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기 전에 05 (by.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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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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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남주혁
서강준 박보검
전정국 오세훈
육성재 이태용 김진우
 
.
.
.

 
 
청춘이 지기 전에 05
- EP 05. 잠들지 않는 밤
 
 
 
 
내 생각이 맞다 고집하다 그것이 거짓
으로 밝혀졌을 때, 부끄러움과 더불어
얼굴에 집중적으로 열이 오른다.
변신술도 아니고 사람이 바뀌지 않은
이상 내 방이 아닌 게 확실해. 그렇담
대체 진짜 내가 가야할 목적지는 어디
숨어있는 걸까. 술기운과 당황함이 뭉쳐
판단력이 흐려진 뇌 속을 뒤집어 놓는다.
 
 
....”
 
 
민망해진 나는 당당하게 큰 소리쳤던
남자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착각했나 봐요...”
 

 
그럴 수도 있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하자 남자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에게선 잠시나마
추측한 성격처럼 시원하고 상쾌한 향이
났다. 그리고 여기서 춤은 한 번도 춰
보지 않았던 듯 후끈한 나와 달리 손목을
잡은 손은 차가웠다. 혹시 수족냉증?
....그건 너무 갔나.
 
 
그럼 손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
 
 
자기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는 드디어
나를 풀어주고, 미안함을 내비쳤다.
 
 

 
버릇이라. 불쾌했다면 미안해.”
 
아니에요.”
 
 
이 정도면 여기서는 양반에 속했다.
더한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서 사과까지
하는 인간이라면 말 다했지. 나도 똑같이
쿨하게 사과를 받아주었다.
 
번쩍번쩍 돌아가는 조명에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자 시선을 위로 끌어올렸다. 이마를
넘어 눈가를 가리는 그의 앞머리에 헤어
스타일이 독특하다 생각했다. 눈 찌르지는
않나, 나였으면 갑갑함에 손수 가위질을
했을 텐데. , 행색을 보니 남들의 감
놔라 배 놔라에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하이 김찌누?”
 
경리야!”
 
“......박경리?”
 

 
뭐야 둘이. 내가 방해한 거야?”
 
 
경리의 인맥은 어디까지인지 나는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물론 클럽 안에서만
통하는 얘기지만 확실히 거리를 걸을 때면
그녀의 입에서는 누구야, 누구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간혹 소외감이 들다
가도, 내가 그녀에 비해 관계망을 넓히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가끔은 나도 이득 보는 게
있으니 잠자코 있어야지, 지금 이 어색한
상황을 경리 아니면 누가 타파해주겠어.
다만 이 남자도 경리의 인맥 안에 포함
되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친구야?”
 
. 내 고등학교 친구야~
오늘 청하 생일이라 놀러왔다!”
 

 
오빠 안녕!”
 
청하 생일 축하해.”
 
에이, 축하할 거면 우리 방 와요!
우리 아직 덜 놀았거든.”
 
 
청하는 진심으로 들떠보였다. 톤도
한껏 올라가서는, 마치 소개팅 나갔을
때의 그녀를 보는 것 같았다.
 
남자는 내 친구들과 얘기를 하며
여지껏 보여주지 않은 미소를 드러냈다.
그의 볼에는 보조개가 크게 파였다.
 
 
, 오늘은 조금 힘들 거 같네.
형들 눈치보다 갈 수 있음 가고.”
 

 
둘이 뭔데? 썸이야?”
 
?”
 
아니야 그런 거.
우리 방 어디냐?”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엮어대면
없던 썸도 다 날아갈 것이다. 나는
청하와 경리의 팔을 잡으며 그를
등진 채 걸어갔다.
 
 

 
룸 찾고 있었어? 저기 있잖아
밥탱아. 오빠 저희 가볼게요!”
 
빠이염.”
 

 
. 경리 친구도 잘 가.”
 
!? . ...”
 
 
나는 한순간 네네치킨이었다.
머릿속에 쉬세요, 들어가십쇼, 사요
나라 등 여러 개의 인사말이 부딪치다
버벅거리며 나온 말에, 차라리 다행이라
느꼈다. 어차피 이제 안 볼 사이일 텐데
길게 말해서 뭐해?
 
문이 닫히자마자 청하가 방방 뛰며
행복에 겨운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벽에 쓰러지듯 기대어
여한이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빠는 한결 같이 잘생겼어...
내 생일선물로 딱이었다..”
 
어쩐지 오늘 있을 거 같더라니.
그보다 00 너는 뭐야??
진우 오빠랑 같이 있는 거야?”
 
방을 잘못 찾아가버려서.
그 사람, 어떻게 알아?”
 
 
나는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우오빠라 칭하기가 어색했다.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라고 했더니,
애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야 너는 모르면 안 돼지! 김진우
몰라?? 우리 지역에서 엄청 유명해서
타 지역 애들도 알고 있잖아.”
 
내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우리 찌누 오빠~ 경리 덕에 말도
섞어보는 거 아니겠냐.”
 
 
오늘따라 유명인 잔치네.
참 어이없게도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김진우고, 이선미고, 내 학창시절에 1
기여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얘 고1 때 전학 와서 그런가?
그 때 진우오빠는 대학생이니까.
내가 저 오빠보고 고등학교 환상을
키웠더랜다~ 그래놓고 여고갔지만.”
 

 
, 언제는 방귀 시원하게 뀔 수
있어서 좋다며?”
 
천국이지.”
 
 
나는 한참을 기억을 더듬다 급식소 가는
길에서 청하가 진우 오빠는 요새 뭐하고
산대?’하고 경리에게 물어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화제성이 있는 얘기가 아니고
지나가듯이 말한 거라 그냥 아는 사람
근황 물어보는 건 줄 알았지.
 
나와 다른 추억을 회상하며 깔깔 웃는
둘에게 설마 이 사람도?’ 하는 마음
으로 물어보았다. 김진우를 아는데
이선미라고 모를까?
 
 
그럼 너네 선미도 알아?”
 

 
이선미? 당연하지. 걔가 오빠랑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데 둘이 사귄다는
얘기도 있었어. 하기야 제 3자가 잘
어울린다고 반은 꾸며낸 것도 있지만,
사적으로도 아는 사이라던데?”
 
나 아까 이선미 봤어. 몸매 장난
아님. 어떻게 다리가 그리 길까?
부럽더라.”
 
연예인 지망생인 이유가 있는 거지.
아까 보니까 진우 오빠랑 일행인
모양이던데.”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고. 걍 오빠도 연예계 쪽
사람 알고 있다 보니까 만날 일이
많대. , 그렇게 치면 둘이 일양고
때부터 죽고 못 사는 사이였어.”


 
내가 둘 중 하나였음 친구로만은 안
남는다 진짜. 근데 설현이는
어디 있냐?”
 
 
거의 정보통 수준이었다. 그들과 말
몇 번 섞어보지 않았으나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사이인지, 소싯적 무슨
유명세를 타고났는지 경리와 청하를 통해
술술 알아버렸다. 선미는 학교가 같아 몇
번 지나가다 마주칠지 몰라도 김진우 그
사람은 오늘이 끝일 수도 있는 건데 쓸데
없는 것까지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다시 내려가자.
설현이 혼자 있겠다.”
 
 
비워진 데킬라 잔을 내려놓고
재충전을 마친 내가 먼저 나섰다.
룸에만 있기 시간 아까워, 게다가 친구
들과 다시 뭉쳐있으니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 힐을 신은 다리가
불편해지기 전에 서서 놀아야지.
 
 
계단으로 내려가기 위해 통로를 지나자
아까 마주쳤던 곳에서 또다시 그를
만났다. 이곳을 지키는 NPC야 뭐야?
애들한테 들은 게 있다 보니 확실히
아까보다는 인상이 달라보였다.
돈 많은 도련님에서, 만능캐 정도?
그는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춤추러 가?”
 
“.....?”
 

 
춤추러 가냐고.”
 
, !”
 
 
음악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자
그가 내 귓가에 대고 좀 더 크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대답머신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셸 위 댄스? 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이제 길 잃어버리면 안 돼.
혹시나 기억 안 나면, 나 여기
있을 거니까 찾아오고.”
 
 
끄덕끄덕. 인간 네비게이션을 자처한
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응답
이었다. 김진우는 어느새 내 손목을
또 잡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지적하지
않아도 곧장 놓아주었지만, 제 행동에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버릇이라더니, 진짠가 보네.
 
 
찌누! 왜 이렇게 내 친구한테
관심이 많을까. ?”
 

 
오빠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룸 안에 있기는 싫고, 내려가기는
복잡해서. 너희 몇 시까지 놀려고?”
 
문 닫을 때까지 불사를 거야.”
 
 
수다 떠는 친구들과 김진우 사이에서
눈치껏 있다가 손의 떨림에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갱준이라는
글씨와 함께 그의 사진이 떠있었다.
 
 
나 전화 받고 올게.”
 
 
새벽에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지?
통화가 잘 되는 곳으로 옮기다 보니 또
화장실로 가게 되었다. 더 이상 여자의
통곡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이번엔 속이
안 좋은 누군가의 헛구역질이 칸막이 안
에서 들렸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선미처럼 화장대 거울을 등지고 걸터앉았다.
 
 
갱준아~”
 
[오냐. 현 위치 클럽?]
 
. 사람 짱 많아.”
 
[재밌냐.]
 
존잼이다! 근데 왜 전화한 거야?”
 
 
목요일 날, 버스 정류장에 가는 내내
강준이를 비롯한 동생들이 클럽에 대해
물어봤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여 궁금해서 그러나 싶어,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 가르쳐주었건만 아직
궁금증이 남아있는 건가.
 
그의 목소리 너머 익숙한 효과음이
들렸다. PC방에 있는 듯 했다.
 
 
[몇 시에 나올 거냐고. 우리
지금 피방인데, 나중에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캔 때릴 거거든.
합류할 건지 물어보려 전화했다.]
 
보검이랑 주혁이 있어?”
 
[박보검 오늘 긱사 안 들어가고
우리 자취방에서 자기로 했음.
아 그래서 올 거야?]
 
나중에 나갈 때 연락할게. 근데
세시는 넘어야할 텐데 그 때 까지
게임해?”
 
[남주핵 오늘 실버 간단다.
밤 샐 각이지 뭐겠냐?]
 
걍 보검이한테 대리 뛰어달라고
하지. 걔 혼자 하면 택도 없는데.”
 
[ㅋㅋㅋㅋ졸라 냉정하다 뭉치]
 
 
목소리가 섞여왔다. 야 서열 정리해!
당장 오라고 해 뭉치!!!!’ 남주혁의
분노 뒤로 보검이의 웃음소리까지.
 
 
[지금 니 할 거나 신경 써 남주핵.
거점 먹히잖아. 지겠는데?]
 
편의점에서 위로연 여는 걸로
알고 있으면 돼?”
 
[. 하여튼 나오기 전에 전화하고,
.....조심하고. 알간?]
 
뭘 조심해?”
 
[아무한테나 시비 걸지 말라고.
깽값 무지하게 나온다.]
 
누가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
인 줄 아시겠어요;;”
 
[너 빼고 다 아세요;]
 
 
갱준이 이 새기는 토 다는 거 하나는
마스터급이다. 놀림 받은 나는 무심하게
끊자고 말했으나 그도 별 미련 없이
자기도 게임해야 한다며 통화를 끝냈다.
토라진 척해도 서강준한텐 무용지물인 것
이었다. 에라이 정 없는 놈, 중얼거리며
문을 밀자 휴대폰이 부르르 울었다.
이번에도 강준이었다.
 
 

 
갱준
[무슨 일 있음 전화해라]
 
“....진즉에 그럴 것이지.”
 
 
오냐~’ 나는 세상 도도한 투로 답해
줬다. 카톡 하나에 그를 용서해 준 것
이기도 했다.
 
 
 
 
.
.
.
 
 
 
 

 
아까부터 뭘 그리 보고 계셔,
누가 찐하게 애정행각이라도 해?”
 

 
네 희망사항 얘기하지 말고.
나 여기서 간만에 재밌단 말이야.”
 
뭐가?”
 
. 보여?”
 

 
“......한국사 말하는 거야?”
 
아는 앤가 봐? 근데 이름이
한국사라니, 진짜야?”
 
뭐라는 거야 이 오빠? 나도 쟤
이름 몰라. 그냥 민현이랑 같은
수업 듣는데 그게 한국사라고.
오빠 설마 쟤 마음에 드는 거야?”
 

 
안 될 이유라도 있어?”
 
근거가 없잖아, 근거가. 쟤가 오빠
한테 와서 무슨 짓을 했다고?
격렬한 춤사위라도 펼쳤어?”
 
푸흡, 그것도 웃겼겠다.”
 

 
“....., 작정하고 빠졌네. 나 없는
동안 뭔 짓을 한 거야 도대체?
오빠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집 가? 데려다줄게.”
 
됐네요, 구경이나 하세요. 그나저나
이름도 모르는 걸, 번호도 못 받았
겠다? 민현이 통해서 알아다 줘?”
 
괜찮아.”
 

 
없는 오지랖 좀 떨자면 난 반대야.
하는 행동이 내 마음에 그다지
차지는 않아서. 애가 어벙해.”
 
그래? 그런가....난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기만 하는데.”
 
헐이다 진짜.”
 
 
 
 
 
 
*
 
 
 
 
동이 트기 가까워지면서, 거리에는
갈수록 술에 찌든 좀비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올나이트를 선언했지만 중간에
경리가 이탈하면서 차츰 목적이 퇴색
되었고, 청하가 취하면서 더 이상
놀기엔 불가능하다고 판단 내렸다.
 
설현이가 비틀대는 청하를 부축하며 끙끙
대고 나는 청하의 소지품을 대신 들어준
채 택시를 잡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항상 원할 땐 택시가 안 잡힌단 말이야.
짜증나는 머피의 법칙 중에 하나였다.
 
 

 
무거워 디진다 증말.
왜 이렇게 된 거야?!”
 
진우인가 진구인가 그 사람이
생일 축하한다고 준 술을 쭉
받아 마시다가 난 게 이 꼴이지.
너 진짜 집에 데려다줄 수 있어?”
 
같은 동네 주민인 게 죄지...
박경리 이건 또 누구랑 눈
맞은 거래?”
 
내일 물어봐.”
 
 
경리와의 마지막 조우는, 나에게 와서
어떤 남자를 가리키며 오늘부로 자기
거라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끝이었다.
성공했으니까 우리에게 합류하지 않은
거겠지, 나의 추리는 어느 정도 들어
맞을 거라는 전제를 깔았다.
 
 

 
뭉치!!!!!”
 
 
청하가 취하는 바람에 강준이에게
나간다고 연락하는 걸 까먹었는데,
용하게도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동기들을 만났다. 주혁이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오늘의 성과는
그럭저럭 괜찮았나봐. 나는 가볍게 손만
들어 멀리 있는 그들에게 응답했다.
 
 

 
쟤네가 네 동기야?”
 
. 정신없지?”
 
 
비몽사몽이던 청하가 남자애들을
쓱 훑다가 느리게 말했다.
 
 
내 친구 소개 받은 남자애는 없네.
그러면 00는 바로 안 가고 쟤네랑
있을 거?”
 
. 먼저 가.”
 
, 머리 갈색으로 염색한 남자애
이름이 뭐야? 롱패딩 입은 애!”
 
 
설현이는 택시를 잡을 거라고 흔들
거리던 손을 바꾸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나는 설현이의 손짓보다 인상착의에
주목했다. 다행히 무릎 아래로 오는
롱패딩을 입은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롱패딩이라면...서강준?”
 

 
강준이구나.”
 
 
설현이는 청하를 부축하고 난 후 처음
으로 흥이 난 얼굴을 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이상형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그 틀에 강준이가 맞아
떨어지는지도.
 
 
연락할게 00! 재밌었어!!”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택시가 잡히기
마련이다. 나는 두뇌 회전을 멈추고 친구
들을 보내야 했다. 만약 진짜 마음이
있다면 연락을 먼저 하겠지, 내가
나서서 물어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가 오지 않을 때 2차선을 후다닥
건너 편의점에 도착한 나는 저 멀리
꽁무니를 빼는 택시 번호판을 찍는
보검이를 발견했다.
 
 
뭐해?”
 

 
혹시나 해서. 친구도 많이 취해
보이고...나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
할 거지?”
 
. 감동적이네 우리 보검이~”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매너 있는
사람이었다. 천성이 그렇기에 가장 친해
지기 쉬웠던 동기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리더쉽이 있기보단 순둥한 편이라
남들의 말에 잘 휘둘리는 스타일이어서,
가끔 악의를 품고 다가오는 사람을 구분
짓지 못할까 지켜보는 내가 마음을 졸인다.
 
 
옷이 왜 이래?”
 
내 옷이 어때서.”
 

 
안 춥냐? 냉동 쭈꾸미 된다 그러다.”
 
푸핳, 냉동 쭈꾸밐ㅋㅋㅋㅋㅋ
 
닥쳐 김말이같이 생긴 게.”
 
 
시밀러룩이라도 맞추기로 했나, 다들
패딩에 길이감만 다르고 검정에 검정
검정....먹물패션이다. 오로지 보온에만
신경 쓴 목적이 뚜렷했다. 따듯해서 잠도
솔솔 오겠네.
 
 

 
내 거 입어. 감기 걸리겠다.”
 
됐어. 쭈꾸미가 감기
걸리는 거 봤어?”
 
안 보고 싶으니까 입으라고.”
 
 
앞이 깜깜해짐과 동시에 따듯해졌다.
머리를 덮은 패딩에서 빠져나오자
강준이가 얇디얇은 티셔츠 한 장에
맥주를 들이키는 게 보였다.
 
 
너는?”
 

 
주핵아, 나 좀 안아주라.”
 
줄 수 있는 게~
이 모자 밖에 없다아~”
 
 
강준이의 머리 위로 주혁이의
부착형 패딩 모자가 씌워졌다. 그는
마른안주를 남주핵에게 강하게 던졌다.
보다 못한 보검이가 대신 강준이를
포용했지만, 편의점 의자에 성인 남성
두 명이 부대껴 앉는 건 무리였다.
나는 다시 패딩을 벗어주었다.
 
 

 
너 발 안 아프냐?계단을 밟고 서 있네.”
 
나 너랑 키 비슷하다. 재볼래?”
 
땅꼬마가 뭐라는 거야.”
 
전봇대 같은 게!”
 

 
토르비욘 같은 게!”
 
“(뭔지 모름) !??! ......
이 삼척귀신 같은 놈이!!”
 
발 아프면 신발 벗어 뭉치야.”
 
 
보검이는 이 상황에 매우 익숙했다.
다들 제 할 말만 하는데 자기 역시도
동조할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듯 했다.
강준이도 말리지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와 주혁이의 언쟁은 굳이
말리지 않고도, 말빨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입을 닫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에서는 내가 졌다.
하이힐을 벗느라 시간이 지체해버렸기에.
 
 

 
누구한테 전화해?”
 
육성재.”
 
 
강준이는 카톡보다는 전화를 많이 거는
성격이었다. 문자를 주고받으며 질질
끌기보다는 전화로 한 방에 용건을 전달
하는 게 성이 풀린다나 뭐라나.
그래도 잘 밤에 애를 깨우는 건
무리수지 않을까....?
 
 

 
, 육재야. 안 잘 거 같더라.
너 슬리퍼 남는 거 하나 있지?
그거 들고 사거리 앞 편의점으로
튀어와. 추우니까 패딩 입고.
, 담요도 아무거나 가져와.”
 
 
얘네는 잠도 없어? 지금 시간을 오후로
착각한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주말만
되면 밤낮이 바뀌는 체질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지, 항상 이 시간엔 꿈나라였던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존나 다정한데 강제적임.
근데 육성재가 과연 올까?”
 
아이스크림 사줄게 와라.”
 
 
이쯤 되면 강준이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한다고 봐야 했다. 나는
그의 통화내용을 비웃었다.
 
 
이 날씨에 아이스크림?!
북극곰도 추워서 코카콜라만
먹지 아이스크림은 에바다.”
 
온다잖아 빙딱아.”
 
? 걔도 제정신 아닌 듯.”
 
이래놓고 아이스크림 사주면
제일 좋아할 사람이 누구?”
 

 
“000입니다!”
 
 
주혁이가 쿵하면 보검이 짝. 쿵짝이
맞다. 나는 퉁명스레 안주를 집어다
입에 넣었다. 떠들다보니 허기가 졌다.
 
 
나 오기 전에 무슨 얘기 하고 있었냐?”
 
별 거 있나. 게임 얘기하고, 축구 얘기
하고. , 그 얘기 했다. 최근에 우리
학교에 자취하는 애들 난리 났었잖아.
어떤 놈이 여자들 상대로 무단침입
하려고 해서 경찰 순찰 돌고 있다고.
범인을 아직 못 잡았대. 이 동네 사람
인 것 같다더라. CCTV 위치도 교묘하게
피해 다니는 걸 보면.”
 
할 짓 없나...너희 집은 괜찮아?
뭐 없어지거나 그런 거 없어?”
 

 
우리야 뭐, 훔쳐갈 게 없음.”
 
있다면 내 마음 정도?”
 

 
멀리 멀리 훔쳐갔으면 좋겠다!”
 
 
주혁이가 모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를
따라했다. 주혁이가 나를 놀릴 때 가장
재미지다고 한 것처럼 나 역시 남주혁을
골려 먹을 때가 제일 맛깔났다.
 
왜냐면 보검이는 놀릴만한 건수가 도저히
잡히지 않았고, 강준이는 역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세훈이나 성재는 중간 정도였다.
최근에 떠오르는 후보로는 1학년들 정도?
이 정도면 놀리기 위해 사는 사람
같지 않냐.
 
나는 다 마신 맥주 캔을 찌그러
트리며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빨리 범인 잡혀야할 건데.
다음 학기에 자취할 거란 말이야.”
 
뭐어!? 혼자?”
 
 
보검이가 격앙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자그마치 6개월 후의 계획이라 실현이
될까 말까한데 그는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지만.
 
 
혼자 해야지. 그래서 근처에
방 좋은 거 있으면 추처
 

 
아 잠깐만. 너 집 가깝지 않냐?”
 
엄마가 이렇게 어지를 거면
나가 살래....
 
대충 상상은 가. 뭉치 사물함
이랑 환경이 비슷하겠지.”
 
, 핵소름....”
 
 
사물함을 같이 쓰는 주혁이의 증언에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거기까지
생각 못했는데 듣고 보니 비유가 너무
적절했다. 마인드 자체가 어차피 책은
다시 꺼내질 거고 갖다놓을 건데 뭐하러
정리하냐주의인 나에게 주혁이는 어차피
공부 안 할 거 학교 왜 오냐고 말했을
때 느꼈던 소름이 이번에도 돋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데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쓰레기만 남길 운명이다.
 
 
여기 밤에 골목길 무섭잖아.
불도 주황빛이고. 예전엔 네가
여기서 자취 못하겠다하지 않았나.”
 
그 땐 그랬지. 암튼 엄마 잔소리는
핑계고, 아침에 여기까지 오는 거
힘들어서 못하겠어. 가깝다고 해봤자
급행 탔을 때 이야기인 걸.”
 

 
기숙사 가는 건 어때?”
 
거기 공부 잘해야 가는 곳임.
천상계라 뭉치는.....(말잇못)”
 

 
저기요 내 성적인데요?
니 성적이나 걱정하세요~”
 
남주혁 성적이라면 근심 걱정에
산을 쌓고도 남을 걸ㅋㅋㅋㅋ
 
 
하지만 우리 모두가 우울해졌다. 성적
하니까 곧 있을 중간고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개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종강을 바라는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빌 것이다. 제발, 과제만은 관용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허나 여태 소원을
들어준 교수님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못난이덜~”
 
 
주머니에 양 손을 집어넣고 털레털레
걸어오는 성재는 전화한지 10분 만에 나타
났다. 급하게 나온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아무거나 집어든 것인지 성재의 겉옷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다. 무언가 했더니
그제 세훈이가 입고 있었던 야상이잖아.
 
 

 
이것들은 잠도 없나.
주말이라고 막 나가네.”
 

 
어제 밤샘하신 분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여기 슬리퍼랑 담요. 아주
우리 집 살림 다 거덜 내라?”
 
 
강준이는 슬리퍼와 담요를 받아 곧바로
내게 주었다. 그리고 성재에게는 약속대로
그가 제일 좋아하는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몸이 편해지니 근육의 긴장이
풀려, 거짓말처럼 잠이 몰려왔다.
 
 
오세훈은?”
 
뻗었지 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더라.
그나저나 앞에는 누구세요? 설마 뭉치?”
 
맞는데요. 존나 빨리도 알아본다.”
 

 
빨리 알아보면 대단한 거지!
클럽 간다더니 가면무도회 갔냐?
아니 무슨 얼굴이 단계별로 있어?”
 
 
성재는 나의 화장 실력에 감탄했다.
그를 비롯해 동기들은 이미 작년에 내
맨얼굴을 봤었고 과제에 찌들어 대충
잡티만 가리고 나오는 나를 만난 적도
수없이 있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 화장을
공들여 했을 때 친구들은 유독 나를 신기
해했다. 보검이나 강준이, 주혁인 면역이
되어 더는 트집을 잡지 않지만 세훈이나
성재는 여전히 나의 화장 풀 셋팅에 익숙지
않아 늘 이런 식이다.
 
 
렌즈 예쁘지?”
 
저번엔 갈색이더니 오늘은 회색이네.
렌즈도 깔별로 있냐? 속눈썹은 낙타가
됐고...화장 지우면 아수라 백작
기대해도 되는 거지?”
 
그렇게 갭 차이 안 심하거든?!”
 

 
야 너 뭐 잃어버린 거 없냐.
클럽에 양심 놔두고 왔는데.
다시 찾아와.”
 
 
아니라고!’ 나는 억울함에 바락바락
대들었다. 대뜸 옆에 있던 성재가
제 코를 쥐어 잡았다.
 
 

 
으익, 너 술 마셨어?”
 
향기롭지?”
 
후각을 포기하겠다.”
 
 
성재는 콧구멍을 손가락 두 개로
막았다. 코피가 터질지언정 내 술
냄새는 죽어도 맡기 싫다는 표시였다.
지는 평생 술 냄새 안 날 건가봐?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 화면에 뜬
시간을 확인한 강준이가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 술 냄새 자가 체크를
후후 불어대는 나를 향해 물었다.
 
 

 
근데 뭉치 첫차 타고 갈 거?
시간 되게 애매하게 남았는데.”
 
첫차 타면 되지.”
 
너 잠 오는 거 같아서.”
 
티 나?”
 

 
완전.”
 
 
보검이는 확인사살을 시켜주었다.
4시가 넘어가자 피곤을 견디지 못한
몸이 노곤해진 게 겉으로도 티가 나나
보다. 아무도 내가 졸려하는 걸 부정
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도 결국 인정해
버렸다. 일출을 보기엔 무리라고.
 
 

 
아님 우리 집에서 자.
우리는 육재 집 가면 되니까.”
 
내 허락은 어따 처박아두고?”
 
너도 같이 자자.”
 

 
난 원래 그 집 구성원이야 새기야.”
 
 
분명 맞는 소리인데 씨알도 먹히지가
않는 성재의 발언이다. 갑작스레 결정된
계획은 빠른 실행으로 옮겨졌고 자리를
치운 우리는 어느새 골목을 걸었다.
강준이와 주혁이가 자취하는 원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작년에 몇 번 이 자취방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다. 처음엔 내 의지가 아니
어서 적잖이 놀랬었다. 주량측정에 실패해
인사불성이 된 나를 집에 데려다주기엔
아는 정보가 없어 이부자리를 깔아 눕히고
깨어나기를 기다렸던 주혁이와의 인연도
여기서 시작이었다. 그 후 강준이가 2학기에
들어와 살게 되고 수업에 텀이 있을 때마다
자취방에서 띵가띵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우리 집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여기서 쓰레기를
낳지는 않는 예의가 있었다.
 
 
흰색 서랍에 맨투맨 있고, 바지는
.....얘 바지 뭐 입어야 돼?”
 

 
체육복 입어야지. 화장은 안
지워도 되는 거야?”
 
뭐 몇 시간 있을 거라고.
옷도 안 빌려줘도 되는데.”
 

 
얼씨구, 걍 준다할 때 입어라.
그리고 일어나면 연락하고.”
 
, 우리 집에서 잘 거면 니네 이불
들고 와. 그리고 한 명은 화장실에서
자던 거꾸로 매달려서 자던지 해.”
 
오세훈을 매다는 건 어때?”
 

 
것도 괜찮은 방법이야.”
 
 
세훈이와 성재가 함께 자취하는 집은
여기서 5분 거리였다. 방은 주혁이네
원룸보다 조금 더 작았지만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이라 주혁이는
제 집보다 그 쪽에서 자는 걸 선호했다.
특히 난방에 있어서 성재네 집은 방이
끓어, 몸이 노골노골해져 피로가 싹
가신다는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했다.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고 원룸 안에
들어간 강준이는 익숙하게 내가 갈아
입을 옷을 꺼내주었다. 성재는 다 먹은
아이스크림을 버리곤 냉장고를 뒤졌다.
냉장고에는 소시지가 하나 남아있었다.
낼름 삼켜버리자 주혁이가 분개했다.
 
 
너희 진짜 여기 있어도 되는데.
미안하잖아. 주인들 다 쫓아내고.”
 
너 우리 있음 불편해서 못 자는 거
뻔히 아는데. 그리고, 주인들이 아무
렇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안 그래?”
 

 
저희 쪽 안방마님(오세훈)
아무렇지 않을 리가....”
 
매달아놓을 건데 뭐.”
 
 
진심으로 한 소리였고, 진심으로
여분의 이불을 챙기는 주혁이었다.
 
나를 두고 자리를 옮기게 된 남자들은
문 앞에 서서 내가 안절부절 못해하는
배웅을 받아주었다. 나는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갈 거 그랬나 괜히 폐를 끼친 것
같다는 후회와, 혼자 남겨졌을 때의
적막에 잠을 제대로 못 잘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가지마. 나 무서워.
 
그런 나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보검이가 애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우리 여기 있을까?”
 
?”
 
아니, 불안해서. 편의점에서
얘기한 게 걸려서 말이야.”
 

 
, 그 도둑?”
 
 
강준이도 보검이와 비슷한 생각에
미치자 신었던 신발을 벗었다.
이불을 어깨에 지고 있던 주혁이가
어리둥절하게 서있다 말했다.
 
 

 
뭉치 불편하다매? 그럼 어쩌자는
거야, 걍 여기서 다 같이 자?”
 
어쩔래 00?”
 
 
이들이 집을 비워주려는 데에는 사정이
있었다. 작년 초 MT , 방 배정
에서 나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꽤나 많은 설전이 오갔다고 했다.
 
언니들이 한데 모여 있는 방에서 자기엔
비좁았고, 그렇다고 나 혼자 잘 방을 구하
기에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친구
들과 23일을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야
했는데, 그 동안 한숨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당시 깊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여고를 나온 내가 갑자기 다른 성별의
공간에 홀로 남겨지게 되니 본연의 모습
(이를테면 쌩얼)을 보여주기가 꺼려졌다.
삼일 간 생리현상도 내 마음대로하지
못하는데다가 얼굴에 갑옷을 씌워놓은
듯한 답답함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집에 도착했을 때 하루 반나절은
기절하듯 잠에 곯아떨어졌었다.
 
그걸 이들은 알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도 나를 배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같이 있자! 불편한 것도 작년
엠티 때 이야기지 지금은 볼 거
못 볼 거 다 봤으니까.”
 
하긴, 이제 방구만
트면 되는 거지?”
 
틀 생각도 없고 너도 안
텄음 좋겠구나.”
 
 
작년 초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이들은 대학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불편할 게 거의 없었으니까.
말은 그리 했어도 방귀도 조만간
트게 될 기세다. 안 그러길 바라지만.
 
 
육재 너도 여기서 자. 온 김에.”
 
나는 떼후니랑 낸내 코 잘 거야!”
 

 
“....., 됐다. 가라.”
 
 
질색하는 강준이 뒤로 성재가 밝게
웃었다. 계획이 흐지부지된 것에
가장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담요와
슬리퍼를 도로 돌려주었다.
 
 

 
뭉치 잘 자라!”
 
, 담요 고마웠어. 빠이~”
 
나는 왜 인사 안 해줘?”
 
귀찮.”
 
 
성재가 미련 없이 떠나고, 보검인 능숙
하게 이부자리를 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강준이가 줬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키들이 180이 다 넘다보니 바지밑단이
바닥에 끌렸다. 두 번 정도 접어올리고
내려가는 허리춤을 위로 끌어 당겼다.
, 이렇게 보니 진짜 포대자루 같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주혁이가 포대자루라고 놀렸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몇 발 걷지 않고
앉아서 귀를 늘어뜨리는 귀고리를 뺐다.
화장을 지우지 못해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속눈썹도 떼서 파우치에 넣었다.
성재라면 신기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빤히 구경하고 있었을 것이다.
 
 

 
뭉치, 일요일에 응원 올 거?”
 
건축이랑 축구한다매?”
 
병오형이 아는 1학년 애들도 데려올
수 있음 데려오라드만. 축동 인원 확충
해야 해서 그 때 동아리 어필 제대로
할 거래. 뛰는 우리가 죽어난다는 소리지.”
 
태용이 언급하더라. 목욜에 만났는데
축구 잘 하게 생겼대.”
 
안 그래도 병오 오빠가 노리는 것
같았어. 태용이가 할 생각이 있는진
모르겠다만....한 번 물어는 볼게.”
 

 
나도 그럼 정국이한테 물어봐야겠다.”
 
 
렌즈까지 빼자 클럽에 있었던
000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나는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자 차라리 시원
하게 세수를 하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 리무버라도 챙길 걸...!
 
 
나 씻는다.”
 

 
다음은 나!”
 
먼저 자, 00.”
 
 
뻐근한 몸이 눕자마자 알싸하게
풀리며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태용이에게 카톡을 보내고
길었던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태용아. 일요일에 축구
응원 갈래? 정국이도 같이!]
 
 
그에게서는 오전 11시쯤에 답장이
왔다. 라는 간결함. 통화뿐만 아니라
문자에서도 그는 짧게 대답하길 좋아했다.
 
 
 
 
 
 
*
 
 
 
 
일요일 오후 2. 점심을 먹은 후
학교 대운동장에 올라가니 이제 막
휘슬 소리가 울리며 축구경기가 시작
되었다. 나보고는 냉동 쭈꾸미라고
해놓고선 지들은 더 춥게 입었네.
 
강준이와 주혁이는 각자 미드필더와
공격수로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크게
소리치고 뛰어다녔다.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신호랍시고 고함을 쳐
대서 무슨 뜻으로 하는지는 모르겠다.
대충 잘하자는 뜻으로 해석했다.
 
 

 
클럽은 재밌었어요?”
 
? 아까 물어봤잖아.”
 
제가 물어봤어요.”
 
 
내 양 옆에는 태용이와 정국이가 앉아
있었다. 미리 운동장에 가 있는 동기들
대신 후배들과 점심을 먹게 돼서, 나는
동생 둘을 데리고 맛집이라 자부하는
식당에 갔었다. 가서 한 얘기라고는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아닌, 내가 어제
클럽에서 뭐하고 놀았는지 보고하는 것
이었다. 이들에게 킬링파트는 내가
주혁이네 자취방에서 잔 사실이었다.
 
 
형들이랑 많이 친해요?”
 
. 17학번들 중에서는 가장.
18학번 중에선 너희가 제일
친한 동생이야.”
 

 
그럼 뭐해, 내 연락엔
답도 안 했는데.”
 
 
태용이는 삐쳐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어제 내가 그에게 일요일 시간 되냐고
묻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톡을
보내기 전 태용이가 먼저 나에게 아직
클럽이에요?’하고 물었었고, 나는 답을
해주지 않고 다짜고짜 내 말만 했기 때문
이었다. 그에겐 벌써 몇 번이고 사과를
했지만, 태용이의 입술은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미안~ 내가 꼭 맛있는 걸루다가
사줄게. 에이드 시켜도 된다!”
 
영화 봐요 그럼.”
 
“!?! , 영화까지는 내가 돈이
있을지는 모르겠....”
 

 
그건 제가 사요.”
 
 
용돈기입장에 추가 지출될 뻔한 돈이
사라졌다. 애초에 영화란 항목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태용이의
불도저 같은 기획력에 나는 당황하다
얼떨결에 수락해버렸다. 뭐 보여준다
면야 나야 좋지. 뒤늦게 합리화했다.
 
 
너희 축동 들어갈 생각 없어?”
 

 
축구 못해요.”
 
정말? 오빠들은 너 축구 잘할 것
같다고 김칫국 마셨는데. 캐스팅
1순위가 너였어.”
 
어쩔 수 없죠. 몸이 안 되는 걸.”
 
그럼 태용인 나랑 같이 응원하자.
정국이는 어때? 축동 들어가면 내가
응원 빡시게 해줄 자신 있어. 플카도
만들 줄 안다구.” * 플카 : 플랜카드
 

 
저 들어갈래요! 누나 제 꺼
멋지게 만들어 줄 거죠?”
 
그러엄. 우리 정국이 건데.”
 

 
“........나는?”
 
너도 정국이 플카 만들래?”
 
 
아니요.’. 그는 생각이 많아보였다.
동아리를 할 건지 응원을 할 건지.
그 사이에 우리 과에서는 골이 터졌다.
 
역시 남주혁,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어깨를 들썩였다. 주혁이는 세레머니를
하며 짜릿함을 만끽했다. 피씨방에선
한없이 작아보이던 애가 운동장에 가면
날아다니니 원... 유일하게 그에게 멋있다
남발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축구할 때다.
 
나는 한 번의 골로 덩달아 흥분해서 발을
동동 굴렸다. 그러다 정국이가 어디서
전화벨이 울린다는 말에 내건가? 싶어
꺼내봤더니, 경리에게서 온 전화였다.
웬만해선 부재중으로 남겨놨다가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겠지만, 상대가
어제 묵언수행을 했다보니 영 걱정되는
마음에 통화키를 눌러버렸다.
 
 
[00! 집에 잘 들어갔냐?]
 
넌 뭐하다가 이제 연락해..!
단톡방에서 얘기도 없고,
그 날 집에는 갔어?”
 
[아니? 나는 밤 샜지. 월척을
낚았는데 이 정도 쯤이야.]
 
그 남자랑 뭐했어!?”
 
 
경리는 내 질문의 속뜻을 이미 알고
있다.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걔랑 안 잤어. 걱정 마. 그 대신
앞으로 연락하기로 했어. 보니까 그
남자, T대학 모델학과인 거 있지?
장난 아니야.]
 
어휴, 그럼 다행이고. 근데
무슨 일로 이 대낮에 전화를 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물었다.
경리가 낮에 전화하는 일은 꽤
드물었기에 하는 소리였다.
 
경리는 고조된 목소리로 전화를
하게 된 목적을 신나게 떠들었다.
 
 
[! 너 대박 잡았어! 어제 진우
오빠 만났잖아. 그 오빠가,
너 소개 시켜달래!!!!]
 
뭐어!?!??!?!?!?!?!”
 

 
“??”
 
 
운동장이 떠나가라, 하다못해 경기를
뛰던 진영오빠가 무슨 일인고 싶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나는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작게 속삭였다.
그래봤자 양 옆의 동생들은 다 엿듣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오빠가 대체 왜?????”
 
[그러니까! 클럽 마감 때쯤에 나한테
와서 니 이름이랑 번호 물어보더라.
꼬치꼬치 캐묻기엔 나도 내 할 일이
있고 해서 다음으로 넘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물어봤어야 했어!]
 
아니 그래서, 번호 줬어?”
 
[.]
 
 

 
세상에 마상에.
신이시여.....!!!
 
 
미쳤, . 나 그 사람한테 쪽팔린
기억밖에 없어. 존나 나댔다고!”
 
[일단 한 번 만나봐. 진우 오빠 성격
괜찮아~ 돈도 많고, 얼굴도 쩌는데
니가 마다할 이유가 있어?]
 
내가 못 살아....”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연락할 거래!’
그녀는 통보식으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주선자의 역할을 맡은 게
한두 번은 아니었겠으나 경리는 이번
건에 가장 들떠있었다. 나는 진우
라는 사람에게서 청하를 떠올렸다.
청하한테는 뭐라고 말할 작정이야?!
 
지금이라도 거절해야겠다고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설현이에게서 카톡이
오는 게 겹쳐버렸다. 미안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잠깐 재껴두려는데,
눈에 밟히는 단어 하나.
 
 

내 사랑 설현
[00!]
 
 
내 사랑 설현
[나 부탁 하나만 하자]
 
[뭔데?]
 
 
나는 궁금증에 물어봤다. 짐작 가는
것이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설현이가
나한테 부탁할 만한 게 뭐가 있더라...?
 
그러는 와중에 경기는 전반전이 끝나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늦은 한파에도
땀을 흘리며 걸어오는 동기들은 갈증에
음료수를 찾았다. 나는 이온음료를
통째로 주고 설현이의 답을 기다렸다.
 
장문의 카톡도 아닌데 시간차를 두고
오는 카톡은, 나를 안달나게 만든다.
 
 
 
내 사랑 설현
[니 친구 강준이 있잖아.]
 
뭉치.”
 
 
내 사랑 설현
[걔 나 소개시켜주라!]
 
, 뭉치!”
 
, 어어!?”
 
 
강준이가 두 번이나 불렀을 때야 겨우
버벅 거리는 나. 하마터면 폰을 떨어
트릴 뻔한 걸 정국이가 잡아주었다.
 
나는 연달아 오는 충격에 혼수
상태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강준이가 내 머릴 휘저어 산발로
만들어도, 신경질을 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얼이 빠졌어?
무슨 일 있어?”
 
“.......”
 
 
제발, 이런 일들은 한꺼번에
몰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강한지 겨우 5일을
넘긴 시점이었다.
 
 
 
 
.
.
.

※만든이 : 콩이님
 
 
 
<>
 
 
공지 드린 대로 열심히 공부하다
오게 된 콩이입니다. (코가 길어짐)
주혁이가 말한 토르비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미지를 첨부하자면
 

 
이런 캐릭터입니다. 키가 188cm
주혁이 입장에선 여러분의 키가 작아
보일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등장인물 선정하다 혼자 놀랬
던 게, 남자분들은 성씨가 하나도
겹치지 않더라구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뭔가 신기.....
 
제 연재주기는 짧으면 일주일 정도
입니다! 길면 어느 정도인지는 함부로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ㅠㅠ 그래도 겟글
많이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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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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