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안녕 [단편] (by. 몽글구름)

 
웃으며 안녕
 
 
 
 
BGM: 비쥬- 누구보다 널 사랑해

 
 
 
 
우리의 연애 시작은
너의 고백으로부터였다.
중학생 티를 갓 벗어낸 앳된 얼굴의 넌,
고등학교에 입학해 배정받은 첫 내 짝이었다.
그는 어떠한 꾸밈도 없이,
 
 

나 너 좋아해.”
 
 
담백한 고백을 내게 건넸고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에게는 담백한 고백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지만,
그가 싫었다면(혹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면)
담백했던 고백은, 성의 없는 고백이라며
의미가 전락될 수도 있었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
 
 
 
 
고등학교 3학년의 가을,
수능을 50일 앞둔 저녁시간.
 
윤기는 자신의 눈을
예쁘게 휘어지게 접어대곤,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자신의 식판에 담긴 맛있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내 식판에 담아주었다.
 
 
그럼 자기는
이거 줄까?”
 
 
난 다른 반찬을 좋아하는 그에게
내가 가진 반찬을 잔뜩 건네주었다.
 
 
우리의 이런 애정행각을 지켜보던,
 
 

얼씨구!
여기 신성한 학교거든?”
 
 
내 단짝인 지은이는
본인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였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거리며,
 

둘은 질리지도 않냐?
3년 내내 그렇게 붙어 다녀놓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무심하게 말을 뱉어냈다.
 
 
내 남자친구는 지은이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넌 지금 숨을 쉬면서
산소를 들이마셨다고,
그 다음에는 숨을 안 쉴 거야?
마치 ㅇㅇ는 내게 그런 존재라고!
굳이 비유하자면
산소같이 아주 소중한.”
 
 
나름 논리적인(?) 예를 들며,
나를 아주 거창한 사물에
빗대어 표현했다.
 
 
사랑꾼으로 소문난 윤기는
날 여전히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또 한 번 그에게 감동을 받았다.
 
쑥스러웠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너무 예뻐,


그가 좋아하는 반찬을 집어
그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윤기는 열심히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는
자신의 눈에 나를 담아내기 바빠 보였다.
 
 
난 그를 보고
바람 빠진 웃음을 지어보이자,
그도 데칼코마니처럼 나와 똑같은 웃음이
윤기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함께한 25개월의 시간동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닮아있었다.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이 행복한 미소처럼.
 
 
그녀는 여전히 애정행각이 끊임없는
우리의 행동을 보곤,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건성으로 가득채운 목소리만
의미 없이 내뱉었다.
 
 
 
 
*
 
 
 
 
간혹 연애를 하다보면,
서로에게 집중을 하는 탓에
성적이 주르륵-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걸
주변에서 종종 보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연애를 시작한이레로,
성적이 떨어지기는커녕
완만한 곡선이지만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지
얼마 안 됐던 때,
사소한 나만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게 문제가 되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
 
 
그러나 고민을 털어놓기까지
한참을 생각한 나로서는
뭐 별것도 아닌 고민으로 치부되는 사실에
오히려 더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상처 받은 마음을 안고,
힘없는 목소리로 지은이에게
털어놓던 같은 고민을
답답한 마음에 내 남자친구에게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게 너무 고민이야.”
 
 
그는 시무룩해져있는
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그랬어? 그렇게 생각했구나.”
 
 
따스한 음성으로
나를 이해해주었다.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아도,
자기가 내말을 끝까지 들어주면서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네?
앞으로 고민이 있으면
자기한테 다 털어놔도 되지?”
 
 

고마워, 숨기지 않고
진실 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긴,
철없는 사사로운 고민을
투정 없이 들어준 자기에게
오히려 더 고맙지!”
 
 
그때부터 내게 고민이 생길 때면,
그 고민의 크기가 작던
크던 가리지 않고
모조리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내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그냥 흘려듣는 법이 없었다.
 
 
 
 
그는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미래를 위해 택한 불완전한 길을,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자기의 꿈은 뭐야?”
 
 
?
이건 초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건데,
생명공학과를 들어가서
나중엔 연구원이 되고 싶어.”
 
 
- 꽤 구체적인데?”
 
 
-!
옛날부터 꿈 꿔왔던 꿈이니까.”
 
 
시간이 더해져
어느덧 느슨해졌던
나의 꿈의 끈을,
 
 

자기는 분명
생명공학분야의 연구원이 될 거야!”
 
 
그가 전한 희망적인 응원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했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자기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굉장히 멋있을 거 같아.”
 
 
자신의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게 내보이는 그였다.
 
 
자기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생명공학분야의 연구원이 되겠어!”
 
 
내 당찬 포부에
그가 작게 웃어 보였다.
 
 
자기의 꿈은 뭐야?”
 

? ,
명성을 떨칠 수 있는 만큼
실력 있는 작곡가가 되는 거?”
 
 
난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가진 그에게
어울릴만한 직업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꿈이 하나 더 생겼어!”
 
 
우와- 뭔데?”
 
 
내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나중에 자기 닮은예쁜 딸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보고 싶어.”
 
 
그는 어느새 발그레진 얼굴을
내게 보이지 않도록
살짝 숙여보였다.
 
 
이때는 한참 꿈 많고
희망으로 가득 찼던,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는 말쯤이었다.
 
 
 
 
*
 
 
 
 
고등학생 3학년들만
따로 모인 대도서관.
 
야간자율학습으로 정해져있던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고,
도서관 안은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볼펜이 움직이는 소리들만 들릴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수능이란 큰 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
.
.
 
 
 
 
도서관에서 교실로 내려온 난,
가방을 챙겨 그가 있을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습실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피아노 선율이 부드럽고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복도 벽에 기대,
난 눈을 감고 윤기가 연주하는
감미로운 음악의 세계로
잠시 빠져들었다.
 
그는 아마 모르겠지만,
난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행복한 우리의 미래를
남몰래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곤 했다.
 
 
여전히 서로의 곁에 남아,
각자의 꿈을 이룬
행복한 순간들을.
 
 
연주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난 활기차게 연습실문을 열어 재꼈다.
 
 
자기야, 나왔다!”
 
 
제법 큰 내 목소리에
그의 시선은 빠르게 나를 바라봤고,
 
 

자기야- 보고 싶었어!”
 
 
버선발로 마중 나오 듯
내 쪽으로 폴짝폴짝 뛰어오는 그였다.
 
이내 나를 자신의 품속에 쏙- 가둔 채,
따스한 온기를 내 안에 차곡차곡 채워주었다.
 
윤기의 품에서
간신히 얼굴을 빼낸 난,
 
 
아이고,
또 코피 났어?”
 
 
작게 돌돌말린 화장지가
한쪽 콧구멍을 막고 있는 걸
확인했다.
 
 
, 조금 전에
갑자기 코피가 나서.”
 
 
멋쩍어하는 그는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요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피부가
굉장히 하얀 편인 윤기는,
최근 들어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릴 때가 있었다.
 
그리고 코피를 흘리는 횟수도
전보다 더 잦아졌다.
 
 
윤기가 목표로 삼은
대학의 입학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준비해야 될 항목들이 많다고 했다.
 
물론 수능을 치르고
실기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예체능 정시는 체력전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요새 들어 자기가 밥도 잘 안 먹고
컨디션도 난조일 때가 많아서,
내가 다 걱정된단 말이야.”
 
 
걱정시켜 미안해.
앞으로는 잘 챙겨먹을게!”
 
 
그는 자신의 입가의 끝을
예쁘게 말아 올리며,
 
 

가자! 집에 데려다줄게!”
 
 
내 앞에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난 자연스럽게 그 위에 내손을 포개어,
서로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맞잡은 우리의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윤기는,
 
 

사랑해, ㅇㅇ.”
 
 
달콤한 목소리로 애정표현을 해왔다.
 
 
 
 
밤하늘에 힘차게 떠있는 달은
우리를 열심히 비추고 있었고,
덕분에 인도 위에는
우리커플의 그림자가 사이좋게 그려져 있었다.
 
 
윤기의 그림자는
저돌적으로 내게 다가왔고,
두 사람이었던 그림자는
어느새 하나가 되어있었다.
 
 
한사람도 없던 거리엔,
- 소리가 유난히
길고도 잦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
 
 
 
 
BGM: 소야앤썬- 웃으며 안녕

 
 
 
언제나 단단할 거라 예상했던
우리의 사랑에도 이별이 찾아왔다.
 
 
대망의 수능이 끝나고
맞이한 토요일 저녁, 파스타 전문점.
 
 
서로가 주문한 메뉴가
테이블위에 올라왔다.
난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올려,
한입에 쏙- 집어넣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기는
자신의 포크도 들지 않고,
 
 

맛있어?”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정스럽게 물어왔다.
 
난 입안에 있는 파스타 때문에
말 대신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자기는 왜 안 먹어?
먹어봐, 진짜 맛있다!”
 
 
내가 재촉하는 소리에
그는 포크를 들어 파스타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포크질은
몇 번을 끝으로,
 
 
? 그만 먹게?”
 
 
포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원래 위치했던 식탁위로 올려졌다.
 
 
더 먹지. 맛있는데.”
 
 
그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어보이며,
 
 
요새소화가 잘 안 돼서.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먹어!”
 
 
힘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윤기는 수능을 가채점으로 해본 결과,
자신의 예상했던 등급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고 했다.
 
아무래도 심적 부담감이 커졌던 탓인지,
요새는 피부도 제법 까칠해졌고
많이 예민해지기도 했다.
 
 
 
저녁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윤기는 닫혀져있던
입술을 천천히 떼어내며,
 
 

사랑해?”
 
 
낮은 목소리로 내게 질문을 해왔다.
난 단 1초도 지체하지 않고,
 
 
그럼 당연하지!
사랑해, 민윤기!”
 
 
바로 대답을 하며
그에게 내 사랑을 표현했다.
 
내말에 그는 푸시시-
바람 빠진 웃음을 지어보였고,
 
 
그럼 자기는,
나 안 사랑해?”
 
 
난 조금 새침하게
그에게 질문을 던져보였다.
싱긋 웃으며 이야기할 줄 알았던 그는,
 
 

너무 너무 사랑해.
그래서, 걱정이야.”
 
 
제법 무게가 드리운 얼굴로
대답을 꺼냈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공기에,
나는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이
익숙해질 무렵,
 
 

내 성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대학을
들어갈 수가 없더라.
 
과를 보고 한국에서
하향지원을 한다고 해도
나중엔 꿈을 이루기가
많이 힘들어 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말인데나 유학을 떠나서,
조금 더깊이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아.”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심스럽게 이별의 이유를
내게 고했다.
 
 
부모님과 어제 상의 끝에,
결국며칠 뒤에
떠나기로 했어.”
 
 
차오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며,
 
 
그럼 가서도 연락하고,
비록 장거리지만
그렇게 연애해도 되잖아.”
 
 
난 그의 말에 애써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여기에 있고 싶은데,
ㅇㅇ 네 옆에서 계속있고 싶은데.
상황이 안 된대.”
 
 
윤기는 먹지도 않는 파스타를
포크로 쿡-쿡 쑤셔대며,
 
 

유학 가있는 동안 분명,
시차도 차이가 꽤 날거고,
시차 때문에 연락이 뜸해지면서로 싸울 테고,
그러다보면 서로 지칠 테고.
그래서 그렇게 헤어지면
그땐 영영- 못 볼 사이가 되는 거잖아.
그건 싫어, 내가.”
 
 
자신이 미리 예상한
미래의 모습을 줄줄 읊어댔다.
 
 

가서 성공해서 돌아올게.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우리가 하던 사랑에서
한 발짝 멀어진 채 있자. ?”
 
 
윤기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잔뜩 묻어있었다.
묻었던 물기의 농도가 짙어짐에,
난 그도 원하지 않는 상황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내가 울고불고
가지 말라고 그를 붙잡는 것은,
다잡은 윤기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고,
윤기가 꾸는 꿈을 막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원하지 않는 결정을 내린
윤기의 뜻대로,
원하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하는 난,
 
더 이상 마을 잇지 못한 채
긍정의 의미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파스타전문점을 빠져나왔다.
나와 마주보고 서 있던 그는,
 
 

집으로 가자,
데려다줄게.”
 
 
늘 그렇듯 내 앞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난 그 모습을 보자,
가슴속의 울렁거림이
목울대를 강하게 건드려왔다.
 
 
이 따뜻한 손을 잡고
집 앞까지 걸어간다면,
우린 거기서 이별을 맞이하겠지?
 
비록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준비되거나 혹은 준비가 되지 않거나,
 
이별은언제나 아프다.
 
 
맞잡은 너의 손도
우리의 이별임을 알려주듯,
손이 평소와 달리 몹시 차가웠다.
 
그러나 그는 놓치기 싫다는
자신의 마음속 일부를 보여주듯,
 
 
가자.”
 
 
오늘따라 유난히
내 손을 꽉 잡아왔다.
 
나도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할지 몰라,
그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각별하고 가까운 사이었지만,
 
곧 인연이란 이름표를 떼어내며
멀어질 사이이기도 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
.
.
 
 
 
 
집을 향해 걷는 동안
앞으로 다가올 무겁고 아픈 상황에,
우리는 쉽사리 입을 열수가 없었다.
 
그러나 30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빨리 지나가버렸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우뚝 솟은
우리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별의 시간이 발 앞까지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물기가 잔뜩 서려있는
윤기의 목소리는,
 
 

나 없어도밥도 잘 챙겨먹고,
지금처럼 밝게 웃으면서 지내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작별인사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는 않고
오직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오랜 시간 간직해왔던
연구원이었던 꿈,
꼭 이루길바라고.”
 
사시나무가 떨리듯
파르르- 떨리는 그의 입술로,
야속하게도 이별의 위한 멘트를 내뱉고 있었다.
그의 핏기 잃은 입술은
여전히 사정없이 떨려왔다.
 
 
, .”
 
 
가라앉은 공기의 무거움 사이로,
 
 
왜 이제 다시 안 볼 것처럼
그렇게, 인사해?
유학가면 다시는 한국에
안 돌아올 거야?”
 
 
괜스레 나 혼자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
살짝 원망 섞인 투로 말을 내뱉었다.
 
자꾸만 드는 알 수없는 기분을 떨치고자,
 
 
올 거잖아.
아까 성공해도 돌아온 댔잖아,
그치?”
 
 
난 그에게 재촉을 하며
재차 확인을 하려했다.
 
그는 말없이 위아래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윤기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고 말을 할 땐,
 
 
 
그러니까, 나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혹시 누군가 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온다면,”
 
 
온전히 나와 마주친 시선에 집중한 채,
 
 

ㅇㅇ 네 기억 속에
잘 있다고 그렇게 말해줘.”
 
 
내게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전했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
생기를 잃은 푸석한 피부.
 
슬픔이 고스란히 담긴
자신의 표정을 애써 가리려고,
 
 
이제, 가볼게.”
 
 
그는 입가를 위로 끌어올리며
예쁘게 웃어보였다.
 
 

ㅇㅇ, 안녕.”
 
 
나 또한 그에게 기억될
마지막의 모습을 위해,
최대한 예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윤기는 말없이 나를
자신의 눈에 담아내더니,


고개를 작게 몇 번 끄덕거렸다.
 
 
눈가엔 슬픔을, 입가엔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그는,
잡고 있던 내 손을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우리는 지금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최대한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했다.
 
 
 
 
* * *
 
 
 
 
BGM: 스탠딩에그- 오래된 노래
 
 
 
 
 
난 지금까지 첫눈에 반했다-라는 표현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왔었다.
 
 
서서히 물들어왔던
사랑을 포장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내가 첫눈에 반한 그 사람은,
반짝거리는 아이였다.
 
분명 다른 아이들과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화사한 빛에
나의 시선을 온전히 빼앗겨버렸다.
 
그녀로부터 새어나오는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내 이성의 회로까지 마비시켰다.
 
그때, 내 심장이 쿵-하고 주저앉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이내 아래로 빠르게 추락해버렸다.
 
그리고 한참 뒤,
저기 발밑에서 두근거리는
내 심장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에서 보니,
그게 내 사랑의 시작이었다.
 
 
눈을 돌려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진한 노란색인 이름표를 쳐다봤다.
 
 
이름이 ㅇㅇㅇ구나,
심지어 이름마저도 예쁘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선 순간,
난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난 속으로 외쳤던
그때의 간절함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신이 계시다면,
부디 ㅇㅇ와 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신이 존재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운명처럼 난 너와 짝이 되었다.
설렘과 기쁨과 떨림이 한 번에 뒤섞여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그 오묘한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자신을 간단히 소개 한 뒤,
 
 
안녕, ㅇㅇㅇ.
반가워!”
 
 
살포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수한 얼굴위에
드리운 너의 예쁜 웃음에,
 
 

남은 내 마음마저도
온전히 빼앗겨버렸다.
 
 
 
 
.
.
.
 
 
 
 
한번 자리 잡은 마음은
햇빛과 양분이 충분한 덕이었는지,
내 사랑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집에서 공책의
어느 비어있는 부분을 펼쳐놓은 채,
연필로 쓱쓱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편지형식도 아닌,
그렇다고 순전히 낙서도 아닌
오로지 ㅇㅇ 너에 대한
내 감정만 주구장창 늘어놓은
애매한 글이 한 페이지를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쉰 후,
그 페이지를 거칠게 찢어냈다.
 
그리고 난 내 방에 있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붕 떠 있는 내 마음을 다 잡은 뒤,
다시 의자에 자세까지 고쳐 앉았다.
 
ㅇㅇ 네게 고백을
하기 위해 빈 페이지에,
고백을 위한 멘트를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그날 밤새도록 고백을 위한
멘트를 암기하기 위해
애를 썼던 내 마음을,
 
ㅇㅇ 넌 알고 있을까?
 
 
 
 
다음날 ㅇㅇ 네 앞에 서 있을 땐,
너무 긴장한 탓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결국 난 멋도 없는,
 
 
나 너 좋아해.”
 
 
두서도 없는 고백을 하긴 했지만.
 
 
그때 그 한마디를 전하는데도
입술이 바짝- 말라갈 정도로
미친 듯이 떨렸던 내 심정을,
ㅇㅇ 너는 알고 있을까?
 
 
 
 
*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고
종종 말해오곤 했다.
 
이 말 다음으로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남자애가 여자애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였다.
 
그래서였는지 내게 붙은 별명도
죄다 사랑에 관련된 것뿐 이었다.
 
 
만으로는 2년이 넘었고
횟수로는 3년째였지만,
우리는 그 흔한 사랑다툼도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 할 만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예쁜 사랑을 해오고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흔히 이상적인 연애.
 
 
 
그러나 한참동안
순탄하게 연애를 하던 우리 사랑에도
브레이크가 걸려왔다.
 
자고 일어나면 베갯잇 주변으로
한 움큼 빠져버린
내 시커먼 머리카락들이,
한번 생기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무수한 멍 자국들,
수시로 터져 나오는 코피까지.
 
 
처음엔 고 3이라서
무리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결정적으로 교실에서
쓰러졌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ㅇㅇ는 모를 것이다,
그때 내가 거짓말로 급하게 둘러댔으니.)
 
 
쓰러졌던 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친 뒤,
의사선생님은 결과지를 보면서
내 보호자인 부모님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긴 상담 끝으로
정밀검사까지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정밀검사 결과를 토대로 내려진 내 병명은
가히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급성 백혈병이랬다.
 
 
어두운 부모님의 표정을 뒤로 한 채,
난 허탈한 웃음만 새어나왔다.
 
 
이게 뭐지?
 
 
영화에서만 보던 이야기가
현실 속으로 스며들었단
사실이 믿기기 않았다.
 
꿈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내 손등을 꼬집어보았지만
아픔의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고,
빠르게 손등 위로 생기는
푸르른 멍의 색이 너무나 선명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눈물 섞인
울음소리가 똑똑히 들려오자,
그제야 현실임을 자각했다.
 
 

하아.”
 
 
뜨겁게 뽑아낸
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인 채
난 지그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건가?
 
 
난 지금도 이렇게나 건강한데,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인데,
 
아직이루어야할 꿈도 있고,
 
아직 해보지 않은 것과
내게 다가오지 않은 것들이
엄청나게도 많은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혹시 오진일 확률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깐 들었던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조금 전보다 커진
손등위의 시퍼런 멍이,
뜬금없이 터진 새빨간 코피가,
 
내 건강상태가 결코 좋지 못하다고,
대신 말해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내 앞에 계신 부모님께는
죄송스러웠지만
왜 네가 자꾸만 내 눈앞에
아른거렸던 걸까.
 
 

이 순간마저도
ㅇㅇ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그동안 애써 피해왔던,
이별을 전해야할 날이
결국은 돌아왔다.
 
 
고백멘트를 연습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별멘트를 연습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입에서 이별이란 단어가
나오게 될 줄이야.
 
 
연습을 위해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을 꺼내야하는데,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와,
난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아려오는데,
이별이 현실 속으로 들어온다면
난 어떻게 버텨내야 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
.
.
 
 
 
 
ㅇㅇ 너의 집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제 작별인사를 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없어도밥도 잘 챙겨먹고,
지금처럼 밝게 웃으면서 지내고.”
 
 
태연하게 말을 하려고 애쓰는 나와 달리
내 목소리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난 거짓말로 끝까지
가려야 할 사실을 위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시선을 앞으로 던져놓고.
 
 
오랜 시간 간직해왔던
연구원이었던 꿈,
꼭 이루길바라고.”
 
 
어제 준비했던
이별멘트를 기억하며
천천히 읊고 있었다.
 
 
입술은 왜 이렇게 떨려오는 건지.
 
 
, .”
 
 
다음멘트가 기억이 나질 않아
잠깐 더듬거리자,
 
 
왜 이제 다시 안 볼 것처럼
그렇게, 인사해?
유학가면 다시는 한국에
안 돌아올 거야?”
 
 
ㅇㅇ는 내게 야속한 듯,
툴툴거리며 말을 해왔다.
 
그렇게 눈물이 한 아름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올 거잖아.
아까 성공해서 돌아온 댔잖아,
그치?”
 
 
나보고 어떻게 거짓말을 하라고
그러는 건지.
 
 
그러나 억지로 난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보였다.
 
이내 죄책감 때문에
무거운 고개를 아래로 숙여버렸지만.
 
 
 
이젠 ㅇㅇ 너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지금뿐이란 사실에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러니까,
나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혹시 누군가 나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온다면,”
 
 
내가 준비한 남은 이야기를
마저 꺼내고 있었다.
 
 
ㅇㅇ 네 기억 속에
잘 있다고 그렇게 말해줘.”
 
 
부디 너의 기억 속에 나의 모습이
오래토록 아름답게 남아있길 바랐다.
 
 
 
슬픔을 가려보이기 위해 난,
 
 
이제, 가볼게.”
 
 
입가의 끝을 위로 끌어올리며
ㅇㅇ를 향해 예쁘게 웃어보였다.
 
 
ㅇㅇ는 나의 마지막 인사에,
 
 
ㅇㅇ, 안녕.”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잠시라도 너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난 한동안 말없이
ㅇㅇ 너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가 여기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게,
 
많이 아쉽지만
솔직히 너무 억울하지만,
 
내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하아, 그래.
이젠 진짜 보내줘야지.
 
보내줄게, ㅇㅇ.
 
 
난 속으로 중얼거리고,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의 욕심에
결심이 흔들릴까 싶어,
 
잡고 있던 ㅇㅇ의 손을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잘 포장된 거짓말과 함께,
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이별을 맞이했다.
 
 
 
 
*
 
 
 
 
BGM: 스탠딩에그- 오래된 노래
 
 
 
 
 
진통제가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고통이
나를 수시로 덮쳐왔다.
 
처음엔 진통제의 효과를 보긴 했지만,
내성이 생기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는 진통제가
통증을 가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숨을 편히 쉴 수도 없을 만큼
큰 통증이,
아무 때나 불쑥불쑥 찾아오는 바람에
며칠째 난 밤잠을 설쳤다.
 
 
끼니는 몇 끼 째 거른 건지,
몸에서는 물 한모금조차도
받아들일 수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내 체력을 이미
바닥을 들어낸 지 한참이었다.
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날들의
연속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병원에서
구비해놓은 진통제들이
하나도 듣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난 마약성 진통제까지 맞게 되었다.
 
 

얼마 만에 찾아오는
고통 없는 평화인건지.
 
 
오늘따라 유독 병실의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이
매우 밝고 화사해 보였다.
 
 
ㅇㅇ 넌 대학생활은 잘하고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너의 생각에,
대학생이 되어있을 너의 모습을
난 머릿속으로나마 상상해보았다.
 
 
지금쯤 한창 예쁠 때일 텐데,
그 옆에 내가 서 있을 수 없다는 게
속상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째 밤잠을 설친 탓에,
난 졸음이 몹시 쏟아져왔다.
 
 
ㅇㅇ, 네 옆으로 돌아간다는
약속은 못 지킬 것 같다.
 
그래도 ㅇㅇ 네 기억 속에는
남자친구였던 민윤기로,
너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어.’
 
 
난 최근 중 오랜만에
편하게 잠에 들 수 있었다.
 
 
꿈속으로 향한 난,
이제 죽음의 문턱을
넘는 일밖에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ㅇㅇ, 마지막으로 내가
조금 욕심을 부려 봐도 될까?
 
너와 함께였던,
나의 찬란했던 시간들과 모습들이
부디 너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기를 바랄게.’
 
 
 
미련이 많이 남고
아쉬움과 억울함을 말로
전부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윤기는 마지막 생각을 끝으로
정말로 편하게 깊은 잠으로 빠져버렸다.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였네요.
(어쩌면 뻔한 스토리 전개였을지 몰라도요.^^;)
그리고 사실 끝맺음을 이렇게
끝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있었지만요.
 
보통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져오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편이긴 하지만,
혹시나 다음 글이 조금 늦게 올라온다고 해도
독자님들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지만,
그냥 여기서 작가의 말을 끝낼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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