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기 전에 06 (by.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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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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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전정국 오세훈
황민현 이태용
 

 

 

 

청춘이 지기 전에 06
- EP 06. 필연과 우연
 

 

 

 

내 친구와 친구가 사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자세히 말해 10대의 끝자락을
질리도록 함께한 친구와, 앞으로의 3년을
질리도록 함께하게 될 친구가 서로 죽고
못살게 될 거라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한
다리를 놓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별나라
이야기였다. 장난 식으로 내 친구 예쁜데
소개 시켜줘?’라고 해본 적은 있지만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처음
이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친구가 먼저
나서게 될 줄은 짐작하지도 못해서, 나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 목록을 뒤져보아야
했다. 강준이랑 비슷하게 생겼던가?
 

소개를 시켜주지 않을 건 아니지만 내
딴에는 놀랠 노자라서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소개 받을래?’라고 물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설현이의 부탁을
들어주기 전에, 나에게 벌어진 일부터
수습하고 봐야했으니까.
 

 


 

김진우
[강의실 도착했어?]
 

[. 오늘은 지각 안했어요.]
 

 

사실 수습이라기엔 해결한 게 하나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진우오빠와
연락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주말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으니까.
 

경리는 입에 닳도록 그의 성격을 하나
부터 열까지 주문 외우듯 읊었고 청하는
거절하려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마치
대기업 빈자리를 걷어차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이들은 중학생 때부터 김진우
추종해왔기에 제 친구에게 들어온 복을
그대로 두지 않을 터였다.
 

물론 나도 그가 싫은 건 아니었다.
스펙을 따지고만 봤을 때, 오히려 내
쪽이 감사해야할 정도였다. 내가 언제
이런 남자를 소개받을 수 있을까?
과분하다고 표현해도 모자라지만 우선 내
입장에서는, 연애에 대해 당분간의 계획은
없었던 터라 그 단어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나와 그에게서 느껴지는 차이에 부담
스러움을 느낀 게 컸다. 클럽 안에는
나보다 예쁜 애들, 돈 많은 애들이 차고
넘쳤는데 어째서?
 

돌고 도는 의문점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던 나는 경리의 1차원적
조언에 겨우 숨통을 틔었다. 그냥 받아
들여, 오빠는 그 속에서 너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걸. 간단하잖아?‘ 내가 그와
연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 00.”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왔네?”
 

아침 수업 휴강 떴거든요.
집에서 바로 왔어요.”
 

 

목요일 아침 수업은 교수님이 전날
문자로 휴강이라고 공지했기에 나는
보통의 목요일보다 여유롭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매주 목요일마다 같은 버스를
타기로 했던 정국이와의 약속은 일주일
만에 펑크를 내게 됐지만, 그는 현실 대화
에서 그러하듯 랜선 대화에서도 애교
가득한 이모티콘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따라 엄청 예쁘다.
데이트 가는 거야?”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데이트는 아니에요.”
 

 

괜찮지 않은 사람은 나였다. 진우
오빠를 소개 받았으나 과팅은 예정대로
나가게 되었고, 그 사실은 여태 동기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속에는 꼬리꼬리한 감정이 부대꼈다.
이제와 못 나가겠다고 하자니 청하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고, 혹시나 동기들
에게 들키게 되었을 때 뭐라 변명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얗다. 나 진짜
이도저도 못해, 머저리인가 봐...!
 

그래도 과팅을 나간다고 열심히 꾸민
내 모습에 나 자신도 참으로 웃긴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점심 먹었어?”
 

아니요. 마치고 먹을까 하는데..
! 혹시 점심 약속 있어요?”
 

?”
 

책 주셨잖아요.
보답하고 싶어서요.”
 

 

나는 빚이 꽤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빚을 갚는 건 식사를 제공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돈에 쪼들리는
이유가 알만도 해. 신세를 지지 않으면
되는 걸, 어째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아니면 내가 은혜를 꼭 갚아야
하는 병이라도 걸려 감사하다고 넘어가도
되는 일에 큰 지출을 하는 체질이라던가.
 

 


 

안 그래도 되는데. 새 책도
아니고 남이 쓰던 거잖아.”
 

저는 더 좋아요. 왜냐면....친구 분
한테 좋은 기운 받고 싶어서요!”
 

 

선미라는 이름은 생략했다. 그녀를
아는 티를 냈다가는 저번 주에 있었던
일까지 술술 토해내 버릴 것 같아서
미리 입조심을 하는 거였다.
 

 

그럼....학식 먹을래?”
 

학식이요? 더 맛있는 거 먹어도
괜찮아요. 학식 아니어도
 


 

나 군대 가 있는 동안 Z
리모델링 했다고 들었거든.
학식도 바뀌었는지 궁금해서.”
 

 

내 말을 잘라먹는 걸 보아하니 학식이
정말 먹고 싶은가 보다. 그의 뜻대로
하기로 하고 나는 배시시 웃어주었다.
이 사람과 있을 때면 무표정으로 있기가
무안해져, 영업용 미소라도 띄워줘야 마음
이 편하다. 그만큼 사람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을 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그렇게 해요.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간혹 맛있는 메뉴 나올
때도 있어요. 그게 오늘이면 좋겠다.”
 


 

과제 관해서도 밥 먹을 때 정하면
되겠네. 과제도 얼른 하고 제출하면
중간고사 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으
니까. 어때?”
 

저야 빨리 할 수 있는 건 얼른
하는 게 좋죠. 그렇지 않아도
벌써 전공 과제만 해도 3...”
 

나도....”
 

 

어느 과를 가더라도 과제에 고통 받는
현실은 똑같았다. 나의 경우 중간고사
이전에 있는 쪽지시험이 주된 스트레스
원인이 되었다. 공학수학 뒤져버려 진짜.
 

한국사 수업의 초반은 초등학생 때 배웠던
내용들이었다. 그래선지 잠은 오지 않아서,
필기도 열심히 했더란다. 선미가 말하기론
점수도 좋게 받았다더니, 책은 왜 이리 깨끗
한지. 다 아는 내용이라 이건가? A+ 받은
사람의 책으로 콩고물 좀 받아먹으려고 했건만
그냥 내가 내 힘으로 공부해야할 삘이잖아.
 

 

친구 분들한테 말 했어요? 보니까
매번 밥 같이 먹는 것 같던데.”
 

. 마치는 시간이 비슷하다보니까.
오늘 친구들은 부대찌개 먹는다더라.”
 

혹시 '부대찌개?”
 


 

, 맞아! 어떻게 알았어?”
 

거기가 요새 떠오르는 맛집이거든요.
사리 하나는 무조건 공짜인데다가,
밥도 시키면 무한이고.”
 

 

수업을 마치고 학식을 먹으러 Z관에
온 우리는 티켓 발매기 앞에서 메뉴를
신중히 골랐다. 부대찌개 하니까 얼큰한
게 먹고 싶어져, 나는 한식 쪽으로 음식을
선택했다. 그 뒤 무인발매기를 두고 쩔쩔
매는 오빠를 도와주었다. 민현이 오빠는
나를 대단한 사람인 양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왕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
음식을 가져오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거기까진 옛날 방식과 동일해 괜한 오지
랖을 부린 게 되었지만, 그는 새내기처럼
호기심을 가득 담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치즈 돈까스를 시켰었다.
 

 

여기 진짜 좋아졌다. 자주 와야겠네.”
 

오빠 회계학과라면서요? 그럼
과 건물이랑 여기랑 가까울 건데.”
 

내가 군대 있을 동안 학식을 징하게
먹은 사람이 있거든. 그래서 근처에도
안 가. 맛을 떠나서 질린대.”
 

,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어떻게 자주 와요?”
 


 

너랑!”
 

헣큽쿩럭쿨럭!!!!”
 

 

존나 남이야기 하듯 얘기했는데
대상이 나였다;; 사래가 들리고도 남을
그의 발언에 물을 원샷으로 때렸다.
 

오빠의 걱정스러운 눈빛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내가
눈물까지 찔끔 흘려가며 기침을 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과, ‘나랑 밥 안 먹는
거야?’하는 조바심에서 나오는 애절함
이었다. 나는 그의 시선에 얽히지 않기
위해 눈을 돌렸지만, 결국엔 수락했다.
 

분명 이 사람,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 받아본 적이 없을 거야.
왜냐면 내가 부모 된 심정으로 보니
안 사주고는 못 배길 눈빛이거든.
 

 

~ 00랑 밥 먹는다~”
 

박수까지 칠 일이에요?”
 


 

책 주길 정말 잘한 거 같아서.
나한테 칭찬의 박수!”
 

, 와아아..”
 

 

눈매가 정말 예쁘게 휘는 남자였다.
뚝배기에 담긴 찌개가 식어가더라도,
나는 빠르게 밥을 비워내지 않았다.
식사시간이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타고난 친화력과 전염성 강한
미소 덕분에, 나의 낯가림은 눈 녹듯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느새 그를 민현이
오빠라고 자연스레 칭하고 있었으니까.
 

 

저희 과제는 어떻게 할까요? 오빠
1학년 때도 이런 과제 있었어요?”
 

. 나는 그 때 역사 관련 소재로
한 영화를 중심으로 썼었는데 꽤
괜찮았었어. 참신하다고 하시더라구.”
 

영화요? 좋은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이번 달 영화 개봉작에 조선시대서 벌어
졌던 사건 하나를 바탕으로 제작한 게
나오더라구요. 유명하진 않은데 이번에
흥행하면 재조명 받을 거 같아서 교수님
눈에도 잘 들어올 것 같고....”
 


 

우리도 과제하기 편할 거야.
말 나온 김에 그거 보자.
영화가 언제 개봉이라고?”
 

“329일이요.”
 

그럼 다다음주 목요일이네?
시간 괜찮아?”
 

상관없어요. 그 때 봐도
괜찮.....!!!!!!”
 

 

나는 뚝배기에 코를 처박을 뻔했다.
그것도 자의로. 내 시야에 보였을
뿐인데 마치 들킨 사람처럼 행동했다.
 

 


 

뭉치는 뭐한대? 연락 안 돼?”
 

한국사 수업 끝났을 건데...
집에 바로 갔나?”
 

 

너희들이 여길 왜 왔니. 아침 수업
뿐이라서 학교 안와도 됐을 건데!?
거기다 점심 먹기에는 늦은 시간에 무려
학식을 먹으러 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오늘 학식이 특식이었던가..?
 

나는 전화가 올지 모르는 휴대폰을
급히 진동으로 돌리고 뒤집어 놓았다.
 

 


 

오빠 음식 추천해주세요!”
 

싼 맛에 먹는 거라 존맛이랄 게 없을
건데. 나는 여기 치돈 좋아해.”
 


 

국밥도 맛있어. 해장할 때.”
 

오세훈은 이제 일어났다냐?”
 


 

오늘 저녁에 약속 있다던데.
뭔지 몰라도 여자 만나러 가는 듯.”
 

 

내가 아는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이
움찔 거렸다. 바로 뒤에서 주현이의
발랄한 목소리가 등을 찔렀다.
 

 

오빠들 너무 감사해요. 학식 먹는
거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와주시고...”
 


 

겸사겸사....뭉치도 데리러올 겸.
아니 근데 걔는 대체 뭐한대??”
 

저번에 고조선 배울 차례라더니,
너무 재밌어서 휴대폰 사용하는
방법까지 고조선화 됐나봄.”
 


 

뗀석기 갈고 있나?”
 

 

내 뗀석기 맛 좀 볼래?
석기시대 맛 날 걸.
 

 


 

왜 그러고 먹어?”
 

?”
 

불편해보여서.”
 

.”
 

 

그러고 보니 우리 과제 얘기하고
있었던 걸 까먹었다. 앞에서 보고
있자니 얼마나 웃겼을까. 그를 보기
괜스레 민망해졌다.
 

뭐라 변명을 하면 좋을지 눈동자를
바쁘게 오가고 있는 그 때, 오빠가
허리를 구부리며 나와 똑같은 자세를
했다. 이 양반은 또 왜 이래.
 

 


 

나도 이렇게 하면 돼?”
 

“.....?”
 

목소리도 작게 할까?”
 

 

그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뭐라는지 잘 안 들렸다.
내가 뭣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는
알려나, 그저 해맑은 그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 오빠한테는 알려
줘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안 그럼 이런
콩벌레 같은 자세를 풀지 않을 것 같았다.
 

 

실은 저기 저 남자애들 때문에
놀래서 쪼그라들었어요.”
 


 

전남친이야?”
 


 

“.......?”
 

 

이야, 전 남친이 서너 명 무리지어
다니는 것도 처음 본다! 거의
패키지로 연애했겠는 걸?
 

나는 상상하자니 웃겨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제 친한 동기들이에요.
사실 제가 오늘 과팅을 나가게 됐는데,
아직 말을 안 했거든요. 애들한테 놀림
받을까봐 그런 것도 있고, 어차피
잠깐 있다가 나올 거라서.....”
 

 

그리고 김진우를 소개 받은 거와 맞물
려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할지
감을 못 잡은 것도 있다. 허나 내가
과팅 나간다!’라고 했을 때의 반응들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첫째로 남주혁이
구라 즐~’하고 운을 틀 것이며 세훈이와
성재가 하나씩 얹을 것이다. 그러다
보검이가 조용히 일침을 날리겠지.
 

꼬투리 잡히는 것보다 소리 없이
묻어가는 게 괜찮은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지만 생각보다 그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오늘 같은 경우
학식 먹다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
 

 


 

과팅 나가는 구나....”
 

 

오빠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활짝 웃었다.
 

 

과팅 재밌겠다.
어느 과랑 해?”
 

잘 모르겠어요. 아는 친구 오빠의
아는 고등학교 후배들이라고 하던데.
좀 많이 꼬인 거 같죠?”
 

. 어렵네.”
 

저도 과에서 가는 게 아니라 친구
대신에 가는 거라서 앉아만 있다가
나오려구요.”
 


 

정말?”
 

오빠는 과팅 해보셨어요?”
 

“1학년 때. 근데 가서 여자친구
사귀기보다는 놀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지금 같이 다니는 친구
중에 한 명도 거기서 만난 거고.”
 

선미?”
 


 

너 선미 알아?”
 

“....? 아니요?
제가 안다고 했나요?”
 

...”
 

 

이런 쓸모없는 주둥아리야!!!
필터링 좀 사리분별해서 해라!!
 

‘X됐다라고 생각한 걸 입 밖으로
안 내뱉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하나.
나는 체념했지만 잔머리 굴리는 데
특화된 재능으로 둘러대기를 썼다.
 

경리와 청하에게 들었던 정보들이
이 때 들어 먹힐 줄은 몰랐다.
 

 

고등학생 때 유명했다고 들었어요.
연예인 하려고 했다고...”
 

그래?”
 

모르셨어요?”
 


 

난 대학 친구니까. 그리고 소문
으로만 들었지 당사자는 아무 말이
없었거든. 하긴 과팅에서 제일 인기가
많긴 하더라.”
 

진짜 과팅에서 친구 된 사이였어요?”
 

. 일회성 인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도 이어지더라고.”
 

 

같은 회계학과라고 단정 지었는데
과팅 아니었음 말 붙여볼 일도 없었을
사이였다니. 신기했다. 그래도 선미의
성격과 오빠의 붙임성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친해졌을 것 같기도 했다.
 

둘의 사례를 오늘 과팅에 대입하자면
나도 일중이 오빠의 고등학교 후배
중에서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는 건데,
솔직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청하에게 사전에 듣기로 동갑이랬거든.
 

민현이 오빠는 다 먹은 식판을
반납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가서 재밌게만 놀다와.
정말 재밌게만.”
 

왜요? 남자친구 사귀면 안 돼요?”
 

 

나는 장난처럼 물었다.
그는 내 가방을 챙겨주면서
살짝 툴툴대었다.
 

 

남자친구 생기면 나랑 밥 같이
못 먹을 거잖아.”
 

에이, 그러면 저 동기들이랑도
절교해야 해요. 그리고 오빠랑은
일주일에 한 번 밥 먹는 거잖아요.”
 

왜 한 번이라고 생각해?”
 

그럼요?”
 


 

목요일에 학식 먹는다고 했지
다른 날은 밖에 나가서 먹을 건데.”
 

에엑?!?”
 

밥 잘 먹었어 00!”
 

 

오빠는 다음 주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계단을
호다닥 내려갔다. 잡으려다 놓쳐버려
허공에 떠 있는 손을 어쩌지 못하고,
한 방 맞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는 흡사
얼뜨기 같았다.
 

밥은 같이 먹는 건데 어째서 합의가
하나도 안 된 느낌은 뭐지...?
 

어이가 없어 새어나가는 정신이 식당
내에 아직 동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저런 이미지였던가...?”
 

 

중얼 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빠한테는 나중에 따져보기로 하고,
애들이 밥 먹고 나오기 전에 서둘러
사물함에 책을 놔두고 와야겠다는 계획을
꾸리던 참이었다.
 

 

오빠 카페 갈래요?”
 


 

그럴까?”
 


 

“%$&@#!??!”
 

 

얼른 다녀와야지!’라고 생각한 지
고작 10초 지났다 자식들아.
 

무슨 밥을 목구멍에 다이렉트로 꽂아놓나,
나보다 늦게 온 애들이 앞장 서 걸어가고
있었다. 중간에 헤어졌는지 강준이와 주혁
, 성재는 보이지 않고 주현이와 보검이만
사이좋게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데, 실로
오래간만의 여자의 촉이 말했다.
 

 


 

저 둘 뭔가 있는 거 같지 않냐고.
 

선배와 후배가 밥을 먹는 게 비정상
적인 일은 아니다. 나도 진영이 오빠와
밥 먹은 적도 있고 방금도 그랬으니까.
 

허나 단체로 와서 단둘이 딴 길로 새는
건 자연히 이상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주현이를 챙겨야할 선배는
보검이가 아니라 주혁이라고.
 

나는 둘을 미행하며 첩보 영화 찍듯
나무에 숨었다가 바위에 쪼그려
숨기를 반복하며 경사로를 내려갔다.
 

나 쫌 제임스 본드 같은데?
(과팅 까먹음)
 

 

수상해...”
 


 

뭐해요?”
 

!!!!!!!!!!!!”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보다 더한
제임스 본드가 어느새 나처럼 쪼그려
앉아있었다. 옆에는 나도 아는 제
친구도 있었다. 바라보는 눈빛들이
하나같이 동글동글 해서, 노란 병아리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누나가 더 수상한 거 알아요?”
 

배 밖으로 심장 튀어
나오는 줄 알았잖아....!!”
 

 

흙먼지가 묻은 슬랙스를 탈탈 털었다.
그 때 태용이가 불쑥 다리를 펴고
일어났다. 전방 5미터에 보검이와
주현이가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뭐 보고 있었어요?”
 

야 잠깐만!!!!”
 

 

나는 태용이를 끌어내렸다. 입까지
막아서는, 납치범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눈이 더 똥그라졌다.
 

 

“!??!?!”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요? 인사해야죠. 저 둘이
나쁜 짓하는 거 아니잖아요.”
 

 

구구절절 맞는 말.
정국이에게 논리학 수업을 추천해주고
팠다. 혹은 총장 배 토론배틀이라던지.
나는 지지 않으려 발악해보았다.
 

 

주현이 마니또는 주혁이잖아. 근데
왜 둘이 저렇게 오붓하게 있어?”
 


 

안 될 건 없잖아요. 그렇게 치면
누나랑 저도 이상한 걸요?”
 


 

“?! 오붓하게 있었던 적 있어?”
 

아니. 그리고 마니또 행사도 흐지부지
된 거 모르고 있었어요? 보검이 형이
저를 잘 챙겨주긴 하지만 누나랑 태용이
처럼 살갑게 지내지는 않아요. 누나가
신기한 거라니까요.”
 

? .......러네?”
 

 

또 맞는 말. 그의 말처럼 곰곰이 되짚어
보자면, 주혁이도 그렇게 주현이랑 짝이
되었을 때 좋아했지만 실상은 보다시피
보검이가 더 친해 보이고 나머지 애들도
짝이 있어도 따로 만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진짜 나만 마니또에 충실했네..?
 

 


 

오늘 약속 있어요? 평소랑 다른데.”
 

. 화장이 좀 진한가?”
 

맨날 바빠. 저 졸업하면
밥 사줄 건가 봐요.”
 

아니야~ 학기 초라서 그래.”
 

저희한테 엔딩은
언제 보여줄 거예요?”
 

 

삐약 삐약. 나는 둘의 지저귐에 대답
하느라 보검이를 시야에서 놓쳐버렸다.
질문의 종류는 다양하지도 않아, 항상
내가 뭘하는 지 그렇게들 궁금해 한다.
나중엔 보고서까지 써서 제출하라고
할 판이겠네.
 

겨우 질문의 늪에서 빠져나온 나는
동생들과 정문을 지나쳤다. 사물함
에는 가지도 못했어. 차라리 청하에게
바로 합류하는 게 낫을 것 같았다.
 

 

너희는 집에 가?”
 

저는 헬스장이요.”
 

이야, 운동도 해? 멋있다.”
 


 

누나도 같이 다닐래요?
누나 동네 근처인데.”
 

나는 운동과는 담을 쌓아온
사람이라...숨쉬기 운동으로도
벅차단다.”
 

산책도 싫어요?”
 

요깃거리 있으면 좋지.”
 


 

운동이랑 담 쌓은 거 확실하네.”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줄까?”
 

누나 약속 가야하는 거 아니에요?”
 

시간 얼마나 걸린다고, 요 앞
까지만“000!!!!!!!!!!!!!!!!!!”
 

“??”
 

 

청하의 목청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나는 000가 아닌 척
했다. 5번 출구에서 보자고 해놓고
정문 앞에서 튀어나오기 있냐?!
 

그녀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뒤돌
아선 나의 등짝을 신나게 팡팡 쳤다.
 

 


 

, 복 받은 년!”
 

, 왜 이래!?”
 

 

설마. 나는 서둘러 태용이와 정국이
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조잘거림이 나올지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청하를 잡아당기면서 횡단보도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나의 일사불란에,
동생들의 찝찝함이 따라온다.
 

 


 

전생에 외계인 머리끄덩이라도
잡아서 지구를 구했나, 어떻게
진우오빠랑 썸을 탈 수가 있어!?”
 

썸은 무슨, 메신저 친구나 다름
없거든? 아직 신상정보도 몰라!”
 

 

들리지는 않겠지? 나는 확인 차
고개를 돌렸다. 들으면 안 되는 대상에
포함이 되는 건 아니었으나 방금 전의
질문세례에 마음이 바뀌었다. 또 쟤네가
동기들한테 어떻게 흘릴 줄 알고, 조심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말이다.
 



 

“..........?
 


 

“............”
 

 

........들렸나....?
나 방금 입모양 본 것 같은데.
인생이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어.
 


 

지랄 같다 내 인생...!
 

해탈한 내 기분을 알 리 없는
청하가 팔짱을 껴오며 말했다.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겠구만...
, 빨리 가자. 애들 다 왔대.”
 

“....일중이 오빠도 있냐?”
 


 

없어. 나는 가서 분위기만 풀어주고
빠질 거고. 그 뒤는 알아서 해.”
 

 

알아서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 모르냐. 심지어 과팅은 처음이라서
어색함에 쪄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무용학과 애들이라 졸라 비교되겠다.
없는 사람처럼 있어야지.”
 

나참, 니가 어디가 모자라서.”
 

여자애들끼리는 서로 친해?”
 

아니. 걔네도 데면데면 했던 사이라서
네가 소외되거나 그러진 않을 거야.
다 동갑이라서 친해지기 쉬울 듯?
또 남자 쪽은 일중이 오빠 고등학교
후배랬잖아. 그럼 잔성남고라는 소린데.
아는 사람 있을 수도?”
 

아는 사람을 거기서 만나는 게
더 극혐이다. 잠깐, 잔성남고??”
 

 

똑같은 이름의 남고가 2곳이 아니라면
내가 아는 남고는 거기뿐일 것이다.
강준이랑 성재, 세훈이의 모교이기도
하지만 썩 좋은 추억들이 있는 데는
아니라서,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청하는 아차 했던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술 마시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한적한 룸포차에 들어갔다.
 

 


 

남고에 애들이 한 두 명이냐. 걱정
말고 화장 수정할 거면 지금 해.
바로 문 열 거니까.”
 

잠만!”
 

 

갑자기 주어진 제한시간에 버벅
거리다 거울 한 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청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인사말도 아직 못 정했는데...!
 

 

안녕 얘들아~~~~”
 

“.........”
 

“.........”
 


 

“..........?”
 

ㅅㅂ?”
 

 

청하가 문을 다시 닫았다. 나는 내뱉은
욕을 도로 주워 담지 않았다. 오로지
눈앞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오세훈의
잔상에,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었다.
 

 


 

미침??? 왜 들어가자마자
욕짓거리야???”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아는 놈 만나버렸잖아!!!”
 

누구? ......! 설마,
맨 왼쪽에 앉아있는 애?”
 

가운데 병딱아
 

잘못 찍었네.”
 

 

청하가 잘못 찍은 거라면 성재는 찍신의
재림이라도 받은 거였다. 진짜 여자 만나
러 간 거였어...! 그에게 오늘은 내기 걸어
도 승률은 보장한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자취 몇 개월 했다고 오잘알 다 됐네;;;
 

 

나 그냥 집 가도 되냐?”
 

에이, 아는 사람 만나면 덜 어색
하고 좋지 뭐...제발, 날 봐서라도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라!”
 


 

다시 봤더니 들어갈 생각이 쏙
사라졌습니다.”
 

너 뭐하냐 여기서? 안 들어와?”
 

오세훈!!!”
 


 

귀청이야, 나 어디 안 가.”
 

 

어디 좀 갔으면 좋겠는 걸?
 

청하에게 짧게 손 인사를 한 세훈이
벽에 어깨를 기대었다. 청하는 둘이
얘기하라며 룸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단둘이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무용학과는 어떤 학과인지 궁금
해서 와봤다. 일종의 전공 체험?”
 

얼씨구, 신박한 개소리도
정도껏 해라;;;”
 


 

너야말로 여기 온 거 애들 알고
있냐? 단톡에는 아무 말도 없더만.”
 

몰라. 그래서 완전범죄처럼 될 줄
알았는데 니가 떡하니 있을 줄은...”
 

비밀로 해줘?”
 

“! 진짜로???”
 


 

어려운 일 아니잖아.”
 

 

세훈이는 같이 다니는 동기들 중에선
가장 알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똥 안부를 묻는 걸 떠나서 그는
강준이와 비슷한 성격처럼 보여도, 간혹
병신짓을 하곤 했으니까. 또한 세훈이는
은밀하면서도 가장 활동적인 인물임이 틀림
없었다. 오늘처럼 과팅에 소리 소문 없이
나온 것만 해도, 우리 모르게 제 할 일은
다 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가끔
보면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아직 성격
파악을 완전히 끝내지 못해서라 생각한다.
 

 

벌써 눈도장 찍은 애 있냐?”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닌
. 내가 워낙에 까다로운 사람이라.”
 

원래 또라이는 또라이랑 만나야
. 그래야 세상이 평화롭거든.”
 


 

자기 어필?”
 

욕해도 됨?”
 

 

이 자리에서 안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망했다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아는 사람이 그나마 한 명
이라도 존재해서 어색하지는 않겠다는
안도감이 스물 스물 기어 올라왔다.
비밀로 부쳐지기를 약속해서 그런 걸까,
아님 다른 애가 아닌 세훈이라서인가.
 

어찌 됐던 간에 문을 여는 순간의
긴장은 처음보다 덜했다.
 

 


 

왔네? 그럼 나는 가봐야겠다.
, 아깐 깜박했는데 너 오세훈
맞지? 미율이 소개받았던 친구!”
 

나 보고 싶대?”
 

...걔 남친 생겼어ㅎㅎㅎ
 


 

괜한 소릴 했네.”
 

 

청하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분위
기는 조금 풀어져 있었고 그녀는 역할을
다했으니 멋지게 퇴장할 차례였다.
 

 

“00. 너 소개는 짤막하게 했으니까
자세한 건 너가 하고, 재밌게들 놀아~”
 

술 약속이랬지? 술 즉당히 해라.”
 


 

어련히 하시겠어.
세훈아, 파이팅!”
 

ㅂㅂ
 

 

청하가 떠나고, 나는 룸 안에서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5:5로 진행되는 건 알겠는데 초반부터
섞어서 앉아있네. 여자들은 내가 청하
대타로 온 것을 알고 있지만 큰 관심을
주기보단 곁눈질로 나를 훑어댔다. 무엇
보다 나에게 말 한 마디를 거느니 양
옆에 앉아있는 남자들을 알아가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하는 듯 보였고, 나는 모임의
목적을 알고 있으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의 경우여도 그랬을 걸?
 

 

남자애들은 다 니 친구야?”
 


 

아닌 애도 있어. 일중이 형이
워낙에 후배들이 많아서.”
 

니 이름에서 일중이 오빠 이름
나오는 게 신기하다. 아무리 세상 좁다
한들 한 다리만 건너도 아는 사람인 건
심했다고 보는데.”
 

, 나는 얼마나 소름이었는지 모름?
분명 'I'대학 무용학과라고 했는데 거기
서 뭉치가 튀어나오는 게 말이 되냐고.
니 친구 보니까 그나마 눈치 챘지.”
 

여기서 벌어진 일은 여기서 묻어두기로
약속한 거 알지? 청하 말대로 아는 사람
있으니 말 붙일 상대는 있어서 좋네...”
 


 

맥주 줄까, 소주 줄까?
닌 아무래도 소주겠지?”
 

알아서 척척 해주는 것도 그렇고.”
 

 

세훈이는 뿌듯하다는 듯 입술을 앙다물
었다. 이럴 때 보면 내가 친구들 중
세훈이와 가장 늦게 친해진 이유를 모르
겠어. 하기야 초면일 땐, 그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감히 말을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일면식에 그치곤 했었다. 성재와 강준이의
연결고리가 아니었음 아직도 그런 사이
였을 거란 생각에, 참 우리도 신기한
인연이라고 피식 웃어버렸다.
 

 

짠할까?”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간단
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잔을 반쯤 채우고
세훈이와 건배를 하려고 하던 중,
오른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함께 잔을 부딪
쳤다. 의아함에 절로 시선이 갈 수 밖에.
 

건배를 해놓고 마시지는 않는 남자는
금방의 대범함은 어디 가고 다소곳한
자세로 나를 마주했다.
 

 


 

안녕, 나는 하성운이야.”
 

 

, 반가워. 내가 자기소개에 반응을
하자 그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여전히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듯 했다. 나와 세훈이는 어리둥절
함에, 서로에게 답을 아는지 텔레파시를
보냈다. 결과는 하성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성운이야. 성운이.”
 

그래서..???”
 

너 치양여고 나온 거 아니야?”
 

, 어떻게 알았어?”
 

그러게. 너 어떻게 알아?”
 


 

그야..........”
 

 

그가 세훈이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나
세훈이는 나와 같은 입장이었다.
성운은 지원군이 없자 얼버무렸다.
 

 

친구 통해서....?”
 

무슨 친구? 나 거기 학교에 아는
사람 몇 없는데. 오세훈도 대학 와서
친구 된 거고.”
 


 

둘이 동기야?”
 

. 갱준이랑 육재도.”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무슨 소리하는 건지 친구인
니가 해석 좀 해줄래 세훈아.”
 


 

그냥 친구인 걸 포기할게.”
 

 

세훈이도 아는 게 없어 보이고, 성운은
가르쳐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나는 학창
시절 장부를 뒤져 하성운을 꼭 찾아내고
싶었지만 머릿속의 잔상남고에는 딱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었다. 아는 척을 했다가 손해 보는 건
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술 게임 하자!”
 

 

별 소득 없이 진행자에 의해 술 게임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나는 술만 잘 마셨지
술을 가지고 하는 게임에서는 젬병에 가까
웠다. 왜냐면 대학 들어오고 나서 게임을
배울 기회가 없었거든.
 

남자애들끼리 무슨 게임이냐면서 진저리를
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남자취급을
받게 된 나는 그들 사이에서 주량만 쌓게
되었다. 보고 배운 게 없으니 자연히
게임이 주가 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될 수 있으면 게임은 피하고 봤다.
 

내가 술 게임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함께 마시는 거라면 같은 출발선이니
오래도록 달릴 수 있겠으나, 룰이 섞이게
되면 한 명만 내리 마시게 되거나 아예
잔에 입도 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걸
염려해서였다.
 

나는 그 대상이 되지 않기를 매번
빌고 빌었지만 뜻대로 되는 일은...
 

 

걸렸다! 이번 거 소주 많이 들어
갔는데 괜찮겠어???”
 

“.........”
 

 

없다.
네버.
 

 

뭉치. 괜찮?”
 

아직은. 진짜 게임
징하게도 못한다 나.”
 

저번에 육재가 술 게임 특강
해줬다며? 근데도 이러면 어떡해?”
 

한 번 들어서 활용할 줄 알았으면
진즉에 다 발라버렸어. 내가 천재냐?”
 


 

큰일이다 큰일....오늘 술은 다
니가 마시게 생겼네.“
 

 

‘00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노래는 지겹도록 들려왔다. 내가 아는
게 있어야 좋아 하던가 할 거 아니야.
그나마 내가 걸리지 않는 걸로 선택
했더니 또 그걸 하냐며 벌주를 마셨다.
 

세훈이는 나를 걱정했지만 실상은 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마신 사람이 그였다.
오늘따라 운이 좋지 않은가봐, 술 게임
이라면 성재 못지않게 잘하는 세훈이의
잔이 비워져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친구라더니, 닮았다 너희.”
 

그런 발언은 삼가줘라.
놀래서 역류할 뻔 했으니까.”
 

지럴헌다?”
 


 

게임 좀 그만 져 니는. 술 게임도
못하는데 과팅에는 왜 온 거야?”
 

궁금해서 와봤다 왜!”
 

 

웬만해선 잘 빨개지지 않는 볼이
화끈 거렸다. 술을 엥간치 마셨어야
했는데, 나는 거울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다 볼일도
볼 겸 칸만이 안에 들어가 앉아있던
중 여자애들의 수다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가 않은 걸 보니 같은 방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는데, 우르르 온
것에 으잉?’했다. 서로 안 친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 술 게임 그냥 하지 말래?
존나 재미없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같지 않냐?
관심 받으려고.”
 

그렇게 무식한 관종은 아닌 것
같던데?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
나 오세훈 걔 점찍어 놨단 말이야.”
 

무섭게 생기지 않았음? 잘생기긴
제일 잘생겼는데 그닥 우리한텐
관심 없어 보이더라.”
 

그 여자가 독차지해서 그런 거.”
 

친구라매? 낄끼빠빠 모르나봐. 지도
남자 찾으러 온 거면서 왜 지 할 거
안하고 남의 연애사업을 방해해?”
 

여자애한테도 감사해해야겠다.
덕분에 우리끼리 핵 친해졌넼ㅋㅋ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허나 나는 그 사람이 나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임 몇 번 못했더니 관종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리고, 친구랑 얘기
했더니 친구의 연애사업을 방해하는
눈치 없는 년으로 전락한 나.
 

심장이 쿵쾅 거렸다. 들어서는 안
될 걸 들어버려 오작동을 일으켰다.
나가야하는데, 나가서 니네가 뭔데
함부로 판단하냐고 욕이라도 퍼부어야
하는데......!
 

 

“.........”
 

 

그렇게 되면 청하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과팅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본질적으로 싸워봤자 남는 게 없었다.
 

허나 참고 넘어가기에는 꼭지가 돌
것만 같아. 어떻게 엿을 먹이지?
 

나는 궁리를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여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술 게임을 재개하고 있었다.
 

 

똥 쌌냐?”
 

그 소리 왜 안하나 했지.”
 

너 대학교 가서도 그런 소리
하고 다녀?”
 


 

하면 안 돼?”
 

매너는 변기에 물 내렸어?”
 

내 매너는 하도 빅 사이즈라
변기 막혀, 쨉도 안 됨.”
 


 

“..........”
 

 

누가 권모술수 꾸미는데 자꾸 똥
얘기 하냐. 집중이 안 된다. 오세훈의
고질적인 질문들을 저것들이 받아
봐야할 텐데....뭐 좋은 수 없나?
 

 

여자들은 나를 관종으로 안 이상
술 게임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결국,
 

 

왕게임 하자. 지목하는 걸로.
수위 좀 높여도 돼?”
 

 

왕게임이었다.
목적이 너무나 뻔히 보여서
왕게임이란 소리에 기가 찬
웃음을 촤! 뿜어버렸다.
 

 

리본 블라우스 입은 사람이
시계 찬 사람 다리 위에 앉기!”
 

나한테서 3번째 떨어져있는 사람이
링 귀걸이 한 사람 볼에 뽀뽀!”
 

 

리본 블라우스며, 링 귀걸이며.
전부 다 나를 지목하는 발언이었다.
 

나 제대로 포커싱 당하고 있는 거
맞지? 아닐 수가 없는데?
 

주문에 불복하면 벌주 2배가 원칙
이지만 나는 독기가 올라 그까짓 꺼
대응해주겠다고 원샷을 때렸다.
 

니들은 내가 다른 남자애랑 붙어먹길
원하는 거잖아. 근데 어쩌나, 난 절대
이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데.
 

 


 

“..............?”
 

 

수위가 갈수록 높아졌다. 자리가 몇 번
바뀌고 민망한 장면들도 있었다. 그 속
에서 나는 유일하게 모든 주문을 거부한
불굴의 관종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단해. 여기서
주량의 신기록 달성을 세우나 했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체력에 취기가
몸을 감싸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시점에선 다른 사람
들도 취한 건 매한가지라서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여기서 쇼킹한 거 함 던져줘야지!”
 

 

목까지 빨간 남자애가 자기 차례에
신이 났다. 술의 위험성은 이렇게
증명된다. 막 던져도 죄책감이 없고,
오히려 용맹스럽다 느껴지는 것.
 

 

오세훈과 친구 00의 키스 타임~!”
 

미쳤어?!”
 

, 게임인데.”
 

“............”
 

 

성운이가 말렸지만 철회할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나는 듣자마자 술을
따랐다. 상대방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아도, 그 역시 나처럼 술잔을 채우고
있을 게 뻔할 테니까.
 

 

.”
 

?”
 


 

그만 마셔.”
 

너랑 키스해야하는데 그럼?”
 

 

게임은 게임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는 문구를 알고 있어도 엄연히
키스는 키스다. 세훈이와의 키스가
여자애들에게 최고의 빅엿을 선사하게
되더라도, 그 정도로 애쓰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얘를 어떻게 보라고?
 

 

너 주량 넘었잖아. 길거리에서
피자 만들 거야?”
 

키스해! 키스해!”
 


 

마시지 말고 가만히 있어.”
 

“....???
, 잠깐!!!!!”
 

!!!”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익명 게시판에 친구와 키스한 썰.’
을 올려야하나, 수만 가지 감정들이
용솟음쳐 어지러웠다.
 

 

에이~~~~~ 그게 뭐야????”
 

“......????”
 

 

한 쪽 눈을 지그시 뜨자 화면 가득
보이는 건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세훈이는 나를 껴안고 있었고, 내 목을
두른 팔로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사람들의 야유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걸로 퉁 쳐. 내가 얘
것까지 마셨으니까.”
 

 

그는 남들의 비난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일어났다. 화장실 가?’
성운이의 물음에 입을 다문 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나를 툭툭 쳤다.
 

 

나와. 집 가게.”
 

?”
 


 

데려다줌.”
 

 

세훈이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신
탓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때,
여자들 중 한 명이 그를 붙잡았다.
 

 

세훈아 너도 가?”
 

“..............
 


 

술 게임은 몰라도 화장실 다녀
오고부터 너무 뻔하게 내 친구만
잡는 거 보니까 답 나오던데?”
 

...?”
 

 

뭐라고? 진짜?’ 남자들은 되물으며
시끄러워지고 반대로 작당을 했던
애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조용히 나와 그를 보내주었다. 아니
라고 변명해봤자 통하지 않을 오세훈인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던 듯 했다.
 

나는 우선 청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아직 버스는 있네. 몇 번이라고?”
 

안 데려다줘도 돼. 나 정신은
멀쩡하니까. 집 가면 뻗겠지만...”
 

 

그가 코웃음 쳤다.
 

 

멀쩡하기는. 보는 내가 취할
뻔했다. 우리 과 술통 타이틀을
다시 생각해봐야할 정도였거든.”
 

태용이는 못 이기지 내가.
아무튼 고마워 세훈아.”
 

 

오늘로서 처음 안 사실은, 세훈이는
눈치가 빠르다는 거였다. 그리고 나
한테 전후사정을 듣지 않아도 우선은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란 것에, 살짝
감동했다.
 

 

화장실에서 쌈박질 했냐?
기싸움 장~난 아니던데.
참고로 싸움은 선빵임.”
 

갱준이가 때리지는 말래.
깽값 엄청 나온다고.”
 

물어줄게.”
 

 

돈 많아? 물어준다고 했지 그게
부채가 아니라곤 안 했다. 버스가
오기 전까지 세훈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이토록 그와 단독
으로 많은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나 간다!”
 


 

잠 오면 전화해라.”
 

 

그가 데려다준다는 걸 한사코 거절한
나는 버스가 오자 1등으로 올라탔다.
 

고작 밤 10시였는데도 나에게는 너무
나도 긴긴 하루였다. 파도치는 피로감에
버스에 착석하자마자 창에 머리를 맡기고,
멀어져가는 세훈이를 물끄러미 쫒았다.
안하던 짓을 하니까 딴 사람 같아 보인
다고, 그게 바로 오늘의 오세훈이었다.
 

 


 

“.......걍 데려다줄 걸 그랬나.
버스에서 토할 삘인데.”
 

 

과팅은 두 번 다시는 못 나가겠지만,
당장 나간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안 좋았던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 성운이한테 따로
안 물어봤다.”
 

 

다만 거슬리는 게 있다면......
 

 

너 치양여고 나온 거 아니야?’
 

 


 

성운이가 말하는 그 친구,
나와 관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
.
 

 

 

 

 

 

 

오센~”
 

“?”
 


 

“00는 집에 잘 갔어?”
 

귀소본능은 누구보다 특출난 애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보다 난 집에
갈 예정인데 넌 밖에서 뭐하냐.”
 

전화 좀 받느라. 아니 근데 너,
진심 고등학생 때 00 몰랐어?”
 


 

그쪽 여고 애들은 1도 몰라.
난 니가 아는 게 더 소름이야.
어떻게 아는 건데?”
 

소름이랄 것도 없이
당연하잖아. 걔는....”
 

걔는 뭐?”
 

“00...우도환 여자친구였잖아. 난 이름
이랑 얼굴 보자마자 바로 기억나던데.”
 

....?! 우도환 그 새끼!?”
 


 

고등학생 때 한 번도 못 봤었나?
그럼 강준이랑 성재도 모르고 지내는
거야?”
 

“..........”
 

, 진짜?.....하여튼 큰일 났네.
도환이도 대학 거기 다닌다던데.
이러다 마주치는 거 아니야?”
 


 

세상이 그렇게 좁겠냐. 그리고 마주쳐도
양심이 있으면 아는 체하면 안 되지
그 새낀. 그 둘이 어떻게 헤어졌는데.”
 

너 도환이랑 연락해? 난 가끔
안부만 주고받는데 걔 요새 00
생각난다고....”
 

미쳤네.”
 

“......그치?”
 


 

“.......”
 

 

 

.
.
.
 

 ※만든이 : 콩이님

 

 

<>
 
 
오늘은 05화에서 등장하지 못했던
인물들을 위주로 전개해보았습니다!
다음 07화 예고를 해드리자면,
진우의 재등장!
 
그리고 04화에서 민현이의 카톡에
한국사를 작년에 들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설정 상 오류입니다!ㅠㅠ
민현이는 작년에 군인이었고, 한국사
들을 당시에는 20살이었습니다.
여러분과는 2살 차이에요!
 
즐추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해요~
 


────────────────
<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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