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밤 16 (by. 빙그레)



오늘은 밑 덧을 꼭 읽어주세요 :)


────────────────
<태양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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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죽겠다.

일단 무대포로 밀고 들어오긴 했는데
어색해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 안 말라요?”


ㅇㅇ이도 그걸 느낀 건지,
한참을 손만 꼼지락대다가 내게
건넨 말이 저거다.


상황이 상황인 것도 알겠는데
그 와중에 저 모습이 귀여울 건 또 뭐야.
결국 일순간 긴장이 풀려 픽, 하고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 왜 웃어요..”





그냥.”


예뻐서. 네가.


마실 거라도 가져다 줄게요!!
, 아저씨 뭐 좋아해요?
물도 있고..오렌지 주스도 있고..”

커피.”

안 돼요. 밤인데
이따 잠 못 자려고.
!! 집에 차 있는데 차 줄게요


열심히 부끄러움을 타는 와중에도
밤이라 커피는 안 된다며
꽤나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네가
사랑스러워 그만 와락, 껴안았다.


어어, 아저씨 또 이런다.
깜짝 놀랐잖아요

대체 이거 안 보고 어떻게 살았냐

?”

죽는 줄 알았어

아저씨, 잠깐만 나 숨..”





삼십 초만.”


불편해도, 딱 삼십 초만.
나도 숨 좀 쉬게.
ㅇㅇ이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불편하다며 바둥거리는 ㅇㅇ이에
결국 아쉬운 듯 품에서 놓아줬더니
ㅇㅇ이의 손이 내 뺨을 감싼다.


야윈 것 봐. 밥 잘 안 챙겨 먹었어요?”

“..아냐. 먹었어.”

거짓말





, 거짓말


술을 밥처럼 먹었으니까
밥 먹었다고 치자.

..라고 입 밖으로 내면 진짜 죽겠지

차를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사라진
ㅇㅇ이가 금새 보고 싶어
얌전히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는
나도 따라서 부엌으로 향했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

뭔데요? 그냥 얘기하지,
앉아 있으면 내가 가지고 갈..”

.”


나한테 필요한 건 넌데
네가 여기 있으니까.
ㅇㅇ이를 뒤에서 안고는
ㅇㅇ이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였다.


아저씨이, 나 불편해요

참아, 그래도

아니 물 끓이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ㅇㅇ이의 어깨에 턱을 얹고는
힘껏 고개를 젓자 마구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 끓는다





내가 할게.”


뜨거우니까. 위험하잖아.
찻잔에 물을 붓고는 내가 들고
거실로 향했다.


괜찮겠어요?”

뭐가? 아 뜨거

우리 아빠 말이에요. 영 만만찮은 상대라..”





걱정마. 나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니까


, 혀 데인 거 같아.


농담 아닌데. 우리 아빠 성격에
한 번 아닌 건 끝까지 아닌 거거든요




그래서, 포기하겠다고?”


나보고 너 놓으라고?

ㅇㅇ이의 손을 더 꽉 잡으며 물었다.
기껏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꺼낸
말인데, 정작 ㅇㅇ이는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소리래.
각오 단단히 하라고 한 말인데요


포기는 무슨 포기, 하기만 해 봐요.
씨익 웃는 ㅇㅇ이의 미소가
어째 무서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마시다 보니 차는 어느 새
다 마신 뒤였지만, 모르는 척
찻잔을 들어 마시는 척 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건데.
이게 어떻게 주어진 기횐데.

고작 몇 시간 보고 끝?
절대 안 되지.


아저씨 내일도 출근해요?”

???? , 해야지

토요일인데?”

내일 토요일이야??”

이 아저씨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알 리가 있나.
한 동안 너 때문에
정상이 아니었는데.


, 근데 내일까지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출근해야 될 것 같아


오늘 너 볼 생각에 일은
손도 못 댔거든.

ㅇㅇ이의 시선이 벽에 걸려있는
시계로 향했다.


그럼 이제 슬슬 가야겠네요
내일 일찍 일어나서 회사 가려면





??????”


.. 지창욱 이 눈치 없는 새끼.

뒤져라 그냥.


아니, 그게..”

?”

, 내일.. 오후!! 오후 출근이라서.
, 그래서 상관없어

진짜요?”


ㅇㅇ이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고 있으니 나도 따라서
웃음짓게 된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더니 환하게 웃는데,
그게 순간 너무 예뻐서 입술에
, 하고 입을 맞췄다.


..”


당황한 듯 깜박이는 눈가에
입을 맞추고, 잔망스러운 콧등에도
입술도장을 찍었다.

간지러워요, 하며 웃는 네 입꼬리에도
한번 더 쪽, 계속 짧게 부딪히던 입술이
어느새 진득해져 ㅇㅇ이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잠ㄲ..아저씨..”


ㅇㅇ이와 나 사이에 조금의 틈도
허용하고 싶지 않아 다시
급하게 입술을 물었다.

입 안 깊숙이 파고들어도 부족한 느낌이다.
으응, 하며 벅차하는 소리에
더 갈증이 났다. 이성의 끈이
끊어질 듯 말 듯, 나를 괴롭힌다.

툭툭, 다급하게 팔 언저리를
약하게 치는 ㅇㅇ이의 모습에
그제서야 입술을 떼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저씨?”


어느 새 소파에 누운 자세로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나를
부르는 모습에 씨발, 작게 욕을
읊조리고는 눈을 꾹 감았다.


열아홉이다, 열아홉.
정신차려라 미친 새끼야.
아직은 아니야.

눈을 뜨고 마지막으로
, 하고 짧게 입을 맞추고는
ㅇㅇ이를 일으켜 앉혔다.





미안.”

? 뭐가요?”


방금, 진짜 위험했거든. 큰일날 뻔 했어.
고개를 젓고는 ㅇㅇ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자. 참자.


씻었어?”

?!!!!!”


깜짝이야.

내 말에 안 그래도 붉어진 볼을
더 붉힌 ㅇㅇ이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 귀여워.





시간 늦었잖아.
안 자려고?”

.., 그 씻는 거
그럼요. 씻었죠


미치겠다, 귀여워서.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꽤 애를 먹었다.

조금만 더 놀려볼까.


자자 그럼

네에?!!!!!!!!!!”


목청 봐.
한껏 당황한 ㅇㅇ이의 표정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런 너를 두고 내가 뭘 해, .


아이씨이, 진짜아…”

아이씨이?”


놀림 당한 거라는 걸 눈치챈 ㅇㅇ이가
나를 노려본다. 그런 ㅇㅇ이의 눈가에
입술을 한 번 더 부딪히고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재워줄게.”

?”

너 자는 거 보고 간다고.
형님 어차피 늦으실 거야. 출장 가셔서


출자앙? 아니 그 양반은
무슨 출장을 말도 없이궁시렁대는
ㅇㅇ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짜 그 동안 나 어떻게 살았지,

분명 엄청 힘들었다는 건 알겠는데
ㅇㅇ이를 보는 순간 지난 날의
그 감정들이 까마득해졌다.

그 고통의 시간들은 어느 새
벅찬 행복에 파묻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 일단 여기가 제 방이긴 한데..”


우물쭈물, 손수 방문을 열어줘 놓고는
민망한지 손을 꼼지락댄다.
그 손에 깍지를 끼고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익숙한 물건들이 몇 개 보였다.

ㅇㅇ이가 내 집에 머무를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들.
가구는 싹 다 바뀐 채였다.


누워. 불 꺼줄게


내 말에 꼬물대며 ㅇㅇ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책상 의자를 빼 와
침대 옆에 놓고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주었다.


아저씨, 나 더운데..”





더워도 참아.”


마음 같아선 얼굴도 덮고 싶은데,
그러면 내가 못 보니까.


침대에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너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만큼, 나는 그다지
참을성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얼른 눈 감아. 벌써 두 시 다 되간다


얼른 자야 쑥쑥 크지, 내 말에
발끈한 ㅇㅇ이가
나 어린애 아니거든요?! 한다.


, 나한테는 여잔데 네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빨리 크자.
나 죽겠다


“..우리 아빠가 계속
아저씨 괴롭히면 어떡하죠?”

괜찮아. 내가 이겨

아빠도 그 소리 하는 거 알아요?
대체 누가 이기는 거야..”





네 남자친구 한 번 믿어봐.
생각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 남자친ㄱ..”


또 그새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이불을 얼굴 끝까지 뒤집어쓴다.

토닥거리던 손길을 멈추고
이불을 잡아 끌어내렸다.





얼굴은 덮지 말고.”


안 보이니까.



*



, …!!!!!!!”


..뭐야아


안 일어나?!!!!!!”


누가 알람 좀 꺼줘….
나 더 자야 돼
어제 완전 늦게 잤단 말이야


지창욱!!!!!! ㅇㅇㅇ!!!!!!!”


지창욱은 우리 아저씨 이름인데.
그러고 보니 어제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만ㄴ

?


아빠?!!!!!!!”


후다닥 눈을 떴다.
겉옷도 벗지 않은 상태인 아빠가
씩씩대며 나를 노려본다.

이게 무슨..
잠이 덜 깨 몽롱한 상태에서
상황파악을 하려 애쓰는데,
옆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며 움직였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 미친.”


엄마야. 어떡해.






태양
By. 빙그레









설명해.”

아빠.. 일단 그거부터
내려놓고.. 아니 대체 우리 집에
언제부터 야구방망이가 있었..”

너는 손 똑바로 안 들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

뭐 새꺄?!!!”





“…(욱무룩)…”

팔 쫙 펴!”


그 광경을 본 아빠가 내게 내린 벌은
무릎 꿇고 손들기였다.
여덟 살 이후로는 받아본 적도 없는.

표정이 너무 살벌해 곧이곧대로
얌전히 말을 듣고 있긴 한데
아저씨 앞에서 이게 웬 개쪽인가 싶고.

그 와중에 열이 단단히 받은 아빠와는 달리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표정에 변화가 없다.





재워주고만 가려고 했어요.
늦게까지 얘기하다가
졸려가지고 잠깐 눈만 붙였다
가려고 했습니다. 그게 다에요

똑바로 말 안 하냐?”

아 진짜 그게 답니다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너 이 새끼 대체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애들 다 깔아 놨는데





그래 봤자 제 밑인데 까라면 까야죠.
당장 지들이 죽게 생겼는데
문 안 열어주고 배깁니까?”

야 이 미친 새끼야 진짜 뒤질래?!!!!”

아빠악!!!! 그거 내려 놓고!!!!!!”


(진짜 어디서 났는지 모를) 야구방망이를
치켜들고 금방이라도 휘두를 기세인
아빠에게 쏜살같이 달려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빠, 일단 진정. ?
진정 하고..”





넌 다시 가서 손 들어 빨리

,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일을 만들걸

“?”

, 아저씨이..”





너 일로 와.
일로 와!!!!!!!!!!!!”


, 아빠 참아!!!! 꽥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난장판인 거실에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희미하게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얼른 주제를 바꾸려 말을 건넸다.


누구, 누구 왔나 보다. ?
누구세요!”


후다닥 달려가 얼른 문을 열었......





, ㅇㅇ아. 창욱이 안에 있지?!”

“...느에?”


여기서 댁이 튀어나오면
어떡하라고..?


잠깐 들어갈게, 급해서.
야 창욱아 큰일났어!!!!
형님 일찍 귀국하….”

“……”





“……”


..




“……?!!!”






니새끼가 공범이었구나?”

, 형님…”

너도 일로와





형님, 형님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을..
야구 방망이는 뭐에요?!!!
어디서 주워왔어요 그거?!”

딱 서. 안 서?!!!!!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야!!!!
너 어디가!!!!! 안 와?!!!!


개판이로구나.



*



그 이후로 어떻게 됐냐고?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영구추방 당했다.


아빠는 그 이후로 출장은커녕
재택근무를 선택했고,
아저씨는 물론이고 종석오빠 조차도
우리 집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

업무적인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혀를 내두른 건,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아빠를 찾아오는데, 아빠의 단어를
빌리자면 정말 초대형 거머리수준이었다.

나야 뭐 좋긴 한데ㅎ

문제는 그게 벌써 세 달째라는 거지.


띵동, 생각하기가 무섭게
초인종이 울린다. 거실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있던 아빠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아아아악!!!!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저 새끼는 어떻게 매일 똑 같은 시간에
벨을 눌러?!!!!! 제정신이래?!!!!
쟤 무슨 병 있냐?!!!”

그러는 아빠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

대체 저런 거머리가 뭐가 좋다고!!!!!!”

거머리라서 좋은 건뎅ㅎ
포기 없는 남자 멋있잖아

멋있기는 얼어 죽을!!”


이제는 아예 쾅쾅대며 문을 두드려댄다.
결국 아빠가 씩씩거리며 문을 열었다.





질리지도 않냐?!!!!!”





질리세요?”

뭠마?!”

질리면 져 주든가.”





, 저 은혜도 모르는 씨앙..!!!!”


저러다가 둘이 정 들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데,
아저씨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는 웃는다.


내가 이긴다고 했지?”

누구 맘대로!!!!!”





오늘은 봐줘요.
내일 ㅇㅇ이 수능이잖아요

얌마, 그게 너랑 무슨 상관..!!”


아빠가 어어, 하는 사이
집안에 무작정 들어온 아저씨가
내 앞에 떡하니 상자를 내려놓는다.


이게 뭐에요?”

장갑이랑 목도리. 내일 춥대.
그리고 이건 간식거리.
엿도 있고 초콜렛도 있으니까
골라서 먹고, .”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나에게 내미는 건
컴퓨터용 사인펜.

,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또 왜 주는 건데요?”





마킹, 꼭 그걸로 하라고.”


내가 좋은 기운 모아놓은 거야, 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진짜 귀여워서 사망할 뻔.


사실 보온병에 따뜻한 거 담아서
주고 싶었는데, 오늘 주면
어차피 다 식을 것 같아서.”

..진짜 감동..
고마워요 아저씨. 나 시험 잘 볼게요

. 꼭 잘 봐.
나 진짜 열심히 다녔어


가뜩이나 회사일로 바쁜 사람이
직접 사러 다녔다는 말이 고마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다 줬으면 나가 임마





, 대체 언제까지 이럴..”

나가!!!”


갑니다 가요, 별 반항 없이 등을 돌린
아저씨가 내게 손을 흔들고는
집안을 빠져나간다.


어휴, 나 내일 시험 본다고
직접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사람한테
꼭 이렇게 해야 돼 아빠는?”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마시던 커피를 홀짝이던 아빠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때.
..어차피 오늘로 이것도 마지막인데

??”

일찍 자, 오늘 공부해 봤자
성적 안 달라진다


으이그. 심술은.



*



이상하게 공부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내일이 수능이라서 그런가.
과목별로 해 놓은 요점정리와
틀린 문제를 보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 대답하자 이내 조심스레
문이 열리고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안 자고 뭐해

이것만 보고 자려고





지금 봐도 소용 없다니까.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오늘 같은 날은 푹 자야 돼

알았어 알았어, 금방 잘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나를 느꼈는지
아빠가 나를 한 번 흘기고는
전화기를 내민다.


받아 봐.”

누군데?”

원근이

여보세요?”

[ㅇㅇ아, 뭐 하고 있었어?]


언제 들어도 참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나 그냥 문제집 보고 있었지.
너는?”

[산책할 겸 잠깐 밖에 나왔다가
너네 집 근처까지 왔는데.
잠깐 나올 수 있어? 얼굴 좀 보게]

지금?”


흘긋, 아빠를 쳐다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의 뜻에 냉큼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겉옷 가지고 가, 밤에 쌀쌀해

괜찮..”

쓰읍


알았어, 아빠가 내민 가디건을
손에 들고 후다닥 밖에 나오니
담벼락에 기대 발장난을 하고 있는
원근이가 보인다.


원근아!”





금방 나왔네?”

덕분에 꼴이 말이 아니지?”

아냐. 예뻐

, .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그건 미래의 네 여자친구한테 해야지

“……”


원근이가 말없이 웃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원근이의 걸음을 따라 간 곳은
근처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대충 주변에 있던 아무 벤치에
주저앉았다.


공부 많이 했어?”

그냥 그럭저럭.
사실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





나도. 그래서 나왔어

진짜 아직도 안 믿겨.
우리가 내일 수능을 본다니


으으, 징그러워. 다소 과장된
몸짓을 해 보이자 원근이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기분이 어때?”

무슨 기분?”

내일 수능 보는 기분.”


글쎄.. 뭉뚱그려 대답하는 내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은 원근이가
시선을 하늘로 올린다.


처음 교복 입었을 때부터
봐 왔는데. 벌써 열 아홉이네

그러게.. 새삼스럽게. , 그러고 보니
우리 열 넷이었을 때부터
알고 지냈구나.”


아득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잔상에
미소 지었다. 지금보다
한참은 어릴 적, 서로를 보며
웃고 떠들었던 우리.


우리 예전보다 자주 못 보는 거 같지?”

그러게. 그 땐 학교 끝나고
만나서 놀고 주말에도 놀았는데





공부해야 될 게 점점 많아지니까.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늘어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지금 내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들은
같은 또래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불쑥 찾아와준 원근이가
더더욱 힘이 되기도 하고
고마웠다. 많이.


힘들었지


원근이가 툭, 내뱉은 말에
원근이를 따라 하늘로 올렸던
시선을 돌렸다.


뭐가?”

공부하느라고


, 울 뻔했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 가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어디다가
말은 못 하고. 답답했을 거 같아서

“..뭐야..갑자기

그냥, 특히 ㅇㅇ이 너한테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으니까.”

“……”

네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그게 아니란 걸 알잖아 나는.”


이럴 때 보면 꼭 어른 같아.
원근이도 버거웠을 텐데
나까지 포용하려 드는 걸 보면.


하고 싶은 거 놀고 싶은 거,
아픈 것도 꾹 참고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어.”

누가 들으면 나만
수험생인 줄 알겠네


내 말에 원근이가 웃으며 내게
초콜렛과 사탕을 건넨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내 두 손.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챙겨주는 원근이의 보살핌에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준비한 것도 없는데..”

괜찮아.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그래도..”





“…친구잖아, 우리.”


원근이가 벌떡 일어서서
내 앞에 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굽혔다.

나와 흔들림 없이 눈을 마주하고는
씨익, 세상 누구보다도 예쁘게 웃는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너한테 맨날 받기만 했는데





그게 뭐 어때서. 난 그냥 기뻐하고
웃는 네 모습 보는 거면 충분해.”

“……”

아까도 말했지만,
난 네 친구니까.”


친구라는 단어가, 이렇게 듬직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나 너한테 받은 거 많아.”

? ??”


내가 원근이한테 뭘 줬더라.
원근이 생일은 아직 멀었는데


있어, 그런 거.”


원근이가 웃더니
장난스레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어제도 오늘도, 수험생으로 사느라고
고생 많았다 우리, 그치?”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나려던 걸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


눈 앞이 흐려진다.
얼른 눈을 비비자 다시 시야가 또렷해지고,

내 눈에는 어느 새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날 올려다보며
멋있게 웃고 있는 원근이의
얼굴이 보였다.





내일 시험 잘 보자.
마무리 잘 하고, 그러고 나서
놀러 가자. 수정이랑 너랑 나랑.”


옛날, 지금보다 더 어렸던 우리가
웃으며 즐겼던 그 때처럼.


“..그래.”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며 마주잡은
두 손은, 참 따뜻했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마주보며 웃는 걸로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



어떡해. 어떡하지?
. 잘 할 수 있지?”

어휴, 가만히 좀 있어.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수능이잖아 수능!!!”


대체 누가 수험생인 거야.
학교 교문 앞에서 오두방정을 떠는
아빠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태연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그 듬직했던 아빠의
모습은 어디 가고 이렇게 호들갑이람.


사실 아직 내가 수능을 본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난 별로
안 떨리는데.


얼른 출근이나 하셔. 안 늦었어?”

늦는 게 대수야? 우리 딸이
수능을 본다는데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니까

. 열심히만 해. ?”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가


아저씨가 준 장갑과 목도리를 다시
여미면서 말하는데, 아빠가
별안간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내 핸드폰..”





끝나고 연락해.”


핸드폰을 건네 받으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이거 무슨 의미지.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나?

아빠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빠는 얼른 받으라며 핸드폰을
직접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서 한참 내 손을 붙잡고 있던
아빠는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보든 못 보든, 우리 ㅇㅇ이는
항상 아빠한테 최고야. 알지?”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고개를 끄덕이고 일부러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 이제 나 진짜 가야 돼.
전화할게요!!”

딸 파이팅!!!!!! 사랑해!!!
수능 잘 봐!!!”


우렁찬 아빠의 응원을 뒤로하고
고사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켜 보니
밀린 메시지가 수두룩하게
들어와있었다.


수정이, 원근이.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서 온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다가 아저씨가 보낸
카톡창을 무심코 들어가보니


[보고 싶다]

[잘자]

[비 오네. 출근하기 싫다]


매일매일, 내게 핸드폰이 없는 걸 알면서도
꼬박꼬박 보낸 아저씨의 짧은 문장들이
한 가득 담겨 있었다.


[도착했어?]

엄마 깜짝아


갑자기 뜨는 새 카톡에 놀란 것도 잠시,
음성 지원되는 아저씨의 카톡에
얼른 답장을 눌렀다.


[, 방금요. 아저씨 나 핸드폰 받았어요!!!!]

[알아. 시험 잘 보고, 너무
부담 가지지 마. 충분히 잘 해 왔어]


.. 왜 또 감동은 주고 난리람


, 보던 거 집어 넣고.
핸드폰은 전원을 끄고
맨 왼쪽 분단부터 차례대로 낸다

[핸드폰 걷는대요.
이따 볼 수 있음 좋겠다.
시험 보고 올게요]


아저씨의 답장을 기다릴 새도 없이
얼른 전원을 끄고 핸드폰을 제출하고는
가방에서 아저씨가 준 컴퓨터 사인펜을
꺼내 손에 쥐었다.


. 왠지 예감이 좋다.



*



.. 세상에.
이 시험 하나로 이제까지
공부해 왔던 게 끝나다니.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 하루를 위해서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아등바등 죽기 살기로
공부라는 것을 했나 싶기도 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목표가
사라지니 앞으로 뭘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하다.

복합적인 감정이 이리저리
나를 흔들어놓았다.


“..분명 이게 끝이 아닌 건 아는데..”


근데도, 허전해.

난 이제 뭘 해야 하지.
한 순간에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오던 일을 끝마치자

뭔가,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기운이 쪽 빠져 터덜터덜, 중앙현관을
빠져 나와 교문으로 향하며
핸드폰을 다시 켰다.


..”


아빠는 회사 때문에 못 오실 거고.
원근이랑 수정이는 끝났나?

전원은 켜자마자 밀렸던 카톡이
날라오는데, 그 중에 한 개인
아저씨의 카톡이 제일 상단에 떴다.


[보게 될 거야]

?”


무슨 말이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등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따뜻한
온기에 울컥, 눈물이 솟아 올랐다.

아저씨가 쓰는 향수 냄새.


수고했어

어떻게 왔어요?? 회사는 어쩌고?
아빠는요??”





회장님도 아셔, 나 여기 있는 거.
회장님이 보내신 거야

아빠가요..?”


때마침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 액정을 보면 둥둥 떠있는
아빠의 표시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아빠아!”

[고생했어 우리 딸.]

뭐야, 아빠 왜 없어어..”


바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리는 어린애 같은 투정.
그래도, 보고 싶은 걸 어떡해.


[아빠가 오늘은 좀 바빠서.
창욱이 대신 보냈어. 괜찮지?]

씨이..”

[데이트 잘 하고 와]

? 데이트?”

[아빠 회의 들어가야 돼.
이따 보자, 사랑한다]


. 뭐라 물어볼 새도 없이
끊긴 전화에 어안이 벙벙.


뭐라셔?”

데이트..잘 하고 오라는데요..?”


그니까 이게,
이게 무슨 상황이냐 하면..


데이트?!!!!!
내가 아는 그 데이트?!!!!!!!!”





네가 아는 그 데이트가 뭔데?”


아저씨의 웃음 섞인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세상에, 지금 아빠가 직접 나한테
그 말 한 거야?


대박!!!!!! 데이트 하고 오래요!!!!!
이거 허락 받은 거 맞죠!!!!!!”





. 그런 것 같네

아 너무 좋아 어떡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방방 뛰는
날 보며 조용히 웃던 아저씨가
손을 내민다.


가자. 네가 아는 그 데이트하러.
진짜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다

. 나 아직도 안 믿겨.
대박!! 이거 꿈이면 어떡하죠?”

그럴 리 없으니까 얼른 손부터 잡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푸헤헤헤헤

“…….”

헤헤헤헤히히히





정신은 좀 챙기고


톡톡. 내 이마를 두어 번
두드리는 손짓에 또 간질간질.

아 몰라요. 완전 좋아!!!!!




[Behind Cut]




잘 들어갔나? 춥지는 않겠지?
점심 잘 챙겨먹어야 될 텐데.
아 그냥 도시락 내가 싸줄걸.
..그럼 배탈나려나.

ㅇㅇ이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하염없이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 정신 사나워 임마!!
회의 안 할 거야?!!”



수능 끝나는 시간이 언제냐

“…너 내 말 귓등으로도
안 쳐 듣고 있지?”





“?





십 분 뒤면 회의라고 병신아..”


그게 문제냐? 지금 ㅇㅇ이가
수능을 보러 갔는데.
아 대체 형님은 왜 마중을 자기 혼자
가겠다고 우겨가지고..

이종석을 눈으로 힘껏
흘기고 있을 때였다.

울리는 진동에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ㅇㅇ이 무슨 일 있대?”

“....”

?”

하트, 씨발..”





????”

[시험 보고 올게요]





..”

[]


하트다.


[]


그것도 속이 꽉 찬,





..ㅎㅎㅎㅎㅎㅎㅎㅎㅎ


[]


무려, 빨간색.


이 새끼가 왜 이래





야 이거 봐


이종석한테 보여줬더니
표정이 가관이다. 울상을 지었다가
찌푸렸다가.


뭐야, 존나 귀한 거
보여 줬구만


니가 대체 어떤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설마 그게 하트 때문이라면..”





, 존나 귀여워





“…커플 씨발





.
.
.

※만든이 : 빙그레님



<덧> 

1) 안녕하세요, 내 사랑들! 빙그레입니다 :)


2) 오늘따라 사진이 적고
한정돼 보인다면, 넹 정답입니다 ㅎ


3) 어느 순간부터 노트북 부팅이 안 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하드를 갈아야 된다고....ㅋㅋ..ㅋㅋㅋㅋ..
백업해 놓은 것도 없는데ㅎ

그 때 맨 처음 아차 한 게
우리 아저씨 사지뉴ㅠㅠㅠㅠㅠㅠ
수천 장이 넘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손가락 빠지게 캡쳐한 사진ㅠㅠㅠ이ㅠㅠㅠ

아저씨 사진 말고도 모아놓은 사진이
수만인데


! 결국 날려먹었어요!
(노트북 개ㅅ끼)

이제껏 제가 써 왔던 우리 아저씨 글
다 합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진들
움짤들 하며 예전부터 취미로 썼던
단편들과 몇 개의 차기작도

싹 날려먹은 채 아주 깨끗하게
돌아왔습니다
(노트북 개ㅅ끼)


4) 그래도 변명이 되지 않을 거 알아요ㅠㅠ
그러기엔 제가 너무 늦었죠
어느 새 우리 아저씨도 군대에 가고..

아니 근데 그 양반은 군대 가 놓고
뭐가 그리 깨발랄해ㅠㅠㅠ귀엽게


5) 필독!!예상으로는 다음 편이 완결입니다!
편수도 얼마 되지 않는데
참 더딘 발걸음으로 왔네요 :)
자세한 후기도, 비화도 다음 편에서
실컷 떠들어요 우리!

완결 편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쓰려고 해요

맨 마지막 부분에 짤막하게
에피소드 몇 개를 집어넣어볼까 하는데
독자님들의 의견을 반영할 생각입니다!

생각해 놓으신 것, 보고 싶은 에피소드들
소재를 말씀해주시면 그 중에 골라
몇 가지 끄적여 볼까 해요 :)
혹시 궁금한 점도 있으시면 물어봐 주세요!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6) 이 글 보고 계시는 수험생 여러분들
마지막까지 힘내세요!!
빙그레가 응원합니다!!

불안해하지 말아요, 여러분들은
충분히 잘 해내고 있습니다

중간에 나온 원근이의 대사들은
제가 수험생 때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작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꼭 수험생이 아니신 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느라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7) 사담이 길어졌네요!
슬슬 일교차도 커지고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니까
겉옷 챙겨 다니세용!
내 사랑들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시구요:)


오늘도 애정해요♥ 다음 편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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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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