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기 전에 08 (by.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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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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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황민현
남주혁 서강준
박보검 전정국
오세훈 육성재
이태용 김진우
 

 

 

 

 

나는 중학교에 들어와서부터
사람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볼
때면 그들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소위 잘 나간다.’라고
중학생 때 얘기한 적이 있지.
 

위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재력이
될 수도 있고, 외모, 인기, 리더쉽
등등이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재능이
있고, 주목을 쉽게 받는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류냐 하면,
청하나 경리는 고등학생 때 댄스부
였기도 했고 성격 자체가 활달해
다른 학교에서도 이름을 알 정도였다.
 

그리고 대학교의 경우 강준이나 세훈인
외모로 여자선배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주혁이는 축구를 워낙 잘해 남자선배들
에게 주목을 받는 사람이었다. 성재는
축제 때 특히 유명인사로 꼽히고,
보검이는 조용조용한 성격과 달리
타과 학생들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 속에서 나는 누구네 친구로 불려
지는 게 많았다. 17학번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관심을 받은 게 태어나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일이었다. 만약
내 또래의 여자가 더 있었다면 아마
난 지금보다 훨씬 못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더 잘 나가야한다거나,
질투가 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내
위치를 꽤 만족하고 있었다. 딱 적당
하고, 어쩌다가 나에게 떨어지는 시선
을 즐길 뿐이다. 클럽 대기 줄을 보며
희열감을 느끼곤 나 변태 아냐?’하고
웃었을 때처럼.
 

 

, 진짜 사람 많다.”
 

 

나는 이 순간에도, 옆 사람의 버프를
받아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옷이며 시계, 자동차까지 메이커를
안다하는 사람들은 헉소리날 가격을
아이템창에 끼고 있는데다가 카페에서
이미 입증한 준수한 외모가 한 번 더
쳐다보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 옆에
있는 나에게도 시선이 거쳐 갔다.
 

역시나처럼 나는 웨이팅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을 제치며 예약문구가
놓인 테이블로 가면서 약간의 뿌듯
함을 느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간다는 사람과 함께 있어본 적이
없어 주위의 관심이 평소보다 과하다는
것이고, 나는 슬슬 부담스러움을 느껴했다.
 

연예인이랑 밥 먹으면 이런 기분일까?
 

 


 

학교 다니기 재밌어?”
 

시험 때문에 죽을 맛이에요.
고등학생 때랑 다른 게 있다면
방학이 길어서 개강하면 적응이
도무지 안 된다는 거?”
 

 

진우오빠는 남들의 시선을 듬뿍 받아도
괘념치 않아했다. 적응이 된 건지, 모르
고 사는 건지 내가 알 리 없지만 대충
때려 맞추자면 전자가 아닐까 손을 들어
본다. 랜선 대화나 식당에 오면서 나눴던
대화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의 성격은
무척 꼼꼼했고, 제가 가진 것에 대해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매사 평온하다는
것이었다. 소개팅 첫날부터 화를 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클럽에서부터
식당에 앉은 지금까지 놀래하는 모습이나
당황해하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언가 내면적 성숙에서도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기분? 우리 학과에 그렇게 많은
오빠들이 있는데 오빠답다.’라고 느낀
경우는 진영 오빠 다음이었다.
 

 

다음에 학교 구경시켜줄래? 재작년
에 가보고 한 번도 못 갔어.”
 

저희 학교 고지대라 힘들 텐데.
벚꽃 필 때 와요, 그 때 호숫가
예쁘니까.”
 

 

오빠의 학업은 고등학교가 끝이었다.
소위 말하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 고등
학생 때부터 준비를 해왔다는데 그는
아직 변변한 소속사조차 없었다. 돈에다
인맥까지 있는 사람이 왜 여태 데뷔를
안 하고 있었지? 나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감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소속사 사장이었다면 그를
단박에 모셨을 거라는 상상만 했다.
 

 

나는 별 의미 없이 식탁에 립스틱을
올려두었다. 그 때 진우 오빠가
호기심을 보이며 그것을 가리켰다.
 

 


 

이거 새로 나온 신상이네?
입생 로랑 꺼.”
 

, 어떻게 알았어요?”
 

지인이 거기서 일하거든.
립스틱만 입생 쓰는 거야?”
 

아뇨, 쿠션이랑.....”
 

 

블러셔는 어디 꺼, 메이크업 베이스는
어디 꺼고....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오늘 뭘 바르고 나왔는지를 술술 불어
버렸다. 동기들은 물론이거니와 내 방
화장대 사정을 아는 친오빠조차도
모르는 화장품 메이커와 용도를 알아
듣는 게 너무 신기했다. 심지어 내가
어느 컬러를 잘 받는지도 알아맞히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재잘거렸다.
 

어떻게 이리도 잘 아냐고 물었더니,
그의 친구 중에 화장품에 대해 매일
같이 품평회를 여는 여자가 있댄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예가 바로 자신이라며 웃는 오빠는
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다, 너랑 통하는
게 생겼잖아.’라며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왜인지 선미가 번뜩 떠올랐다.
그의 관계망에서 유일하게 아는 여자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녀
가 정말 맞다면, 나랑은 되게 이상한 관계
임이 틀림없었다. 한국사 책을 제공해준
사람, 클럽에서 찝적대는 사람을 쳐
내준 사람, 진우 오빠와 공감거릴 제공
해준 사람. 그녀는 내 일상에 조금이라도
자기가 기여하고 있다는 걸 알까?
 

 

, 맛있다.”
 

그쵸? 이것도 맛있는데.”
 

 

나는 식당의 쉐프라도 된 양 으쓱해
했다. 이런 곳을 미리 알아둔 내 맛집
정보력에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는 나에게 다른 맛집에
대해서도 물어보았고, 아는 분야에 신이
난 나는 신명나게 떠들어댔더란다.
여기는 인테리어는 좋은데 맛은 그저
그래요, 저기는 웨이팅이 심각해요, 등등.
 

식사가 끝나고 나는 너무 내 얘기만
했다는 것에 실수를 했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뽑아내는데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산책 갈래?”
 

 

그의 경청법은 어떤 부분에 있어선 효과
가 대단했다. 연락처를 받으면서부터 그의
곁에서 맴돌아댔던 부담스러움이 거짓말
처럼 가라앉았거든. 나조차 어쩌지 못했던
경계심을 이리도 허무하게 허물어버리는
오빠는, 어쩌면 내가 당신을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눈도 잘 못 마주치던 내가 이제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 그를 바라보고 있음에, 그는
속으로 기뻐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나는 그 의도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건,
태용이에게 할 말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잘 되어가는 지의 성과 지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고.
 

 

다음 주에는 뭐해?”
 

과에서 23일로 MT 가요.
그리고...도서관에서 공부?”
 

기계공학이면 남자 되게 많겠다.
동기 중에서 여자는 너뿐이라고
했었지?”
 

. 근데 뭐, 애들이 저를 같은
염색체로 봐서 저도 그렇게 봐요.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환상
엄청났는데, 무참히 깨져버렸죠.”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한
우리는 강변을 산책하며 걸었다.
드라이브를 가려다가 날씨가 썩 춥지
않아서 천천히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멀리까지 와버렸다. 반쯤 마신 커피가
식어가는 게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무슨 환상?”
 

조별 과제 때 싹트는 로맨스,
또는 선배에 대한 로망있잖아요.
근데 기대랑 너무 달랐죠.
제가 인터넷을 많이 봤나 봐요.”
 

 

꿈 깨라던 친오빠의 충고를 새겨들을
, 하고 후회한 게 엊그제 같았다.
조별 과제를 했더니 불신과 갈등의
향연이 일어나고, 선배의 경우 몇몇이
특히 진상을 피우는 바람에 연상에 대한
이미지마저 나빠지게 되더니 현재는
현실을 직시하고 해탈한 채 살아가는
중이었다. 다행히 이번 년도는 악재가
아닌 듯 아직까지 멘탈이 박살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환상이라 품었던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서 다시금 설레발이 발동
될까 두려웠다. 가령 조건의 완성형이라는
진우 오빠를 만난 것이나, 대학 선배라지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민현이
오빠와 같이 과제를 하게 된 것이나.
 

조만간 올해의 운세를 보러 가봐야
할 판이다. 초반에 일이 술술 잘
풀려도 문제라던데.
 

 

, 저번 주에 과팅 나갔다며?
경리한테 들었어.”
 

“!??!?”
 

 

술술 잘 풀린다는 거 취소.
나는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정작 오빠는 일상 얘기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는데도.
 

경리는 무슨 생각으로 오빠한테
과팅 얘기를 한 거지? 그 정도로
생각 없는 친구는 아닌데 말이야.
 

친구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오빠에게 사과를 해야 할 거 같아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죄송해요..”
 


 

??”
 

미리 말 안 했잖아요. 오빠랑
연락하는데도 그런 자리에 나갔고..”
 

 

오빠는 내 사과를 묵묵히 듣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폭소하는 건 처음 봐서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웃음코드가 이상한 사람이네?
 

 

괜찮아. 청하 대신 나가준 거라며?
그리고 나한테 말 해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아직은.”
 

아직요?”
 

 

아직이란 뜻을 이해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사이는 그
정도라는 뜻, 과팅으로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는 얕은 관계라는 뜻. 나는 분명 맞는
말인데 속이 쓰렸다. 나 마음에 들어 했다
면서, 선은 본인이 그어버리는 모습에 못내
섭섭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사이 아니
라고 잡아떼던 사람이 바로 나면서.
 

시무룩한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나 버린
나는 컵을 구겼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자 오빠가 허리를 숙이며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다음엔 질투할 거야.”
 

“..... !”
 


 

솔직히 얼마나 긴장했는데. 거기서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지? 오늘 못 만난다고 통보
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나는 손사래 치며 하하
웃었다. 괜한 일렁임이었다는 것을,
오빠의 장난 섞인 툴툴거림에 풀어버
렸다. 진심 독심술이라도 쓰나봐, 사람
기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면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하루가 엄청 빠르다.
다음엔 영화 꼭 보자.”
 

. 좋아요.”
 

 

그와의 데이트는 전례와 다르게 무척이나
상승세를 탔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자부
하는 나였지만 오늘 하루 자동차를 타고 편
하게 이동한 것에서 엄청난 신세계를 느꼈다.
허나 경리가 그토록 추천한 재력이나 외모는
둘째로 치고, 나는 그의 준비성이라던지 언행
에서 호감을 키워냈다. ‘잘생기면 성격에
하자가 있을 지도 몰라!’했던 선입견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그의 에프터 신청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으니까.
 

 

잘 들어가. 나중에 꼭 연락해.”
 

오빠도요.”
 

 

나는 일부러 집 앞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며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했다. 과거 좋지 않게 끝난
만남 중에서 우리 집을 아는 남자가
밤에 찾아온 케이스가 있어서, 그 후로는
동네를 알려주는 경우는 있어도 자세히
위치를 알려주는 건 꺼려졌기 때문
이었다. 오빠는 내 속을 이해해주기라도
한 듯이 선뜻 알겠다고 했고, 내려진
차창 사이에서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허나 버스가 오자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그의 차는 속도가 나질 않는다.
 

 

신기하다.”
 

 

떠다니는 구름을 타고 있는 기분이 어떤
건지 실감했다. 이러다 진짜로 사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나는 김칫국을 벌써부터
조리 중이었다. 또한 전에는 애매해서
비밀로 했지만 오늘로써 사이가 진전이
된 이상 애들한테는 슬 사실을 알려야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
 

 

대화가 쌓인 단톡방 스크롤을 내리며
자판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화면이 바뀌며 진동이 부르르 울었다.
 

정국이었다. 나는 반갑게 통화키를
눌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가 쩌렁 울린다.
 

 

[누나! 뒤돌아봐요!]
 

? ?”
 

 

나는 순순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뒤를 돌아보자, 가로등 아래로 팔을 한껏
벌린 채 달려오는 정국이가 나를 부르는
게 폰 스피커로도 튀어나온다.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똑같이 외쳐주었다.
 

 

정국아!”
 

 

정국이는 앞서 밝혔다시피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이름만 다른 동네지, 거리상으로는
같은 동에 산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언제 한 번쯤은 마주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시기가 빨라서 놀랬다.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야?”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이제 집에
가는 길이요. 여기서 누날 만날
줄이야!”
 

안 추워?”
 

괜찮아요. 누나는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나는.....”
 

 

이러면 순서가 꼬이는 건데. 나는
단톡방에 알리기를 뒤로 미루고
정국이에게 먼저 털어놓기로 했다.
어차피 얘는 목요일에 알아챘잖아.
 

 

그 때 썸이 진짜였어요?”
 

연락만 하다가 오늘 처음 만났어.
근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
 

한 번 더 만날 생각이네요?”
 

아마? 근데 MT 다녀오고 쪽지
시험 준비에 과제 준비한다고 당장
만나지는 못할 거 같아.”
 

 


 

~’ 정국이는 짧은 리액션을 하고
입을 닫았다. 태용이와 함께 질문요정
으로 쌍벽을 이루던 모습이 아니라
의아했다. 대신에 그는 다른 주제로
대화를 새롭게 시작했다.
 

 

모레 MT 간다고 했잖아요.
누나 수업 듣고 온다면서요?”
 

. 보검이가 그래?”
 


 

. 형이 운전한다고 들었어요.”
 

우리 중에서 걔 말고는 운전할 사람이
없거든. 갱준이는 학생회라 먼저 출발
하고...1시쯤에 도착할 거야.”
 

 

주혁이나 성재는 면허는 있지만 시험
때 이후로는 운전대를 잡아 본 적
없는 이른바 장롱면허였다. 보검이는
수능 치자마자 학원을 다녀서 단번에
취득했다고 해. 나는 주혁이를 따라
도전해봤다가 보기 좋게 탈락했다.
 

 

누나 조장이라면서요?”
 

그니까....! 내 앞가림도 벅찬데 어떻게
다섯 명이나 되는 애들을 감당하라는
건지. 미리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해
놓으려고. 못난 조장 둬서 고생한다고.
정국이는 몇 조야?”
 

저요? .....”
 

 

정국이가 씩 웃는다.
의미를 모르는 나는 눈만 껌벅였다.
 

 


 

못난 조장이랑 함께해서
기분 엄청 좋은 데요.”
 

“...! 너 나랑 같은 조야!?”
 

. 6조요.”
 

!!!! 대박!!! 6조야?!
진짜 다행이다....!!”
 

 

쾌재를 불렀다. 발을 구르며 아낌없이
기쁨을 표하자 그가 덩달아 좋아한다.
과팅에서 한 번 깨달은 거지만 아는 사람
이 한 명이라도 있음 뭐라도 된다고, 나는
적어도 그곳에 가서 꿀 먹은 벙어리 행세
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행복해 했다.
 

 


 

같이 해서 좋아요?”
 

! 완전!”
 

저도 좋아요.”
 

 

에라 기분이다. 나는 편의점에 데려가
뜨거운 커피와 핫팩을 샀다. 운동복치곤
얇은 정국이의 옷차림이 아까부터 눈에
밟혀서 어쩔까 하다가 업된 기분에 질러
버렸다. 핫팩을 탈탈 털어 뜨거워졌나 손을
대보았다가, 온도가 올라가는 걸 확인하곤
거절하려는 그의 손에 가차 없이 쥐어주었다.
 

 

저 집에 금방 가는데...”
 

감기 걸려. 그럼 모레 재밌게
못 놀잖아. 그치?”
 


 

“..........”
 

난 들어 가볼게. 잘 가~”
 

 

혹여나 발목을 잡힐까 서둘러 그에게서
떨어졌다. 정국이는 내가 뒤돌아볼 때까지
멍하니 나를 보고 서있었다. 빨리 안 가고
뭐해? 집으로 가는 길에 카톡을 보내자
순식간에 ‘1’이 사라지며 답장이 왔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문장이었다.
 

 


정국이
[망치 맞은 기분이었어요]
 

 

 

 

 

 

 

청춘이 지기 전에 08
- EP 08. 1/3
 

 

 

 

 

 

 

화요일 수업은 풀로 꽉 차있었다. 하지만
MT를 가야했기 때문에 오전 수업만 듣고
나머지는 과에서 나오는 협조전으로 해결
하기로 했다. 오전 수업의 마지막을 장식할
과목은, 한국사였다. 23일을 책임질
가방을 매고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민현이
오빠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학기 초라고 빡세게 입고 다니던 내 모습만
보다가 마실 나가는 복장은 처음
보는 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오늘 지각할 뻔했어?”
 

? , 저 너무 편하게
입고 왔어요?”
 

짐은 왜이리 많아? 이삿날이야?”
 

 

누가 가방 하나 달랑 매고 이사를
가나요 이 사람아. 마치 나를 새롭게
봤다는 듯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오빠
에게, 나는 하나하나씩 대답해주었다.
 

 

오늘 MT 가요.”
 

이렇게 늦게?”
 

학생회 아니라서 후발대로 출발
하기로 했어요. 23일로 가는 거라
오늘 빠지면 목요일 수업도 못 들어서
진도 놓칠 거 같기도 하고...”
 

 

전공 수업도 아닌 게 진도는 미치도록
빨랐다. 수업을 합법적으로 듣지 않아도
된다는데 극구 사양한 것에는,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나의 선견지명이
있어서였다. ‘수업 안 들어서 좋다!’라는
홀가분함과 동시에 불안한 거, 마치
추석 날 띵가 띵가 놀면서 뒤에 있을
중간고사를 걱정했던 날과 비슷했다.
 

 


 

나랑 목요일에 학식도 못 먹겠네?”
 

그렇겠...?”
 

 

오빠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 나는 느리게
답했다. 죄짓는 기분 들면 이상한 거
아니냐? 학식을 같이 먹기로 약속은
했지만 언제나 지켜야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 봤을 땐, 삐진 정도가
아니라 슬퍼보여서 대역죄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셀프 곤장이라도 쳐야 하나...?
 

 


 

나도 너네 과였음 좋겠다.”
 

왜요?”
 

 

다행히도 입술이 잠시 삐죽 나왔던
그가 울상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재밌을 거 같아서. 가서 다치지
말고,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저 술 많이 마시는 걸로 보여요?”
 

그 날 박치기는 맨정신으로 한 거야?”
 

, 교수님 왔네.”
 

 

수업 들어야겠다!’ 나는 모른 척 했다.
한편으로 남주혁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욕을 하면서.
 

 


 

“.....푸흡.”
 

 

수업을 듣는 도중 반쯤 잘려진 노트
종이가 내게 전달되었다. 어디로 가?’,
외투 챙겼어? 보일러 틀어도 밤에는
추운데.’, 목요일에 네 몫까지 열심히
들을게!’, 등 여러 가지 잔소리와 본인의
다짐을 적어놓은 편지였다. 나는 소리 내
웃을 뻔하다가 겨우 참아내곤 종이를 접어
간직했다. 수업이 끝나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신라의 멸망이 아니라 온통 쪽지
내용뿐이었다.
 

 

 


 

뭉치! 빨리 안 오냐!”
 

 

민현이 오빠한테 필기를 부탁하며 굽신
거리느라 모임장소에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애들은 엄마 찾듯이 쉬도 때도 없이
나에게 뭉치, 뭉치, 거렸다.
 

 


 

뭉치 얘는 한국사만 들으러 갔다
하면 늦게 와. 타임머신 타고 현장
체험하고 오는 거야?”
 

그 왜, 수업 같이 듣는 사람이
엄청 잘생겼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거겠지.”
 

, 학생증 찾아줬다는 남자?
너 그 사람 좋아해?”
 


 

아니, 사고회로가 어떻게 생겨 먹었
길래 질문이 좋아해?’가 되냐;”
 

하긴 진작에 좋아했음 우리한테
말했겠지~ 아님 들통났거나.”
 

 

나는 짐을 싣다 눈을 치켜떴다.
날 말한다는 게 정국이에게 털어놓고
미션 성공이라고 착각해 버렸어..!
지금이라도 말할까 했지만 차라리
강준이까지 있는 자리에서 말하는 게
두 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좀 더 늦게 말한다고 큰일이야 있겠어?
 

 


 

내 옆 자리 누구 앉을래?”
 

! 내가 쌈박한 노래를 선곡해주지.
신청곡 안 받는다. 듣기나 해.”
 


 

저는 꿀잠 자겠습니다.”
 

나도.”
 

누가 자게 둔대? 나랑 놀아야지.”
 

정중히 거절한다.”
 

 

나는 세훈이와 주혁이 사이에 앉아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새벽까지
놀 게 뻔하니 미리 자둬야지 했던 게,
주혁이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 콧구멍에
집어넣으면서 와장창 무너졌다.
 

 

아 미친, 또라이야?!?”
 

ㅋㅋㅋㅋㅋㅋ내가 자게 냅둘 거
....아악!!!! 잠시 타임!!!”
 


 

뒤진다!!!”
 

 

기껏 선곡해놓은 성재의 플레이
리스트와 세훈이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소란에 묻혀버린다.
 


 

내가 잠시 헛소리를 했네.
이것들을 두고 잠을 잔다고 했으니.”
 


 

시끄러 이것들아.
빡검 운전하잖아.”
 

그 전에 노래 좀 잔잔한 걸로
부탁해도 되겠니 성재야.”
 

야 항복!!! 미안하다!!!”
 

 

차체가 들썩이다 겨우 멈추었다.
쒸익쒸익 대던 나는 그제야 진정하고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리조트에
도착도 하기 전에 힘을 뺄 순 없었기
때문에 그쯤하고 관둔 것이었다.
 

, 남주핵 때문에 잠 다 깼잖아!
 

눈 감긴 글러먹은 거 같으니 입이나
털자하고 옆에서 폰을 만지던 세훈이를
건드렸다.
 

 

우리 이번에 한 명도 붙은 사람 없어?”
 

나랑 갱준이 같은 조임. 그리고 태용이
빡검이랑 붙었고, 니도 있잖아?”
 

누구? , 정국이?”
 

접니.....”
 

 

쪼그라드는 성재의 가련한 손.
세훈이가 킬킬 거린다.
 

 


 

ㅋㅋㅋㅋㅋ이 새기 정국이
이름나올 줄 몰랐나봨ㅋㅋ
 

뻘쭘한 그의 손...오늘도
성재는 외롭습니다...”
 

뭐야 니도 있었어!?”
 

나 중간에 내려줘...”
 


 

“10분만 가면 휴게소니까 기다려.”
 


 

“!?”
 

빡검 진짜 내려주고 갈 걸.
빨리 잘못 말했습니다라고 해.”
 

 

에이~ 설마~?’ 성재는 코웃음쳤지만
얼마 안가 보검이에게 죄송합니다
삼창을 외쳤다.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호들갑을 떨며 그가 앉은 의자
등받이를 퉁퉁 쳐댔다.
 

 

미친놈아 말을 했어야지!! 그럼
왜 내가 조장이야!? 너 안 시키고?”
 

니가 조장 못 할 거라도 있음?”
 

 

귀찮잖아!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000 인성 지렸다.”
 

ㅋㅋㅋㅋ당당하게 귀찮댘ㅋㅋ
 


 

여기 조장 아닌 사람 없어. 강준이가
그러던데? 너보고 성재 많이 시키래.
남자애들 통솔하기 힘들 거니까.”
 

서강준이 사람 잘못 본 거 아냐?
쟤가 남주핵한테 하는 거 반만 해도
천하통일은 시켰을 건데.”
 

남주핵이랑 새내기들이랑 같냐?
그렇게 했다간 신고 들어올 걸.”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새내기
처럼 소중히 대해줬음 좋겠어.”
 


 

지랄하지마세요...”
 

 

차로 1시간 거리인 어느 산속의 리조트
입구에 들어서자 아침에 과에서 타고 온
버스들이 서있다. 사람 많은 과라고 익히
들어왔지만 대절한 버스 수를 보니 그
인원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짐을 챙겨 리조트 안으로 걸어가니 절반
이 우리 과 사람이야. 나는 한창 점심식사
중일 식당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왔냐~?”
 

 

세훈이가 미리 연락을 줘서 이 때
쯤 도착하는 걸 알고 있었던 강준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가 학생회라는 건 이럴 때 여실히
느껴지곤 해. 단체복을 입고 있다던가,
오늘 하루 일정을 꿰고 있음에 묻어나는
여유가 보인다던가.
 

 

왤케 반가워해. 누가 괴롭혀?”
 

뭔 골목대장이야? 짱돌과 주먹만
있으면 누구든 혼내줄 수 있어!”
 

시켜줘, 서강준 명예가드.”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밌당ㅋㅋㅋㅋㅋ
 

 


 

이런 장난 우습고 유치해
 

 

여기 밥 맛있냐? 나 배고파.”
 


 

그럭저럭. 휴게소 안 들렸어?”
 

휴게소 명물이란 명물은 전부
시식해보고 오는 길임.”
 

뭉치 대용량인 거 알잖아.”
 

 

?!?!
나는 억울함을 적극 내비쳤다.
지들도 먹어놓고 나만 먹었다고 하기
있어? 나만 먹었다고 하기 있냐고!!!
 

 

나 통감자랑 핫바 먹을래!
오세훈 계속 잘 거야??’
 


 

......’
 

나 물 좀 사자. 노래
계속 불렀더니 목마르다.’
 

장실 급해!!! 어딨냐!!!’
 

야 너 안 먹을 거??? 오징어
하고 소세지 내가 다 먹는다???’
 


 

. 먹어. 난 가서 먹을래.’
 

헤헿, 그럼 다 00!’
 

 

......있네. 과거의 돼지 반성해라.
 

 


 

누나 왔어요?”
 

누나!”
 

하이. 밥 다 먹고 가는 길이야?”
 

 

끄덕이며 나에게 오는 태용이와
정국이도 오늘만큼은 편안한 체육복
을 입고 있었다. 나는 둘에게 오늘
메뉴는 뭐냐고 물었다.
 

 

왜 뭉치만 찾냐.
우린 다크 템플러인가 봄?”
 


 

오빠 안녕하세요!”
 

안녕 주현아.”
 


 

, 세훈이 오빠 3조죠?
저랑 같은 조에요!”
 


 

방 몇 호냐?”
 

“205호요.”
 

“...니만 안 찾는 듯?”
 

찌발..”
 

 

서로 각자 얘기를 하며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나는 등에 맨 가방이 한순간에
가벼워진 걸 눈치 챘다. 돌아보니 강준이
내 가방 고리를 잡은 채 한손으로 들어
올린 상태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야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겁냐; 돌 넣어왔어???”
 

리조트에 없는 거 꽤 많다매?
고데기랑, 린스랑, 파우치랑...”
 

됐고, 이거 주고 밥 먹으러 가.
니 방에 가져다놓을 테니까.”
 

 

내 말을 자르며 가방을 뺏어가 어깨
한 쪽에 들쳐 맨 강준이는 계단을 올라
가려 했다. 나는 그의 과잠을 잡으며
급히 말했다.
 

 

내 방 어딘데?”
 


 

“306. 밥 다 먹고 가면 니가
맡은 애들 쉬고 있을 거다.”
 

, 언제까지 쉬고 있음 되요?”
 

조장들이 알려줄 거야.”
 

나 아무것도 모르는데?”
 

 

동시에 나를 보는 정국이와 태용이의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간신히 외면했다.
무지한 조장이라 얻어낼 거 없어,
쟤한테 물어 봐! 나는 강준이에게 조장
다운 임무를 달라 간절히 청했다.
강준이는 대뜸 성재를 불렀다.
 

 

육재! 나중에 201호로 튀어와!”
 


 

?”
 

일정 알려줄 거니까 나중에 뭉치
한테 전달해. 얘 조원들이랑 인사
하고 이름 외우느라 정신없을 거야.”
 

이러려고 나 6조 넣은 겨?”
 


 

육성재라 6조 넣은 거임.”
 

 

일리 있는 말.’ 주혁이가 그의 라임에
감탄했다. 성재마저도 아하하고 납득.
 

나는 이왕 조장이 됐는데 성재에게 짐을
더 지우기 싫어 밥을 빨리 먹고 해치우자
다짐했다. 태용이와 정국이에겐 나중에
보자며 등을 떠밀고는 식판을 들어, 성재
에게는 미리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흔쾌히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했지만,
대신에 조건을 내걸었다.
 

 


 

그럼 61등 하자. ?”
 

 

네 승률 알고나 말해.’ 보검이의 맑은
일침에도 불구하고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에게, 나는 떨떠름한 약속을 해버렸다.
 

진짜 육성재답다.
 

 

 

 

 

.
.
.
 

 

 

 

 

6조 조장을 맡게 된
17학번 2학년 000라고 해.
3일 동안 잘 지내보자!”
 

안녕하세요.”
 

 

성재를 본부(201)에 보내고 혼자 올라
온 나는 조원들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정국이를 포함한 총 4명의 새내기들의
반응은 꽤 나쁘지 않았고, 내 기억력을
뒷받침해줄 이름표가 다들 목에 걸려있어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정국이는 뒷풀이
이후로 얼굴을 익히 알아둔 사이지만 나머진
지나가다가도 본 적이 없는 안면들이라
나는 친해지기 위해 먼저 다가갔다.
 

 

진모, 성호, 상혁이라고 부르면
되지? 너희도 나 편하게 불러.”
 

. 누나 전정국이랑은
어떻게 친해졌어요?”
 

정국이 마니또가 내 친구거든.
옆옆방에 7조 조장 보검이라고,”
 

, 그 형 알아요. 나랑
맞담도 한 사인데~”
 

허세 부린다 또.”
 

 

강진모, 은성호, 민상혁.
셋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인지 따로
말을 걸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떠들며
나에게 일말의 경계심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 애들은 붙임성이 그리도 좋은지.
내 딴에는 감사한 일이었다.
 

진모라는 아이는 그들 중에서 가장 몸집이
컸고 좋게 말하자면 성숙한 풍채를 풍겼다.
왁스로 머리를 올린 그는 한쪽에 귀걸이를
하고 있었고, 기를 눌려본 적 없었다는 듯
자신만만함이 넘쳐 보였다. 나머지 성호나
상혁이는 특이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
지만 10년간의 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
했을 때 성호는 깝죽거리길 잘하는 아이,
상혁인 할 말은 하지만 진모에게 자주
먹혀버리는 아이라 분석했다.
 

진모는 어느새 내 바로 옆자리까지 와
말을 걸었다. 향수를 몇 번 뿌린 건지
독한 냄새가 코를 찔러, 나는 이걸
지적해야하나 고민하다 말았다.
 

 

정국이랑 더 친하다고 얘만 더 챙겨
주고 그러면 우리 슬픈 거 알죠?
우리, 누나랑 조라는 거 알았을 때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했었다구요.”
 


 

유치하다. 어린이집 다녀?”
 

 

정국이가 한 소리 했다. 성호가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껄껄 웃어
댔다. 나는 진모의 안색이 굳어지는 걸
보고 재빨리 대처했다.
 

 

, 그런 일은 없어. 나 오늘 성재
한테 조별 1등하기로 약속해서 너희
다 잘해야 하거든. 물론 나도 그렇고.”
 

“...?”
 

차별이랄 것도 없어. 너희 전부,
오늘 신나게 힘들 거야ㅎㅎ
 

반가운 소리 맞는 거죠??”
 

 

그럴 리가^^
 

조 짠 사람 누구야, 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하필이면 존심이
남산보다 높은 애를 붙여놨어...!
이런 애를 컨트롤하기에는 무척 쉬우나,
제 말에 토씨라도 달면 단비처럼 뿌앵
하고 난리 부르스를 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상혁이나 성호가 쩔쩔매는 거겠지.
 

내가 티 나지 않게 수습하자 정국이는
더는 그의 성격을 건들지 않았다.
이번엔 성호가 비어있는 내 옆자릴
차고앉아서는 발랄하게 떠들었다.
 

 

누나 그거 알아요?”
 

??”
 

, 말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걍 하지마.”
 

저희 남자애들끼리 버스에서
얘기했는데, 누나 3등 했어요.”
 

 

상혁이가 말렸지만 끄떡도 없이
제 할 말을 하는 성호였다.
 

무슨 3? 나는 정국이에게 아는 게
있냐 물었더니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
했다. 표정이 좋지 않은 거 보니까 좋은
얘기는 아닌가?
 

내가 재차 묻자 진모가 나를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뭐로 3등을 해?”
 

예쁜 걸로요~”
 


 

“.......”
 

...???”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지만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얘네...언제
나 봤다고 순위를 매겼지?
 

 

~ 니들 와꾸는요?”
 

 

성재가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고 비꼬
면서 들어왔다. 남자애들이 서둘러 일어나
인사를 했지만 그는 받아줄 마음이 없는
듯 짐짓 화난 투로 노려보았다.
 

 


 

누가 내 친구 평가질하래.”
 

...”
 

“..., 성재야!!”
 

 

여기서 잠깐.
지금 시간은 오후 2시를 향해있었다.
고로 MT 1일차에 시작한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 근데 이렇게
토막을 내버리겠다고?
 

콩가루란 수식어가 붙기 전에 나는
그와 애들이 대치하는 걸 말려야 했다.
이래서 내가 조장이구나!
 



학생회 빅픽쳐 오진다..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너 학생회
에서 들은 거 있어? 나 알려주라.
얘네 몇 시에 강당 집합하면 돼?”
 

 

기분이 나쁜 건 뒤로 하고,
나에겐 조의 단합이 우선이었다.
나는 성재를 데리고 발코니로 나갔다.
 

 

“10분 뒤에. 일정은 종이 받아왔음.
남초과라 그런지 스포츠 존나 많아.”
 

그래? 얘들아! 10분 뒤에 강당
가야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내가 전달하자마자 발코니 문이
닫힌다. 성재가 짝다리를 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쟤네 뭐야?”
 

, 줘패고 싶은 거 알겠는데.
방금 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쟤네가 뭐 알고 말했겠냐고.”
 

생각 없네?”

“3일 동안 부처님 생각하면서 참자.
나도 욕 나오려는 거 겨우 삼켰어.
내가 근거 없는 자존심 졸라 싫어하는
거 알지?”
 


 

. 니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
뭉개는 거 잘하잖아. , 쟤네 중에
객기 부리는 놈 있어?”
 

아직 심증뿐이지만 맞는 거 같아.
아무튼 그런 내가 참는다니까?”
 

“...누군지 뻘하게 감이 오네.”
 

너가 정국이 좀 챙겨줘. 정국이랑
저 세 명은 사이가 딱히 좋진 않은
거 같아서.”
 

 

성재는 탐탁치 않아했지만 고갤
까딱였다. 나는 벌써부터 피로감을
느끼며 한시름 놓았다.
 

 

일단 알겠어. 근데 나는 그렇다 치고,
방금 같은 일 남주혁이나 서강준
눈에 보이면 그 땐 수습도 못해.
입조심 시킬 필요는 있어 보인다.”
 

알아. 너 정국이 데리고 먼저
강당 가 있어줄래?”
 

이응.
정국아 가자.”
 

 

정국이는 나랑 친했지만 보검일 제외
하고는 딱히 친한 형이 없었다. 이참에
성재와 말문이 트이길 바라면서, 나는
일정표를 챙기며 발코니에서 나왔다.
 

아직 강당으로 가지 않은 삼인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감사해요.”
 

아냐, 난 괜찮으니까 성재랑은
나중에 따로 오해 풀었음 좋겠다.”
 

, 그리고 누나..!”
 

조장들 나와서 이거 받아가!”
 

나 잠깐 나갔다 올게!”
 

“....”
 

 

진모가 수줍어하는 걸 어쩔 수 없이
뒤로한 채 신발을 신고 뛰어나갔다.
부르자마자 튀어나오네. 스프린터야?’
회장 오빠가 너스레를 떨며 간식을
배부해주었다. 나는 헛웃음을 보이며
오빠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아오, 이 화상을...!
 

 

 

오후의 일정은 내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조이름 짜고, 구호 외치고,
뒤로는 오로지 구기종목이었다. 나는 중간
중간 음료수를 조달하거나 다친 사람이
있으면 학생회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했다.
공 하나만 던져주면 알아서 잘들 논다더니,
벤치에 앉아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저물자 다시 바빠졌다.
 

 

각 조장들 201호로 와봐!”
 

 

뭘 또 가져가래. 아낌없이 주는 201호에
감복해하기는커녕 짐꾼이 된 기분이었다.
가다가 세훈일 만난 성재가 조잘대는 걸
두고, 상자를 품에 앉은 내가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갔다. 무게는 덜한데 부피가
커서 앞이 잘 안 보여, 그만 앞사람과
부딪쳐버렸다.
 

 

으잉?”
 

 

태용이가 상자를 들어주었다.
 

 


 

무거워요 누나.”
 

안 무거워. 정 무거우면 육성재
시키면 돼. ! 육재야!! 빨리 와!”
 

 

나는 도로 뺏으며 성재를 애타게 불렀다.
난간에 상자를 걸쳐두고, 성재를 기다리
면서 태용이와 잠시 이야기를 할 짬이
났다. 그는 전반적으로 오늘 일정을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태용이 7조라고 했던가?
안 가 봐도 돼?”
 

가는 길이었....”
 

 

얘는 머리에 왜 이런 걸 묻히고 다녀?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에 가져
다가 먼지를 집어내 틱 털어냈다. 갑작
스러운 내 행동에 그가 말을 하다 말아서,
나는 멋쩍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너 어디 굴렀어? 머리카락에
먼지 묻어서. 보검이 그렇게 안
봤는데 애를 막 쓰네~”
 


 

“.....”
 

넝담이야. 얼른 밥 먹으러 가.”
 

 

누군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샤워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수건을 걸친 보검이와 눈이 마주쳤다.
 

 


 

태용아 식당 가자!
, 뭉치 있었네?”
 

벌써 다 씻었어?
우리 조는 한창인데.”
 

. 그거 나 줘.
넌 힘도 좋아, 안 무거웠어?”
 

무겁진 않고 앞이 안 보여.”
 

ㅋㅋㅋㅋ너한테 좀 크긴 해.
태용아 먼저 가있어! 나 얘
짐만 들어다주고 갈게.”
 

 

태용이는 알겠다하고 1층으로 내려
갔다. 나는 보검이와 같이 3층으로
올라가며 조장 대 조장으로써 일정을
체크했다.
 

 

저녁에 레크 뭐 남았냐? 애들
축구 뛰어서 피곤해보이던데.”
 


 

저녁 먹고 나면 쌩쌩해져.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별 거 안한대. 쪽지에
소원 쓰고 추첨한다던데?”
 

회장 오빠 요새 꽂힌 프로그램이라도
있어? 쪽지에 쓰는 거 졸라 좋아해;;”
 

 

보검이가 맞장구를 쳤다. 아니나
다를까 상자 속에는 다른 걸 제외
하고 필기구와 종이가 들어있었다.
 

축구 뛰면서 땀을 빼느라 한 명씩
돌아가며 샤워를 한다고,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는 나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달라 부탁했다.
 

 

너희 조는 괜찮아? 세훈이네 조는
결경이가 완전 공주님 대접이래.
입생들이 그렇게 걔를 잘 챙긴다더라.”
 

애가 애교가 많잖아.
주혁이네 조는?”
 


 

걔네는 여자도 없고 해서 스포츠로
단합했던데? 조별 1등은 걔네일 듯.”
 

성재가 그쪽으로 갔어야 했구만.”
 

 

내가 축구를 뛸 수 없는 노릇이라 1등에
기여를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1등은 3(서강준) 아니면 1(남주혁)
로 갈려서 경쟁하겠네.
 

나는 보검이에게 차마 우리 조는 아슬
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정국이와 상혁이는 장난도
치고 성호와도 잘 지내보려 노력은 하는
것 같았는데, 진모가 문제였다, 내가
1학년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들
만의 세계를 훔쳐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강 추측만 하는 건데, 그는 꽤 예전부터
정국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했다는
것을 오후 동안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정국이랑 말을 섞을라 치면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고.
 

 

정국아 물 마실래?’
 


 

! 누나 가만히 있으니까 춥죠.’
 

괜찮아. 강준이가 담요 주고갔
 

누나! 나 골 넣은 거 봤어요?“
 

? ! 봤지~ 주혁이한테 한 방
먹여서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정국이에게 무언갈 해주려하면
저도 똑같이 받고 싶어 하고.
 

 

간식 남았는데 너 먹을래?’
 

누나는요?’
 

‘7(보검이)한테 가서 달라고 하면..’
 

누나!!! 저도 배고픈데 더 없어요?’
 


 

이거 드셈.’
 

!!! 벌루!!!!!’
 


 

니네 아직 화해 안했냐.’
 

 

뭐랄까. 처음엔 질투라고 생각했지만
상혁이나 성호한텐 동일한 반응이
나오지 않아 미스테리로 남아있었다.
 

설마 자기한테 어린이집 다니냐는
소리 했다고 저녁이 되도록 뒤끝이
남아있는 거겠어? , 하는 짓
보니까 영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데...
 

 

! 우리 술 마시기 전에~
마지막 남은 행사가 있죠?”
 


 

니 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난다.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해?”
 

징하게도 시간 느리게 가는 거
같더만 결국 밤까지 온 거에
감격하고 있었어.”
 

 

밥을 먹고 나자 완전히 해가 지면서
강당에 달린 창문 밖은 껌껌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그렇다할 근거를
찾지 못한 나는 조원들을 앉히고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미스테리의 근원인 준모는
친구와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지나가는데
니코틴 냄새가 확 풍겨왔다. , 줄담배를
피고 오나? 내 주변에 흡연자가 없는 편은
아닌데 이렇게 심한 냄새는 처음이었다.
자기도 자각하고는 있는지 몇 번 옷을
킁킁 거리다 자그마한 향수병을 꺼내
칙칙 뿌리는데, 나는 흡- 숨을 참고
말았다. 낮에 맡았던 향수가 이거구나..!
 

 

밥 먹고 다들 종이 한 장씩 받았을
거예요. 거기에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적어 여기다가 넣었는데요. 뽑히면
쪽지에 적힌 사람이 무조건 소원을
들어줘야하는 거 알죠?”
 


 

저는 대놓고 오빠 이름 썼어요.
이런 것 좀 그만하자고.”
 


 

쁘하핳!!!! 그만하잔닼ㅋㅋㅋㅋ
 

 

회장 오빠는 언니의 팩트 폭격에
말을 더듬다가 겨우 진행톤을 찾았다.
 

1조에서 10조까지 백 명이 넘는 인원
이 강당에 모여서는, 나는 강준이나
주혁이, 세훈이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했다. 술자리 때 겨우 얼굴을
다 같이 볼 수 있으려나 싶지만..
애들 챙기느라 더 바쁠 듯하다.
 

 

첫 번째 쪽지에서는~
6조에서 나왔네요!”
 


 

뭐야, 우리 조야?”
 

“‘6조 정국이! 애교 함 보여줘~’
라고 썼네요. 이거 분명 홍보부장
이 썼다. 인정하십니까?”
 

우리 모두 한 마음 한 뜻이지!”
 


 

함 보여줘~~~”
 

 

, 이런 식으로 해?
 

정국이는 쭈뼛거리며 일어나 3,4학년
누나들의 소원을 어색하게 들어주었다.
회장은 만족하지 못한다며 야유를 보냈
지만 언니들은 귀엽다며 칭찬 일색.
정국이의 귀가 무척 빨갛다.
 

 

정국이가 언니들한테 인기가 많네.
환영식 뒤풀이 때 잠깐 놀았다더니
귀염둥이 다 되고 말이야.”
 

...지금 애교보고 칭찬할 때냐?
걸리면 X된다는 거잖아.”
 

니 애교는 안 볼 거 같은디?”
 


 

넌 꼭 걸려라.”
 

이 샛기가?”
 

 

성재랑 투닥대는데 단상 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쪽지를 또
뽑은 모양이었다.
 

 

! 대박!!! 이거 대박이야!”
 


 

뭔데 그래요?”
 

 

학생회끼리 돌려보고 난리도 아니야.
대박 잡았다며 제 꺼가 뽑히기라도
한 듯 신나라하는 회장오빠의 마이크를
뺏은 진영이 오빠가 대신 읽어주었다.
 

나를 비롯해, 나를 안다하는 사람들은
모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00 누나 좋아해요...라고 썼네?”
 

이거 쓴 사람 누구냐???”
 

야 익명 보장해야지! 근데
궁금하기는 핵 궁금하다.”

나에게, 태어나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일은 17학번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환영회에서 자기소개를 했을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로써 갱신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뜬금없는 고백 타임.
 

 

“...진짜 나왔네? !!!!
야 나 진짜 나올 줄 몰랐어!”
 


 

주둥이 대. 들이대!”
 

누나라면 1학년이잖아?”
 


 

“.....????”
 


 

“........”
 

 

나는 알지 못했다.
쪽지를 쓴 범인도,
뒤에 일어날 폭풍도.
 

 


 

이야..인기 봐라...”
 


 

육성재가 썼냐, 애를 왜 패?”
 

? 이상하다...”
 

뭐가?”
 


 

언니 남자친구 있잖아요!”
 

?????”
 

주말에 데이트하던데.
쪽지 쓴 사람 안 됐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
.
.
 


※만든이 : 콩이님 

 

<>
 
쪽지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MT편은 다음에도 이어집니다!
 
각 등장인물이 속한 조와 방 호수를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절대 제가
헷갈려서는 아니에요(소곤소곤)
 
1(202) : 남주혁
3(204) : 서강준 오세훈 주결경
6(306) : 000 육성재 전정국
7(306) : 박보검 이태용
본부(201) : 학생회가 쓰는 방
 
그럼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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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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