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로즈 - 下 (by. 몽글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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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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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즈-
 
 
 

 
 
 
 
BGM:Evanescence-Hello
 
 



 
 
 
올 겨울 들어서
두 번째로 한파특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최악의 추위라는 수식어가 달릴 정도로
그날의 기온은 이례적인 온도였다.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살갗만 스쳐도 아릴정도였으니.
 
그러나 사람들은
한파경보든 이례적인 낮은 온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지,
길거리에는 다정한 포즈를 취한 채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기 위해
돌아다니는 연인들로 즐비했다.
 
사람 많은 장소는 썩-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런 특별한 날에는 데이트를 해야 된다며,
여자 친구란 작자는 며칠 전부터
얼마나 사람을 달달 볶아대던지.
 
 
앵앵거리는 콧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끔직한 애교를
보여주는 모습을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며 몸서리를 쳤다.
 
 
통상적인 관계에서 느껴지는,
 
 

.”
 
 
아이러니한 내 감정에
쓴 웃음이 새어나왔다.
 
 
현재 내 여자 친구란 사람은
2주전쯤 클럽 바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왔던 사람이었다.
 
-치면 스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은
야시시한 옷을 걸친 채,
어찌나 자신의 몸을
내 몸에 밀착하면서 유혹을 해대던지.
 
 
솔직히 얼굴이나
몸매가 좋아서 사귄 건 아니었다.
단지 문득 느낄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만남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를 욕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게 다가왔던
그 모든 여자들은
부족하지 않는 내 외모나,
풍족하고 미래 가능성이 열려있는
내 재력을 보고 다가왔던 게 사실이니까.
 
절대 나를 사랑해서
만남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서로의 조건만
충족시키면 되는 거 아니겠나?
 
 
우리 관계는 딱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조차 없는 그런 사이다.
 
 
 
 
.
.
.
 
 
 
 
잔잔한 음악이 내려앉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우리의 테이블에는 보통 연인들처럼
끊임없는 대화 대신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식기와 부딪치는 포크질 소리만
간간히 들려 올뿐이었다.
 
한참 말없이 포크질만 하는 사이,
맞은편에 앉아있던 상대는 꽤 불편했는지
말을 먼저 꺼내기 시작한다.
 
 
또 내가 듣기 싫어하는
콧소리를 잔뜩 섞어가며,
 
 
오늘밤은
나와 있어줄 거지?”
 
 
억지로 눈을 반달로 접어
웃음을 짓는 내 여자 친구라는 사람.
 
 
, 저 가식.
진짜 별로다!
 
 
그 어떠한 대답도 없는
떨떠름한 내 표정을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이내 웃던 그녀의 입매는
원래의 자리로 되찾아갔다.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손에 쥐고 있음에도
요란스러운 진동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핸드폰을 한번 힐끗-보더니,
내 눈치를 보면서 이내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다시 돌아올
필요는없을 것, 같은데?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마친 뒤 비상구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찌나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는지,
넓은 비상구의 통로를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로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재수 없다니까?
사람이 말하는데 어찌나 무시하는지.
일부러 유혹 좀 해보겠다고
날도 추운데 옷도 짧게 입고 왔건만,
어떻게 남자라는 인간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눈 하나 깜박 안할 수가 있냐고!
- 진짜, 자존심 상해서.
혹시 씨도 못 뿌리는
그런 새끼 아니야?”
 
 
그동안 내 앞에서
나를 욕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난 어이없는 상황에 입술사이를 비집고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팔짱을 끼고 비상구 계단 벽 쪽에 기댄 채,
그녀가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나에 대해 뭐라고 험담하는지 지켜봐야겠다.
 
 
아니- 진짜,
외모랑 재력만 아니었으면.
그 지랄 맞은 성격을 누가 맞춰주겠냐?
사람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데,
눈빛이 얼마나 재수 없던지.
거기다 완전 성격파탄자야!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든다니까?”
 
 
언제나 직설적이고
호불호가 강한 내 성격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다.
 
 
신나게 나를 욕하던 중-
내 생각이 나기는 했는지
상대방과 전화를 급하게 끊고,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네.
그만 끊어, 들어가 봐야겠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돌려
내려갔던 계단을 올라오려던 찰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하- 자기야,
왜 나와 있어?”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내 눈치를 보기 바빠 보였다.
소리 없는 탄식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지,
벙벙한 채 입을 벌린 모습이
꽤나 우스워보였다.
 
 
난 한쪽 입술의 끝을 살짝 올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만나느라 참 고생이 많았네.
이제 너의 유혹에 넘어갈 남자 만나서,
눈치 보지 말고
재밌게 연애하길 바랄게!”
 
 
아이러니한 우리 관계의 끝을 맺었다.
 
 
난 몸을 돌려
비상구를 빠져나가려는데,
 
 
, 자기야!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
 
 
그녀는 내 소매의 끝부분을 잡고
애원하듯이 매달렸다.
난 잡히지 않은 반대 손으로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며,
 
 

구질구질하게,
이러지는 말자!
경고는여기까지야!”
 
 
눈물을 글썽거리는 그녀를
차가운 눈동자로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지만,
결국 너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짧은 나의 연애는,
또 늘 같은 이유로 끝이 났다.
 
 
 
 
.
.
.
 
 
 
 
BGM:Evanescence-Hello
 
 

 
 
어둠이 내리 깔린 거실엔,
조명등 하나만이 나 홀로
노란빛을 뿜어낼 뿐이었다.
 
양주와 얼음이 섞인 잔을,
손목의 스냅으로 여러 번 돌리고 있었다.
 
얼음과 얼음이,
얼음과 잔의 벽면이 부딪치는 소리가
내 귀에는 꽤나 익숙한 듯
청명하게 들려왔다.
 
 
그러다가 한 모금을 들이마시고는,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입안에 알싸한 알코올 향이 맴돌았다.
 
 

하아.”
 
 
속마음의 감정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어릴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양육권을 가진 아버지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숱했다.
 
그 당시 나를 양육했던 보모는,
날 사랑으로 보듬어주기는커녕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여길 뿐이었다.
무관심이 난무한 척박한 환경에서 난,
홀로 그렇게 자라왔다.
 
 
외로웠었고 외로웠지만,
지금도 여전히 외롭다.
 
어릴 때부터 곧 잘 느끼던
지독한 감정은 적응될 법도 한데,
어째서 더 큰 아픔으로
내게 다가오는 걸까.
 

사랑을 갈구하면 갈구할수록,
난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지도
한참이 지난 나였지만,
여전히 사람이 그립고
여전히 사랑이 그리웠다.
 
 
내 옆에서 날 사랑해줄
누군가 있길 바라는 건
큰 욕심인가?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강인한 모습에 가려진,
갈 곳 잃은 여린 내 마음을
독한 술로나마 잠시 위로해보려 한다.
 
 
한잔, 두잔.
 
 
알코올에 취해
이성적인 생각이 힘들 정도로
흐린 판단력이었지만,
결국 내 주변에는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바람 빠지듯 새어나온
웃음소리가 눈물로 뒤섞여있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뚫고


우직하게 쏟아내는 한줄기의 달빛만이
나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뿐이었다.
 
 
 
 
 
*
 
 
 
 
BGM:Orsten- Fleur Blanche
 
 

 
 
 
 
어느 외곽에 자리한
몽글 점집 앞.
 
난 회장님(아버지)
비서로 일하는 사람이 적어준
주소가 적힌 종이를 팔락거려보았다.
 
 
회장님께서는
중요한 일이 있기 전,
항상 이곳에 가셔서
미래를 점쳐보곤 하신답니다.”
 
 
우연한 기회로 회장님을 모시는
비서에게 들은 정보 하나.
 
 
그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처음 그곳을 찾은 계기는
그게 시작이었다.
 
 
지독하게 아픔을 가져다 준
외로움에게 벗어나고자했던,
내 작은 희망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게 했다.
 
 
 
 
.
.
.
 
 
 
 
 
내 사주팔자를
곰곰이 보던 도사는,
 
 
자네
상당히 고독했겠구먼.”
 
 
사주팔자가 풀이된 종이를
펜으로 툭툭- 두들기며 말을 꺼냈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겠어.”
 
 
자글거리는 주름사이로
도사의 눈가는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게 다사주 안에
다 나와 있나 봐요?”
 
 
그럼. 여기에 온 것도
그 것 때문이 아니겠어?”
 
 
내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노인의 말에 난 고개를
작게 끄덕여보였다.
 
 
몽글 서점 앞,
다음 주 토요일,
저녁7.”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만
뱉는 노인의 말에 난,
 
 
?”
 
 
궁금증을 담아 반문하듯
대답을 내뱉었다.
 
 
자네 인연 말이야.
아주 견고한 실로 연결된 사람이,
자네의 인생에 딱 한명 있다네.”
 
 

인생에 여자가
딱 한명 뿐이라고요?”
 
 
부족할거라고는 없는 내게
인생을 통틀어 여자가
딱 한명 뿐이라니,
어이없는 이야기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뭐야- 지금 부적 같은 거라도
사야한다고 개수작부리는 거 아니야?
 
 
의심의 눈초리를 장전한
내 눈빛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늘이
자네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어!
다음 주가 지나기 전에
나를 찾아온걸 보면 말이야.”
 
그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웃던 얼굴은
이내 차갑게 식더니,
 
 
이번 기회가 지나간다면,
자네는 전과 같이
고독한 삶을 똑같이 걷게 될 거야!”
 
 
내게 명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노인의 날카롭게 빛나던 눈빛에,
의심하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졌다.
 
 

그 사람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죠?
몽글 서점 앞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데.”
 
 
도사의 협박 같은 이야기에
휘말렸던 것일까,
아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일까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빛이 날걸세.
자네 눈에 아주 반짝거리는 사람이
분명 지나갈 걸세!”
 
 
난 확신이 가득 담겨있는
도사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길 것만 같던 한주가 지났고,
난 저녁 630분부터
몽글 서점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초조하게 손목에 걸린 시계를
자꾸만 들여다보면서,
7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손목에 걸린 시계의 초침을
눈으로 쫓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각 7시를 알리는 초침이
똑딱-하고 가리켰다.
 
난 고개를 들어
주변사람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빛나는 사람이라,
빛이 나는,
 

 
찾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유독 한명의 여자에게서
아우라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난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그 여자의 뒤를 졸졸졸- 쫓아갔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인생에 한명 뿐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를.
 
나도 모르게 덜컥-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나의 행동에 상대방은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당신의 눈빛이 내 눈빛과
공중에서 부딪치며 흩어질 때,
난 전기에 감전된 것 마냥
찌릿- 거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녀는 내가 만나왔던
여자들과 무언가가 달랐다.
그녀는 매우 수수한 외모였지만,
묘한 아름다움이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난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던 걸까,
 

 
나 그쪽이 마음에 드는데,
나 어때요?”
 
 
내 마음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말을 먼저 내뱉어버렸다.
 
앞뒤를 잘라먹은 문장이었지만,
난 그녀가 단박에 내 고백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저돌적인 내 성격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2주가량 나를
열심히 피해 다녔었다.
그때의 심정이란,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쯤이 어울릴 법 했다.
그렇지만 끈질긴 나의 구애에
그녀가 결국 승낙을 했고,
난 드디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요,
ㅇㅇ.”
 
 
내 입가의 끝이
예쁘게 휘어져 올라갔다.
내 얼굴엔 가식 따위가
얹어질 틈조차 없었다.
 
 

당신이 진정 내 인생에
단 한명의 여자인가 봐요,
내가 당신을 최고의 여자로 만들어줄게요.
 

그러니 내 손을 놓지 말고 늘 내 옆에 있어줘요,
지금보다 더욱 당신을 사랑할게요.
 
 
 
 
*
 
 
 
 
우리는 무수히 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단연 빛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평소처럼 ㅇㅇ가 다니는 회사 앞에서
자동차를 대기시킨 채,
ㅇㅇ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ㅇㅇ를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내겐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퇴근하는 중인지,
회사건물 정문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어머! 오늘도 오셨네요?”
 
 
ㅇㅇ씨는 좋겠어!”
 
 
ㅇㅇ선배, 부러워요!”
 
 
ㅇㅇ와 같이 일하는 회사 여직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다.
 
(ㅇㅇ에게 따로 말한 적은 없지만,
지금 ㅇㅇ가 다니는 회사는 여직원 비율이 훨씬 높았고,
몇 안 되는 남직원들조차 다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 불안했던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ㅇㅇ 네가 다른 남자에게 따로 눈 돌릴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매일 데리러 오는 거
안 힘드세요?”
 
 
에이-
제가 ㅇㅇ를 보고 싶어서,
데리러 온 건데요, .”
 
 
내 얼굴 위에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자,
같이 나왔던 직원들이 ㅇㅇ
한편으로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자기야아- 그런 말까지 하면
내가 부끄럽잖아아.”
 
 
수줍게 달아오른 얼굴,
말꼬리를 늘이며 부리는 애교.
 
 
행복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사랑해, ㅇㅇ.”
 
 
내 인생의 목적이자,
최고의 낙이다.
 
 
 
 
*
 
 
 
BGM:Orsten- Fleur Blanche
 


 
 
 
난 항상 자기가
내 옆에 머물러있었으면 좋겠다.
 
내 반반한 외모뿐이라도
마음에 들어 내 옆에 머물렀으면 좋겠고,
아니면 재력과 미래가능성에
혹해서라도 내 옆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언정
이용가치가 있어서라도
내 옆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어떤 목적과 이유를 가지든
난 상관이 없었다.
단지 당신이 내 옆에
머물러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난 항상 자기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ㅇㅇ가 했던 이야기라면
그냥 흘려듣는 법이 없었고,
사사로운 일이라도 난 모두
ㅇㅇ에게 일일이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매일같이 잠들기 전까지
끊이지 않는 수다는 기본이고,
밑도 끝도 없이 나의 애정을
말로 표현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러한 내 행동은
전부 꾸며낸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에게 진심이었고,
당신은 나에게 전부였다.
 
그제야 내가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당신에게 깊이 빠져있음을,
한 번 더 뼈저리게 깨달았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는 꽤 순탄하게 연애를 해왔었다.
그 흔한 사랑싸움조차도 필요 없었으니.
 
그러나 ㅇㅇ 네가 회사를 이직하고 나서,
우리 애정전선에 이상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가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은 채
ㅇㅇ가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데이트는커녕 잠시 만남을
가질 시간조차도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시간이 지속될수록
내 불만은 극에 달해갔다.
연락을 남겨도 몇 시간 뒤에
답장이 오는 것은 물론이요,
짬을 내서라도 얼굴을 보는 날엔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그녀의 동료에게서 어김없이
연락이 오기 일쑤였다.
 
연속적인 야근에,
잠자기 전 많은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모습들은 기억 한편의
먼지 묻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ㅇㅇ에게 호감을 가졌던 남자가
내 예민한 레이더망에 걸려버렸고,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뒤틀려있는
내 심기를 건드려왔다.
 
 
 
 
.
.
.
 
 
 
 
ㅇㅇ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끝나던 날이었다.
서로가 약속했던 건 아니었지만,
난 이날은 ㅇㅇ가 회식이 있더라도
눈치껏 빠져나와,
나를 만나러 와주진 않을까란
기대를 살짝 하고 있었다.
 
그러나 50통이 넘는 전화를 걸었지만,
ㅇㅇ는 단 한 번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풀었던 기대는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왜 하필 ㅇㅇ가 회식 첫날처럼
취했던 모습이 떠오른 걸까.
 
왜 하필 ㅇㅇ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그 남자가 떠오른 걸까.
 
 
 
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ㅇㅇ를 찾아 나섰다.
도저히 불안해서 집안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ㅇㅇ가 속해있는
부서의 회식장소를 찾으러
한참을 뛰어다녔다.
 
 
제법 찬 공기가 맴도는
쌀쌀한 밤의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왔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면서,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숨을 고르게 내뱉는 와중에도
난 번뜩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고 있는데,
 
 
ㅇㅇ 네가 그 남자와 단둘이 밖에 나와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됐다.
 
심지어 그 남자는 너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고,
넌 그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성적인 필라멘트가
- 끊기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그 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던 ㅇㅇ,
내 명의로 된 별장에 데려갔다는 사실 밖에.
 
 
 
 
*
 
 
 
 
지독하게도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술을 얼마나 마신건지,
ㅇㅇ는 내가 안고 움직일 동안
깰 기미조자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침대 위에 ㅇㅇ
조심스레 눕혀놓고,
두툼한 하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새근새근- 잠도
잘 자는 ㅇㅇ의 얼굴에,
난 눈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감긴 ㅇㅇ의 눈을,
오뚝한 ㅇㅇ의 콧대를,
붉은빛이 감도는 ㅇㅇ의 입술을,
순서대로 내 기다란 검지로
천천히 훑어 내렸다.
 
 

ㅇㅇ, 그냥 이렇게 평생
내 옆에 있어줘.”
 
 
자기가 내 눈앞에 있으니,
이제야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아.
 
 
난 유혹적인 그녀의
붉은 입술 위에,
 
 
내가 많이 사랑해!”
 
 
내 입술을 살포시 얹어
나의 사랑을 표현해보였다.
 
 

그날 밤의 하늘은
달빛이 새어나올 틈도 없이
먹구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달이 빛을 뿜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속까지 시커먼 구름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
.
 
 
 
 
난 방문 앞에 쓰러진 ㅇㅇ를 보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그녀를 흔들어 깨우려 애를 썼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은
하늘에 닿기엔 부족했는지,
하늘은 나를 비웃듯
날 바닥으로 세게 내팽겨 쳤다.
 
 
이대로 내가 너의 손을,
놓아주어야하는 건가?
 
 
오만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꽉꽉 채워갈 때,
 
 
사주만으로 봤을 땐,
평생 함께할 사이라네.
두 사람은 죽어서도
영원히 함께 할 정도로
인연의 실이 아주 견고하다네.”
 
 
난 노인이 했던 이야기가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
 
 
이대로 널 이렇게 보낼 순 없어!
 
 
난 능숙한 손놀림으로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시작했다.
불안감이 서려있는 눈빛이
내 마음을 대변하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쉼 없이 돌던 바퀴가,
몽글 점집 앞에 멈춰 섰다.
 
쿵쾅거리는 내 다급한 발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려 퍼졌다.
난 도사가 있는 방문을 열어젖히며 들어가,
대뜸 ㅇㅇ의 생년일시를 이야기했다.
 
 
그 노인은 내가 부른
생년일시를 받아 적으면서,
 
 
버릇이 없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내비췄다.
그런 모습도 잠시,
종이에 무언가를 풀이하던
노인은 꽤 놀란 눈치였다.
 
 
자네- 죽은 자의
사주를 가지고 오다니,
뭘 어쩌자는 겐가!”
 
 

그래,
내 여자가 오늘 죽었어.”
 
 
내가 나지막이
내뱉은 말을 끝으로,
숨 막힐 듯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 그때 그랬지.
우린 죽어서도 함께 할 운명이라고.
그럼 내가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게 도와줘.”
 
 
내말은 듣던 노인은,
 
 
복채라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 테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도 방법이 있는듯했다.
 
 
 
BGM:Orsten- Fleur Blanche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네.
단지 죽은 자의 피가 필요할 뿐.”
 
 
뜬금없는 노인의 이야기에 난,
말없이 동그랗게 뜬눈으로 반문했다.
 
 
- 그렇다고 많은 양이 피가
필요한건 아니야.
영혼을 자네 옆에 묶어두기 위한
의식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그래서 피로
뭘 어쩌라는 거지?”
 
 
블랙로즈의 꽃말을 아는가?
아주 환상적이게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이라네.”
 
 
난 말 많은 노인의 이야기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 반응을 눈치 챘는지,
노인은 지체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블랙로즈에 영혼을 묶어두고 싶은 자의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게.
그리고 그 꽃을 물이 담긴 꽃병에
꽂아놓으면 된다네.”
 
 

뭐 이딴 걸방법이라고.”
 
 
장난 같은 노인의 이야기에
내 미간은 기분 나쁜 티를 내듯 금세 좁혀졌고,
눈빛에는 고스란히 짜증이 묻어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라네!
꽃병에 담은 꽃이 시들게 된다면,
그 영혼을 잡아두는 힘이
그만큼 약해진다는 소리지.
시간이 지나면 꽃은
자연스레 시들어갈 거야,
그때는 어쩔 수없이 자연스럽게
그 영혼을 보내줘야 한다네.”
 
 
내가 말없이 노인을 빤히 바라보자,
그 노인은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죽은 자와 의사소통은 불가능하지만,
발이 묶인 영혼은
자네가 하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다네.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자네가 망자에게 못다 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일세.”
 
 
난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ㅇㅇ의 사주풀이가 적힌 종이위에
던져놓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믿고 안 믿고는 자네의 자유지만,
자네는 꼭 그 방법을 쓸 테지.
망자의 사주를 보니
쉽게 떠나지도 못하는걸 보니.”
 
 
난 노인의 말에 조소만을 띄운 채,
몽글 점집을 벗어나
내 별장으로 차를 빠르게 몰았다.
 
 
- 물론 별장으로 향하는 길에,
꽃집에 들러 블랙로즈를
한 아름 사들고 말이다.
 
 
 
 
***
 
 
 
 
ㅇㅇ가 세상을 뜬지도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수혁의 방에는 여전히 시들지 않은


싱싱한 블랙로즈 한 송이가
물이 담긴 꽃병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수혁은 양주와 얼음이 담긴 잔을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쓰디쓴 양주를 한 모금 마신
그는 기분이 제법 좋은지,
얼굴위에 보기 드문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싱그러운 꽃잎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ㅇㅇ가 제 옆에 딱 붙어있을 거란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짙어졌다.
 

자기야- 늘 내가 말했지만,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
 
 
수혁은 희석된 양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러니까 자기도 내게서,
멀어지지 마.”
 
 
평생을 함께하자.
사랑해, ㅇㅇ.”
 
 
본인이 예전에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
.
.
 
 
 
 
시간이 흐르자,
꽃병에 담겨있던 꽃이
제법 시들해져있었다.
 
그걸 본 수혁은 마당으로 나가
심어놓았던 블랙로즈 한 송이를 꺾어왔다.
그리고 방안에 마련된 작은 냉장고의 문을 열어,
응고된 피를 녹이기에 열을 올렸다.
 
어느새 액체화가 된 피를
수혁은 스포이드에 조금만 담아냈다.
새로 꺾어온 블랙로즈위에,
액체로 변한 ㅇㅇ의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곧이어 피로 물든 그 꽃은
자연스럽게 물이 담긴 꽃병에 꽂혀졌다.
 
 
힘이 넘치는
싱싱한 블랙로즈를 본 수혁은,
 

넌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부드러운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ㅇㅇ, 넌 영원히
내 것 이여야만 해.
자기는 내 인생에
단 하나뿐인 여자거든.”
 
 
지독히도 낮은 음성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내뱉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비정상적인 웃음을 지어보이던 수혁은,
 

미치도록 사랑해, ㅇㅇㅇ.”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한 채,
제 사랑의 표현을 누군가에게
여전히 전하고 있었다.
 
 
 
 
수혁의 방엔
늘 시들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다.
 

돌도 도는 영원한 굴레 안에 갇혀버린,
애처로운 블랙로즈 한 송이가.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드디어 블랙로즈가 끝이났습니다.
결론이 마음에 드실 줄은 모르겠네요.
 
뭔가 시원섭섭한 이 기분!
 
그동안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일찍 찾아올 예정이었지만,
스케줄이 꼬이면서 늦어진 것도 있고
블랙로즈-편이
평소분량에 1.5배정도 되네요.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써가면서 결국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딱히 지금은 생각나는 말이 없네요!
 
아무튼 다시 한 번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관심과 응원을 댓글을 써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늘 애정합니다, 독자님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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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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