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로즈-中 (by. 몽글구름)

 

<작가가 독자님들께>

중간에 첨부한 BGM
같이 들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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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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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로즈-
 

 

 

 


 

 

 

 

며칠사이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져 있었다.
온기를 머금었던 내 몸 사이를,
자꾸만 파고드는 시린 바람 때문에 난 양손으로
더욱 단단히 얇은 겉옷을 싸매고 있었다.
 

 

밀린 서류작성과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위한
발표자료 준비 등등,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밤하늘의 달빛만이
고된 나의 퇴근길을 밝혀줄 뿐이었다.
 

결국 난 며칠째 야근중이란 소리다.
 

 

하아.”
 

 

피곤함이 잔뜩 배어있는
나의 짧은 한숨이
입 밖으로 터지듯 새어나왔다.
 

터덜터덜- 힘 빠진 발걸음을
집 방향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자기야!”
 

 

등 뒤에서 수혁이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 것 같아,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몇 시간 전
나한테 잔다고 연락했던 네가,
 

 

? 자기야!”
 

 

양손에 커피를 든 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니
난 적잖이 놀랬다.
내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 서프라이즈!”
 

 

입가의 끝이 예쁘게 휘어지도록
웃어 보이는 수혁이었다.
난 그가 건넨 커피를 받아들면서,
 

 

어머- 어쩐 일이야!”
 

 

기쁨의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물어보았다.
 

 


어쩐 일이긴.
요새 우리 자주
만나지도 못했잖아.”
 

 

내 이야기에 수혁이는
속상함을 여실히 목소리에 드러내며,
 

 


보고 싶었단 말이야.”
 

 

강아지마냥 귀엽게 축-쳐진 눈매로
서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들이
내 눈에는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내손에는 커피를 들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뭐 끌어안았다라고 표현을 썼지만,
내가 안겼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이런 내 행동에 수혁이도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세게 꼭- 안아주었다.
 

나보다 키가 한참 큰
그가 나를 안아주니,
그 차갑던 공기도
더 이상 내 체온을 빼앗아 가지 못했다.
 

오히려 늘 맡던 그만의 특유한 알싸한 향기에 난
이내 빠르게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편안함에 눈을 감은 채 있는데,
 

 


보고 싶었어, 많이.”
 

 

바람 빠지듯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 들어왔다.
 

 

미안해.
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었어,
정말 미안.”
 

 

그 말 말고, 다른
말이 듣고 싶어.”
 

 

수혁아,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방금 내가 했던 말이
본인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사랑해, ㅇㅇ.”
 

 

내게 또다시
자신의 사랑을 속삭여왔다.
 

 

 

 

.
.
.
 

 

 

 

서로의 손을 잡고 진짜 얼마 만에,
길을 같이 걸어가는 건지.
 

2주라는 시간이 넘도록
데이트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비록 퇴근길을 빌미삼아
이렇게라도 데이트를 하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보고 싶어서
몰래 찾아온 수혁이의 마음이 엿보여,
더욱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수혁이는 크고 따스한 자신의 손으로
내 볼을 한번 쓸어내리며,
 

 


요즘 고생 많이 하나봐.
오늘 얼굴 보니까, 많이 상했네.
사람속상하게.”
 

 

피부가 거칠어지고
퀭한 나의 눈 밑을 보며,
꽤 안타까운 듯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예전엔 그래도 피부가 좋다고
나름 자부하면서 살았는데,
 

 

하루에 네다섯 시간 밖에
못자서 그런가봐, 하하.”
 

 

지금 내 피부의 상태를 보면
그런 생각은 어림도 없는
소리임이 분명하기에,
나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괜스레 자신의
시선을 앞쪽으로 내던지며,
 

 


일이 정 힘들면,
그만 둘래?
자기가 일 안해도
내가 먹여 살릴 수 있는데.”
 

 

무심한 듯 자신의 속마음을
내뱉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자기야- 날 생각해서
말해준 건 고마운데.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 준비만 끝나면
좀 한결 나아지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 당시 내가 일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칭얼거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수혁이는 자기가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되니까,
그만둬도 된다며 사표 쓰고 싶다던
나를 부추긴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장난을 치면서
날 위로해 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로
본인의 진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뒤에
우리 꼭 결혼하자.’란 말을 덧붙이면서
나를 잠시 동안 설레게 했었는데.
 

그렇지만 그때 내가
그래도 난 아직 사회생활하면서
더 일하고 싶어.’라며
단호하게 그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옛 생각에,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으면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내 주머니에서 굵고도 묵직한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받았다.
 

 

-, 종석씨.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ㅇㅇ.
몽글 프로젝트 자료랑
보고서 내 메일로 보내줄 수 있어요?
집에 와서 마무리 작업하려고 찾아보니까,
깜박하고 USB
책상위에 놓고 왔지 뭐예요!
하하하, 내 정신머리하곤.
 

 

- 그랬어요?
뭐 보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집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괜찮겠어요?”
 

 

-아직까지 일하다가 나온 거예요?
 

 

전 집 가면
일 안하고 잘 것 같아서,
방금 전까지 일하다가
조금 전에 나왔거든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ㅇㅇ씨처럼 남아서
프로젝트 마무리 작업하고,
ㅇㅇ씨 집에 데려다 줄걸 그랬나 봐요.
 

 

에이- 뭘 또 고생스럽게 그래요.
우선 집 들어가자마자
메일 보내고 톡- 남겨놓을게요!”
 

 

-그래요. 좀 부탁 좀 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요!
 

 

종석씨의 멋쩍은 웃음을 끝으로
짧은 전화통화를 마쳤다.
 

내 옆에서 조용히 걷던
수혁이는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누구야?”
 

 

상대방이 누군지 궁금한 듯
빠르게 질문을 해왔다.
 

 

- 회사 동기.
종석씨라고 이번에 나랑 같이
프로젝트 작업하는 멤버야.
USB를 회사에 놓고 갔다고
자료 좀 보내 달래.”
 

 

전화통화의 내용을 간추려
수혁이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 사람 성격이 되게
덜렁거리는 편인가 봐.
중요한 프로젝트가 담긴
USB 같은 물건을 두고 가는걸 보면.”
 

 

그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내게 전화를 걸었던 상대를
흉보기 시작했다.
 

수혁이가 상대방이 했던
한 순간의 행동을 보고,
 

 

- ,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깜박했나보지, .”
 

 

그 사람을 잘못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며,
난 장난스럽게 살짝 받아치듯
이야기를 꺼냈다.
(뭐 물론 종석씨가
덜렁거리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인 걸
동기인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내 태도에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사람이 저번 회식 때,
ㅇㅇ 네 옆에 붙어있던
키 큰 남자 아니야?”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내게 질문해왔다.
 

 

, . 맞아.”
 

 

그때 이야기는 왜 꺼내는지.
 

 

지난번 회식이라고 하지만
사실 입사하고 나서 마련된
첫 회식 때였다.
 

그 당시에 신입이라는 이유로
선배들이 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몽땅 마신 탓에 아주 만취했었던 날인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종석씨를 포함한 다른 동기들도
그때 회식의 끝부분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 회식을 끝마친 나를
수혁이가 데리러 왔었는데,
내가 그때 길거리에서
취한 종석씨를 부축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도 만취했으면서 말이다.
(그날 회식 때 편하게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걸 본 순간 수혁이는,
남자친구인 입장에서
화가 무진장 많이 났다고 했다.
 

 


, 술 취한 남자를
ㅇㅇ 네가 부축을 하고 있어.”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동기니까 챙기려고 그랬나봐.”
 

 


? 본인도 취해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취한 상대방 챙긴다고,
둘이 살을 얼마나 비비적거리던지.
본인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알고나 있는 거야?
ㅇㅇ 네가 다른 남자랑 엮어서
그러는 거 정말로 싫단 말이야!”
 

 

그 다음날 심기가 불편한
수혁이의 눈치를 보면서,
며칠 동안 쥐죽은 듯
조용히 보냈던 적이 있었다.
 

본인 입장에서 외간남자와
살을 비비적거렸단 표현을
쓸 정도였으니,
 

그때 상황은 물론이고
종석씨를 싫어할 거란 건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종석씨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지,
 

 


그래도 그렇지.
그 사람은 왜 애인 있는 여자한테
이 시간에 전화를 하고 그러냐.”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는 수혁이의 모습을
고개를 돌려 한번 쳐다봤다.
 

최근 들어 유독
자주 느끼는 거지만,
그는 굉장히 질투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왜 그래.
진짜 그냥 일 때문에 전화한 거야.”
 

 

난 더 상황이 안 좋아지기 전에,
장난스럽게 이 분위기를
넘겨보려 애를 썼다.
 

 


그래도 은근히신경 쓰인단 말이야.
기분도 별로고.”
 

 

신경 쓰일게 뭐있어,
나한테는 자기뿐인데.
자기야- 나 믿지?”
 

 

믿지, 믿어.
그런데그 남자를
못 믿는 거지.”
 

 

수혁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채,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날 세운 검은 눈동자가
꽤나 위험하게 반짝였다.
 

 


이내 피식- 바람 빠진 웃음과 함께,
그의 한쪽 입가가
불안정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의 조소를 머금은 표정을 보자,
알 수없는 불안감이 내 몸을 덮쳐왔다.
 

 

 

 

*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프로젝트의 자축을 위해,
우리 부서는 늘 가던 술집으로 향했다.
 

 

몽글 프로젝트 때문에
다들 너무 고생 많았어!
오늘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신다!
- 모두다 건배!”
 

 

부장님의 간단한 축사를 끝으로
위로 술잔을 들었던 우리는,
 

 

건배!”
 

 

한마음 한 뜻을 보여주듯
우렁찬 목소리로 한마디를 외치고
쓰디쓴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우리 이번 회식을 통해
조금 더 친해져보자, ㅇㅇ.”
 

 

내 옆자리에 앉은 종석씨는
물이 담긴 컵을 내게 내밀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래요, 종석씨.”
 

 


- 거참.
나이도 동갑인데,
자꾸 존댓말 쓰면서
종석씨-라고 부를 거야?
편하게 이름 부르자니까.”
 

 

왠지 첫 회식 때와 같은 패턴으로,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종석씨였다.
 

 

 

 

.
.
.
 

 

 

 

부장님과 선배들이
자꾸만 권하는 술을 난,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거나하게 취기가 슬슬 올라오고 있었다.
술기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자놀이 부근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더욱 거슬리게 하는 소리가,
내 주머니 안에서
쉬지도 않고 나는 것 같았다.
 

결국 더듬거리는 손으로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31,
수많은 문자를 확인한 후,
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연락은 모두 한사람으로부터였다.
이수혁,
내 남자친구로부터의 연락이었다.
 

 

.”
 

 

그의 세 글자 이름을 보자마자,
난 답답한 마음에
길게 한숨을 뽑아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내가 연락이 잘되지 않을 때면
집요하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오늘 같은 상황도
내가 회식한다고 미리 그에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는 그의 행동에
난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을 언제부터였는지,
굳이 꼽자면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그의 알 수 없는 집착이 시작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자,
 

 


왜 그래? 머리 아파?”
 

 

종석이는 제법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나를 걱정해주었다.
난 그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나 오늘 확 취해버리게,
술 좀 따라주라.”
 

 

비어있는 술잔을
그에게 내밀어보였다.
 


그래- 부장님 말씀처럼,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보자!”
 

 

내게 술을 따라주면서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동기였다.
 

 

 

수혁이의 집착하는 모습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만큼
난 제법 빠른 속도로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같이 가줄게.
너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나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따라
일어서는 종석이었다.
 

 

한기가 서려진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가자,
머리가 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웃으며
물어오는 종석이를 말없이 난 쳐다봤다.
 

 

일은 무슨.”
 

 

답답할 땐
내 어깨에 기대도 돼.”
 

 

그는 쭈그려 앉은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같이 쭈그려 앉았고,
 

 


이렇게 힘없는 모습 보니까,
내가 다 속상하네.”
 

 

한껏 쳐져있는 나의 어깨를
여러 번 토닥거려주었다.
 

 

 

시간에 시간이 얼마큼 더해졌는지,
차갑게 식어버린 새하얀 달만이
어두컴컴한 새벽을 가리킬 뿐이었다.
 

 

회식의 끝을 알리듯,
다들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서로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술집 앞에서 우리 부서는 뿔뿔이 흩어졌다.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던
종석이의 호의를 거절하며,
난 혼자서 집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BGM:(Mot)- 재와 연기의 노래



 

 

 

목울대의 어느 부분이
타들어가는 심한 갈증에,
힘겹게 눈꺼풀을 위로 치켜세웠다.
느릿느릿 깜빡이는 눈에
새하얀 천장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파스텔 톤의 하늘빛이
감돌아야할 내 방의 천창이,
이상하리만큼 몹시 새하얗다.
 

손등으로 양쪽 눈을 비비적거리며
다시 한 번 천장의 색을 확인했다.
 

그러나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그 색은 당연히 변할 리가 없다.
 

뻣뻣한 허리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화장대며 옷장이며 책장이며,
내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벽지며 장판이며 온통 하얀 방 한가운데,
침대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위에 천장 색과 동일하게
새하얀 베개와 두툼한 하얀 이불이 전부였다.
 

 

그렇다, 여기는 내 방이 아니다!
 

 

.”
 

 

잘은 한숨이
입 밖으로 금세 터져 나왔다.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머리로 어제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분명 회식 끝나고
집으로 향했는데,
향했는데,
 

그 다음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 지금 여기가
다른 사람의 집이란 소리인가?
 

, ㅇㅇㅇ 미쳤네. 미쳤어.
술에 취해서 집도
제대로 못 찾아 온 거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겉옷과 가방을 들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꼭 도둑이라도 된 것 마냥
뒤꿈치를 든 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가 문 쪽으로 향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
 

 

문이 열리지 않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한 번 방문의 천천히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 뭐야-
왜 문이 안 열리는 거야!
 

 

너무 놀란 난,
거친 소리가 나도록 손잡이를
여러 번 반복해서 돌리고 또 돌려보았다.
결국 반대 손으로 방문을 쾅쾅- 두들기며,
 

 

저기요!!”
 

 

이곳의 집주인을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다.
 

십여 분간 큰소리로
계속 누군가를 불러봤지만
고요한 침묵만이 돌아올 뿐,
사람의 목소리나 인기척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갇혔다고
, 신고를 하자!
 

 

덜덜덜- 떨려오는 손으로
가방을 힘껏 열어 재꼈다.
가방안의 물건들을 뒤적거렸지만,
핸드폰이 없었다.
 

재킷에 핸드폰이 있나,
더듬거리며 겉옷의 주머니를 확인해봤지만.
그 어디에도 핸드폰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돌겠다, 진짜.”
 

 

나갈 수 있는 방법 이제 단 하나,
이 집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뿐.
 

 

방문에 기댄 채,
스르륵- 주저앉아버렸다.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지만,
시간을 예측할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그 흔한 벽걸이 시계나,
밖이 보이는 작은 창문 따위도.
 

 

아랫입술을 잘근잘근-씹어가며
시간이 제발 빨리 흘러가길 빌고 또 빌었다.
알 수 없는 고요한 긴장감에
손끝이며 발끝이 천천히 식어갔다.
 

 

밀실처럼 막혀있는 공간에 있으면
난 아직 좀 무서웠다.
어릴 적 화재사건 이후
숱하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다녔지만,
한번 씩 찾아오는 공포감을 이기기엔
여전히 더 시간이 필요한 듯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가에 눈물이 빠르게 차올라왔고,
어느새 흐르지도 않는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눈에 가득담긴 물기 사이로,
집을 빠르게 삼켜버린
거세고 뜨거운 화마 속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던
어린 내 모습이 아른거렸다.
 

 

, 살려주세요.”
 

 

그때처럼 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고,
여러 갈래로 눈물이 흩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한 번씩 힘들 때마다
약이라도 먹으며 버텨야하는데,
야속하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옛날 모습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내 심장을
세게 옥죄여오는 것 같았다.
 

 

화재 때처럼 유독가스로
가득 찬 방안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는지.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어,
난 천천히 내 눈을 감아버렸다.
조용한 방안은 거친 숨만 색색- 몰아쉬는
내 숨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하늘의 뜻은
거스를 수 없기 마련이거늘.”
 

 

왜 갑자기 점을 볼 때,
도사님이 했던 이야기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 나간 건지.
 

 

난 힘없이 방문 앞에서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집안에 화재가 났던 순간
출구를 찾아 헤매다 쓰러졌던
어릴 적 내 모습이,
 

출구 앞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쓰러져 버린 지금 이 순간과
이상하게 묘하게 오버랩이 되어왔다.
 

 

그때 도사님이 말했던 이야기의
숨은 의미가 이거였나-란 생각을 끝으로,
내 얕은 숨소리는 서서히 멎어가고 있었다.
 

 

또르르- 힘없이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을 끝으로
더 이상 사람의 온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독자님들 오랜만입니다!
추석은 잘들 보내셨겠죠?
 
사실 단편으로 시작한 글이
빠르게 찾아오고자 상하로 나눠진 거라고
저번 글에 마지막 부분에 이야기를 했는데,
(하하ㅠㅠ 분량 조절의 실패로 인해)
쓰다 보니 상중하로 나눠지게 됐네요.
 
 
다음 글은 최대한
빨리 가지고 오도록 노력할게요!
 
일교차가 심한 요즘 건강 유의하시면서,
그럼 다음 글에서 뵈어요!
늘 애정합니다, 독자님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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