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돌아 - 3화 (by. 너의연가)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저번화 게시글 모두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기 전
 미리 말씀드릴게 있어요. 3화부터 에피소드가 바뀌는
 부분을 표시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제가 1화부터 골머리 앓고 있던 문제 중 하나가 
드디어 터져서요. 1화 때는 줄바꿈+앞칸 띄어쓰기
2화 때는 줄바꿈 2+앞칸 띄어쓰기였는데
둘 다 눈에 띄게 티가 나지 않아서 이번 화부터 
점 세 개로 표시하겠습니다. 혹시 더 좋은 생각
 있으시면 게시글로 달아주세요! 참고로 1화 때 
끊어지는 부분은
그렇게 계주 선수로...
"유민규, 일어나."
조금 전 걱정하던 나를 비웃어주고...
오전 내내 계속된 면접을 드디어 마치고...
오후 면접까지 시작 20분 전.
"앉아봐."
입니다. 늦었지만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나머지 주저리는 밑에서 할게요!
참참! 19세 미만 청소년의 음주는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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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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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씩 일곱 조, 세 작품씩 세 명의 시인
그 중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 날'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두 조씩, '너를 기다리는
 동안''슬픔이 기쁨에게', '너에게 묻는다'가 
한 조씩이었다.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으레 그렇듯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주어진 시간 안에 해결하라고 
했다. 당연히 그 시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많은 것을 하고 싶었다. 주어진 발표 
시간은 10. 한 작품을 위해서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연극 형식은 어때?"

", 괜찮다."


짝꿍의 말에 이지은의 표정이 거만해졌다
좋게 말하면, 자신만만해졌다.

"연극으로 하면 어떻게 하게?"

"그건 생각해봐야지. 연극 형식으로 하면 지루하지
 않아서 좋잖아. 이번 수행평가에는 상대평가도 
들어간다는데."

맞는 말이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아이들이 
단순히 재미로 점수를 줄 만큼 우둔하지 않다는 것.

"그런 거라면 일반적인 수업 형식은 어때
추임새라던지 내용을 재미있게 짜면 굳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네."

"근데 난 좀 특별한 걸 했으면 좋겠어."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뿐이지 결론은 '싫어'였다
이번에도 포기해야 할까. 만약 지금 포기한다면 
또 얼마나 숨죽여야 할까. 내가 내 의견을 고수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긴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선택과 집중. '최선''최고'는 아니었다.
.
.
.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하고, 어쩌면 최선이 아니라
 차선도 되지 못할 선택을 하고서는 이미 지나간 
일을 자꾸만 곱씹었다. 그러다가 후회도 시간 
낭비라는,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말을 떠올리고는 
모두 관뒀다. 더 이상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막 먹었던 점심이 복부에서 요란하게 부피를 
키워나갔다. 배가 비대하게 빵빵해져 더부룩했다
습관처럼 학교 한 바퀴를 휘돌다가 백성현이
'금지구역'이라 말했던 곳으로 발을 들였다
일탈이었다. 틀에 박힌 규칙들에, 계속해서 
미어터질 듯 몸을 우겨넣었던 나에게 주는
 휴식 같은. 나무 가까이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마음은 계속 속살거려,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분명 이곳에 오면 편안해지곤 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늘 속에서 맞아서 그런지
시원하다 못해 춥게 느껴지는 바람에 잠깐 몸서리를
 치다가 나와 버렸다. 다음에, 다음에 다시 오자.
 
*

수많은 시간의 준비를 거쳐 드디어 발표 수업이 
끝났다. 발표를 마치고 박수 소리를 들으며 한껏
 잡고 있던 긴장을 이제야 좀 놓으려는데
뒤에서 들어오던 이지은이 나를 제치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PPT에 오타 있더라."

", 미안해. 내가 한 번 더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그럼 확인을 더 하지 그랬어."

"………. 미안해."

이건 내 잘못이다. 그걸 알면서도 왜 화가 나는지
참아야 한다. 내 탓이다. 당연히 이 상황 자체가 
내 탓이라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아둔하거나 착하지 않으니까.

"아니, 솔직히 조장이 왜 있는 거야
다른 애들 다 하고 나면 잘못된 부분 고치고
보충하고. 그게 조장의 역할 아니야?"

"미안해."

"그만해."

슬슬 입을 열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지려는 참에,
다음 조인 백성현이 앞으로 나오며 목소리가 
커지려는 걸 말렸다. 조금만 참자.

"미안하다는 말만 하지 말고. 다른 애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걸 틀려오면 안되지."

"………"


"우리 조 발표해야 되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치고 들어오는 백성현이 
오늘따라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가볍게
 웃으며 했을 말인데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응수했다
사실 조금 전의 말도 답지 않게 까칠했다.

"발표 시작하자~"

상황을 유순하게 넘기려는 선생님의 말소리
그리고 조용해진 주변.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시선이 따갑다.
왜 이 시선은 모두 내가 받아야 할까.
.
.
.
학교가 파한 늦은 저녁, 내 발걸음은 결국
 도피처를 찾았다. 항상 가던 동네 슈퍼에서 항상 
마시던 걸로 네 캔. 당연히 거짓말을 했고
마시는 건 다른 곳이었다. 거짓말을 들키는 것이 
두려웠으니까. 맥주 캔을 땄다. 치익하는 소리를 
내며 거품이 올라왔다. 입구 위로 올라와서 헐떡대고 
있는 거품을 단숨에 삼켰다. 이게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인이
 기억나지 않는, 결과만이 존재하는 인과관계로는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내가 하는 유일한 
일탈을 들이켰다. 목이 씁쓸하게 타들어가는 느낌
이 얼얼한 느낌이 좋았다. 피하는 게 나쁜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도피처로 사용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이 잔뜩 꼬일 대로 꼬여서 감당하기에 벅찼다
오늘 하루, 혹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다시 지게 될 짐인걸 알면서도 
내려놓고는 잠깐 잊어버리고 싶었다
누군가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했다
공허함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탓에 이 공허함을 
어떻게 채워야할지도 모르겠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맥주 캔을 감싸 쥐고서는 한 모금 들이켰다.
쌉싸래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벌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맥주 캔을 뒤로 젖혔다
금방 한 캔이 비어 다른 캔을 땄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에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한 캔만?"

갑자기 길고 허연 손이 불쑥 튀어나와서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맥주 캔을 땄다. 앉아있는 탓에 더 작아진
 키로 손의 주인을 보기 위해 상체를 살짝 들어 
고개를 들었다.


자주 봤던 얼굴. 저녁이라 그런가, 평소보다 
유난히 더 하얘 보였다.

"이걸 이제야 마시네."


분명 말려야 하는데 혼잣말하는 듯한 목소리가 
아파서 그냥 두었다. 어차피 네 캔이 많은 것 
같다고도 생각했었으니까. 한 캔 마신 건 나인데 
어째 나보다 더 취해 보인다. 이게 그렇게 마시고
 싶었나. 말없이 새 캔 하나를 더 들이밀자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고마워."

.
.
.

집까지 술을 깨려 걸어가는데 고작 맥주 두 캔에
 필름이라도 나간건지, 조금 전 대화 중 누락됐던 
부분이 서서히 떠오른다.
 
"아파……. ."

"참을 걸 참아야지."

손목을 가리고 있던 단추가 풀리자 날카롭게 
베인 상처가 보였다.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아 
붉게 부어올라와 있었다. 메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 이것저것 꺼내더니 역시 질문과 대답같은 
형식적인 것 없이, 빨간약을 바르더니 면봉에 
연고를 짜 펴 발랐다. 그리고 거즈까지 덮어주더니
 뭐가 또 남았는지 가방을 뒤적거린다.

"선물."

볼이 살짝 달아오른 채 배시시 웃는 표정이 꼭 아이
 같다. 내가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자 답답하다는 듯
오른손을 잡아 손바닥을 아래로 가게 돌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팔찌를 채웠다
하얗고 몽실몽실한 게 꼭 솜 이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예쁘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말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화끈거린다.
 
그 아이가 황민현이었을 줄이야.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평소랑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내뿜었었다. 이제야 출처가
 기억난 팔찌에 시선을 건넸다. 의식해서 그런지,
옷에 가려진 손목이 욱신거렸다.
 
*

항상 반에 먼저 왔었는데, 가장 먼저 등교해서
 불 켜고, 창문 열고, 하는 건 다 내 일이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멈춰 서서는 어리둥절하게 백성현을 
바라보자 백성현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냐니?"

백성현 특유의 장난치는 말투. 어딘지 어색하게
 들리는 게, 이유가 있는 듯하다.

"진짜,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왠지 가벼워 보이네."

"그게 무슨 말이야?"

뜬금없이 동문서답을 하는 백성현에게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무슨 일일까.


"걱정했다고."

백성현의 눈빛에 진심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면 항상
 힘들 때면 도와줬었다. 원체 눈치가 빠른지라 대놓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채고선 위로해줬고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줬다. 막상 닥쳤을 때는 별게
 아닌 거 같아도 되돌아보면 자잘하게 많았다.

"언제 한 번 둘이서 놀러가자."

"그래."

백성현의 말이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럴 날이 오기를. 가슴이 뻥 뚫리게 드라이브도
 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뛰어놀다가 더워서 멈추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음 속에서 웃을 수 있기를
그리고 저녁엔 가볍게 식사하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 다 할 수 있게 되기를.
 
*
동아리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시큼한 땀 냄새를
 맡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3학년 선배가 상의할게 
있다고 불렀는데 아직 없는 걸 봐선 조금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 있으려다가 1학년 
후배들이나 구경하자 싶어 근처의 의자에 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턱을 당기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게 하는 등, 조금 적극적으로 자세를
 교정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기본자세도 아직 
어색한 아이들이지만 기본 후리기만 몇 십분 째 
하고 있을게 뻔 한데도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신입생임에도 얼굴 표정에 맴도는 긴장감과 
분위기의 중압감은 3학년 못지않았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다가 성훈이 눈에 띄었다
몸이 흔들리지 않고, 동작이 크고 부드러웠다
미세한 차이지만 기본기가 훌륭했다
흠잡을 데 없는 움직임에 어쩐지 뿌듯하다.
 
"왜 다들 나한테 힘들게 하는 걸까요."

내 말에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에도 아이는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며 듣는다. 맥주 한 캔으로 산 말동무여도
 좋았다. 내가 말을 하면 들어주고, 바라봐주니까.
사실은 마주친 눈동자에 담긴 것들이 익숙해서
남 같지 않아서 더 정감이 간다.

"내가 실수한 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왜 자기 잘못은 모르는 척 하는 걸까요."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쳐져있던 기분이 더 쳐졌다
헤어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발버둥치는 것 같다.

"왜 다들 나한테 바라는 게 이렇게 많을까요
왜 나는 다 잘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

"거짓말."

"......장님."

날 부른 듯 한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성훈이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내 앞에 서 있었다.

"?"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부장 선배님이랑 나눌 얘기가 있어서."

"그러십니까."

그리고 찾아온 정적
애초에 성훈이 왜 내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해."

"알겠습니다."

대답은 긍정으로 해놓고는 정작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성훈 탓에 생각을 바꾸었다
조금 답답해도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안에 들어가 있을게."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어차피 들어오게 될 거였지만 들어오기 싫었는데
가만히 책상에 머리를 묻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성훈의 조금 전 모습이 신입생 
환영회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정말이야. 넌 멋진 사람이야."

갑자기 떠오르는 목소리에 미간을 살살 문질렀다
정신이 산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기억일까.
 
*

어두운 리무진 안의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한 남자
나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정자세로 앉아 
앞만 응시했다.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이게 꿈인 걸
 알게 되었다. 자각몽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다만, 가위라도 눌린 건지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왕 꿈인 마당에
 남자를 붙잡고 속사포처럼 잔뜩 말을 쏟아낼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못해 억울했다. 나는 검은 
리무진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문을 닫고
 출발시키려는데 남자의 손이 내 왼쪽 손목을 
힘 있게 잡았다. 또 잡혔다. 아니, ''? 이젠 생각조차 
내 통제 하에 두지 못하는 건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꿈에서도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게 너무 현실성 있어서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가지마."

남자의 눈이 허공에서 내 눈과 마주쳤다
두려움과 걱정, 안타까움, 애정, 원망, 울분 따위의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빨리 가야 하는데, 그 속에 
담긴 마음이 너무 잘 읽혀서 피하기 힘들었다.

"……. 곧 모시러 가겠습니다."

큰 소리가 나게 차 문을 닫았다
내 자신에게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이젠 그만 미련을 버려야 했다. 구두코를 바닥에 
두 번 부딪혔다. 초조함이 몰려왔다.

"출발해!"

혹여나 듣지 못할까봐 운적석에 앉아있을 
원영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차는 지체 없이 
떠나갔다. 이제 남은 일을 해야 했다. 영화 같은 
일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현실을 봤다
상황은 영화 같지만 결말은 알 수 없다
평소 들어왔던 행복한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다.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내 쪽은 고작...... .
 
"열 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몸이 뒤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엉덩이가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꿈에서 깬 걸 눈치 채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세우고 앉았다.

"학생? 엄청 태연하게 자리에 앉네요?"

",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허리를 굽혔다
그나마 이번 시간이 한국사 시간이라 다행이다
한국사 선생님은 학생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시니까.

"꿈 꿨어요?"

"아니요."

"근데 왜 일어나면서 이상한 소리를 냈죠?"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어제 뭐했어요?"

"?"

"어제 뭘 했기에 수업 시간에 그렇게 졸죠?"

"……."

요즘 좀 피곤했다고 변명을 하는 게 취향은 아니라
 의미 없는 탄식만 뱉어냈다. 변명을 하면 거기에
 따라오는 대가로 근 몇 주일 간의 일을 구구절절이
 말해야 할 것이었다. 그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게임했어요?"

"아니요."

"그럼 핸드폰 했어요?"

"아니요."

"혹시 야동 봤어요?"

선생님의 말에 반 애들이 마구 웃었다
말하는 낌새가, 잘 못 걸린 것 같다.

"아니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뭐 했는지 빨리 말 해봐요."

그 이후에도 계속 물고 늘어지는 탓에 내가 잠깐
 멍청해지고 말았다. 선생님도 결과에 만족했는지 
그제야 수많은 질문을 그만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 느껴지는 시선이 여간 따가운 게 아니었다.

.
.
.

백성현이 일이 있는 탓에 야자를 마치고 혼자서 
집에 걸어가는데 옆에서 이상한 기척이 났다
옆을 돌아보자 황민현이 나를 빤히 바라다보고 있었다.

"왜요?"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기만 몇 분.


갑자기 황민현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예쁘다."

"?"

황민현의 말에 당황해서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
황민현이 나를 보더니 한 번 웃고는 하늘을 가리켰다.

"……."

"예쁘죠."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오늘따라 하늘이 청명해서 
그런지, 평소에는 몰랐는데 하늘이 참 예쁘다.
무심코 지나갔던 일상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
.
.
"집이 어디야?"

"근처요."

"이 근처?"

"걸어서 10분 거리에요."

"굳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되는데."

"집 가는 방향이에요."

집이 어디냐고 물어봐도, 예쁘게 웃으며 계속 
에둘러서 표현하는 탓에 정작 궁금한 건 묻지 못했다
또 기회를 놓쳤다.

"잘 가요."

"너도 잘 가."


내 집 바로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는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황민현. 거봐, 가는 길 아니잖아
내가 돌아볼 거란 생각은 못했나보다. 푸르스름한 
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자꾸만 맡게 되는 향내의 
정체는 나무가 아닌, 황민현 그 자체였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맨 처음 황민현을 본 날에 맡은 
냄새도 분명 나무의 것이 아니었을 터였다.

.
.
.

※만든이 : 너의연가님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글을 쓸 때마다 자꾸 말하고 싶어서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한지...... . 
민현이가 후배인데도 
존댓말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 
1화 때 뜬금없이 등장한 액션(?)씬! 
무엇보다도 제목의 뜻! 
그 외에도 모두 글에 녹아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세요~
그리고 이건 말할까 말까 엄청 고민했는데,
 충고는 조금만 둥글게 해주세요. 
제가 많이 소심해서...... . 
오늘도 제 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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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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