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단편] (by. 몽글구름)

 

 

 

<작가가 독자님들께>
 
주제와 내용 자체가 무거울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중간에 삽입된 BGM을 함께 들으면서
글을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밑에서 따로 할게요!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완전한 암흑이 아니었는지,
새 파란색이 드문드문 섞여있었다.
그래도 주변이 온통 새까맣다,
꼭 정전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파란빛과 검은빛이 적절히 뒤섞인 흙색,
그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전부였다.
어떠한 형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어둠속에 난 서 있었다.
 

 

마른침을 꿀꺽-삼키고,
좌우를 천천히 두리번거리다가 낮게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의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안녕.”
 

 

평소에는 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번갈아가며 들리던 목소리가,
오늘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몸통을 돌리며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시선을 향하지만,
늘 그렇듯 상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늘은 어땠어?”
 

 

평소보다는 좀 덜 아팠어.
물론더 센 진통제 때문이겠지만.”
 

 

며칠째 난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처음엔 캄캄한 세상 속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벌벌- 떨기 바빴는데,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이
며칠 됐다고 좀 익숙하기까지 했다.
 

 

- 그랬구나.
이젠 내가 안 무서운가봐?”
 

 

무섭긴- 매일같이 찾아오는데,
이제는 적응 될 만도 하지!
내가 적응력 하나는 진-짜 좋거든.”
 

 

그래, 보기보다 씩씩하네.”
 

 

보기보다?
그럼 넌 내가 보인다는 소리야?”
 

 


, . .”
 

 

이야- 이거 되게 불공평하다?
날 어둠속에 세워둔 채,
그쪽은 얼굴도 안 보여준다는 게.”
 

 

내가 심통 부리듯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자,
 

 

보챌 필요 없어.
조만간보게 될 거니까.”
 

 

상대방은 평소보다도 더 낮은 목소리로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더 있으면 볼 수 있는데?”
 

 

내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얼굴 보여주는 게
자신 없는 거 아니야?”
 

 

난 적막이 돌던 공기를
농담으로 채워버렸다.
 

.
.
.
 

한참을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오늘도 잘 자고,
내일도 웃으며 보자!”
 

 

상대방의 인사를 끝으로,
난 더욱 깊은 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
 

 

 

 

젖혀진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다.
물론 내 손등엔 여러 가지 수액으로 연결된
굵은 주사바늘이 꽂혀 있지만.
 

 

눈을 뜨자마자,
난 흰색으로 가득 채워진
병실의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만 봤다.
 

어느새 핏기 없는 얼굴위에
옅은 미소가 자리를 잡았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꿈속의 상대방이
누군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이상하게 그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눴던
꿈을 꾼 다음날이면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내 오래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편안한 느낌이랄까.
 

 

보통 꿈이라면 맥락이 맞지 않게
내용이 뒤죽박죽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난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고 오고가는 대화내용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고,
꿈속에서 나눴던 대화내용을
서로가 기억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일이다.
 

같은 배경이 며칠 내내 꿈속에 나타나는 것도,
모르는 상대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꿈 자체가 현실처럼 너무 선명한 것도.
 

 

최근에 변화된 상황을 하나 꼽자면,
난 꿈을 꾸는 그 순간을
나도 모르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
.
.
 

 

 

 

햇살이 짙어진 오후,
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통제가 되지 않는 내 몸부림에
여러 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었고,
간신히 움직임이 잠시 멈춰버린
그 틈에 약효가 다른
두 가지의 주사를 맞고 나서야
내 몸부림은 겨우 잠잠해졌다.
 

그 주사엔 수면제가 섞여있던 걸까,
졸음이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병실 안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쟁반에 담긴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결국 잠에서 깼다.
 

항상 내 옆자리를 지켜준 보호자인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난 링겔대를 끌고
천천히 병원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대기실 안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흐느끼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본드를 발에 붙여놓은 것 마냥
난 그곳에서 그대로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여보- 어떡해.
흐흡우리 ㅇㅇ,
불쌍해서어떡해.”
 

 

한껏 짙어진 농도로
눈물을 쏟아내는 엄마의 입에선
내 이름이 새어나왔다.
 

 

의사선생님이 흑, 흐읍
ㅇㅇ한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길어봤자 한 달이라는데.
, . 앞으로 다가올 통증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거라는데. 하아.
ㅇㅇ? 아까 진통제랑 수면제를 맞아서
아직 자고 있지.
곧 깰 때 된 거 같은데,
여보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투박스럽게 닦아내면서
엄마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멍하니 서있던 난,
내 모습을 엄마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황급히 병실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침대위로 올라갔다.
흐트러진 이불로 다리를 덮자,
타이밍 좋게 엄마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구,
우리 딸 일어났어?”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의 태도에,
나 또한 엄마가 아빠와 전화통화를 한 내용을
모른 척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엄마의 붉게 충혈 된
눈을 난 애써 못 본척하며,
입매의 끝을 어색하게 끌어올려보았다.
 

그래서 난 마치 지금 일어난 상황처럼
연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배고프지?”
 

 

난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엄마는 내 이름 앞으로 나온
저녁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왔다.
난 각 반찬들의 뚜껑을
하나씩 천천히 열었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었으나,
이것저것 섞이는 음식 냄새에
비위가 상하기 시작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자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고,
억지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을 다 게워냈지만.
 

 

예전엔 밥 정도는
곧 잘 먹었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길어봤자 한 달이라는데.”
 

 

아까 통화를 하면서
말을 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언제부터였는지 내 현실 속에 녹아들어있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 했을 뿐.
 

 

아직도 내 병명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진짜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오늘 밤은 유독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 * *
 

 

 

 

동이 트려는 기미가 보이자,
난 내가 속한 세계로 돌아왔다.
깊은 밤쯤을 시작으로,
푸르스름한 새벽을 끝으로
나의 일은 끝이 난다.
 

내가 주로 일하는 시간은,
일반적인 인간들의 근무시간과는 정반대다.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야간근무인 셈이다.)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없는 근무조건이었다.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그러다 가끔은 꿈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인간의 생이 다하는 순간,
인간의 혼을 저승세계로
인도하는 일도 하긴 한다.
 

(꿈속에 들어가 인간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가진
인간의 혼을 위로한다는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하는 일은 인간의 혼을
편하게 이승세계에서 저승세계로
안내하는 도우미의 역할에 불과하지만,
인간들은 이런 역할을 하는 자를
저승사자라고 부른다.
 

 

 

죽음의 끝은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난 죽고 나서부터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
 

왜 내가 저승사자가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다.
 

그럼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되는가-라는
내 질문에 최종 심판자인 그분은
정해진 기한 따위는 없다고 했다.
 

이 일에서 벗어나는 때는,
단지 내가 지은 죄를 뉘우치게 되는
깨달음을 얻을 때뿐이라고 했다.
 

 

 

 

.
.
.
 

 

 

 

난 머리 위를 덮고 있던
검은 중절모를 거칠게
테이블위로 벗어던졌다.
 

 

넌 오늘
지명자(=명부에 적힌 자)
인도하고 왔다며?”
 

 


- 86세인 할머니였는데.
, 뭔가 마음이 뒤숭숭하더라.”
 

 

난 테이블 위에 올려 진 얼음 섞인
양주 한 모금을 마시며,
 

 


뭐가 뒤숭숭한데?”
 

 

맞은편에 앉은 윤기에게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내 질문에 그는
본인의 시선을 어딘가에 던져놓고
회상하듯 말을 이어갔다.
 


오늘 인도해드린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중매로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남편과 사별을 하셨더라고.
그런데 여태껏 재혼도 안하시고,
어제를 포함한 남은 생 모두를
남편과 함께한 10개월의 추억에
의지한 채 살아오셨더라고.”
 

 

윤기의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는 본인 앞에 놓아진 양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제는 인도를 하는 날이라,
내가 할아버지 뵈러가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거든?
 

내 말에 할머니께서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셨어.
 

그런데 인도를 하기위해
앞서 걷고 있던
나를 붙잡더니 물으시더라.
본인은 이렇게 늙어버렸는데,
남편이 자신의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냐-
걱정을 하시는 거야.”
 

 


.”
 

 

윤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 한편에서 뭉클거리는 무언가
나도 모르게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순결한 사랑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구나-라는.
할아버님을 만나기 전
설레어하는 할머님의 모습이,
아름답더라.”
 

 


아름다웠다며,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지어.”
 

 


그런 사랑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데,
여기서언제 벗어날지 모르잖아.”
 

 

그의 말에 동조하듯
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우리는 언제쯤 환생을 해서
다시 인간의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갈 수는 있을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데,
 

 


넌 내일부터 지명자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날이더라?”
 

 

양주를 홀짝이던 윤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위에서 명부가 내려오는 순간,
명부에 적힌 자(=지명자)
꿈속으로 그날부터 매일같이 찾아간다.
 

지명자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그리고 명부에 적힌 날짜가 되면,
지명자에게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게 된다.
그러면서 친밀도를 높여
더욱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가면서,
지명자가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게
천천히 이승을 떠날 준비를 도와주게 된다.
 

 

그렇다,
꿈속에서 지명자에게
내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지명자의 생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내가 이번에 위에서 받은 명부에
적힌 지명자는 ㅇㅇㅇ,
한창 예쁠 나이인 여고생이었다.
 

원인불명인 난치병,
거의 불치병수준인 병에 힘겨워하다가
이쪽세계로 넘어오게 된다는
간단한 정보뿐.
 

이제 그녀는 이승에서
보낼 수 있는 날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언제나 죽음을
앞둔 상대를 대하는 것은
마음이 참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게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인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난 당신을 만나러 간다.
 

 

 

 

.
.
.
 

 

 

 

늘 같은 배경인 꿈의 세계에,
오늘도 ㅇㅇ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오늘은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거울도 없는 상태에서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었다.
 

 

-,
 

어이없는 내 행동에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가슴한편이 떨려오는 건지,
아무래도 첫인상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해본다.
 

 

저 멀리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ㅇㅇ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늘 천천히 좌우만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꼭 어린애들이 할 만한 동작이었다.
그 모습을 제법 귀여워보였다.
 

 

천천히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발, 한발
 

발걸음을 떼어내며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데,
온전한 내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떨리는 건지,
긴장을 한 건지,
또 다른 마음인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떠한 일렁거림이
가슴 안을 가득 채워왔다.
 

 


안녕.”
 

 

언제나처럼 네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느릿하게 뒤를 도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꽤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모습에,
 

 

나 민망하라고,
너무 놀라는 거 아니야?”
 

 

난 쑥스러운 웃음을 얼굴위에 띄우며
장난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와- 반가워!”
 

 

이내 나를 환한 미소로 반기며,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해왔다.
 

그녀가 내민 손을 보자,
어느새 내손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ㅇㅇㅇ예요.”
 

 

맞잡은 우리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뜬금없이 본인 소개를 한다.
 

 

, .”
 

 

난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머뭇거렸다.
 

그녀는 어서 이어서 말해보라는 듯,
내 눈을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맞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제법 따스했다.
 

 

따스한 온기에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해진 건지,
 

 

.”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을 자연스레 떨어트리며,
조금은 낯설어진 내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가 죽은 이후로 어느 누구하나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는데.
 

 

그리웠던 사람의 온기가
여전히 손에서 느껴지자,
 

 


우지호.”
 

 

알려줄 생각도 없었던
내 이름을 성까지 붙여가며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내 온전한 이름을 내뱉어보았다.
 

 

실로 내 이름이
귓가를 파고 들린다는 건
꽤나 낯설고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그리움이나 아쉬움정도의 감정을
제대로 느껴볼 새도 없이,
무언가 어긋나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가지 안 되는 금기 중에 하나인,
지명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버렸다.
 

내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녀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살포시 얼굴위로
옅은 미소를 띄워보였다.
 

그 웃음을 말없이 바라보는데
어찌나 포근하고 따스한지,
고민과 걱정을 잠시 접어둔 채
나도 그녀와 같은 웃음을
조심스레 지어보였다.
 

 

첫인상은 좀 무서워보였는데,
웃어 보이니까 인상이 굉장히 좋아 보인다.
- 이름처럼 좋은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이름처럼 좋은사람?”
 

 

나를 이렇게 생각한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난 좋은 사람이었을까.
 

나를 알던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건 욕심일까?
 

 

그동안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많이 배려해주는구나-라고 느꼈거든.
너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 아주 많이.
- 그래서 고맙다고.”
 

 

ㅇㅇ는 살짝 몸을 배배-꼬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내 직업의 특성상,
상대방을 배려하며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표현한 호의에
가슴한편이 뭉클거리고 있었다.
 

 


내가 과연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딱 한가지뿐이다.
 

무언가를 딱히 더 잘해줄 수는 없지만,
대신 가는 길을 최대한 외롭지 않게,
최대한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 그렇게
 

당신을 인도해줘야겠다.
 

나의 씁쓸한 웃음이
얼굴위로 올라앉았다.
 

 

 

 

.
.
.
 

 

 

 

얼굴을 보여주기 전에
느꼈던 두근거림에,
고민을 했던 짧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우린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재잘거리던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며
시선을 바닥으로 꽂은 채,
 

 

우리 이제 자주 못 볼,
아니 아예 못 볼 수도 있겠다.”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
 

 

우리 둘뿐인 꿈의 세계의 공기가
제법 무겁게 느껴졌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지,
ㅇㅇ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주변을 천천히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우리 둘뿐이어서 하는 말인데,
이건 비밀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는 그녀의 이야기에
난 대답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나한테는 한 달 밖에 시간이 없대.
앞으로 난한 달 밖에 못 살 거래.
어쩌면그보다
더 짧은 수도 있겠지.”
 

 

-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의사에게서 받았던 사형선고를
내게 힘겹게 알리고 있었다.
 

말이 끝나게 무섭게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결국 흩어지면서 부서져버렸다.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삼키려는지,
ㅇㅇ는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끅끅-거리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난 손을 들어 며칠사이
유독 작아져있는 ㅇㅇ의 등을,
 

 


죽는다는 게
많이무섭지?”
 

 

천천히 쓸어 내리기도하며
혹은 작게 토닥여주며
그렇게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ㅇㅇ는 주저앉아,
참았던 울음소리를
애처롭게 뱉어내고 있었다.
 

 

 

얼마나 울음소리를 토해냈을까,
점점 그 소리가 잦아들 때쯤이었다.
 

 

죽는다는 게 무서워.
그건, 가족들에게서 멀어진 채,
내 자신이 사라져 버린다는 거잖아.”
 

 

분명 ㅇㅇ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지만,
 

 

하아, 두렵고 너무 끔직해.
내가 죽고 나면,
울고 있는 우리엄마 눈물을
누가닦아주겠어.
일 때문에 힘겨워하는
우리아빠어깨를
누가 주물러주겠어.”
 

 

말을 이어갈수록
그 목소리에는 물기가
짙게 녹아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ㅇㅇ의 눈물 속에는
두려움, 공포, 걱정, 아쉬움, 그리움 등
여러 가지의 감정이 뒤섞여
한동안 계속 흘러내렸다.
 

 

 

난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는
당신의 눈물을 보자,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찌릿-거리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을 정확히 알아채도 전,
난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위로를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난 동이 틀 무렵 빠르게
꿈의 세계에서 벗어나
내가 속한 세계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왔을 땐,
이미 먼저 도착해서
양주가 담긴 술을 마시는
윤기가 눈에 들어왔다.
 

난 자연스레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빼내며 자리에 앉았다.
 

윤기는 빈 유리잔을 건네며,
내게 술을 따라주었다.
 

 


오늘은 많이 늦었네?”
 

 

난 그의 말에 유리잔에
가득 담긴 양주를 들이키며,
쓰디쓴 맛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을 꺼냈다.
 


요새는 생에 다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네.”
 

 

?”
 

 

그냥 그런 감정이 든다고.
목에 걸려있는 이 불빛의 색깔이
언제 변할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말이야.”
 

 

지었던 죄를 뉘우치며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목에 걸린 메달의 색이
초록빛을 띄면서 자연스럽게
목걸이는 사라진다고 한다.
 

그 후에는 아마도
환생을 하면서
다시 생을 살아가겠지?
 

난 목걸이에 달린 빨간 불빛이 띄는
동그란 족쇄 같은 메달을 만지작거렸다.
 

 

왜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거야.”
 

 


나약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단지 자신에게
서서히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알고,
떨고 있는 사람의 심정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야.”
 

 

내말에 윤기는
양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정신 차려, 우지호.
네가 마음이 아프다-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말했던 것
때문에 하는 말인데
 

괜히 과하게,
인간에게 마음을 주지는 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마쳐서,
언젠가는 우리도 다시
새 삶을 살아가야하지 않겠어?”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건넨 말에,
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시선만 아래로 내려 깔았다.
 

 

ㅇㅇ가 지었던 아픔이 담긴 표정과
슬픔이 흘러내린 눈물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코트 주머니 속에 있는
명부를 꺼내보고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남은 생은
14일 정도였는데,
 

어느새 그 숫자가 절반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기운에 숫자를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난 눈을 비비고 다시금 숫자를 확인하였지만
 

분명 14였던 숫자는 4로 변해있었다.
 

 

다급해보였던 내 행동에,
 

 

왜 그래?”
 

 

윤기는 내게 궁금하듯 물어보았다.
 

 

, 아니-
분명 어제까지 14일이었었는데.
남아있던 생의 날짜가.”
 

 

당황스러움에 말까지 더듬어가며
채 말을 끝까지 잇지도 못하고 있는데,
 

 


너 설마,
금기를어겼냐?”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윤기는 내게 되묻고 있었다.
 

 

우지호.”
 

 

아까의 통성명을 하던 상황이
영화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금기를 어긴 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들리는 이야기로는
금기를 어겼을 때는
그가 인도하고 있던 지명자의 생명이
짧아진다고 알고 있어.”
 

 

금기를 어긴 자의 처벌에 대해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윤기의 이야기에 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멈춰버린 심장박동이 죄를 지은 사람마냥
요란스럽게 울리는 것 같았다.
 

 

 

아니, 이보세요!
신이라는 양반!!
 

 

그럼 금기를 어긴 나를 벌해야지.
왜 그 피해의 화살이
지명자를 가리키는 건데?
 

 


차라리 금기를 어겨버린
나를 소멸시켜버리지,
왜 하필 얼마 남지 않은 아이의
숨을 빼앗아 가냐고!
 

 

난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
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있었다.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어떡하냐, ㅇㅇ.
내가 너한테 너무 큰 죄를 저질러버려서.
 

 

 

 

*
 

 

 

 

BGM: 첸백시- 너를 위해(Piano Version)
 


 

 

 

 

명부에 정자로 적힌 너의 이름, ㅇㅇㅇ.
그리고 그 옆에 적힌 ‘1’이라는 숫자.
 

난 꿈속의 세계에서 돌아와 테이블에 앉아,
그동안 수 도 없이 문질렀던 탓에
 

옅어진 너의 이름을 또 다시
손가락을 뻗어 쓸어내리고 있었다.
 

 

오늘 당신의 꿈속에서 했던 대화라곤,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되돌릴 수없는
일에 사죄만 하다왔다.
 

 

미안해, ㅇㅇ.
정말 많이미안해.”
 

 

백번을 사과해도 용서가
안 되는 일을 저질러서 정말 미안해.”
 

 

입이 닳도록 사과의 말을 뱉어도,
손발이 닳도록 빌면서 용서를 구해도
내 실수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지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꿈속의 세계에서 만남이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의 난,
꿈속에서 헤어지기 전까지
당신을 위로해주었어야만 했다.
 

살짝 예고를 해서라도
지명자가 자신의 주변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도와줬어야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못하고 왔던
내가 참 한심스러웠다.
 

주워진 임무도
제대로 마치지 못할 줄이야.
 

 

내일 꿈속에서 갑자기 저승의 세계로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나를 많이 원망하겠지?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않았다고
나를 탓하며 욕을 할지도 모르지.
 

 

당신에게라도 난
좋은사람으로 남고 싶었는데.
 

 

내일 꿈속에서 당신을 만나면,
난 어떤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인도해야할지 모르겠다.
 

과연 인도를 잘 끝마칠 수 있을까?
 

사실 난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그녀를 보내줄 자신이, 없다.
 

난 유리잔에 담긴 양주를
쉬지 않고 마셨다.
 

 

내가 죽기로 결심하던 순간부터
내가 죽음을 향해
거침없던 행동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
.
.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도 여전히 귀엽게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자,
무게를 측정할 수없는 무언가가
내 마음을 꾹- 눌러대는 것만 같다.
난 눈을 질끈-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입술을 한번 질끈-깨물었다.
 

도무지 진정하려 애를 써도
오늘 당신의 끝을 알고 있는 난,
손끝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 할 수 없어,
난 떨리는 손을 숨기고자
코트속의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인도를 하기 위해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안녕.”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 목소리에 ㅇㅇ는 뒤를 돌아봤고,
나를 발견하자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당신의 환한 웃음을 보자,
난 눈물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기에,
애써 눈물을 꾹 참아가며
내 입술의 끝을 위로 올려보였다.
 

 

요새 너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걱정이나 고민 있어?”
 

 

나를 보자자마
내 걱정해주는 당신을,
 

 

생각해보니까 지호야 넌,
한 번도 내게 고민 이야기를
안 꺼냈더라?”
 

 

착한 마음이 너무 예쁜 당신을,
내가 어떻게 인도를 해줘야하는지.
 

 

유난스럽게 반짝이던
당신의 눈동자가 내게 향해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당신의 맑은 눈동자에
내가 담겨있던걸 알아차렸을 땐
기분이 묘하면서 설레었는데.
 

 

?
진짜 무슨 일 있어?”
 

 

- 쳐져있는
내 모습이 꽤나 걱정이 됐는지,
애써 밝은 웃음을 지으며
물어오는 당신의 모습에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억지웃음을 보였다.
 

 

그동안 늘 부정해왔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젯밤
윤기와 나눴던 대화를 통해서,
나 혼자 떠올리던 생각을 통해서,
애써 부정해왔던 내 마음을
결국 알아채버렸다.
 

 

그것도 이렇게
너무 늦게 말이다.
 

 

상대방을 설레게 했던
당신의 빛나던 눈동자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던
당신의 예쁜 웃음이,
 

상대방을 자신보다 더 배려하던
당신의 예쁜 마음씨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던
당신 그 자체가.
 

 

당신을 만났던 시간 속에는
사랑에 빠질만한 순간들이
차고 흘러넘쳤었다.
 

난 어찌 그런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가슴 한편이 찌릿-거리던 느낌이,
당신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던 마음이,
당신의 기분이 곧 내 기분이 되던 그날들이
 

모든 것들이 사랑을 가리키고 있는
작은 증거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애써 부정해왔다니.
 

 

 

.
.
.
 

 

 

 

BGM: 첸백시- 너를 위해(Piano Version)



 

 

 

말없이 한참을 걷던 난
드디어 걸음을 멈춰 섰다.
 

 


내 눈앞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오른쪽 문으로
당신을 들여보내면 되는데,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을 그쪽 문으로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없기에,
난 마지막으로 따스했던
당신의 온기를 느끼고자
차갑게 식어버린 내 손을 내밀었다.
 

 

ㅇㅇ는 자신의 손을 뻗어,
내가 내밀었던 손을 잡아주었다.
그때처럼 따스했던 온기가
손을 타고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마지막이란 단어 앞에서
내 감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터져 나왔다.
눈물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아래로 추락해버렸다,
 

내 마음을 온전히 담은 채로.
 

 

제대로 곪아 터져버린 감정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신을 잃기 싫었다.
당신의 모습들이 사라지는 게 싫었다.
당신의 존재자체가 없어진다는 게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
이리도 가혹한일이었나.
 

 

이별보다도 잔인한 이 기로 앞에서
난 한참을 서있었다.
 

 

쏟아낸 내 눈물에 ㅇㅇ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를 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그녀를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난 아무 말이나 뱉어내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꼭 전해야 될 말 같은 게 있어?”
 

 

내 질문에 ㅇㅇ
살포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지.
혹시 내가 떠나더라도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아파하지 말라고
부모님을 위로해주고 싶은 거?
 

, 또는 그동안 나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은 인사 같은 거?”
 

 

그녀는 말을 꺼내놓고 머쓱한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막상 엄마보고
그런 말을 꺼내면,
눈물이새어나올 것만 같아서 그 말을 못했어.
아직 내 마음을 다못 전했어.”
 

 

부모님을 생각하는지,
ㅇㅇ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조금 더 문 쪽으로 가깝게 다가가기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그런데 혹시 나 오늘
죽는 거니?”
 

 

너의 한마디에 난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눈치 챘을 만도했다, 보통과 다름을.
 

평상시엔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오늘은 그러하지 않았음을,
 

평상시엔 웃으며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늘은 그러하지 않았음을,
 

평상시엔 난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러하지 않았음을.
 

 

난 어떠한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미안.”
 

 

잔인하게 짧은 말 한마디로,
그녀의 질문에 긍정을 띄워보였다.
 

 

진짜?”
 

 

자신의 마지막이 믿기지 않는지,
축축해진 눈빛으로 나에게 되물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고개를 숙여버린 채,
잘은 숨을 툭- 내뱉었다.
내쉬었던 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내 ㅇㅇ는 숙였던
고개를 들더니 내 손을 잡아왔다.
 

 

저기- 지호야 혹시 미안한데,
부모님께 한마디만흐흑.
한마디만, 하고 오면 안 될까?”
 

 

물기에 잠겨버린 목소리로
울먹거리며 내게 부탁을 해왔다.
 

 

하아. 진짜로 내가
전해야할진심이 있어서
그 말은 꼭 전하고 싶은데, 흐흡.
잠깐만잠깐만 보고 오면 안 될까?
지호야부탁 좀 할게, ?”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오며
더욱 간절하게 부탁을 해왔다.
 

 

흐으읍.
내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면, 흐흑.
부모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
이렇게 떠나면 나로서도
부모님께 정말로 죄송해서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제발 부탁 좀 할게, ?
지호야, 제발.”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왜 네가떠나는데
부모님께 죄송해?”
 

 

당신이 지금 죽음의 문턱 앞에 도착해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난 이해하지 못했다.
 

ㅇㅇ는 이미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자식이 부모님보다
먼저 죽는 것만큼
불효인 것도 없다-잖아.”
 

 

나를 향해 또박또박 이야기를 꺼냈다.
 

 

ㅇㅇ 너의 이야기에 난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
그럼 나도 엄청난 불효를
저지르고 온건가?
 

 

ㅇㅇ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병 때문에,
고통스럽게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통증의 강도에 난 죽기로 결심을 했고,
참을 수없는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죽음을 택했다.
 

물론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은 채로.
 

 

나 참 이기적이었구나.
죽는 순간까지 가족이나
주변 사람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단순히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니까.
 

 

 

갑자기 부모님의 얼굴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내 뒤에서 숨죽여 울던 부모님의 모습이,
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받아내며
나의 곁에 있어주던
부모님의 모습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내 기억에는
부모님의 모습은 없다.
 

 

이미 내 기억속에서도 흐릿해져버린,
색을 잃어버린 한조각의 흑백사진처럼
부모님 얼굴만 잔상으로 남아있을 뿐.
 

 

, 정말로 내가씻을 수 도 없는
큰 죄를 지었었구나.
 

 

큰 죄를 저질러버린 죄책감에,
저절로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그때 내 목에 달린 메달의 색이,
초록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하아.
 

죄송해요, 엄마 아빠.
정말 죄송합니다.
못난 결정을 내려버린 아들을
부디 용서하여주시길.
 

 

 

 

BGM: 첸백시- 너를 위해(Piano Version)


 

난 말없이 연신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눈물을 전혀 멈출 기색이 없이,
여전히 거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몹시도 후회스러웠다,
내 지난날의 결정이.
 

 

비록 내 마지막이 힘들었어도
내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부모님의 모습들을 기억 속에
한 장면이라도 더 담아둘걸.
 

진한 아쉬움이
나를 들쑤시고 있었다.
 

 

휘청거리며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ㅇㅇ는 내 등을 천천히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또는 천천히 쓸어내리면서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따스한 손길에 손으로 감쌌던
내 얼굴을 들어올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며,
 

 

지호야, 울지.”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만 울어, 지호야.”
 

 

여전히 내 이름을 불러오며
나를 달래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따스한 행동을 보이는 그녀에게
나와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오른쪽 문이 아닌
왼쪽 문을 가리켰다.
 

그 문은 꿈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이었다.
 

 


문득 궁금해진 건데 말이야,
지명자의 생이 다했는데도
문을 잘못 알려줘서
살아남은 지명자들은 없나?”
 

 


, 우지호.
문이 꼴랑 두 개인데
그걸 헷갈려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오른쪽 문이다, 우지호.
내일 헷갈리지 말고
지명자 잘 인도해드리고 와!”
 

 

나는 알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내말은,
그렇게 실수한 사례는 없었나-
궁금하다는 거지.”
 

 


그런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죽었다가 간혹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는걸 봐서는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추측은 돼.
 

다만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명자를 다른 문으로 인도한 인도자는
소멸된다고 알고 있어.
물론떠돌던 소문이긴 하지만,
 

인도자 입으로
직접 전해지지 않는걸 보면
환생의 기회도 없이
정말 소멸될 수도 있겠지.”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진 채 쉬지도 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 내게 다가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어제 나눴던 윤기와의 대화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우지호,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분명 오른쪽 문이다!
내일 인도 꼭 잘하고 와라.”
 

 

윤기야- 너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거니?
 

이런 결정을 내린 나를 말이야.
 

 

꽤나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우리의 추억에 난
씁쓸한 미소가 얼굴위로 떠올랐다.
 

 

지호야.”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내가 당신에게 전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선물을 당신에게 줄게.
 

 


내가 잠시 사랑했던… ㅇㅇ,
물론 여전히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ㅇㅇ.
 

이승과 연결된 있는 그 문으로 빠져나가서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이나마 후회와 아쉬움을 내려놓길 바라.
 

 

이 쪽문이야.”
 

 

울음에 젖어버려 한껏 낮은 목소리로
난 왼쪽 문을 한 번 더 가리켰다.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후회가 덜 남도록알겠지?”
 

 

고마워, 지호야.
정말로 너무 고마워,
지호야.”
 

 

내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 쥐고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내 ㅇㅇ는 지체 없이
왼쪽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선 그녀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내게 전해왔다.
 

정말로 고마워.
그럼 난 가볼 게,
지호야.”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난 기꺼이 그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리.
 


내 희생으로
당신의 아픔이 작아질 수 있다면.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독자님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너무 오랜만에 찾아뵙는 것 같네요.
우선 오랜만에 찾아와 놓고,
이런 다크한 분위기의 글을 들고 와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공백 기간이 길어질 걸 미리 알았다면,
잠깐 쉬다가 돌아오겠습니다-라는
간단한 공지정도라도 남겨놓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마지막 글을 투고하고 나서,
평상시에 문득 느끼던 생각이 물이 밀려들어오듯
한꺼번에 불쑥 밀려오더라고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버겁다-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하루, 이틀 쉬다보면 다시 글을 쓰고 싶겠지-라는
생각으로 잠깐만 쉰다는 것이,
벌써 2, 3주가 훌쩍 지나가 있더라고요.
 
사실 그 사이에도 독자님들을
찾아뵙고 싶었던 마음은 들었지만,
써놓은 글은 없고 막상 새 글도 잘 안 써지고.
그래도 글을 써보겠다고,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끄기를 수십 번
이상하게 단 한 문장도 써지지 않더라고요.
(이런 게 슬럼프인가-란 생각도 해봤지만,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저 같은 초보한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여겼지만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뭔가 끼지 못하고 혼자 겉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글을 쓰는 데에 있어 갈피도 못 잡겠고
자신감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자꾸만 뒤로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보처럼 말이에요.
 
어떤 이유였던지간에,
전 말도 없이 무책임하게 잠수를 탔던 행동에 대해서는
독자님들께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독자님들께 어쭙잖은 거짓말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그동안 제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고스란히 적다보니
문장이 많이 엉망이긴 하지만 
그런 점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랄게요.
 
지금은 다시 용기를 내서 돌아왔지만,
전보다 연재주기가 다소 길어질 거라 예상이 되기에
독자님들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전에 쓰던 이란 작품은
완결을 꼭 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지만,
이 점만큼은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많이 그리웠습니다, 독자님들.
글쓰기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