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앤리치 (by. 로웨나)

her.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는 삶.
남들보다 조금 더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
억 소리 나는 수입과 통장이 넘쳐나는 재벌 1, 2
그리고 대대손손. 정기적으로 사교 파티를 열어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썰고 그들이 사는 세상을 구축하는 모임.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그것들을 당연하게 누려왔고 
그렇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생을 살아왔다.
 
 
"약혼한 지 좀 되지 않았어? 결혼은 언제로 할 생각이야?"
 
 
, 약혼. 그래. 그것도 딱히 특별한 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는. 친구의 남자친구와 혼담이 오가고 전
 애인이 형부가 되고 소꿉친구가 남편이 되고-어릴 적
 한국사를 관심있게 공부할 때에는 이런 형국을 씨족 
사회라고 표현했다-. 그들만의 세계로 똘똘 뭉친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번식과 존속은 그러했다
모 드라마 대사처럼
 
 
기업과 기업이 약속을 했다는 뜻이야
주식을 나누고 기술을 공유하고 몇 천억일지 
몇 조일지 모를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겠다는 딜이라고.*
 
 
딱 그런 딜의 매개체가 된다.
 
 
"글쎄. 아직 집안에서 결혼 이야기는 없으시거든."
 
 
나는 앞에 놓인 크림브륄레를 스푼으로 콕콕 찌르며 
대답했다. 이번이 다섯 개 째다. 질문을 던진 여자는
 살찌는 게 두렵지도 않냐며 단 것은 악의 근원이라고 
경악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확실히 대부분을 
관상용으로 가져다노는 이런 파티에서 나처럼 음식을
 위장에 쓸어 담는 광경은 흔치 않다.
 
 
 
여자는 나의 본가가 운영하는 기업의 생산 부자재를 
납품하는 산하 기업의 둘째 딸이다
신기한 건 그녀는 항상 나보다 훨씬 적게 먹음에도
 불구하고 몸집은 두 배라는 거다.
 
 
 
그래서 그녀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음식에 
대한 폄하나 절제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신빙성도
관심도 없다. 나는 눈으로는 그녀를 보면서
 다섯 번째의 크림브륄레를 박살낸다
, 이제 좀 느끼하다.
 
 
"그래도 같이 살기로 했다며. 곧 결혼 소식 들리겠는걸."
 
 
지금이 2월이니 5월의 신부일 수도 있겠네
, 로맨틱해. 악의 없는 그녀의 말에
 입맛이 뚝 떨어진다
입에 집어넣으려던 마카롱을 쑤욱 빼낸다.
 
 
 
다이어트를 숙명으로 삼아야 하는 재벌가 영애들 
사이에서 진공 청소기마냥 음식을 흡입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나는 제법 착한 딸이었다
운명이니 뭐니 낭만적인 사랑을 찾아 떠나지 않고 
고분고분 약혼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않은가.
 
 
 
여느 재벌가처럼 자식을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은 것을 제외한다면 내 부모님은 꽤나 개방적이다
그러니 꽉 막힌 사모님의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혼전동거'를 시켰겠지.
 
 
 
가구나 생필품은 모두 구비해 놓았으니 다음 주
'몸만' 이사. 어머니의 비서가 전달해준 나도 모르는
 내 스케줄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이게 웬 유럽식 
개방적 문화냐며 기함을 하기도 했다.
 
 
"저기 네 남편 온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고 나는 
눈썹을 치켜 올린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남편이야."


"어차피 남편 될 텐데 미리 남편 소리 들으면 좀 어때."
 
 
어느 새 다가온 백현이 허리에 손을 감는 게 느껴지고 
그의 목소리가 정수리 근처에서 들린다. 나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찬찬히 그를 훑어본다.
 
 
 
전체적으로 무채색 원단에 검은색과 회색을 교차시켜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수트인데 고리타분하지도
무게감 없이 날아다니는 느낌도 아니다.
게다가 과하지 않은 블랙 플레인토를 신어 깔끔한
 분위기에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다
변백현 센스 좋은 건 알아줘야 하지.


"키 커 보이려고 용 썼네."
 
 
나처럼 그도 내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더니 말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제 발등 올라와
 있는 건 생각 안하고 입을 함부로 놀린다
오늘 힐이 조금 높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네 깔창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남편아.
 
 
하고 싶은 말이야 속에 차고 넘치지만 애써
 하하하- 웃으며 손에 들린 마카롱을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
 
 
"꿀이 떨어지네. 더 있다가는 당뇨 걸리겠어."
 
 
꿀 본 거 확실하니? 침 아니었니? 내가 무의식중에 
침을 뱉었을 수 있잖아. 언제나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는 모 기업 둘째딸은 당분 과다 섭취라며
 그렇게 자리를 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백현을 본다.
 
 
 
딱히 뭐 싫다거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갑다거나 
그런 느낌은 없다. 없는 게 차라리 이상할만큼 
지겹도록 보아온 얼굴이니 마음에 강이 흐르는 
것처럼 평화롭기만 하다. 그래도 저 몰캉몰캉해 
보이는 얼굴로 마카롱을 씹는 걸 보고 있자니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오른다.
 
 
"백현아, 그 마카롱 내 입에 들어갔다가 나온 거야."
 
 
, 이 정도 쯤?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목젖 
깊숙이 10센티 가량 되는 지점을 쿡 찔러보였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뱉을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그렇다고 삼킬 수도 없는 백현이 
씹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진다.
동공에 지진 난 거 같다, 남편아.
 
 
 
 
 
her.재벌 2세의 삶이라-. 그다지 특별한 건 없다
아침에 부랴부랴 일어나 출근을 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다가 오매불망 퇴근 시간만을 기다린다
어쩌다 잡힌 야근에 짜증내고 녹초처럼 늘어진 
몸을 야식과 술 한 모금의 짜릿한 목넘김으로 
달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것뿐일까. 여름에는 빵빵한 에어컨에 
영화 한 편으로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말하고 
겨울에는 뜨끈뜨근한 난방 속 포근한 이불 아래에서 
행복해한다. 크게 보면 그렇고 대충 봐야 그렇지만
 굳이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남의 
하루에 집착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서 내가 보내는
 하루만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나는 그런 
내가 열심히 사는 것처럼 느껴져 좋다.
 
 
 
오늘도 그런 날이길 바라는 아침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가운을 걸쳐 입고 거실로 나간다.
올해는 유난히 봄이 빨리 찾아오는 것 같았다
거실 공기는 서늘한데 버티칼 블라인드 틈새로 
비치는 햇살은 따뜻하다.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컵에 물을 붓고 티백을 
동동 띄우며 창문을 연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떠다니는 티백 주머니가 마치 이른 아침 
연못에서 헤엄치는 붕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싸늘하게 식은 공기 사이로 더 차갑고 촉촉한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컵에 입술을 대고 후후 분다. 뜨거운 찻물 위로 
피어오르는 따뜻한 수증기가 코끝에 부딪히는 게 
또 기분이 좋아서 몇 번을 더 그러다가 햇빛이 
가장 많이 내리는 소파 끝부분에 앉았다
뽀드득- 가죽이 마찰해 나는 소리도 좋다.
 
 
"……."
 
 
나는 찻물을 홀짝 들이키며 갑자기 방문을 열고
 나타난 백현을 본다. 이제 일어난 건지 머리는 
까치집에 오른손은 기지개를, 왼손은 옷 속으로 
집어넣어 배꼽 위를 긁적거린다.
 
 
 
결혼은 안 했어도 스물 한 살에 일가친척 앞에서 
약혼반지 나눠 낀 이래로 우리 집을 밥 먹듯 드나 
들었던 게 8년이다. 영국 유학할 당시에는 큰 집에 
따로따로 혼자 사는 게 심심해 같은 집에 머물기도
 했었다. 사실상 동거가 이게 처음은 아니라는 거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건 그와 나의 사이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8년이면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도대체 나는 왜 아직도 아침에 너만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걸까."
 
 
아침부터 내 집에 있는 못생긴 남정네에 놀란 
가슴을 속으로 쓸어내린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움찔했다. 백현이 내 앞으로 걸어와 
어느 새 좁혀진 내 미간을 문지른다.


"도대체 나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왜 못해주는 거냐."
 
 
나에게 언제나 공감능력이 부족한 게 문제라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란다.
 
 

"유독 아침에 못생긴 부인아. 이리와 아침이나 먹게."
 
 
12시가 넘어 오후 1시가 넘어가는 시각 나와 
그는 늦은 아침을 준비한다.
 
 
 
 
 
her.나는 매주 수요일 점심, 일요일 저녁에 백현과 
식사를 한다. 물론 새삼스럽게 집에서 먹는 밥을 
말하는 건 아니다. 대외적으로 기업 간 건재한 
연결고리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랄까.
나와 백현은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외식을 한다
이제나 저제나 보는 눈은 많으니까 말이다.
 
 
 
시작은 그랬어도 지금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서로를 견제하는 우리네 집단은 서로를 제외한 
또다른 외부인은 철저하게 경계하고 밀어내는 
참 이상한 종족이라 어려서부터 우리밖에 몰랐었다.
알고 지내는 건 비슷한 재력을 가진 집안의 비슷한 
나이의 자제들 뿐. 나와 백현도 그렇게 아는 사이가 
되었고 그래서 학생 때는 종종 밥을 같이 먹었다.
 
 
 
영국에 동반 유학했을 때에는 밥을 같이 먹어줄 
한국인이 서로뿐이니 함께였고 귀국한 이후에는 
그게 습관이 되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서로를 찾았다. 이제는 그와의 데이트-
데이트라면 나름 데이트-를 거르면 집에 뭘 두고 
온 것 마냥 불편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수요일이니 점심을 먹는 날이다. 평소라면
 그의 회사 혹은 나의 회사 근처에서 먹는 편인데 
오늘은 회의가 늦어져 그의 회사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근처 일식집에서 스시를 포장해 
그의 회사로 향했다.
 
 
 
 
her.도착한 그의 오피스에 들어섰을 때 내가 마주한 건
 살짝 쉰 듯 한 목소리로 떽떽 잔소리를 해대는 남자 
한 명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모든 걸 달관한 채로
 공손히 듣기만 하는 남자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내 예비 남편. 나는 문 앞에 스시가 든
 쇼핑백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서 인기척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이게 아니라니까요. 뭘 잘못한 건지는 아세요?"
 
 
 

", . 내가 미안해."
 
 

"뭘 잘못했냐니까 왜 자꾸 미안하대. , 다시 해봐요."
 
 
기분이 이상하다. 약혼녀는 분명 난데 
부부싸움은 저기서 하는 느낌이랄까
남편의 외도 현장을 목격한 느낌이다.
 
 
그룹 수장의 적자이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 때문에 
이사진의 반대에 부딪혀 중역은 맡지 
못하고 있는 백현이다.
 
 
하지만 곧 자리 하나는 맡을 걸 나는 안다
백현의 능력 여부를 떠나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회장님은 손익과 기회에 민감하고 자타 구분이 
명확한 인물이다. 백현은 당신의 아들이자 당신의
 사람이고 기회를 보아 회사 내에 입지를 굳힐 
것임이 분명하며 그래야 이익을 따질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는 그렇다.
 
 
 
백현에게 들은 바로는 그 모든 과정에 필요한 
후계자 교육을 위해 가정교사-백현의 표현이다-
 붙을 거라는데 그 교사가 지금 내 눈앞의 
저 사람인 모양이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 위험한데. 학창 시절의 백현의 USB에서 
가정교사 포르노를 얼핏 본 듯한 기억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여러모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우선 나는 5분 째 비생산적인 대화를 반복하는 
그들에게 내 존재를 알리기로 한다. 8년 째 보아서
 아는데 지금 백현의 내면에는 영혼이 없다
이미 탈출하고 껍데기만 남아 대답하는 중이다.
 
 
"백현아."
 
 
곧이어 나를 발견한 그에게 영혼이 쑤욱 
들어가는 게 보인다.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서
 빼내줄 구원자가 도착한 게 기쁜 건지 죽어 있던 
동태같은 눈이 급 활기를 되찾는다. 나는 오른손에
 든 쇼핑백을 그가 볼 수 있도록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려 흔들거린다.
 
 
"비서님도 같이 먹어요."
 
 
아마 비서가 맞을 거다. 원래는 회장의 직속 비서겠지
무사마냥 상사에게 임무를 전달 받았더니 
웬 변백현 아기를 떠맡아 보모처럼 돌보는 중일 테고
이럴 때 내조해야지 언제 하겠나. 내가 좋아하는 
메뉴라 넉넉히 사온 스시를 그에게도 베풀어
 주기로 한다.
 
 
 
그제야 내게 남자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적절한 단어를 찾는 듯 
백현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남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내 오피스 와이프야. 오세훈 씨."
 

"……."
 
 
"……."
 
 
뭐랄까. 외도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 상대 여자 앞에서 
남편의 입으로 직접 확인 사살 당한 느낌이다
나와 세훈은 어느 샌가 쇼핑백에서 음식을 꺼내 
포장을 뜯는 백현을 바라본다.
 
 
"생긴 걸로 따지면 네 쪽이 와이프 같은데."
 
 
사실이다. 세훈은 와이프라기엔 덩치도 목소리도 
백현보다 훨씬 남자같아서 특이 취향이 아닌 이상 
저런 와이프가 있다면 아마 존나존나 무서울 거다
원피스에 가끔 나오는 다리털 난 여장 남자 정도
나는 그저 내 동거남이 상디조차 기피하는 
그런 특이 취향은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나와 백현을 번갈아 바라보는 세훈을 본다
오래 봐야 할 사람인데 인사를 그렇게 대충 
시키면 어떡해. 하여튼 바보 변백현.
모자란 남편 때문에 내조해야 하는 부인은 항상
 이렇게나 고생이다. 나는 세훈에게 
걸어가 손을 내민다.
 
 
"반가워요. 백현이 본부인이에요."
 
 
반가워요, 세컨드-second-. 
나는 백현이 퍼스트-first-랍니다.
 
 
 

"?"
 
 
"우리 백현이가 좀 모자라요. 잘 부탁드릴게요."
 
 
! 남편 욕 좀 하지마! 새우초밥을 입에 물고 
소리치는 백현은 무시한 채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세훈에게 예의와 깊은 안타까움을 표한다.
 

파티에서 백현이가 
입은 수트는 위 이미지를 참고했습니다.
언젠간 백현이 검은 와이셔츠도 입힐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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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상속자들9유라헬 대사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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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이 : 로웨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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