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C; 회자정리 거자필반 (1/2) (by. 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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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준
ㅇㅇㅇ
김우빈
그 외
 
 
 
 
나 사랑해?”
 
“.......”
 
사랑하냐고
 
무슨 말이야 그건 또...”
 
두준이 인상 쓰며 마른세수를 했다.
 
사랑하니까 만나지
 
그러니까
 
근데
 
그게 이상하잖아
 
뭐가
 
계속 사랑한다는 게
 
너도 그렇잖아
 
“.......”
 
아니야?”
 
“.......”
 
대답해. 아니야?”
 
“.......”
 
ㅇㅇㅇ
 
나는 널,”
 
 
처음엔 여기서부터 잘못된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 한 마디 한 마디가
잘못 됐고, 못났고, 잔인했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틀어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우리는 어쩌면 더 이른 시점부터
어긋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
아니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
.
.
 
 

 
아름다운 이별 배수정
 
 
 
 
여보세요-”
 
야 가은아 뭐해?”
 
뭐야 갑자기~
나 지금 같이 알바하는 애들이랑 술 마셔!”
 
아 그래?”
 
. 너는!”
 
나는 집
 
혼자?”
 
 
윤두는
 
축구하러 갔어
 
?”
 
 
걔는 뭐 맨날 공만 차냐.
국대가 목표래?”
 
취미잖아
 
너 혼자 두고 지만 취미 즐긴다고?”
 
보통 취미 아닌 거 아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밖에 없는 여친을 집에 혼자 두는 게 말이 되냐?
심지어 토요일 밤에?”
 
나야 뭐, 집에서 쉬고 좋지
 
기집애가 누굴 속이려고.
너 심심해서 나한테 전화한 거잖아
 
“....그냥 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
 
걔한테 전화해서 축구 그만하고 너한테 오라고 해
 
에이...”
 
 
어떻게 그래. 한창 뛰고 있을 텐데
 
걔는 왜 지 생각만 하냐.
너는 왜 걔 생각만 하고
 
“.......”
 
... 너 또 내가 걔 욕하면 싫어할 거 아는데,
그래도 내가 친구로서 한 마디 하자면,”
 
“.......”
 
너 이렇게 혼자 두는 거 진짜 별로거든?”
 
“.......”
 
너네 요즘 학교에서도 자주 못 봤다며
 
서로 과제 때문에 바빠서...”
 
근데, 그렇게 바빠서 못 봤으면
주말에 쉴 땐 너 봐야 되는 거 아니야?”
 
“.......”
 
약속도 안 잡았어?”
 
“...잡았었는데,”
 
걔가 뺑이 쳤지?”
 
아니야 그런 거
 
맞잖아. 갑자기 약속 취소하고 축구하러 간 거잖아
 
다음주에 못 한다고 이번주에 당겨서...”
 
그러니까. 니가 다음주란 얘기잖아
 
“.......”
 
축구가 이번주 너는 다음주.
순서가 이건 아니지
 
가은아,”
 
너네 여러번 헤어지고 어렵게 다시 만난 거 아는데
내가 봤을 때 걔는
 
“.......”
 
너가 너무 익숙해진 거 같아
 
“.......”
 
쉬워졌거나
 
가은이는 내 고민을 들어주는 절친이었다.
연애 고수이기도 했으며 해결사이기도 했다.
100% 의지한 건 아닌데
적어도 60%는 가은이의 말을 들었다.
 
내 맘을 너무 잘 알아줘서.
어쩔 때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서
무섭고 신기해서.
 
가은이를 믿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졌거나 쉬워졌거나.’
 
 
당연히 익숙하지. 사귄 시간이 얼만데
 
나도 두준이가 익숙해졌다.
같이 밥 먹는 것도,
같이 재밌는 영화 보면서 낄낄거리는 것도,
같이 손잡고 학교 가는 것도,
또 같이, 같이, 같이...
 
아니야.”
 
축구를 좋아하는 두준이가 익숙해졌다.
밤새 게임하는 두준이가 익숙해졌다.
나는 그런 두준이를 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었다.
 
 
/
 
 
야 윤두준! 영화 시작한다고!!”
 
어 잠깐만!!”
 
게임 그만하고 빨리 텨와라
 
이거 한 판만
 
야 너 아까부터 게임만 했잖아!!”
 
이거 술 내기 걸려서 그래.
이것만 하고 갈게!!!”
 
 
/
 
 
우리 주말에 뭐할까?”
 
글쎄. 뭐하고 싶은데?”
 
나는... 서점 가서 책 사고 싶어!”
 
그러자
 
맞다, 우리 여행책도 사야되잖아 그치
 
. 내가 먼저 찾아보고 있을게
 
오케이. , 밥은 뭐 먹지?”
 
점심? ...”
 
저녁도
 
나 저녁에 가봐야 되는데
 
?”
 
시합있어
 
...”
 
“7시니까 그 전까지 집에 데려다 줄게
 
저녁에 영화나 볼까 했는데 안 되겠네
 
영화는 다음에 보자
 
 
/
 
 
여보세요? 야 윤두준! 너 어디야!!!
데리러 온다며!!”
 
나 지금 못 가!!!
미안한데 먼저 가라 어?”
 
어딘데!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니. 군대 후임한테 갑자기 연락 와서
지금 술 마시고 있어
 
? 갑자기?”
 
먼저 들어 가!!! 이따 전화할게!!!!”
 
 
 
내 대답은 항상 괜찮아였다.
혹은 이해해 또는 알았어.”
 
정말 괜찮았다.
집에 혼자 가는 거? 나는 발 없나?
군 후임이면 얼마나 애틋하겠어. 술 마실 수 있지.
게임이야 뭐, 남자 애들한텐 중요한 거니까.
 
그런데 왠지 집에 혼자 있으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남자와 헤어진 여자가
집에 남은 그의 온기를 느끼며 괴로워하듯,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듯
 
내가 그랬다.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헤어진 것 같았다.
 
어떻게 살지?”
 
너 없이 어떻게 살지?
난 어떻게 될까.
서로 익숙해져버렸는데
그렇게 물든 우리가 남이 될 수 있을까.
 
여러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나면서 했던 약속,

다신 헤어지지 말자.”
 
그래. 헤어지지 말자
 
헤어지기 싫은데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을까?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거.
그게 될까?
 
우리가 그러면 어떡하지?
나 어떻게 살지 두준아?
살 수 있을까?
 
 
.
.
 
 

가자, 데려다 줄게
 
아냐 괜찮아. 너 시합있다며 거기 가 봐야지
 
살짝 웃으며 두준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평소라면 활짝 웃으며 넘어갔을
두준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곤 한참 있다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표정인데,”
 
?”


왜 이렇게 맘이 아프지?”
 
아프다는 말에 살짝 눈이 흔들렸다.
마치 들키지 말아야할 것을 들킨 것처럼.
내 마음을 들킨 것처럼
 
뭐야~”
 
하지만 나는 이내,
 
얼른 가봐. 늦겠다
 
웃으며 말을 돌렸다.
아까보단 더 익살스러운 미소가 필요했다.
 
아니, 잠깐만.”
 
두준이는 손을 놓으려는 날 붙잡고 가까스로 말했다.
 
... ... ㅇㅇ,”
 
불안해 보였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고
마주잡은 손에선 식은땀이 느껴졌다.
 
너 지금,”
 
“.......”
 

울잖아
 
?”
 
그렇게 울면서 가라고 하면 내가,”
 
“.......”
 
“.......”
 
두준아
 
가자. 집에
 
그냥, 잠깐, 눈물이 핑 돌았을 뿐인데
그걸 알아챘나보다.
 
사실 얼굴 보자마자 그랬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고여서
피곤한 척 하며 하품했는데.
 
 
집으로 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두준이는
도착하고 나서야 날 안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 뭐가?”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다.
이유가 빠진 미안해는 많은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의 토닥임에 아무 말 하지 않던 나도 사실은
그에게 미안했다.
미안하게 해서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해서 그게 미안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나는 여전히 널 이만큼 사랑해
너의 미안하다는 말에 더 가슴이 아플 만큼.
 
 
 
 
*
 
 
 
 
가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순간이 있다.
내 경우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랬다.
 
사람이 성숙하는 데에 꼭 어떤 계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냥 문득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이 들면,
또 그 생각이 오랜 시간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성숙을 느끼게 된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쯤
나도 모르게 울고 웃다가
다시 고개 젓고 그럴 리 없다고 다짐하고.
그 다짐은 커피를 마시다가도 깨지고,
음악을 듣다가도 깨지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깨지고.
 
그러다 결국,
왜 나는 이러고 있는가까지 생각이 뻗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혼자 뒀으니까.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곤 생각하는 것뿐이니까.
 
이런 거 익숙하니까.
 
인간은 원래 혼자니까.
 
혼자... 사는 거라고 했으니까.
 
 
너랑 헤어지면 나는 혼잔데,
그 때도 이럴 것 같은데
 
 
, 혼자는 이런 거구나.
 
 
오늘 배워볼 한자성어는 회자정리입니다.
만날 회(), 사람 자(), 반드시 정(), 헤어질 리().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인데요.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이치이며
고로 모든 것이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시 문장으로는
회자정리라 했으니 언젠가 헤어질 것도 염두에 둬야 해.”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거자필...”
 
 
-
 
 
,”
 
우연히 튼 TV도 그랬다.
언젠간 헤어진다고
 
나도 알아.
우리도 많이 헤어져봤으니까.
 
 
/
 
 
우리 진짜 안 맞는 거 같아.”
 
“.......”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안 맞잖아!
먹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심지어 영화도!!”
 
그래서 어쩌자고
 
“.......”
 
헤어지자고? 헤어져?”
 
그래! 헤어져!!!”
 
그래
 
 
/
 
 
나 영장나왔다
 
?”
 
“21개월. 길지
 
“1년하고... 9개월이네
 
잘 지내고 있어
 
“.......”
 
기다리지 말고
 
 
헤어지자 우리
 
!!!”
 
너 엄청 힘들 거야.
괜히 고생하지 말고 편히 있어.”
 
내가 힘드냐? 니가 힘들지?”
 
너 기다리면 내가 더 힘들어질 거 같아서 그래.
내가 뭐라고 니가 그 긴 시간을 혼자...”
 
너 자꾸 말 그렇게 할 거야?”
 
죄책감 들 거 같아
 
“.......”
 
그러니까 그냥 헤어지자
 
“...나쁜 놈
 
 
/
 
 
내가 이거 오늘까지 하라고 했잖아
 
미안. 잤어 어제
 
?”
 
너무 몸이 안,”
 
잠이 와? 지금?”
 
“.......”
 
니 입으로 그랬잖아 이 공모전 중요하다고.
근데 니가 자면 어떡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나한텐 편집 안 하고 게임만 한다고 뭐라 하더니
너는 뭐. ,”
 
 
니가 알아서 해 이제. 난 모르겠다
 
넌 어제 내 전화 왜 안 받았는데
 
진동이라 몰랐어
 
집에 있긴 했냐?”
 
“.......”
 
너 내가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있다고 한 거
기억은 해?”
 
“.......”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 갈까 약국 갈까
고민하던 거. 기억해? ?”
 
“.......”
 
그래. 나 어제 일찍 잤어.
약 먹으니까 졸리더라. 그래서 잤어.
너무 아파서 너한테 전화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받길래 그냥 잤다고.”
 
“.......”
 
내가 잘못한 거 알아.
근데 꼭 말을... 그렇게 해야 되냐?”
 
“.......”
 
“...마무리는 내가 할게. 간다
 
 
 
 
그래도 우린 항상 마지막에 서로를 찾았다.
내가 미안해.’ ‘아니야 내가 미안해.’
이게 우리의 결말이었다.
 
싸우면서 정든 것도 맞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그것도 맞았다.
적어도 두준이는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만약에 나는
이해가 아니라 포기였다면.
 
내가 나도 모르게 두준이를 포기하고 있었다면.
 
어쩌면 그게 내가 너를 마주할 때마다
눈물이 고이는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
 
 
 
 

 
 
 

나 편의점 갔다 올게!!”
 
 
-
 
 
나를 품에 안고 미안해하던 두준이는
그 날 이후 모든 시간을 나에게 할애했다.
 
그 좋아하던 축구도 안 했고
컴퓨터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미안하기도 했다.
 
티 좀 내지 말 걸, 더 환하게 웃어 볼 걸.
복잡한 마음 들키지 말 걸.
 
언젠가 우리가 헤어지게 되면,’
우린 어찌됐든 헤어지게 돼 있어.’
이런 생각 하지 말 걸.
 
.......”
 
내 옆에 네가 있는 건 당연한 건데
대체 언제부터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건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히던 찰나,
 
노란 불빛을 봤다.
 
두준이 휴대폰에서 여러 번 빛이 나왔다.
그렇게 무심코 화면을 켰는데,
 
 
[야 빨리 오라고]
[다 기다리고 있다니까?]
 
[너 오늘도 안 나오면 진심 배신이다]
 
[몸 그만 사리고 나와]
 
[천하의 윤두준이 축구를 관두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축구는 그렇다 치고 술은 왜 안 마심?]
[이해 ㄴㄴ]
 
 
수많은 메시지가 연달아 떴다.
 
“.......”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모를 짜증도 났다.
 
왜 나 때문에, 굳이 왜 내 옆에 있겠다고...
 
평소처럼 할 것이지 왜.
왜 이제 와서.
 
 
-
 
 

새우깡 없길래 새우칩 사왔어.
어떻게 편의점에 새우깡이 없냐
국민 과자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
 
투덜거리며 들어오는 두준이를 말없이 쳐다봤다.
그리고 그가 살짝 웃으며 내 앞에 서자마자,
 
너 가
 
다짜고짜 쏘아붙였다.
 
?”
 
술 약속 있잖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제야 내 손에 들린 자신의 휴대폰을 본 두준이는
~” 하며 씽긋 웃곤
 

별 거 아냐
 
다시 자연스럽게 과자를 하나하나 꺼내 보였다.
 
빼빼로 종류 별로 사왔지롱. 잘했지
 
빨리 가라고!! 사람들 기다린다잖아!!!”
 
괜찮다니까? 걔네들 맨날 술 마시는 놈들이야.
나 하나 없어도 괜,”
 
축구는 또 왜 안 하는데
 
그냥. 별로 안 땡겨서
 
거짓말 하지마
 
진짜야. 관심 떨어졌어
 
“....왜 자꾸 나한테 와 너
 
좋으니까. 우리 마누라랑 같이 있으려고
 
그 순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날 안으러 다가오는 그를 피해 몸을 뒤로 뺐다.
 
. 나 때문에 여기서 이러지 말고
 
너 좋아서 옆에 있는 건데 왜
 
거짓말
 
?”
 
솔직히 말해. 니가 봐도 요즘 너 너무 이상하잖아.
나랑 한 시도 안 떨어지려고 하고
 
당연한 거 아니야? 설명이 필요해?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는 게 이상한 일이야?”
 
“...나 사랑해?”
 
“.......”
 
사랑하냐고
 

무슨 말이야 그건 또...
사랑하니까 만나지
 
그러니까
 
근데
 
그게 이상하잖아
 
뭐가
 
계속 사랑한다는 게
 
너도 그렇잖아
 
“.......”
 
아니야?”
 
“.......”
 

대답해. 아니야?”
 
“.......”
 
ㅇㅇㅇ
 
나는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널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까.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쏟아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찰나,
 
대답을 기다리던 그는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의 무너진 표정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틀 만에 나타난 두준이에게서
살짝 술 냄새가 풍겼다.
 
집 앞에 마주 선 채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지나가는 차를 한번 쳐다보곤 입술을 달짝였다.
 
 

우리 시간 좀 갖자
 
“.......”
 
아니, 시간 좀 주라
 
“.......”
 
나는 필요할 거 같아
 
두준아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그러면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될 거 같아서 그냥...”
 
“.......”
 
두준이가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너를... 기다리다가... 기다리지 않다가...”
이 순간 말고는
 
“..그럴 거니까 너는, 너도....”
 
그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날,
 

안녕
 
두준이는 밝은 얼굴로 내 앞에 섰다.
 
 
 
 
*
 
 
 
 
(보통의 연애)
 

일어나 빨리
 
.......”
 
책임지고 잘 데려다줘라
 
선배는 어떻게 가시게요?”
 
나야 뭐. 버스타고 가면 돼
 
야 경수야 너 집 어디지?”
 
목동이요
 
진짜? 야 잘됐다!!”
 
그러게. 경수야 선배 양평 사니까
너가 데려다 드려
 

아 됐어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선배님
 
“.......”
 
오 도갱- 믿음직스러운데?”
 
하하하..”
 

그럼 너 믿고 간다!
선배 쟤 막 부려먹으셔도 됩니다~”
 
ㅇㅇ이나 잘 챙겨!!”
 
!!”
 
선배님 내일 봬요!!!
경수야 안녕!!! 조심히 가!!”
 
안녕히 들어가세요-”
 
~ 아 야!! 내 가방 줘!!!”
 
두준이는 가방을 손에 쥔 채 놔주지 않았다.
그리곤 내 팔뚝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아파
 
미안
 
“.......”
 
너 일주일에 술 몇 번이나 마시는지 알아?”
 
몰라
 
이번주만 벌써 네 번이거든?”
 
그래서
 
줄이라고
 
 
줄여. 안 좋아 몸에
 
 
.......
 
 
두준아
 
 
넌 왜 이렇게 착하냐
 
칭찬이야?”
 
아니
 
... 그럼 나빠질까?”
 
 
어떻게 나빠질까
 
“...내가 술 취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게
 
“.......”
 
내가 울어도 웃어넘기게
 
“.......”
 
쥐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멘 두준이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어렵겠다. 나빠지는 거
 
 
/
 
 
(첫사랑)
 

ㅇㅇㅇ!!!!”
 
. 여긴 또 어떻게 알았대
 
술 게임하던 중간에 살짝 나와
산책을 하던 것도 잠시,
너무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뭐해 혼자
 
어느새 또 너가 있다.
 
걷는 중
 
위험하게 혼자 걷냐
 
안 위험하거든?”
 
아니긴.”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MT니까
 
?”
 
“MT니까 보는 눈이 많잖아.
너 어디 갔는지 다 알던데?”
 
하여튼 우리 후배님들 입도 싸요
 
피식 웃는 두준이.
이내 내 팔뚝을 잡더니
옆에 있던 벤치로 데려가 앉힌다.
 
, !”
 
술 좀 깨고 걸어
 
안 취했어!!”
 
그래. 너 안 취했어
 
“.......”
 
그래도 좀 앉아
 
“.......”
 
바람 좀 쐬자 나도
 
두준이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너 좋아하는 별 많네
 
“.......”
 
달도 밝고
 
두준아
 
?”
 
너는 왜 항상 그 자리야?”
 
뭐가
 
내가 밀어내고 화내고 욕해도
왜 그 자리냐고
 

내 자리니까
 
시간 좀 달라며. 필요하다며 너
 
필요해. 지금도
 
근데 왜 자꾸 나한테 잘해주는데
 
“.......”
 
“.......”
 

잘해주려고 필요했던 거야. 못해준 게 미안해서
 
두준이가 나를 돌아봤다.
 
그 큰 눈을 한참 보고있던 나는
술김에, 취한 김에
간신히 아껴뒀던 말을 꺼냈다.
 
 
넌 계속 나를 사랑해?”
 
 

“....그래도 돼?”
 
 
 
 
*
 
 
 
 
두준이는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기약 없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편해졌다.
 
그 모호한 관계가.
 
니들 헤어진 거 맞냐?”
 
너네 헤어진 지가 언젠데
 
너네 둘 다 이상해
 
우빈이의 말처럼 우린 이상했다.
혹자는 헤어지는 중이라고 하던데
그 말도 정확히 들어맞는 건 아니었다.
 
헤어지자고는 안 했으니까.
적어도 아직까진
 
 
 
야 소개팅할래?”
 
?”
 
소개팅. 무용과 후배 하나가
니 사진 보더니 맘에 든대. 만나보고 싶대
 
“.......”
 
어때. ?”
 
동아리 방 문 앞에 선 나는
정말 찌질한 포즈로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 엿들었다기 보단 그냥 들었다.
들렸다. 대화가. 아주 잘.
 
내 사진은 어디서 보고...”
 
인스타
 
,”
 
니가 나보다 백만 배 잘생겼대.
걔 좀 제정신 아닌 듯.
, 안 되겠다. 하지마 소개팅
 
푸흐...”
 
그런 애를 너한테 소개해줄 순 없지.
내 불알친구한테
 
왜 그렇게 심장이 빨리 뛰었는지 모르겠다.
뭐가 그리 불안했을까.
두준이 입에서 나올 말을 두려워했던 걸까.
 
고맙다고 전해줘
 
누구. 걔한테? 너 하게? 소개팅?”
 
아니
 
그럼
 
너보다 잘생긴 거 알아줘서 고맙다고
 
아 씨
 
사실 당연한 건데
 
뭐 이 자식아?”
 
만약에 두준이가 한다고 했다면
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내가 감당할 순 있었을까?
 
 
.
.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챔피언)
 
해주세요
 
?”
 
?”
 
소개팅이요. 할게요 저
 
진짜? 그럴래? 가만 있어봐, 걔 번호가 뭐더라..”
 
야 윤두준
 
“...
 
가까스로 고갤 돌려 무대를 쳐다봤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슬픈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들키기 싫어서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던 내가 우스웠다.
내가 그럴 자격은 되나?
내가 뭔데 그런 걸 감당해.
내가 뭐라고.
 
그는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고
나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잡지도 않고, 표현도 안 하고.
 
내가 그를 마음속으로 포기하기 시작했듯
그도 그 시간을 가진 것이다.
 
말로는 나한테 잘해 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그는 나를 포기해도 되는
이유를 갖게 된 것 뿐.
 
나는 그걸 알면서도 방관했고
그는 결국 내가 준 그 시간을 다 써버렸다.
 
 
 
 
끝인가 보다.
 
맨날 생각했던 이었다.
 
우리 헤어지면, 우리 진짜 헤어지면,
우린 어차피 헤어질 거지만....
항상 이런 가정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끝을 마주하니
짜증날 만큼 눈물이 났다.
 
이상했다.
우린 정말 이상했어
 
화장실 금방 다녀올게요
 
자리를 뜨는 수정이를 보며 나도 벌떡 일어섰다.
 

야 괜찮아?”
 

ㅇㅇ
 
저 아직 안 취했거든요? 헤헤
 
바보같이 웃긴. 표정 엉망이었을 텐데...
그걸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고
 
 
 
터덜터덜 화장실로 향했다.
다들 축제에 취한 게 다행이었다.
눈물 박박 닦는 여자 보며 수군거릴 일은 없을 테니.
 
근데 나 왜 울지?
 
울만 하지.
 
아니야. 난 울 자격도 없는데?
내가 걔한테 한 걸 생각해 봐
 
애초에 걔가 나한테 한 걸 생각하면,
 
.......
 
생각이 안 나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이 안 나.
그냥 내가 다 망쳐버린 거 같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도 시간이 필요했는데
 
사실 두준이가 나한테 시간을 준 건데.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마치 영원히 옆에 있어줄 것처럼 의지하고 기대고.
 
그러지 않으려고 밀어냈는데
어느새 또...
 
물 들었어 너한테
 
.......”
 
 
 
한참 훌쩍거리다 급히 화장실을 나섰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놓고 나온 가방이 신경쓰였지만
그거 뭐, 수정이가 챙겨주겠지. 아님 경수
그것도 아니면 우빈이
 
너 빼고.
 
 
 
ㅇㅇㅇ!!”
 
너 빼고
 
ㅇㅇㅇ!!!!!!!”
 
너 빼고 윤두준
 
 
.
.
.
 
(2/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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