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기 전에 04 (by.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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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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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남주혁
서강준 박보검
전정국 황민현
오세훈 육성재
이태용 ???
 
 

.
.
.

 
 
청춘이 지기 전에 04
- EP 03. 그 느낌적인 느낌 느낌
 
 
 
 
 
남자친구에요.....?”
 
 
남자친구고 자시고,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워낙에 조용한 아이다 보니
패시브 스킬로 은신이 있는 게 분명해.
나는 짧게 숨을 뱉어내곤 이미 다 들통
난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너도 이 건물에서 수업 있었어?”
 
. 근데 저 대답 못 들었는데요.”
 
 
말 돌리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다.
황민현이 내 남자친구이길 바래서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한 게 아닌데,
태용이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서둘러 단호하게 말해야 했다.
 
 
아니야. 남자친구.”
 
 
헌데 내가 이걸 왜 해명하고 있지.
게다가 너는 내 주변에 항상 있는
남정네들은 별 말 안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냐??
 
나는 확실한 증거로 내 품에 돌아온
학생증을 척하니 눈앞에 들이 대줬다.
 
 
같이 수업 듣게 된 사람인데,
저 분이 내 학생증 찾아줬어!”
 
 
“...”
 
리액션 단편적인 거 봐라. 드디어
니 밥을 사줄 수 있게 됐다니까?”
 
잘됐다.”
 
 
영혼 없는 박수. 심지어 짝짝 박수
소리도 안 났어. 이쯤 되면 내가
사주는 입장이 아니었다. 콱 그냥
삼각 김밥 하나 사주고 생색은
고급 레스토랑 급으로 내버릴까.
 
 
뭐 먹고 싶어? 한식 중식 양식
일식 인도식 중에서 골라봐.”
 
누나는 뭐가 좋아요?”
 
?”
 

 
전 누나가 좋아하는 음식
먹을래요.”
 
 
분노의 주먹이 부들대다가 멈췄다.
이 짜식 언변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병 주고 약 주고의 전형적인 예였다.
툭 툭 던지는 한 마디마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거리는 게.
 
 
음식 안 가리고 잘 먹나보네.
태용이 넌 어디 살아?”
“...누나 나랑 정국이랑 택시..”
 
아하! 그렇지! 같은 동네였다!”
 
옆 동네라고 말했어요.”
 
“.......그렇구나...
 
 
이로써 알코올성 치매 인정!
나는 반성하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언젠가 술김에 카드를 좍좍 긁어놓고
다음 날 카드 내역에 놀라자빠질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괴리감보다
현실성이 더 느껴지는 걸 보니.
 
 

 
잠시만 전화 좀.”
 
 
뻘쭘한 타이밍에 운 좋게 태용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그의
첫마디는 여보세요가 아닌 짧고
굵은 한 마디.
 
 
.”
 
 
나의 경우 친구들과 통화할 때 일부러
비음을 섞어서 엽보쩨여?’라고 한글을
파괴해댔다. 아니면 단답을 하되 이름을
뒤에 붙여준다던가, 우리 중 전화 받기로
가장 무뚝뚝하다는 강준이도 오냐~’라고
받아주었다.
 
 

 
전정국? 내가 어떻게 알아.”
 
 
어쩌다보니 그의 통화를 엿듣게 됐다.
별로 좋은 얘기가 아닌 걸까. 그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음에도 미묘한
짜증이 묻어져 있었다.
 
 
상관없어.”
 
 
몇 마디 나눴다고 전화가 끊어졌다.
그의 마니또로써 내심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나는 조용히 물었다.
 
 
누구길래?”
 

 
배주현이요. 먼저 볼링장에
형들이랑 가있겠다는데요?”
 
? 과방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고?”
 
 
많이 기다리게 할까봐 수업 마치자마자
바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말없이 가버렸
다니까 약간은 서운해졌다. 왜 말 안
해줬지.....? 내가 태용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헛걸음이 될 거였다.
이번에도 나만 모를 뻔했잖아.
 
 

 
“00 안녕.”
 

 
“?”
 
오빠!”
 
 
운동장 쪽을 지나가다 축구화로 갈아
신고 있는 진영이 오빠를 만났다.
자신의 인사에 내가 더 격하게 외치자
귀청 떨어지겠다며 웃는 오빠.
나는 약간 따지듯이 추궁했다.
 
 
오빠 혹시, 과방 갔다 오는 길이에요?”
 

 
. 애들 너 기다리고 있다가 1학년
여자애들이 가자고 졸라대서, 나한테
만약에 너 만나면 볼링장으로 바로
오라고 강준이가 전해달라더라. ,
주현이가 연락한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모르니까.”
 
..?”
 
 
대본이라도 짠 건가? 정국이도 그랬
듯이 오빠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한테 연락이 올 거라고.
 
한 번은 내가 까먹은 거라고 쳤어도
두 번째부터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
 
 
나쁜 생각하면 안 돼.
아직은 심증뿐이잖아.
 
괜히 쿵쿵대는 심장을 눌러 앉혔다.
이런 의심쯤이야, 직접 물어보면
되는 거지.
 
 
가만 보면 1학년 여자애들은 동기들
보다 네 친구들이랑 더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애. 하기야 17학번이 재밌
기로는 소문났지.”
 

 
“00가 있어서 그런 거야.”
 
후배 사랑이 많이 격하시네.
그치만 나도 인정.”
 
 
축구공을 통통 튀기며 몸을 푸는
병오 오빠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덕에 기분이 조금 풀어져서는,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주말에 경기 있는데 올 거지?
기다리고 있는다~”
 
누구랑 붙어요?”
 
건축학과.”
 
에엑? 건축이랑요? 작년에 걔네한테
완전 발렸잖아. 나 축구경기에서
61은 첨 봄.”
 

 
그 때 메인들이 다 빠져서 그래.
이번엔 강준이도 있고 주혁이도
있는 걸. 너도 있고.”
 
누나도 축구 뛰어요?”
 
축구 뛰냐고?? 푸하하!!!!”
 
응원. 시끼야.”
 
너도 관심 있으면 와.
이 누나 흥부자라 재밌을 거야.”
 
 
아무래도 병오 오빠는 태용이를 축구
동아리에 들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의도를 알아차린 듯 태용이가 떨떠름
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시간 되면
보러가겠다는 확답 아닌 답을 내놓고는
그를 끌고 내려왔다.
 
시간이 3시라 오후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로
올라가는 사람이 많았지 내려가는
이들은 몇 없어 대학가는 한적했다.
 
 
정국이한테 연락 해봤어?”
 

 
알아서 잘 오겠죠.”
 
걔도 헛걸음 하게 만들지 말고
카톡이라도 보내봐. 아님 내가
할게. 정국이 전화번호 뭐야?”
 
“........여기요.”
 
 
그는 전정국이라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내 폰에
받아치고는 정국이가 혼자 헤매기 전에
얼른 카톡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정국인 주현이가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제 번호는요?”
 
?”
 

 
제 것도 알아두세요.
마니또잖아요.”
 
 
카톡을 보내자마자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이 태용이에게로 넘어갔다.
친해진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이상하게도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왜 어제 번호교환을 안 했나
싶을 정도로, 학생회가 제시한 마니또의
위용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뭉치 왔다~”
 

 
태용이랑 같이 왔네?”
 

 
누나!”
 
 
볼링공을 고르다 우리를 맞이한
애들이 제각각 인사를 건넸다.
정국이는 우리보다 빨리 와있었네.
카톡을 보낸 보람이 없었다.
 
나는 신발을 갈아 신으며 코트를
의자에 걸쳤다. 그러다 불쑥,
시야에 주현이가 튀어나왔다.
 
 

 
? 언니!”
 
 
새내기스럽다는 미소의 표본이었다.
어제 같았음 귀엽다며 칭찬을 해줬
어도 모자랐을 건데, 불과 하루만에
사람 이미지가 몇 번이고 바뀐다.
 
이왕 온 김에 물어보고 싶어 운을
떼려는 순간, 주현이가 두 손을
깍지 끼고 울상을 지었다.
 
 
제가 연락했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가는 길에 결경이가 이제부터 휴대폰
만지는 사람 볼링 값 내자고 하는
바람에 그거 신경 쓰느라 까먹어
버렸어요....죄송합니다.”
 
 
니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해. 내 대답은 어찌 보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쁜 년이 되지
않으려면, 주현이를 용서해야 한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애한테
따지려 들면 손해 보는 건 나라고.
 
 

 
핑계 좋다.”
 
“........?”
 
괜찮아, 주현아. 강준이가 진영
오빠한테 잘 말해놔서 안 엇갈리고
왔어. 태용이도 오는 길에 만났고.”
 
, 감사합니다! 언니 진짜 착하신
거 같아요! 다음부턴 꼭, !
언니 먼저 연락드릴게요.”
 
그럴 필요까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사양을 하든
안 하든, 주현이는 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이미 새겨놔서가 아니라, 그냥 촉이 그랬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언제 한 번 만나자
해놓고 그 뒤로 영영 만난 적이 없다는
여자들의 속 빈 대화.
그렇기에 나는 말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뭉치, 우리 팀 먼저 짜놨는데
괜찮지? 대신 너 주핵이랑 팀이다.”
 
또 누구 있는데?”
 
정국이랑 태용이. 그리고 오세훈.”
 
 
정국이나 태용이는 실력을 안 봐서
모르겠으나 주혁이가 우리 팀이란
것만으로 우리는 반절 먹고 들어간
것과 똑같았다. 세훈이도 컨디션만
좋으면 스트라이크는 제법 쳤으니까.
 
수업이 있어 오지 못했다는 ㅁㅁ를 제외
하고 결경이와 보검이, 주현이, 강준
이랑 성재가 같은 팀이었다. 성재는
들뜬 목소리로 볼링공을 연신 닦아댔다.
 
 

 
내기 하자! 내기!”
 
, 육성재 운빨 안 좋은데 같은
팀 됐네. 돈부터 준비해놔야 하냐?”
 
오빠 저희가 있잖아요~”
 
볼링 잘 쳐?”
 

가르쳐주세요!”
 
 
결경이의 말에 강준이가 포기했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 나 기권. 얘네 1도 몰라.”
 

 
볼링 한 번도 안 쳐봤어?”
 
 
잘은 못 쳐요.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보검이는 볼링 치는 자세의 정석을
보여주며 따라하는 여자애들을 한 명씩
코치했다. 여기서 또 학회장의 큰 그림을
보고 가는 구나.
 
 
강준이 오빠. 이렇게 치는 거 맞아요?”
 
걍 대충 쳐~”
 

 
어떻게 그래요. 이겨야 하잖아요!”
 
간혹 처음 쳐보는 애들이 더 잘할
수도 있긴 한데, 저 팀에 남주핵이
있는 이상 글러 먹었어.”
 
 
한창 볼링 수업이 진행되는 보검이네와
대조되는 우리 팀은 주혁이를 필두로
여유만만 한 모습이었다. 주혁이는
어깨에 힘이 잔뜩 올라서는 내 머리에
살포시 손을 내려놓고 믿음직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내 애제자 뭉치야. 오늘 네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느니라. 스트라이크
2개만 치거라.”
 
예이
 
누나 볼링 잘 쳐요?”
 

 
작년엔 50도 못 넘었다가 남주혁
한테 개인과외 받고 급속도로 성장한
케이스다. 남주혁이 e스포츠 빼고는
웬만하면 잘하거든.”
 
과외비 선 제시 받음.”
 
 

 
이 분...메이플 자유시장에서 유명한
보부상이라더니 틈만 나면 장사질을
하려고 하네. 나는 도리질을 했다.
 
 

 
형아 하는 거 잘 봐.
팔을 뒤로 뺐다가, ? 반동을
이용해서 굴리란 말이야.”
 
 
첫 순서로 낙점된 주혁이가 베테랑미를
과시하며 꽤 무게가 나가는 볼링공을
굴렸다. 안 보고도 스트라이크지!
 
볼링 고수라면 핀이 넘어가는 건 소리로
들으면 안다며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 거터인데?”
 
또랑이다!!! 남주혁 또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팔을 뭐 어쩌라구요???”
 

 
......어어?!”
 
노룩거터 잘 봤다~”
 
 
사람이 이래서 겸손해야한다고,
주혁이는 순식간에 놀림감이 되었다.
우리도 저게 스트라이크가 안 될 줄
알았나. 예상치 못한 그의 트롤짓에
상대팀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저 형처럼만 안 하면 돼.
정국이는 볼링 잘 쳐?”
 

 
저도 사실 잘 못 쳐요.
자세가 이상해서...”
 
괜찮아~ 나도 자세 완전 구려!
근데 가끔은 정석대로 안 쳐도
스트라이크가 될 때가 있단 말이지.
너도 너대로 하면 돼.”
 
누나 그러고 치게요?”
 
?”
 
 
나 뭐 잘못했나? 옷에 뭐 묻기라도
했나 싶어 원피스를 펄럭이는데 화기
애애한 저쪽 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주현이에게
보검이가 자신의 겉옷을 둘러주고
있었다.
 
 

 
오빠 감사해요~”
 
누나도 치마잖아요.”
 
 
정국이의 말의 요지를 알아차린 나는
손사래를 치며 볼링공을 골랐다. 주혁이
보다 4파운드는 가벼운 공이었다.
 
 
난 필요 없어.
허리 굽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거 보단 낫죠.”
 
 
정국이의 항공점퍼가 허리에 둘러지고
세훈이가 의미모를 휘파람을 불어댔다.
어쨌든 배려에 감사하며, 주혁이의
열띤 응원을 받은 나는 라인에 섰다.
 
 
가라 뭉치!! 돌 굴리기!!!”
 
!”
 
 
내가 볼링 치는 자세는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지만 꽤 어정쩡했다.
스쿼트 자세에서 볼링공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반동 따위 무시하고 출발점에
툭 놓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 붙는 속도는 0에 가까워, 핀을
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삐빅, 목적지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어느 세월에 굴러가냨ㅋㅋㅋ
 
레인이 오르막이었으면 도로
굴러오고도 남았겠다.”
 
 
하지만 결과물은 좋았다.
 
 
이예에에ㅔㅔㅔㅡ!!! 봤냐! 봤냐고!!!”
 
 
핀이 보다 못해 쓰러져주겠다는 듯
갈대처럼 누웠다. 여태 경기 중 가장
힘없는 스트라이크였다.
 
어떠랴, 결과만 좋으면 됐지.
 
 
ㅋㅋㅋㅋㅋㅋ미쳤넼ㅋㅋㅋㅋ
존나 야매볼링이닼ㅋㅋㅋㅋ
 

 
스승으로서 기쁘구나.
안기거라 제자야!!”
 
스승님! 소인은 스트라이크이온데
스승님은 또랑인 게 말이 됩니까.
소인이 발가락으로 쳐도 그거보단
잘 치겠사옵니다!”
 

 
남주핵 놀리는 것 보소ㅋㅋㅋㅋ
근데 맞는 말이라서 반박불가 잼.”
 
찌발.”
 
 
남주혁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짐을
이용해, 이때 아니면 언제 볼링 가지고
놀려 먹겠냐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뽕을
뽑아댔다. 볼알못 남주핵 빼앰!
 
그러다 주머니의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려대 어디 단톡에 초대라도 됐나
싶어 휴대폰을 꺼내봤다.
 
 

한국사 황민현
[00]
 
?!”
 
 
미리보기만 하고 말려던 손이
삐끗해 채팅창을 눌러버렸다.
바라지 않았던 1이 사라져버리고,
나는 답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인사부터 해야 하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야할지 잠깐 고민했다가
가장 무난하게 답하기로 했다.
 
 
[!]
 


한국사 황민현
[혹시 한국사 책 샀어?]
 
[아직이요]
 


한국사 황민현
[나 작년에 같이 들었던 친구한테
한국사 책 얻었거든. 가질래?]
 
 
, 대박!
기쁜 소식에 타자치는
손의 속도가 올라갔다.
 
 
[, 정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사 황민현
[수업 때 줄게ㅎㅎ]
 
[덕분에 돈 아꼈어요.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이렇게 받기만 하면 죄송해서..]
 
 
돈이 굳었단 사실에 행복한 기색을
안면 전체로 뿜고 있는 찰나, 옆에서
세훈이가 휴대폰에 얼굴을 들이댄다.
 
 

 
누구야?”
 
나랑 수업 같이 듣는 사람! 쩔지~?”
 
프사 보자.”
 
 
보자던 사람은 세훈이 한 명이었건만
사진이 뜨자 박히는 시선은 여러 명
이다. 태용이나 정국이는 물론이고
옆 팀 강준이까지 원정을 온 상태.
 

 
나도 프로필을 자세히 본 게 아니라
겸사겸사 보게 되었다. 상태 메시지는
없고, 배경화면도 없이 프로필 사진만
딱 하나 있어 길게 볼 필요는 없었지만.
세훈이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 잘생겼다. 계 탔다 너?”
 
이 사람이 학생증도 찾아줬어.
아무래도 인연인가봉가.”
 
개뼉다구 같은 소리를 해.
, 니 차례거든?”
 
난데?”
 
그랬냐?”


 
존나 상처. 내가 우리 팀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데.”
 
 
성재가 쏘아올린 볼링공은
핀을 하나만 무너뜨렸다.
 
 

 
패배의 원흉이로구나 네가.”
 
스페어 처리하면 되잖아!”
 
볼링공이랑 입장
바꿔서 하면 될 듯.”
 
오빠 잘할 거 같은데요?”
 

 
맞아요!”
 
“...!! 얘네도 날 응원해주는데
저 새기는 갈구기만 하고!!”
 
오빼 못 치기맨 해여~”
 

 
징그러.”
 
 
상대팀이 분열되거나 말거나, 나는
나머지 카톡들도 처리하기로 했다.
진동의 주범이기도 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은 아직도
숫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내 사랑 경리
[00! 000!]
 
[?]
 

내 사랑 설현
[낼 모함?]
 
[낼 수업 없음]
 

내 사랑 경리
[청하 생일 이번 주 토욜이잖아.
생파 너네 대학 근처에 사거리 쪽
클럽 갈 예정인데 가자]
 
 
클러업?”
 

 
클럽 가요?”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덥석 물은
태용이가 되물었다. 그의 똘망 똘망
한 눈을 보고 있자면 왠지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 같아. 거짓말을 못 치겠다.
 
 
, 친구 생일이래서.”
 
니 고등학교?”
 
. 그 왜, 작년에 너한테 썸녀
소개시켜준 여자애 있잖아. 청하.
걔 토요일에 생일이거든.”
 
 
그러고 보니 선물을 안 샀네. 나는
급히 머리를 굴려 선물 리스트를
뽑아봤다. 작년이랑 겹치면 안 되고,
다른 애들이랑도 겹치면 안 되는
좋은 선물은 무엇이 있을까.
 
 
왜 생일 파티를 거기서 해요?”
 
그야 신나니까...? 나도 방금
들은 거라 대답 아직 안했어.
생일 선물은 뭘 하지...”
 
주혀깅~”
 

 
개소리 조금만 작게 하자~”
 

 
누나! 저 스트라이크 쳤어요!”
 
이야, 우리 정국이 잘한다!!
자세 다 필요 없어, 치면 끝이야!”
 
 
칭찬해달라며 쪼르르 온 정국이가
귀여워 나는 대충 카톡에 알겠다는
식으로 보내고 도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일단 놀고 집에서 생각해야지.
 
 
“........”
 

 
오빠 볼링 안 쳐요?”
 

 
“.....? 칠게.”
 
 
당연스레 우위를 점하며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볼링 내기는 의외로 치열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터키
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주어,
일 년에 있을까 말까하는 주핵이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
 
 
 
볼링장 다음으로의 행선지는 다름
아닌 게임장이었다. 중학생들이 마친
시간인지, 교복을 입은 무리들이 곳곳
분포해있었다. 우리는 잔돈을 바꾸고
하고 싶은 게임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나는 위로 친오빠만 있다 보니 인형놀이
보다는 게임에 더 익숙해있었다. 특히
게임장에 있는 것들은 어릴 적 시간만
나면 오빠랑 해댔기 때문에 신상 게임
기를 제외하고는 제법 다룰 줄 알았다.
 
 
태용아, 나랑 듀오로 총겜 할래?”
 
 
태용이는 말없이 총을 꺼내들었다.
천원을 넣고 발판에 발을 올려, 프롤
로그는 가뿐히 건너뛰었다. 항상 봐왔던
스토리라 이젠 어디서 누가 튀어나올지
짐작이 가, 나는 능숙하게 총을 갈겼다.
 
 

 
얘 에임 미쳤어. 맥크리
잘할 거 같지 않냐?”
 
맥크리 원챔으로써 인정한다.”
 

 
“...누나 살면서 이것만 했어요?”
 
작년에 결말 봤다매? 왜 또 하냐.”
 
누가 내 기록 깼거든.”
 

 
이런 애가 왜 서든을 안했는지
의문임. 게임 센스가 쩌는데..”
 
오빠 저희 철권 해요!”
 
 
주현이가 애들을 불렀다. 그럴까?
보검이가 따라나서며 나머지 애들도
철권이란 말에 흥미를 보였다.
 
 

 
무슨 캐릭터 주로 해?”
 
, 중국 여자애 있잖아요!
걔랑 곰이요!”
 
 
곰은 쿠마고, 중국 여자애는 아마
샤오유일 거다. 나는 총을 쏴대면서
이름을 생각하다 한 방 맞았다.
친오빠한테 한 번 이겨보겠다고 학교
공부는 때려 치고 철권 공부만 했던
때가 떠올랐다. 함정은 아직도 못 이겨
봤다는 점.
 
 

 
철권은 뭉치가 진짜 잘해.
콤보 졸라 잘 넣는다니까.”
 
야 뭉치!!! 그거 다 하고
나랑 뜨자!!!”
 

 
저는 그럼 뭉치에게 백만 원
걸겠습니다. 아멘.”
 
“......! 펀치 기계도 있네?
철권말고 이거 어때요?”
 
이것도 괜찮지.”
 
 
팔랑귀들만 모아놨나, 철권은 어느새
뒷전이고 펀치기계로 하나 둘 모여든다.
나는 게임이 끝나지 않아 갈 수 없지만
태용이랑 정국인 왜 여기 서 있는지.
스테이지를 하나 끝내놓고 쉴 때
한숨을 돌리며 동생들에게 말했다.
 
 
구경하는 거야? 저기 펀치기계
하러가도 되는데.”
 

 
형들은 안 신기한가 봐요. 저는
이 게임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는
사람 처음 봐서, 보고 있는 거예요.”
 
나도.”
 
쟤들은 작년에 봤거든. 나도 결말
다 알아서 흥미는 없는데 신기록
달성하려고 이러고 있는...!!!!”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한 것도 모르고
조잘대다 마지막 한 방을 맞아버렸다.
 
돈을 넣으면 다시 시작하긴 해, 하지만
내 승부욕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친오빠 왈, 죽으면 끝이지 부활해서
신기록 먹어봤자 돈지랄이라며.
그걸 듣고 자란 나는 아무리 억울
하고 분해도 돈을 넣지 않았다.
 
 
돈 넣으면 살잖아! 돈 넣을까요?”
 
아니야 괜찮아. 죽은 걸 어째.”
 

 
결말 보고 싶었는데.”
 
 
죽은 건 난데 왜 너희들이 시무룩
하니...? 의아했지만 한편으론 귀여
웠다. 정국이야 원체 애가 귀염상이라
그렇다 쳐도, 태용이한테서 그런 면을
보니 귀여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펀치 기계 하러 가자!”
 
 
결말은 다음에 꼭 보여주겠다고 손가락
까지 걸고 약속을 했다. 지폐를 소중히
쥐고 있는 정국이의 손을 내리게 하곤,
나는 멍한 태용이를 끌어당겨 꽝 소리를
내는 펀치기계 앞으로 겨우 데려갔다.
 
성재가 있는 힘껏 밀어치는 중이었다.
 
 
누가 제일 점수 높아?”
 
현재까지 빡검이 890.
너도 하려고?”
 
혹시 아냐, 천 점 넘을지.”
 

 
허언이 심하다.”
 
시마다 한조?”
 
핵노잼. 꺼져.”
 

 
누나 손 다치는 거 아니에요?”
 
 
팔을 걷어붙이는 나를 보고
정국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다치기야 하겠어? 그냥
밀어버리면 되잖아.”
 

 
잘못하면 손목 다쳐요.”
 
세게 안 칠 거야. 걱정 마!”
 
니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친다고
생각해 봐. 그럼 점수 잘 나올 걸.”
 
, 좋은 생각.
 

 
남주혁 나쁜 새낑!!!!”
 
“!?”
 
 
나는 가속을 받기 위해 기계에서
몇 보 떨어진 곳에서 달려왔다.
손목보호랍시고 손목을 한 손으로 잡고
체중을 실은 채 몸을 날려, 의욕이 앞선
나머지 목표에서 비껴버렸다.
 
 
!!!”
 
 
시원한 헛스윙이었다. 중심을 잃은
내가 땅으로 고꾸라지는 걸, 용케
강준이가 받아내며 코가 처박히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냐?”
 
....”
 

 
펀치 기계라잖아. .
왜 몸으로 하냨ㅋㅋㅋㅋ
 
 
빵점이네.’ 그는 볼을 꼬집었다.
아프지는 않지만 쪽팔렸다.
 
이후로도 펀치기계에서 보검이를 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인형 뽑기에
농구에 게임장에서 1시간 넘게 시간을
보냈고 밖으로 나오자 7시가 넘었었다.
 
배가 슬 고픈 참이었다.
 
 
우리 술 마실까요?”
 
너희 어제 그렇게
마시고 괜찮겠어?”
 

 
당연하죠. 오빠가 저희
데려다 줘서 완전 말짱!”
 
 
주현이는 사람을 모으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적어도 반장은 해봤을 거 같아. 나는
약속된 내일을 제외하고 오늘까지 술을
마시게 되면 돈도 돈이지만 간에게
죽을죄를 지는 느낌이라 내키지 않았다.
 

 
갈래?”
 
난 집에. 재밌게 놀아.”
 
너 간다고?”
 
 
놀래지들 좀 마라. 나도 사람 아니냐.
하긴 7시에 집에 들어가는 게 오랜만
이긴 하다. 엄마가 보면 놀래겠네.
 
 

 
버정까지 데려다 줄게. 안 그래도
나도 운동장 올라가봐야 해서.”
 
진영이 형 축구하고 있대?”
 
. 나중에 남주핵 취하면
연락해라. 데리러 갈 테니까.”
 

 
오늘은 나도 쉴래.
술 한 병은 좀 심했었거든.”
 
드디어 양심선언 하냐.”
 
 
나만 빠질 줄 알았더니 뭐야,
다 빠지고 있다. 심지어 태용이랑
정국이까지 집에 가겠대.
 
 

 
누나 버스 몇 번 타요?”
 
250.”
 
같이 타면 되겠네.”
 
“250X동 안 가지 않냐?”
 

 
B동인데요.”
 
....
 
누나...”
 
 
3차는 다음에 가자는 분위기로 흘러
갔다. 세훈이와 성재 역시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냈다.
 
 
 

 
우리도 그냥 옵치나 하러갈 각?”
 
배치고사 받으러 가자.
빡검 캐리 좀.”
 

 
주현아. 다음에 술 마시자.
괜찮지?”
 
“.... 물론이죠.
연락할게요~!!”
 
조심히 들어가 얘들아.”
 

 
네 언니 들어가세요~!!”
 
 
우리는 뿔뿔히 분산되었다.
주현이가 손을 흔들며 결경이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는 걸 보고,
나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 오늘 쟤네랑 말 몇 번
섞은 적이 있었나...?
 
 
 
 

 
“........진짜 짜증나네...”
 
 
 
 
 
*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12
에서 1시의 거리에는 유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듯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특히나 클럽 앞 대기 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고, 대기자들의 발 밑엔
시간이 지날수록 담배꽁초가 쌓여갔다.
대낮엔 확 튀던 의상들이 밤이 되자
흔한 유행이 되어버리며 겨울임에도 불구
하고 여자들은 계절파괴자를 자처했다.
 
나는 19살 적 클럽 도장 깨기라는
슬로건을 걸은 적 있었으나, 혼자서
하기엔 깡도 없고 인맥도 없었다.
더군다나 평소 하고 다니던 화장이나
옷차림이 클럽에선 조선시대와 같은
분위기로 취급받는다는 게 충격이라,
아예 발길을 끊을까 생각도 했었다.
 
 

 
“000! 빨랑 와!”
 
 
그런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새벽 1시에
클럽을 드나들 수 있게 된 데에는 고등
학교 친구인 경리 덕이 무척 컸다.
그녀는 학교 출석하듯 클럽을 다니는
이른바 클럽 죽순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고, 클럽 안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그만큼 경리와 함께 한다면
입구 프리패스는 무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안녕 오빠~”
 
 
보디가드들은 경리와 친하게 인사하며
그녀의 일행들을 통과시켜 주었다.
거기에 포함된 나는 은근히 희열감을
느끼곤 했다. 대기 열에서 우릴 바라
보는 눈빛이 느껴지는 걸 좋아한다니,
변태가 아닐까 속으로 웃었다.
 
 
생일 축하해 쩡아!!!”
 
오늘 집에 못 들어가는 줄 알아!!”
 
 
클럽에 오는 멤버는 정해져있었다.
경리의 주도하에 청하가 날짜를
정하고, 나와 설현인 맞춰서 따라가는
역할이었다. 우리는 빈번히 일어나는
헌팅에 맞장구치며 술을 마시기보다는,
우리끼리 웃고 떠들며 춤추다가 체력이
방전되어 집에 간 적이 더 많았다. 간혹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기면 그 때 그 때
알아서 자리에서 빠지는 게 우리의 암묵
적인 룰이었다.
 
 

 
야 이 비싼 걸, 고마워!”
 

 
생일이라니까 데킬라 공짜로
주는 거 있지? 여기 룸도 말이야,
이 언니가 입 좀 털어봤다.”
 
멋져 우리 쟈깅!”
 
생일빵은 언제 하면 돼?”
 
지금.”
 
지금?”
 

 
지금!!”
 
아악!!!!”
 
 
청하의 코에 케잌 크림이 덕지덕지
발렸다. 그래도 좋다며, 청하는 돌고래
뺨치는 고주파 소리를 내며 폭죽을
터뜨렸다. 룸 밖에서 쿵쿵대는 음악
소리가 우리의 축하파티를 호응해주었다.
 
 
, 00 너 과팅 안 나갈래?”
 
무슨 과팅? 내 학번에 여자는 나
하나뿐인데 1학년 애들이랑 같이
나가라고?”
 

 
아니. 나대신 나가달라고. 이번에
일중이 오빠가 자기 고등학교 후배들
이랑 우리 과랑 과팅 주선했는데 내가
그 날 다른 약속이 있다는 걸 깜박
했거든. 근데 너 나가면 반응도 좋을
거 같고,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
일수도 있는데 가볍게 즐기다 오라구.”
 
그래도 되는 거야?”
 
일중이 오빠한테 떠봤는데 엄청
좋아하더라. 차라리 자기한테 따로
소개팅 해달라는 걸 말 돌리느라
혼났다.”
 

 
일중이 오빠 여친 없어?”
 
, 너 해달라고 해?”
 
거절.”
 

 
불쌍한 일중이...”
 
 
경리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큭큭 웃었다.
생일 선물들을 다 열어보고 테스터도
마친 청하가 마지막으로 거울을 꺼냈다.
무대의상을 점검하는 것처럼, 우리는
방을 나서기 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행동했다. 속눈썹은 잘 붙어있는
, 립스틱이 앞니에 묻어버린 건 아닌지,
건조해서 화장이 떠버린 건 아닌지.
 
동기들과 있을 때와 확연히 다른 풍경
이었다. 그들은 게임 브리핑만 할 줄
알았지 내 얼굴 상태에 대해서는 무척
단순하게만 말했었다. 보검이가 그나마
정확하게 알긴 해...
 
 
과팅 언제 해?”
 
다음 주 목요일. 여유롭지?”
 
, 목요일!? 나 옷 없어!”
 

 
야 니가 우리 중에서 옷 제일
잘 입잖아. 난 걱정 안 된다~
설현아 나 니 글리터 좀.”
 
이거 펄감 핵쩔어.”
 
 
나 아직 나간다고 안 했어,
그런데 확정지어진 분위기다.
목요일 스케줄 비워두라는 청하의
말부터, 모자부터 신발까지 입으로
코디해주는 경리의 말까지. 설현이가
문고릴 잡아당기면서 귀에 때려 박는
사운드에 내 앓는 소리는 묻혀버렸다.
 
 

 
오늘 물 좀 좋냐?”
 
시간 더 지나봐야 돼.
나 저거 봉 찜!”
 
이상한 놈 들러붙으면 바로
신호 쳐야 된다 알겠지?”
 
옹야.”
 
 
경리는 한달음에 무대의 폴대를
잡으러 갔다. 춤에 자신 있는 사람
이라면 한 번 쯤은 이용해봤을 폴대는,
많으면 하나에 세 명씩 잡고 있었다.
 
레이저가 머리 위에서 어지러이
돌아다니며 시끄러운 음악과
콜라보로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일전에 마신 데킬라의 기운으로
천천히 몸을 흔들었고, 오늘은 어떤
이가 이곳을 사로잡을지 스캔했다.
 
클럽 안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처음 보는 이성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이리저리 들쑤시는 사람, 2층에서 1층의
춤추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한 손엔
마실 것을 하나씩 들고 있는 사람,
방문에 얼떨떨하게 리듬만 타는 사람,
누가 봐도 클럽 좀 다녀보인다 싶은 사람.
 
이중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어중간한
부류였다. 다시 말해 경리나 청하처럼 일상
생활에 벗어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스트
레스를 격하게 푼다면, 나는 그러고 싶은
심정은 다분하나 용기가 없는 케이스다.
 
 

 
, 쟤 이선미 아냐?”
 
 
설현이 턱짓으로 가리킨 끝에는 애쉬
그레이로 물들인 머리에 멀리서 봐도
찰랑이는 귀걸이가 눈에 띄는 여자가
웨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위엔
남자들이 에워싸고, 흡사 여왕 같았다.
렌즈가 건조해질 때까지 그녀를
응시하다 나는 아! 하고 아는 척을 했다.
 
 
우리 학교 다녀.”
 
쟤 고등학생 때부터 유명했잖아.
연예인 지망생이니 뭐니 말 많고
인기도 쩔었지 아마?”
 
동갑이야?”
 
아니, 2살 많아.”
 
쟤라고 해서 동갑인 줄 알았네.”
 

 
아는 사이도 아니고 뭐 어때.”
 
저 여자, 남자친구 있을 걸?”
 
뭐어!? 누구???”
 
 
이 말은 하면 안 됐었다.
단순 추측에 불과한 걸, 이게 바로
카더라 통신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는 얼버무렸다.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저 여자랑
항상 같이 다니는 남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나랑 같은 수업 듣거든.”
 
잘생김?”
 
. 인기 많더라.”
 
니가 뺏어!”
 
미친, 뭐랰ㅋㅋㅋㅋㅋ
남친 아닐 수도 있다니까?”
 

 
그럼 너가 가져! 더 좋다~”
 
, 가질 수 있어서 가졌음
진작에 첫사랑부터 가졌어.”
 
그건 그래.”
 
 
빈말에 빈말로 받아쳤다. 뼈가 없어서
우리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노래가
정신없이 바뀌면서 드라이아이스가
갑자기 뿜어져 나와, 설현이가 뭐라고
덧붙이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만 있다가 나오면 다음 날은 목이
쉬는 게, 전부 이유가 있었다.
 
 
나 장실 좀!”
 
똥 싸러???”
 

 
뭐래!! 화장 고치러!!!”
 
?”
 
!”
 
 
같이 수업 듣고 놀았던 정 무시
못한다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오세훈처럼 말하고 있었다.
남 욕할 처지가 아니었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설현이에게 다녀오라
손짓했다. 끽해야 5분이면 오는데
혼자 노는 것쯤이야.
 
마침 내가 즐겨 추는 노래가 나와 흥이
오른 참이었다. 디제이가 오늘 선곡을
잘해, 칭찬을 하며 머리를 버릇처럼
쓸어 넘겼다. 이상하게도 여기만 오면
자신감이 뿜뿜 솟아올라 내가 춤신춤왕
이라도 된 기분에 몸이 둥 떠다니는 듯
한 착각이 든다. 조명이 어두워서일까,
혹은 청하의 말처럼 한 번 보고 말 사람
들이라 거리낌이 없는 것일까.
 
 
“!!”
 
 
한창 신나게 골반을 흔들고 있던 중
허리에 감기는 팔에 인상이 구겨졌다.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거, 욕도 했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예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
의외로 담담했지만 기분이 나쁜 건 늘
똑같았다. 이곳에서는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이 자주 일어나기 마련이어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뒤를 잡힌
다는 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팔을 치우고 다른 자리로 옮기려고
하자, 더더욱 밀착해오는 남자.
일부러 부비적 거리는 부분에
진심으로 한 대 치려고 했다.
 
 
아 좀 떨어져....!”
 
어머! 너 웬일이니?!”
 
 
남자가 밀쳐졌다. 내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미라는 여자에게서. 그녀는
가슴이 파인 스팽글 원피스에 북실한
퍼를 걸치고 있었다. 남자는 민망한 듯
엇박자로 리듬을 타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애랑 놀지 말고 나랑 놀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남자를 어깨로 치며 계단을 올라갔다.
 
가는 내내 어찌나 그녀를 아는 사람이
많은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생글
생글 웃는 상이던 그녀가 단절된 공간에
발을 들이자마자 표정에 생기가 사라
지며 화장대에 퍼를 무심하게 벗어
던지고 거울을 등진 채 걸터앉았다.
 
한순간의 일에 입이 얼어버린 나는
아까 전부터 입술을 벌린 상태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바보스럽다
깨달았을 때, 그녀가 킬힐을 신은
다리를 꼬며 말했다.
 
 

 
, 황민현 알지?”
 
 
그녀는 지나가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를 구해준 게 아니었다.
나는 황민현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였다. 이런 것도 인복이라
칠 수 있는 걸까.
 
 
같은 수업 듣잖아.”
 
...친구 분 맞으시죠?”
 
 
여자친구라고 말하려는 걸 정정했다.
괜히 그랬다 오해 살라. 그녀는 내
말에 토 달지 않고 벽에 기대었다.
여자친구는 아닌 모양이었다.
 
 
민현이가 내 책 주기로 했다며?”
 
. 그쪽은 재수강..아니세요?”
 

 
난 고등학생 때부터 한국사만 파서
점수는 쉽게 받았어. 다른 과목이
문제지. 민현인 내가 그렇게 가르쳐
줬는데 재수강이라니, 안타깝다.”
 
 
황민현이 주기로 한 책의 주인이
낄낄 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살짝 깨졌다. 연예인
지망생이면 학교 다닐 시간도 없어
공부는 소홀히 했을 거라 여겼는데,
오히려 가르쳐준 입장이라니.
 
만약 속마음이 비춰졌다면
그녀가 기분 상해했을 것이다.
 
 
아깐 감사했어요.”
 
됐어.”
 
 
그녀는 귀보다 더 큰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치켜떴다.
 
 

 
. 여기서 노는 건 좋은데..
아까 같은 놈들 떼어내는 법은
알아야할 거 아니야.”
 
 
마주보고 있으니 그녀의 얼굴이
자세히 들어왔다. 만일 친해진다면
렌즈는 어디 껄 끼는지, 섀도우는
어느 브랜드를 쓰는지 물어 보고팠다.
그만큼 화장이 잘 받는 예쁜 얼굴이었다.
 
 
설마 이때까지 이런 일 한 번도
없었던 적은 없는 거 아니지?”
 
그 때는 친구들이 구해줘서...”
 

 
물가에 내놓은 애 보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내 나름대로 누군가 작업 걸 때마다
잘 쳐내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멀었
다고 느낀 건 이번 일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조목조목 따지지 않고 그녀가
화장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민현이 어때?”
 
?”
 
착하지?”
 
 
착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고작 1시간 그와 같이 앉아
있었을 뿐이다. 착하다고 할 만한
계기는...혼자인 나랑 같이 과제를
하게 돼서? 그 정도면 된 것 같다.
 
 
...그런 거 같네요.”
 

 
이번에 걔 재수강, 네가
탈출 좀 시켜주라.”
 
제가요?”
 
. 잘할 거 같은데?”
 
 
, 나도 피차일반이야. 누가 누굴
탈출 시켜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부탁이었다. 애들이 들으면
배꼽 떨어질 소리나 마찬가지.
듣는 당사자도 민망했다.
 
 
아참, 민현이한텐 나 클럽
온 거 비밀로 해줄래?”
 
왜요?”
 
너도 엄마한테 잔소리
듣기 싫잖아. 똑같은 거야.”
 
 
그럴 법 한데? 일리 있어.
나는 알겠다고 했다.
 
 

 
아구, 예뻐.
그럼 재밌게 놀다가~”
 
 
그녀는 춤추면서 삐뚤어진 내 시스루
블라우스를 똑바로 고쳐주곤 화장실을
나갔다. 화장실에는 나와, 클럽 간 걸
들켜 남친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걸로
추측되는 여자의 울음소리만이 남았다.
 
그래서 저 여자는 황민현이랑 무슨
관계인 거야, 보호자? 친구? 짝사랑?
 
추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이선미가 남기고 간 담배꽁초의
잔 불씨를 힐로 비벼 꺼트렸다.
 
 
이상한 여자야.”
 
 
나는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갔다.
사람이 더 많아져서, 올라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본의 아니게 어깨빵을
해대며 2층에 도착하자 난간에서 아래를
보던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쫄아선,
급하게 눈짓으로 방을 찾아다니다가 아무도
없거나 혹은 춤추다 지친 애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룸 앞에 섰다. 데킬라나
한 잔 더 마시고 좀 앉아있다 다시 내려
가야지. 다짐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
 
 
그러나 동시에 잡은 이가 있었다.
설현이도 아니고, 경리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다
손을 맞잡은 이의 시선과 마주쳤다.
 
 

 
여긴 왜?”
 
 
1초 만에 찍힌 첫인상에는 고급지게
생겼다는 호평이었다. 그리고 인상과
상응하는 고가의 브랜드가 그의 몸
여러 곳에 다양하게도 있었다.
시계에 셔츠에...다 합하면 얼마야?
 
탐색을 마친 내가 당연한 소릴 했다.
 
 
제 방이니까요.”
 
방 잘못 찾아왔는데.”
 
? 아니에요. 제 방 맞아요.”
 
 
그러니까 손 좀 놔주지. 나는 문고리를
놓을 수도 없었다. 이것도 작업의 일종
이야? 그렇다면 좀 신박한데.
 
여하튼 문 앞에서 이러고 있는 꼴도
웃기고해서 문짝을 열고 봤다.
 
 
제 친구들 있는....”
 
 
방 안에는 먹다 남은 케이크가 아닌
과일 안주들이, 친구들 대신엔 우리
과의 준현 오빠만한 등치의 남자들이
일제히 나를 쏘아보았다.
 
호랑이를 만났을 때 바로 도망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벌벌 떠는 사람
처럼, 생각의 심박수가 일직선에 내려
앉았다. 어라? 어라라? 머릿속에는
물음표로 매워졌다.
 
남자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나를
밖으로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대신해 문을 조용히 닫아주며 말했다.
 
 

 
거봐, 내 말 맞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
.
.

※만든이 : 콩이님
 
 
 
 
<>
 
 
선미의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등장인물이 가지는 색들은 작품에서
한 번 쯤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여되는 거라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새로 나온
진우도 색이 있는 거겠죠?
회색으로 처리된 등장인물들도 후에
있을 스토리에 영향을 준다 싶으면
색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04화 이후로는 제가 자격증
시험 공부로 인해 텀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공지하며 인사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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