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에서 나누는 의미없는 이야기 [단편] (by. 별유)

궁에서 나누는 의미없는 이야기 [단편]
by. 별유
 

 

 

 

연우진
ㅇㅇㅇ
 

 

 

 

 

ㅇㅇ
 

?”
 

같이 가
 

!!”
 

자꾸만 앞서가는 ㅇㅇ의 뒷모습을 보던 우진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어째 네가 더 신나 보인다?”
 

신나지 그럼. 이렇게 차려입기까지 했는데.
날씨도 좋고... 햇살도 좋고...”
 

그 햇살 아래서 보니까 너,”
 

“.......”
 


더 예쁘다
 

알아
 

알아?”
 

아까 들었어
 

들었어? 언제 어디서
 

우진이 피식 웃으며 ㅇㅇ을 쳐다봤다.
 

아까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애가 그랬어.
저 언니 예쁘다고
 

... 그랬구나
 

보는 눈이 있구나 생각했지
 

새침한 표정을 짓는 ㅇㅇ
 

애들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 좋아해.
정확해 아주
 

그럼 나도 좋아했겠는데
 

자기에 대해선 아무 말 없던데?”
 

“.......”
 

역시 애들은 정확해
 

ㅇㅇ이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씩씩하게 걸었을 그녀가
부러 조신하게 걷는 모습을 보던 우진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걸어봐
 

걷고 있잖아!!”
 

치마 밟겠다
 

안 밟아!!!!”
 

옛날에도 밟았으면서
 

다 들리거든?”
 

넘어져. 앞에 보고 걸어
 

빨리 와서 손 잡아주면 되잖아!!”
 

ㅇㅇ의 말에 곧장 옆으로 뛰어가는 우진
 

불안해서 살겠나
 

옆에 있어줘야지, 뒤에 서있으면 뭐하냐?”
 

그게 더 편해서
 

이번엔 달라야 돼
 

 

ㅇㅇ가 먼저 우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표 사올게. 정문 구경이나 하고 있어
 

내가 갈게
 

어차피 한복 입어서 공짜야.
그리고 매표소 언니한테 칭찬받으려고 가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내가 칭찬해주면 되잖아.
너 되게 예뻐. 그 때보다 더 예뻐
 

칭찬은 제3자에게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구
 

“.......갔다 와
 

울지 말고 기다려
 


오냐
 

급히 걸음을 옮기는 ㅇㅇ과 달리
우진은 천천히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쪽으로 향했다.
 


 

돈화문
 

정문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학생들.
 

우진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해 있던 것도 잠시,
무리 중 그를 발견한 학생 하나가
왠지 모를 미소를 짓자
재빨리 고갤 반대편으로 돌렸다.
 


흐음
 

그러곤 괜히 갓을 만지작거리던 우진
 

저기...”
 

“.......”
 

자신의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살짝 돌아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한데요. 저희랑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어요?”
 

, 저요?”
 

.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리셔서...”
잘 생겼어요!!!!!”
멋있어요!!!”
 

어느새 학생들은 우진의 주변을 둘러쌌고,
하는 수 없이 그는
 


학생들과 인증샷을 남겼다.
 

우와 대박... 진짜 잘생기신 것 같아요
 

, 아닙니다
 

혼자 오신 거예요?”
 

아니요
 

그럼 여자친구랑?”
 

여자친구라는 말에 괜히 더 쑥스러워 하는 학생들
 

 

!!! 어딨어요?”
 

저기...”
 

우진의 손가락은
어느새 표를 끊고 걸어오는 ㅇㅇ을 향해 있었다.
 

우와. 예쁘다
 


그쵸
 

혹시 두 분 모델 아니에요?
한복 모델 같은 거?”
야 우리 저 분하고도 찍자고 하자
대박 대박
 

 

 

오빠!”
 

우진은 자신을 부르는 ㅇㅇ을 향해 손을 들었지만
바로 앞을 가로막는 학생들 때문에
어색한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희랑 같이 사진 찍어 주시면 안 돼요?
다같이?”
 

?”
 

“TV에 나오는 분들 같아요!
한복도 대박 잘 어울리시고...”
예뻐요!!!!”
 

? 히히. 좀 그렇지?”
 

!!!!”
 

너희도 예뻐. 머리도 예쁘게 땋네?
남자애들 갓도 잘 쓰고?”
 

갓 원래 안 쓰려고 했는데
써야 된다고 해서 썼어요!!!”
고름도 저희가 직접 한 거예요!!!”
 

어유 잘 했네~ 예쁘게 잘 맸어.
너네 초등학교 다니니?”
 

!!! 언니는 대학생이에요?”
 

아니. 언니는 옛날에 졸업했지~”
 

대학생인 줄 알았어요!!!”
 

고마워. , 저 잘생긴 양반하고도 찍었어?”
 

!!”
 

오빠! 이리와!!”
 

ㅇㅇ이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멀뚱히 서있던 우진을 불러 자신의 옆에 세웠다.
그리고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나, , !!!”
 

 


 

 

.
.
 

 

사진 많이 찍어줘
 

알았어
 

난 한복 입을 때가 제일 예쁜 거 같아
 

아닌데. 평소에도 나쁘지 않은데
 

, 자기도 그래
 

난 평소에도 잘 생겼지.
내가 수트 입으면 막 그냥, ? 막 막
 

막 뭐
 

장난 아니야
 

어유, 잘나셨어 아주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에 올라선 두 사람.
우진이 이곳저곳 훑어보자
ㅇㅇ이 고갤 갸웃하며 물었다.
 

?”
 

이 다리가 제일 오래된 다리래
 

여기서?”
 

모든 궁에서
 

전쟁에서도 살아남았대?”
 

. 옛날에 만들어진 그대로
 

진짜 오래됐네
 

아직 쓸만한데?”
 

푸흐.. 그러게
 

이제 들어가자
 

저기 궐내각사는 왜 안 가?”
 

별 거 없잖아
 

그래도
 

뭐라도 더 생기면 가자
 

에이...”
 

먼저 앞장서는 우진
 

자기야
 

 

자기 그렇게 뒷짐 지고 걸으니까 되게 양반같다
 


왕 같진 않고?”
 

왕은 더 위엄있게 걸어야 되거든?”
 

위엄있잖아
 

별로
 

왕은 더 천천히 걸어야 되는데
난 성격 급해서 그렇게 못 해. 안 해
 

상놈이구만?”
 

?”
 

양반도 아닌 상놈이었어. 에라이 이놈아!”
 

참 나, 그래. 맘대로 해라
 

아 오빠!”
 

우진이 가차없이 뒤돌아 걸음을 옮기자
ㅇㅇ가 다다닥 뛰어와 옆에 나란히 서며 말했다.
 


같이 좀 가
 

거 봐. 내가 먼저 가버리니까 서럽지?”
 

아니? 서럽진 않았는데?”
 

근데 여기까지 왜 뛰어왔어
 

“.......”
 

혼자 두고 가버리니까 기분 이상했잖아
 

아닌데? 빨리 가서 자기 뒤통수 때리려고 그랬는데?”
 

거짓말
 

어어-?”
 

나는 네 뒷모습 볼 때마다 서럽던데
 

?”
 

그냥.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매번 그러네
 

“.......”
 

맨날 나 두고 먼저 앞서 걸으니까
뒷모습 밖에 못 보지
 

그러니까 좀 빨리 빨리 걸어!!
왕도 아니면서 느리게 걷고!!!!”
 


네가 뛰는 거야
 

.......”
 

나보다 키도 작고 다리도 짧으면서
빠른 이유가 뭐겠어
 

죽을래?”
 

하하.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래.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내가
자기 한 번 이겨보겠다고
이 바득바득 갈면서 뛰는 거다! !!”
 

나 이겨서 뭐한다고...”
 

어느새 인정문 앞에 다다른 우진이 멈춰 서서 말했다.
 


 

그만 싸우고, 들어가자
 

“.......”
 

우뚝 서있는 ㅇㅇ의 손을 붙잡는 우진
 


 

가자
 

, 저기
 

?”
 

나 숨 한번만 쉬고
 

ㅇㅇ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었다.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이내 우진을 보며 하얀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그는
 


그렇게 설레?”
 

ㅇㅇ의 손을 이끌었다.
 

 

 

 


 

설레냐고?”
 

“.......”
 

맞아. 설레고 떨려
 

난 왜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지?”
 

벅차서 그렇지.
다들 인정전 보면 벅차오른대
 

“.......”
 

할 말을 잃을 만큼
 

“.......”
 

할 말을 잃었군
 

“...크다
 

“.......”
 

넓고
 

그게 다야?”
 

지금으로썬,
 

장엄하다, 멋있다, 기품있다 이런 거 아니고?”
 


막막하다, 복잡하다, 아득하다 이런 거
 

“.......”
 

“.......”
 

이상해
 

인정. 인정전 앞이니까 인정!”
 

“...미쳤나봐
 

ㅇㅇ가 우진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고 섰다.
 

정신 차려
 

재밌지 않아?”
 

않아
 

오케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곤
터덜터덜, 어도를 따라 걷는 우진
 

여기는 왕만 걷던 길인데...”
 

“.......”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이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여길 밟네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말하고 있어
 

그냥. 그렇다고
 

예의상 난 어도 안 밟을게
 

아까 밟는 거 봤거든?”
 

하하...”
 

내 뒤나 졸졸 따라오셔. 어디 새지 말고
 

갑니다 가요
 

우진을 따라 어도에 오른 ㅇㅇ.
뒷짐 진 그의 손을 꼭 잡더니
발까지 맞추어 걷기 시작한다.
 


잘 보고 걸어. 넘어지지 말고
 

자기가 잡아주겠지
 

나까지 넘어질까봐 하는 소리야
 

 

뒤에 있어도 불안하고, 앞에 있어도 불안하고...”
 

“.......”
 

옆에 꼭 붙어있어도 불안하고
 

?”
 

그래.
 

누가 들으면 맨날 사고만 치는 줄 알겠네
 

내가 문제지. 눈에 보여야 안심하니까
 

내가 이렇게 손잡고 있는데도 불안해?”
 

 

- 심각하다
 

네가 자꾸 비틀비틀 걸으니까 그렇지.
아니 왜 똑바로 따라오는 것도 못해
 

자기 발 맞춰서 걷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하나 둘 하나 둘. 몰라?”
 

다리가 짧아서 안 된다고!!!”
 

...”
 

-? 납득하지마. 짜증나
 

천천히 걸을게. 미안
 

.......”
 

살짝 미소짓던 우진.
인정전 앞에 다다르자 머뭇거리며 입을 뗀다.
 

ㅇㅇ
 

 

우리 여기 보지 말고 그냥 갈까?”
 

 


그냥 가자
 

인정전이 메인이잖아. 봐야지
 

여기 커튼 같은 거 달아놔서 이상해졌어.
안 봐도 돼
 

“.......”
 

전등도 달아놓고
 

그렇게 따지면,”
 

“.......”
 

여기 볼 게 하나도 없어
 

ㅇㅇ가 우진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자기가 망가진 역사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누구 손을 탔든, 어떻게 바뀌었든
그것조차도 다 역사야.
알잖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
 

, 봐봐
 

ㅇㅇ가 우진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곤 힘껏 맞잡았다.
 


 

 

.
.
 

 


 

이곳이 바로 희정당입니다.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연산군 시절 희정당으로 바꾸었습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희정당 앞에서 멈췄다.
해설사는 꽤 많은 무리들 앞에서
전각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이곳은 원래 침전, 즉 왕이 주무시는 곳이지만
편전인 선정전이 좁은 관계로
이곳이 편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여기서도 일한 거예요?”
 

그렇죠.
, 이제 희정당에 얽힌 아픈 사연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입니다
 

일본이 그랬어요?”
 

. 일제의 무자비한 복구 작업이었어요.”
 

ㅇㅇ이 우진을 살짝 쳐다봤다.
 

원래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고 해요.
지금의 희정당은 이 모습과 완전히 다르고
원래의 강녕전과도 다르답니다.
재건된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 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습니다.”
 


 

우진은 희정당이 아닌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눈치였다.
 

자기야
 

“.......”
 

자기야
 

 

가자
 

ㅇㅇ이 우진을 급히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곤 낙선재 앞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Dreaming - 프롬
 

 

 

괜히 왔어
 

“.......”
 

오는 게 아니었어 역시
 

“...여기?”
 

“.......”
 

대한민국?”
 

우진이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잘 왔어. 잘 온 거야
 

아니. 궁 말이야
 

잘 왔어
 

힘들잖아
 

이게 뭐라고.”
 

“.......”
 

아무 것도 아니지.
이 궁이 직접 겪은 일에 비하면
 

“.......”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잖아
 

“.......”
 

너도 만나고
 

ㅇㅇ가 우진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던 것도 잠시,
자세를 고쳐 앉곤 씨익 웃어보였다.
 

전하
 

?”
 

전하-”
 

여기서 그런 말 들으니까 되게 이상하다
 

신첩은 매양 하던 가락이 있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걸요?”
 

왜 이래. 누가 들을까 무섭게
 

전하
 

ㅇㅇ을 살짝 째려보는 우진
 

하지마
 

전하를 전하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아깐 상놈이라며
 

신첩을 죽여주시옵소서-!!!”
 

푸흐...”
 

ㅇㅇ가 우진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입을 잘못 놀렸나이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용서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우진의 품에 와락 안기는 ㅇㅇ
 


으유...”
 

전하, 우리 전하
 

“.......”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운명입니다.
하늘이 정해주신 운명이요.”
 

“.......”
 

전하께서 매일같이 신첩의 묘에 찾아와
눈물 흘리시던 그 모습을
하늘이 가여워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
 

그리하여 지금 이곳까지 와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하늘이 내린 운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알고 있다
 

우진이 갓을 벗으며 말했다.
 

“.......”
 

과인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
 

“.......”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전하
 

“.......”
 

우리가 겪지 않은 세월에 대해
모두 책임 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몫이 아니었어요 그건
 


과인은,”
 

“.......”
 

그래도 이 땅의 왕이 아니었더냐
 

“.......”
 

과인은 이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
 

조선이 망한 것도,
외침을 당한 것도, 땅이 갈라진 것도.
전부 다 과인의 책임이다
 

전하
 

헌데 책임을 질 방도가 없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나서서 사과를 구할 수도 없어.
이게 하늘이 과인에게 내려준 운명 같은 벌이라면,”
 

어찌 그런 말씀을,”
 

내 달게 받아야지
 

우진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아니 그러냐
 

“.......”
 


덕임아
 

 

.
.
 

 


덕임아
 

 

 

 

.
.
.
 

 

 

 



마이너 왈츠
 

 

 


덕임아, 내 너를 얼마나 은애하냐면 말이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을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널 은애한다.”
 

“.......”
 

이 정도면 과인의 크고 넓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
 

표정이 왜 그러느냐
 

차라리 별을 따다 준다 하십시오
 

, 뭐라?”
 

여인네들은 그런 말에 더 혹한답니다
 

아니 무슨, 과인이 아무리 이 나라의 지존이라 한들
어찌 하늘에 뜬 별을 따다줄 수 있겠느냐
 

“.......”
 

과인은 그런 농으로 널 현혹할 수 없다
 

전하
 

“.......”
 

전하는 그런 농이 조금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필요 없다
 

.......”
 

그런 거짓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 않아.”
 

“.......”
 


진심은, 진실로 진심을 다해 전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럼 진실로 진심을 다 해
책을 덮고 말씀하셔야 되는 거 아니옵니까?”
 

의빈이 주상의 책을 덮으며 말했다.
 

신첩은 한 번도 보시지 않고...”
 

너 또한 바느질에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지 않았느냐
 

그거야 전하께서 용안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으시니 그런 것이지요!”
 

“.......”
 

주상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다
 

“.......”
 


바느질 하는 너를 계속 구경하던 참이었다
 

?”
 

고와서.”
 

“.......”
 

희고 곱길래 널 맥없이 구경만 했다
 

“.......”
 

네가 옆에 있어도 보고 싶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전하...”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옆에 두면 더 보고 싶고...”
 

, 그만 하십시오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
 


심각해
 

신첩이 알기로는,”
 

“.......”
 

전하께선 매일 밤 깊은 잠을 청하시던데요?”
 

아니다
 

꿈도 안 꾸시고 잘 주무시던데...”
 

그럴 리가 없다. 내 밤새 얼마나 뒤척였는데..”
 

신첩이 간지럽혀도 모르셨잖습니까
 

과인을? 나를?”
 

 

“.......”
 

“.......”
 

, 꿈에서 널 본 것이다.
그래서 깨지 못한 것이야
 

에이...”
 

지금 과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냐?”
 

아니, ... 믿습니다
 

“.......”
 

입을 삐죽이며 다시 바느질을 하는 의빈.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주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어디 가십니까?”
 


과인의 말을 믿지 않는 네 옆에 있어서 뭘 하겠느냐.
너는 계속 바느질을 하거라,
과인은 과인이 좋아하는 책이나 볼 터이니
 

전하...”
 

규장각에 있을 것이다.
늦을 것이니 먼저 침수에 들도록 하라
 

주상이 차가운 공기를 내뿜으며
몇 발짝 나아간 순간,
 

가지 마십시오
 

의빈이 주상의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그렇게 가버리지 마세요...”
 

“.......”
 

신첩은 전하의 등만 봐도 서럽습니다
 

“.......”
 

그렇게 영영 돌아오지 않으실까 봐요.”
 

주상은 자신의 허리를 감싼 의빈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않을 일은 없어.
그러니 서러워 마
 

“.......”
 

앞으론 먼저 돌아서지 않을게.
내가 항상 뒤에 있을게
 

“.......”
 


내가, 너의 뒷모습을 볼게.”
 

 

 

 

.
.
.
 

 

 

 

그 이름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넌 이제 더 이상 성덕임이 아니니까.”
 

“.......”
 

우리가 조선에서 왔지만 조선사람이 아니듯,
나도 더 이상 이산이 아니고
너도 성덕임이 아닌게지
 

“.......”
 

이제 너는 ㅇㅇㅇ, 나는 연우진.
그러니까 우리 전하놀이는 그만 하자
 

알겠사옵니다-”
 

스읍,”
 

알았어
 

두 사람 입가에 번진 미소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온 사방으로 흩어졌다.
 

 

덕임아
 

ㅇㅇ
 

 


 

 

그리고 그 바람은
두 사람의 눈시울을 스친 뒤 사라져버렸다.
 

 

 

 

규장각 안 봐도 돼?”
 

 

?”
 

어차피 못 들어가잖아
 

그래도 부용지는 볼 수 있잖아.
이 큰 궐 안에서 거길 제일 좋아했으면서
 

안 봐도 돼. 괜찮아
 

창경궁은?”
 

거긴 더더욱
 

“.......”
 

아버지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그럼?”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한복입고 돌아다니기 진짜 힘들다
 

거짓말
 

난 청바지랑 운동화가 편해
 

정조대왕께서 말씀하시길,”
 

ㅇㅇ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곤룡포는 필요 없다.
과인에게 청바지와 운동화를 달라
 

 

의빈에게는 각선미가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하사하라!!”
 


무엄하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
 

안 돼. 무엄해
 

.. 치사하게
 

계속 한복 입어. 드러나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난 우진이
칭얼거리는 ㅇㅇ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기서 우리 사진 찍는다
 

?”
 

저기. 여자들
 

어디
 

“2시 방향
 

고갤 끄덕거린 ㅇㅇ
기지개를 켜는 척 하며 2시 방향을 쳐다보곤
다시 우진을 향해 돌아섰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데
 

그래?”
 

우리 한복이 예쁘긴 예쁜가봐.
최대한 조선 때 흉내 낸 건데...
아님 내가 너어어무 곱든가
 

“.......”
 

자연스럽게 걷자. 걷는 것도 잘 찍히게
 

꼭 그래야 돼?”
 

사진 많이 못 찍었단 말야.
남들한테라도 찍혀야지
 

“...지금 내가 찍어줄게. 여기 서 봐
 

어우 됐어
 

서봐. 찍어줄 테니까
 

, 그럼 같이 찍어!!”
 

우리 둘이?”
 

 

.... 잠깐만
 

우진이 옆 벤치에 앉아있던 남자에게
촬영 부탁을 하러 간 사이,
ㅇㅇ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방금 전까지 자신을 몰래 찍었던 여자들을
힐끔 쳐다봤다.
 

뭐야. 내가 아니라 저 양반이었어?”
 

하지만 여자들이 들고 있던 휴대폰은
ㅇㅇ 쪽이 아닌 우진을 향해 있었다.
 

젠장...”
 

찍어주신대!”
 

제기랄...”
 

?”
 

, 아니야 아무 것도
 

 

자 찍습니다! 하나, , !!!”
 

 

 


 

 

.
.
 

 


 

 

.
.
.
 

 

 

.
.
.

※만든이 : 별유님
 

 

+여러분에게+
 

의미없는 이야기는 원래 의미가 없어야 하죠.
 

근데 이 글은 조선 제 22대왕 정조와
그가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의빈 성씨 이야기를
모티프로 해서 쓴 글입니다.
 

제목을 다르게 해서 아예 좀 긴 단편으로 쓰려 했으나
시간이 없고 밀린 글도 많기에
그냥 이쯤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결말이 이상한 점 사과드립니다
ㅠㅠ
 

언젠간 쓸지도 모릅니다.
두 인물 사이에 있었던 일이
너무나 슬프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전에 썼던 <불인별곡>도 비슷한 방식이었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모티프로 한.
(제가 바라는 전개와 결말의)
 

제가 <불인별곡> 쓸 때 감정소모가 제일 심했거든요.
<RACC 보통의 존재> <사연 많은 식구들>
쓸 때보다 더요.
 

그래서 또 팩션사극을 (그것도 비극적인)
쓸 생각하니 그럴 만한 에너지가 없는 것 같아서요.
 

그 에너지로 <RACC>
<사연 많은 식구들>을 완결 내려고 합니다
 

이번 달 안에 해볼게요.
안 되면 다음달까지-
(노력 노력 노력)
 

그리고,
게시판에 댓글 꼬박 달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하고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제 글 봐주시는 분들 또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 믿고 달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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