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멸망 D-day [단편] (by. 콩이)

<콩이가 여러분에게>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늘 들고 온
이야기는 가볍게 읽어주시면 됩니다!
즐상해주셔요~
 
 
 
 
 
 
000
박지훈
김예림
김태형
 
 
 

.
.
.


 
[D-7]
 
 
 
퇴실해도 좋습니다.”
 
엄마!!!!!!!! 아빠!!!!!!!”
 
 
오늘 같은 날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가을
에 머물러있던 시원한 날씨도 한풀 꺾여
차가워지곤 했다. 갑작스런 환절기에 감기
라도 들까 부랴부랴 겨울옷을 꺼내 들었고,
만반의 대비를 위해 핫팩까지 챙겨 나섰다.
허나 교실의 빵빵한 히터에 나는 자동으로
겉옷을 벗어던졌고, 어찌나 뜨거운 바람이
눈꺼풀을 꾹꾹 눌러대던지 고개가 젖혀질
뻔했다. 이 중대한 날에!
 
부모들은 제 새끼들의 거사에 동행했다. 어떤
부모는 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함에 아쉬워
했고, 어떤 부모는 하교하는 아이들이 보일
때까지 교문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교문
앞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도 오늘이 지나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할 것이다.
 
내 또래의 학생, 넓게 말해 이 시험
보는 사람들은 근래에 유독 뉴스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해 난이도가 어떻니부터
해서, 심지어는 아침식단까지 코칭해주기
까지. 특별한 사람 취급받는 것도 분명
한순간일 테지만 말이다.
 
수능’. 모든 이들이 오늘만큼은 배려해
준다며 출근시간을 늦추고 비행기항로를
돌릴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이름. 나는 시험의 응시자였고 방금
막 수능은 이 난 상태였다.
 
 
....? ???
시험 종료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솔직히 별 느낌이 없었다. 나는 물길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사람들에게 쓸려
나왔고, 저 멀리 교문이 보였을 때야 실감을
했다. 진짜 이걸로 끝이라고? 이 몇 시간을
위해 투자한 날들이 몇 백일인데?
 
기분이 째지게 좋을 듯, 날아갈 듯할 줄
알았건만 너무도 허탈해서 교문을 나서
기가 두려웠다. 당장의 성적은 모르겠고,
여태 밀렸던 잠을 자고 싶지도 않았다.
 
나 이제 뭐하지?
 
 
,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부모님은 일하러 가셨기에, 나를 맞이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는 딱히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경계에서 서성대는 나를 단번에
교문 밖으로 끌어당기는 익숙한 얼굴은,
지각했다는 나에게 허공펀치를 슉슉 보내
었다. 바로 내 고등학교 같은 반이자 절친,
박지훈이었다.
 
 
너는 일찍이도 나왔다? 박지훈.”
 

 
빨리 해방되고 싶어서 나왔지.
이제부터 자유다!!!!”
 
 
두 팔 벌려 개운한 기지개를 펴는 그는
세상 행복해보였다. 나와 다르게도.
 
 
안 아쉽든?”
 
, 허허한 감정은 드는데 그렇다고 공부
더 열심히 할걸, 그런 후회는 아니야. ,
메이플에서 만렙 찍고 더 퀘스트 없을 때
느낌 그런 거?”
 
만렙 찍어본 적도 없음서.”
 

 
내 미래의 계획이지. 함께하실?”
 
ㅋㅋㅋㅋㅋㅋㅋ.
파티모집 더 하자.”
 
 
명색이 수능이 끝났는데, 특별한 걸
먹어보자며 거리를 돌아다니던 우리는
끝끝내 늘 가던 떡볶이 집으로 향했다.
여러 가게들이 우리를 유혹했지만 결국
우리의 취향저격은 떡볶이였으니까.
먹었을 때 그냥 그 맛이네.’가 아니라
역시 이 맛이야.’로 만장일치 호평을
내렸다. 오늘 중 제일 잘한 일이야.
 
순대를 빨간 국물에 찍어먹으며 수학이
어려웠니 국어가 어려웠니, 토론을 하다가
난데없이 지훈이가 성취감에 젖은 얼굴을
했다. ...시험 잘 쳤나봄?
 
 
조올라 고생 많았다 박지훈!!”
 
뭐하냐.”
 

 
야 너도 수고했다고 해.”
 
니한테?”
 
아니 빠가사리야. 니 자신한테!”
 
별 걸 다 시켜.”
 
할 거면서.”
 
 
순대를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는 목을
가다듬는 나를 보고 픽 웃는 지훈이.
나 수능쳤어요 광고하듯이 나는
크게 소리쳤다.
 
 
수능 친 나 자신 수고했다!!!”
 
ㅋㅋㅋㅋ기합봐랔ㅋㅋㅋㅋ역시
태권도 검은띠 어디 안 가지?”
 
“(뿌듯)”
 
 
다리가 절로 꼬아지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만족스러움에 자연스레 취하게
된 포즈였다.
 
 

 
수고했어.”
 
내일 학교 가서 계획 짜자.
흥청망청 놀 계획!”
 
내일 일찍 마쳐주겠지?”
 
야자 시킬 것도 없어.
책도 다 버린 걸?”
 
나 혹시나 하고 집에 놔뒀는데.”
 
어쩐지 니 가방 무거워 보이더라;;
걍 캐리어 끌고 오지 그랬냐?”
 
좀 들어주라
 
뭘 또 들고 가.
이제 좀 놓아줘라 어?”
 
 
수학 공식이고 영어 지문이고 눈앞에
가져다대기도 싫다 이놈아. 그렇게 책이랑
떨어지기 싫었음 평소에 애지중지 하질
그랬냐!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뜨쉬!’
괴상한 소리와 함께 책을 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거리는 수능을 친 자들의 여유로 넘쳐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가 나갈 채비를
할 때 즈음, 분식집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눈대중만 해도 수험
생이로구나!’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들은 어째 기운이 없어보였다. 왠지
알 것만도 같아서 남 일 같지가 않아.
가채점을 하고나면 나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거란 예상이 갔다.
 
 
우리 어쩌냐 이제....
수능 끝나긴 했는데....”
 
야 그게 진짜겠어? 사실이면
벌써 세상 뒤집어졌겠지!”
 
그래도 다른 때보다 다르게
과학적 증거도 있다 그러고...”
 

 
000. 지금 김태형이랑 김예림
근처라는데 합류하실?”
 
동노 각. 여기 계산서 어딨냐?”
 
 
평화로이 계산서를 찾던 우리의 귓구녕
에 정확히 꽂혀버리는 그녀들의 대화.
마치 날벼락과도 같았다.
 
 
진짜 지구 멸망하면 어떡해?”
 
여기 멸망서. 아니, 계산...”
 
, 콜록!!!!!”
 
“........??”
 
멸망?!?!”
 
 
 
 
...모라구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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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 D-day
w.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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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몰랐어? 예전부터 그런 설이
떠오르고 있었긴 해. 전보다 다르게
근거가 유달시리 많아서 그렇지.”
 
알면서 왜 안 알랴줬냐!!”
 

 
설마 죽기야 하겠어~?”
 
긍정의 끝판왕 납시었네.”
 
 
멸망이라니! 나와 지훈이는 아까부터 계속
멸망의 노래를 불러댔다. 카페에 와서까지
추궁하자 김고깽이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주는데, 전혀 소화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우리 언제 죽는데?”
 
한 다음주?”
 
뭐가 그렇게 코앞이여??
무슨 인터넷 배송이여???”
 

 
수능 성적 발표도 못 듣고 죽어?”
 
그게 더 깔끔하지 않냐?”
 

 
그럴 거면 수능 왜 쳤냐 고깽아...”
 
 
지구가 멸망한다는 걸 늦게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기운 다
빠질 뻔했네. 그럼 뭐하나, 기껏 공부
했더니 다 필요 없게 생겼잖아!
 
 
우리 담주에 놀이동산 가자! 수험표
이거 할인 개쩔더라고. 내일은 학교
마치고 영화보고, 00 너 나랑 화장품
사러 가야해!”
 
다 부질 없어...멸망한다는데 유흥이
뭔 소용이야.”
 

 
야 뭐 가설가지고 낙담하고 그르냐.
하긴 과학계에서 다음 주에 운석 하나
지구 쪽으로 온다고도 하고 옛날에
달력을 다음 주까지만 만들었다고..”
 
위로하는 거야 맥이는 거야?”
 

 
아직 고백도 못해봤는데...”
 
줄초상 났네 이거.”
 
 
지훈인 이후로도 찡찡거렸다.
찡찡찡. 박지훈의 별명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박찡훈으로.
 
 
나는 집에 가자마자 지구 멸망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뭐 늘 그랬듯이
5분 정도 지나니 열정이 삭아, 더 큰
욕구인 식욕에 잡아먹혀버렸지만.
 
오후 내내 호들갑을 떤 것치곤 금방
수그러든 해프닝이었다.
 
 
 
 
 
[D-6]
 
 
다음날 학교에 가니 고3들은 마치 전세
역전을 한 것처럼 가벼운 얼굴이었다.
아직 가고자하는 곳에 합격이 난 건
아니더라도, 큰 숙제를 해치워버렸으니까.
 
 
예상 점수랑 등급 적어서 내라.
다들 점수는 채점해봤겠지?”
 
야 국어 미쳤지 않던?”
 
난 그냥 다 미쳤던데...”
 
 
교실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공부의
의미가 없어졌으니 한결 시끄러워졌고,
수업일수를 채우러온 우리는 다른 할 일을
찾아나서야 했다. 예를 들어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떠들거나.
 
우리의 경우 구석에서 자리를 깔고 트럼
프로 도둑잡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고삐가 풀린 건 이때쯤부터일 것이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뭐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샛기야.
방금 박지훈이 고른 거 분명 하트 9
데 두 장을 겹쳐서 조커를 준 거 아니여?”
 
시나리오 쓰고 있네!”
 
예림이 그 패 봐봐, 조커지?”
 

 
“(뭐하는 놈들이지...)”
 
됐고, 사물함에서 내 뿅망
아니, 헤머 갖고 와.”
 
이렇게까지 해야 돼?”
 
후달려? 후달리냐??”
 

 
-, 까봐!”
 
자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따 따라란~ 따라란~ 따라란딴 쿵짝짝~”
 
“...........”
 

 
, 쌤이네?”
 
선생님?!?”
 
잘들 헌다. , 더해봐.”
 
!!! 쌤 제 뿅망치!!!”
 
학교에 뿅망치가 왜 있어??”
 
토르가 재밌길래요...”
 
망했네.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바로 뺏겨버렸다.
트럼프도, 몇 달 전 수험생으로써의
마지막 영화 토르를 보고 아쉬운
마음에 사물함에 쟁여뒀던 망치도.
 
 

 
그럼 다른 거 하지 뭐!^^
우리의 흥청망청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지. 월요일에는 태형이가 야심차게
보드 게임을 커다란 쇼핑백에 담아오면서,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D-3]
 
 
, 나 이백만원만 빌려줘.”
 
연 이자율 50%인데 ㄱㅊ?”
 
벼륙의 간을 빼먹어 미친아.
에이씨, 그럼 시드니 팔고 마드리드
팔고....아테네도 팔아도...”
 

 
걍 서울을 팔면 되잖어.”
 
안 돼! 그것만큼은!!”
 
서울 저기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여태껏. , 진정한 노른자 땅은 말이야.
아까부터 주구장창 걸려대는 몬트리올
아니냐? 가성비 갑임.”
 

 
내 선구안이란다.
 
제일 승리자는 무인도에서 나올 생각
박지훈이겠지. 돈 따일 일도 없어,
저 정도면 휴양지 인정?”
 
“....나가고 싶어...누가 내
돈 좀 떼먹어 주라.”
 
야야 지훈아. 나 주사위 못
굴리는 법 좀 가르쳐주셈.”
 
하다하다 못 굴리는 법을 전수 받냐.”
 
널 굴려 버릴까봐서요ㅎㅎ
 

 
야 여기 산중턱이라 구르면...
집에는 빨리 도착하겠네.”
 
“??”
 

 
잘 봐, 스냅을 부드럽게 돌리는
거야. 스무스하게. 따라해 봐.”
 
스무스하게.”
 
아니, 말 따라하라는 게 아니고!”
 
ㅋㅋㅋ존나 또라이얔ㅋㅋㅋ
 
 
이번 게임도 승리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채무관계가 꼬이고 꼬이면서,
우리 모두 파산에 이르렀기 때문.
 
교훈은 있었다. 넷 중에 누구라도
건물주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D-2]
 
 
"니네 오늘은 뭐 안하냐?“
 
오늘은 자야지. 어제 메이플
150까지 찍느라 힘들었다...”
 
저녁에 혼테일 잡으러 가실 분~”
 
야 나 오늘 티켓팅 있는데 뭔 혼테일
이야 당장 마우스 클릭 연습부터 해!!
 

 
얘 누구 보러간댔지?”
 
“‘V’라던데?”
 
아 걔네 귀엽다고 그러던데.”
 

 
애교하면 나다!”
 

 
뭐래, 예띰이에여~”
 
현타도 안 오냐 니들은?”
 

 
뀨잉뀨잉
 
나도 애교 한 사발하거든?
00~ 이르케 귀여우며는~웅앵
 
야 판 벌려! 승부다!”
 

 
진짜 니네 수능 끝나고
뼈빠지게 사는구나..”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건데?”
 
 
그래놓고 지가 제일 열심히 했다.
현타라는 글자 모르는 사람인줄.
 
 
 
 
[D-1]
 
 
 
종이컵 갖고와봐!”
 
 
때 아닌 애교배틀과 여러 보드게임을 섭렵
한 우리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런닝맨이라도 개최해 볼까하다가
말년에 징계 먹을까봐 몸을 사렸고, 대신에
교실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오늘은 김고깽이 포트기를 들고 와서 이른
티타임를 즐기고 있었다. 급식도 다 끝난
마당에 수업도 없고, 정말 출석만 하러오는
것이었다.
 
 

 
, 그러고 보니 내일 멸망이지?”
 
!!!!!”
 
아 드러라. 어따다가 뱉는 거야.”
 
멸망? 누가 멸망해?”
 

 
내일 지구 멸망하는 날이래.”
 
무슨 멸망을 아스날 경기 예고
하듯이 말하고 있어 얘들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나는 흘린
코코아를 휴지로 닦으며 다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내일이라잖아,
투마로우!
 
 
야 나 아직 연애도 못해봤는데!
진짜 심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여기 제대로 연애해본 사람
몇이나 되냐? 태형이는 좀 만나봤다고는
하지만...”
 
, 나 이상형 바뀌었어.”
 
뭐로?”
 

 
운명처럼 만나는 여자.”
 
 
고깽이의 콧구멍이 벌렁인다.
코웃음을 치고 있다는 소리다.
 
 
, 김태형은 다음 생 예약이요.
박지훈 너는?”
 
나는...편한 사람?”
 
, 나인가...”
 

 
푸핳!!! 나인가 이지랄ㅋㅋㅋㅋ
ㅋㅋㅋㅋㅋ양심이 멸망함?”
 
편한 사람이라면 나도 슬쩍
번호표 넣어 봐도 되는 거 아닌가?”
 

 
응 아니야 넌.”
 
야 그럼 나도 껴줘! 나도!”
 
오늘은 쟤네 박지훈 쟁탈전 하는 날임?”
그런가봄.”
 
아니 여긴 또라이들 밖에 없냐??
존나 하루하루를 정성들여 똘끼짓을
해대;; 그러니까 나도 참전한다!!”
 
박지훈 삽니다//선제시////”
 

 
박지훈 사달라!”
 
 
본의 아니게 변질된 박지훈의 러브레터’.
3학년이 차지한 4층이 시끄러워진다.
 
 
이열, 박지훈 인기 실감?”
 

 
내가 이 정도얌마
 
내일 멸망이라 다들 급하신 모양임.”
 
야 담임이 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랑 집에 가래. 해산!”
 

“(빵긋)”
 
 
여자애들의 탄식이 들려온다. 허나 얼마
가지 않아 집에 갈 생각에 다들 들떠 흐지
부지된 박지훈 쟁탈전은, 다음을 기약했다.
 
 
낼 보자 칭구덜~”
 
ㅂㅂ
 
 
3이 되어,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집을 가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없었
는데. 우리는 이제 1, 2학년들의 선망의
눈빛을 받으며 하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박지훈과 하굣길을 걸었다. 앞으로
이렇게 같이 하교하는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구나. 매일 보던 얼굴을, 다음 해엔 드문
드문 보게 될 사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내년에도 같은 반이 되고, 밥 먹고, 매점
가고, 야자를 쨀 것 같은데 말이야.
 
 
야 지훈아.”
 
.”
 
내일 뭐하지?”
 

 
내일 영화 보러가지 뭐.”
 
그럼 모레는?”
 
모레는...카트?”
 
내년엔 뭐할까? 우리.”
 
갑자기 내년으로 훅 건너뛰어?
내년엔...여행갈까?”
 
 
붕어빵을 머리부터 배어먹는 지훈이의
볼이 씰룩인다. 면역이 됐을 법도 한데,
나는 매번 그가 무엇을 야무지게 먹을
때마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왜 물어?”
 
그냥. 학교에서 싫어도 마주치던
애들을 내년에는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이가 된다는 게 갑작스레 아쉬워서.”
 

 
못 보긴 뭘 못 봐.”
 
네가 말한 대로, 우리 내년에는 여행
아니면 모일 건덕지가 없잖아. 당장
이라도 노래방 고?’가 되지 않는다고.”
 
아직 대학 발표도 안 났어.
그리고 너 나랑 멀리 안 떨어지잖아.”
 
그래도 각자 다른 길을 걷는다는 건
변함이 없겠지. 아아, 차라리 내일 멸망
하는 게 나은 건가? 난 너희랑 헤어지는
게 싫어.”
 
“.........”
 
특히 너랑은.”
 
 
첫 만남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순간
부터 너는 나랑 떠들고 있었고, 그 뒤로
태형이 예림이와 부대끼며 살았다. 어찌
보면 내가 학교를 가는 궁극적인 이유였을
지도 모르는 함께했던 시간들.
 
너무 재밌어서 공부? 못해도 괜찮아!’
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일조한 사람은 너고.
 
간만에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려니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횡설수설하며 살을 붙였다.
 
 
아니 그게, 너랑은 3년 동안 알고 지냈
잖아. 아파트 단지도 같고,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것도 비슷한데. 왜 몸도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렇게 될까봐 서운해서.”
 
고백이야?”
 
고백 아니야!”
 
 
너무 단칼에 말해서 말한 내가
벙찐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 내일 멸망인 거 진짜면
너 오늘 뭐할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지.”
 
그 마인드로 식목일에 심어 봤어봐.
아마존을 만들었겠지.”
 
 
지훈이가 킥킥댄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나 보다.
 
 
ㅋㅋㅋㅋㅋㅋ장난이고.
나는...고백할 거야.”
 
아 저번 주에 고백 못한 게 한이라고
했지? 근데 누구한테 하냐, 혹시 나한테
양심고백?”
 
. 맞아. 근데 양심말고, 고백.”
 
그래 어디 한 번 고해.....?”
 
고백. 좋아한다고.”
 
“...............?”
 
 
...........
...........
모라구여???
 
걸음이 멈춘다.
찬바람에 훅 끼쳤지만, 이상하게
춥기는커녕 더웠다. 얘는 고백을
이렇게 예고 없이 해도 되는 거야??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건가?
 
 
...언제부터?”
 
정확한 날짜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고,
같이 있으면 더더욱 좋았고.”
 
“.........”
 

 
계속 너를 멍하게 바라볼 때마다 미친
건 아닐까 생각했었어. 근데 인정하고
나니까, 그렇게 속이 시원하더라.”
 
“..........”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지구 멸망이 맞다면 이렇게
고백도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아쉬워서.”
 
 
내 고개가 푹 숙여지자 그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가까이 온다. ,
화났어? 실망했어? 기분을 물어보는
지훈이에게, 나는 꿀밤을 꿍 먹여주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내일 다
죽게 생겼구만!!!”
 
나 원래 수능 끝나면 말하려고 했어!
그 전에 말하면 공부 방해될까봐...”
 
야 내가 언제 공부를 했다고 그래!!”
 
고해성사하냐?”
 
아무튼....”
 
 
지구 멸망과 가장 친한 친구의 고백.
둘 중 어느 것이 더 충격적이냐 한다면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리고 고백을 듣고 징그러워
미친놈아!’하고 진저리치지 않고 볼이
빨갛게 물들어지는 나 자신에도 충격.
 
지훈이의 말을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나 역시, 그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자주 못 만나는 건 변함없네.”
 
“...그 말, 무슨 뜻으로 해석
해야 하는 거야?”
 
너 좋을 대로.”
 

 
“...........진짜? 진짜로?”
 
아 재방송하게 만들지 마라.
얼굴 터질 거 같으니까!”
 
! 만세!”
 
붙지도 마!”
 
 
실없이 웃는 지훈이와 얼굴이 뻘개져선
후다닥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나.
 
저녁에는 첫눈이 내렸다.
 
그 옛날, 수험생이 되기 전의 우리가
첫눈을 보고 빌었던 소원이 떠올랐다.
 
 
내년 이 맘 때에 또 눈 오겠지?
소원 빌어야겠다.’
 
무슨 소원?’
 
미래의 남자친구에게. 나는 눈사람
만들기보다 눈싸움을 더 좋아한단다.
그리고 나는 호빵보다 붕어빵이 좋아.’
 
‘......’
 
그러니 부디 내년의 첫눈을
같이 맞았으면 좋겠구나.’
 
 

 
야 장갑 끼고 나와! 붙자!!”
 
 
지훈이는 붕어빵을 사들고 눈싸움을
신청했다. 멸망을 앞둔, 무척이나
평범하고도 설레었던 전야였다.
 
 
 
 
 
[D-day]
 
 
 
우리 사귄다!!!!”
 
오예!!! 호우!!!!!”
 

 
진짜 멸망하긴 할 건 갑다...그치?”
 

 
그런 거 같네...비상식량 사놓을 걸.”
 
 
 
 
-END-
 
 
 
 
.
.
.


※만든이 : 콩이님
 
 
 
<>
 
 
많이 늦었지만 수능 친 여러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제가 수능 쳤을 적 한창 12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얘기가 많았을 때라
추억에 잠겨 써보았습니다. 물론 지훈이
같은 남사친은 네버 없었어여...^^
멸망하는 줄 알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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