으니,
남자와 자주 마주치는 건 하나도 어렵지가 않았다.
그냥 밤 늦게, 집 안 사람들이 
다들 별관에서 잠이 들었을 무렵
책 한 권을 쥐고 1층에서 읽고 있으면 되었다.


그 후로 거의 매일을 남자와 마주칠 수 있었다.
나도 참 무심했나보다,
여태껏 반 년도 넘게 같이 살아 놓고
이제야 남자가 종종 여자 향수 냄새를
 묻히고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히 개의친 않았다.
내가 지금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것 뿐인데.

이 바닥이 다 그렇지,
겉으로는 고결하고 기품 있는 듯 행동하고,
뒤에선 약이며 여자며, 더러운 것이라곤 있는 대로 취한다.
남자에게선 적어도 김민석에게서 나던 약냄새가 안 나니
이 정도면 양반이지,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남자는, 잠은 늘 집에서 잤고,
또 집 안으로 누군갈 들인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다.





남자는 늘 단정한 수트 차림이었다.
저녁 9시에 귀가하든,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오든,
단 한 번도 술에 취해 있거나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또 남자는, 꽤 잘생겼다.
관심이 없을 땐 전혀 몰랐지만,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니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만한 
외모를 갖고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눈썹은 짙었고, 코도 꽤 높았으며,
상대방을 사로잡는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무표정할 땐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남자의 미소는 꽤 매력적이었고 부드러웠으며,
.. 조금은 사랑스러운 편이었다.


남자에겐 뒷목을 매만지는 습관이 있었다.
보통 신발을 벗고 막 집 안으로 발을 내딛을 때,
혹은 내게 인사를 건넨 직후, 뒷목을 매만지더라.

남자는 가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곤 했다.
그게 꽤나 나른하면서도, 또 섹시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코트가 잘 어울렸다.
추운 날엔, 머플러도 두르곤 하더라.

주로 남자가 걸치는 정장은 검은색이었다.
구두도, 가방도 검은색인 걸로 봐서는
검은색을 제일 좋아하는 듯 했다.

, 남자에게선 매일 향수 냄새가 났다.
가끔 그게 여자 향수 냄새일 때도 있지만,
보통 은은한 우디향이 났다.
의외로, 향수를 즐겨 쓰는 듯 했다.
남자와 향수라니.. 매치가 되지 않았다.


남자는 늘 나를 꿰뚫고 있다는 듯 바라봤다.
생각보다 깊은 남자의 눈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서서히 그것도,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딱 듣기 좋은 중저음이었다.
남자의 외모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말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정이 없는 내 말투와는 달리,
남자의 말투는 부드럽고, 또 다정했다.


남자의 침실 문은 늘 닫혀 있다.
남자는 늘 왼손에 가방을 쥐고 들어 온다.
내게 인사를 건네곤, 오른손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 곧장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내가 잠을 자러 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침실의 불이 늦게까지 꺼지지 않는 걸로 봐서는
남자는 서재와 침실을 하나로 합친 듯 했다.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각이 되었다.
남자는 늘 한 시를 넘기지 않고 들어오며,
나는 세 시쯤 잠을 자러 내 층으로 올라간다.

새벽 두 시엔, 큰 저택에 늘 나와 남자만 존재하고,
굳게 닫힌 남자의 방문 밑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남자의 방에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때는 마치,
세상에 나와 남자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남자가 오는 때를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만든이 : HEART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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