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기 전에 02 (by. 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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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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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남주혁
서강준 박보검
전정국 이태용
오세훈 육성재
???
 
 
 
 
청춘이 지기 전에 02
- EP 02. 술이 들어간다 쭉쭈쭉
 
 
 
학생회와 소수의 고학년들, 그리고
사유가 있어 참석하지 못한
새내기를 제외한 1학년들이
꽉 매워버린 대학 주변의 포차.
 
주로 학생이 많은 과에서 통째로
빌리는 가게라 손님이 아예 없다.
바쁘게 서빙이 오고가며 술잔이 꼴꼴
채워져, 소주 한 병이 금세 바닥을
드러내었다. 회장의 건배사는 짧고
굵게 선창하고, 따라 외치는 우리는
아까운 소주를 흘려가며 잔을 동시에
비웠다. 본격적인, 기계공학과 뒤풀이
시작이었다.
 
 
야 어제 UFC 봤냐,
맥그리거랑 메이웨더.”
 
메이웨더가 이길만 함.”
 
근데 왜 맥그리거한테 걸어서
돈을 따이냐?ㅋㅋㅋㅋ
 

 
시발. 나는 모두가 라고 할
아니오를 외치는 남자거든.”
 
그게 노답이라는 겈ㅋㅋㅋ
 
뭘 모르네. 진정한 승리자는
오지게 광고한 독일 샴푸다.”
 
 
성비가 맞지 않으니 오가는 대화
주제가 내 관심사와는 꽤 멀었다.
나는 괜히 파우치에서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바르곤 빱빱티나게 주위를
끌었다. 나 이번에 입생 로랑 립스틱
하나 장만했어! 대존예라고!
 
...들어주는 이는 아주 드물었다.
 
 

 
너 립스틱 샀어?”
 
“....! !!!! 역시 뭘 아는 구나,
우리 뽀뽀거미.”
 
이거랑 똑같은 색 가지고 있지
않아? ...매미자석 같이 생긴 거.”
 
 

 
......?
 
 
설마...이거 말하는 거니?”
 
, !”
 
 
내 손에는 맥(MAC)이 쥐여있었다.
그리고 색깔도 달랐다. 이게 찐한 빨강
이면 신상 립스틱은 더 밝고 쵹쵹한
것인디.....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판매사원은 정말 대단한 직업이구나.
 
나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길
포기했다. 외국 프리미어 리그에 축구
선수들이 내 눈엔 공격수 루니, 골키퍼
루니로 보이듯 보검이도 비슷할 테니까.
 
보검이는 오뎅탕이 끓는 걸 보고
버너 불을 낮추며, 대각선에 앉아
강냉이를 씹는 탈색 머리에게 물었다.
 
 
,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태용이요.”
 

 
그 때 피씨방에 나도 있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난 둘이
원래 아는 사이인 줄 알았잖아.”
 
 
마니또 선정이 모두 끝나자 회장은
서로 알아가라며 뒤풀이 자리 배정을
마니또와 마주 보고 앉게 했다.
 
그냥 앉던 대로 앉으면 좋았을 걸,
주혁이는 여자 후배들에게 붙들려가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강준인
학생회인지라 여기저기 인사하느라
안주는 입에도 대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 옆에 보검이라도 있어 다행이야.
나는 어색한 침묵이 싫어 빈 소주
잔을 홀짝인다.
 
 
안녕하세요!”
 
?”
 

 
저는 전정국이에요.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보검이와 마주 앉은 새내기가
맑게 웃으며 소주를 따라주었다.
 
강준이가 말한 내 스타일이 얘였나?
초롱초롱하고 도톰한 입술에
귀염성이 묻어나는 말투까지.
나는 뒤늦게 된다고 말했다.
 
 

 
인사 서로 안했었어?”
 
너가 마지막 마니또였잖아.
그 뒤 애들 몰려나가고 정신
없어서, 얘도 간신히 챙겼어.”
 
 
나는 태용이를 가리켰다. ‘라고 지칭
된 그는 마지막 강냉이를 입에다 털털
털어냈다. 우리 대화에 썩 관심은 없어
보이는데, 그를 볼 때마다 눈이 마주
쳐서 나는 애꿎은 오뎅탕과 눈싸움을
벌여야했다. 이왕 본 김에 하나 주워
먹어야지. 한 시간 전에 먹은 저녁은
너무 부실했다.
 
 
형은 안 먹어요?”
 
환영회 전에 애들이랑 미리
먹었거든. 배 터지려고 해.”
 
“(뜨끔)”
 

 
누나 엄청 배고파 보여요.
형들이랑 저녁 안 먹었어요?”
 
저녁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먹었녴ㅋㅋㅋㅋㅋ
 
, ....”
 
 
내 양심은 10년 전 짐 싸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부끄러움은 내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지만, 허기짐
에게 곧바로 잡아먹혀 숟가락을 들게
만들었다. 내 마음 속 철판을 가지고
볶음밥 해먹으면 맛날 듯.
 
 

 
근데 왜 뭉치에요?”
 
에베베!”
 
 
혀 디였다. 얘가 이렇게
긴 장문으로도 말을 하네!?
숟가락이 쨍그랑 떨어진다.
 
 
“....대충 감은 온다.”
 
푸흡, ‘몸으로 말해요?
하여튼 이름값은 잘 한다.”
 
설마 그 뭉치가 사고뭉치?”
 

 
그런가 봐.”
 
 
휴지를 뽑아주던 정국이가 히죽였다.
남주혁이었음 당장에 소주 뿌렸는데,
그닥 빡이 치지가 않아. 새 숟가락을
꺼내줘서인가?
 
 
ㅋㅋㅋㅋㅋㅋㅋ누가 그렇게
지어줬어요? 짱 잘 지었다.”
 
그럼 너 가질래? 물려줄게.”
 

 
저희 집에 뭉치 있어요.”
 
걔도 어지간히 사고
잘 치나 봐?”
 
....5살이에요. 시바견.”
 
 
21살이에요, 씨바.
동명이견 만나서 반갑다.
 
나는 술을 쭉 들이켰다. 오늘 아침
다시는 술에 입도 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각서를 썼던 게, 알코올이
위에 들이치자 깨끗이 리셋 됐다.
역시 스까먹으면 안 됐어. 딱 좋다.
소주파 만세!
 
 
초반부터 왜 이렇게 마셔요?
, 이 누나 내일은 없대요?”
 
얘 잘 마셔. 다음날 숙취가 문제
지만 마실 때만큼은 성시경이
따로 없다. 집에도 잘 가고.”
 
내가 너희 다 데려다주고도
남아 이것들아!”
 

 
누나 어디 사는데요?”
 
나 한국.”
 
! 나돈데!”
 

 
“....? 바보 놀이해?”
 
 
문 쪽에 앉아있는 우리는 미닫이
형식의 가게 입구가 열릴 때 마다
들어오는 바람에, 안주가 다른 자리
보다 빨리 식었다. 담배 필거면 한꺼
번에 나갔다가 들어오라고 니코틴들아!
담배냄새가 문틈을 비집고 안주에
섞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패딩을 입은 학회장과
여러 오빠들이 흰 연기를 뿜으며 재미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번 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집이 오뎅을 참 잘해.
 
그 때, 또다시 찬바람이 불면서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 00 여기 있냐~”
 

 
헐 대박...박민수 왔어.”
 

 
ㅅㅂ. 입맛 버렸잖아.”
 
 
언니들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짜증이 섞여있다. 수정 언니가
일어나 화장실로 가자, 같이 있던
일행들도 제일 고학번인 선배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쌩하고 따라갔다.
 
 

 
저거 왜 왔어,”
 

 
민수 형 벌써 백 일 휴가냐?
존나 타이밍 지렸고요;;”
 
“........ 미친.
........”
 
 
분위기가 은근히 내려갔다. 민수
선배를 모르는 새내기들이 자기들
끼리 술 게임을 하는 덕에 대놓고
티가 나지 않았다.
 
 

 
“....?”
 
여기 있네! 00 넌 오빠 왔는데
인사 안 하냐?”
 
....안녕하세요..”
 
 
뭔 일 날 거 같다더니 설마가
사람을 두드려 팼다. 나는 최악의
상황임을 직감했고, 찡그린 눈썹이
곧게 펴지지 않아 내 기분 그대로를
대변했다. 이 새기 철판도 어마어마
한가봐. 작년에 그렇게 쪽을 당하고도
날 찾아올 수 있다니.
 
 
보검이도 간만이네?
성경이는 잘 있지?”
 

 
“..........”
 
 
보검이는 선배의 말을 씹고 담배를
챙겨 나갔다. 나 데려가야지, 살짝
그를 원망할 뻔 했으나 선배에게
성경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나를
챙길 겨를이 없었을 거라는 걸, 이해
했다. 나쁜 놈은 내 옆에 냉큼 앉는
이 새끼니까.
 
 
내가 군대 있으면서 네 생각에
잠을 못 잤다. 그리고 편지 써
준다면서, 왜 아무 소식이 없어?”
 
그게...”
 
 
선배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는
나에게 혐오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앉은 의자에 팔을
걸치는 것도, 쫙 벌린 그의 두
다리가 내 무릎에 닿는 것도.
 
 
민수 형.”
 
, 강준이~”
 

 
언제 오셨어요? 저희한테
먼저 오시지. 섭섭하잖아.”
 
그래 그래! 좀 이따가 갈게!”
 

 
에이~.....그러지 말고 와요.
진영이 형이 되게 보고 싶어
하던데.”
 
진영이가? 그럼 가야지.
00는 잠깐만 기다려.”
 
 
진영은 강준이가 부회장으로 있는
축구 동아리의 회장 오빠다. 민수
선배가 엄청 아끼는 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반대로 진영이 오빠가 민수
선배를 조련시킨다는 얘기도 있다.
그럼 단박에 일어날 양반이 아니니까.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멀어져가는
강준이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며,
문 앞에 서서 학회장 오빠와 진영 오빨
부르는 세훈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고마워. 덕분에 한시름 놨다.”
 

 
너도 참 불쌍하다야. 어쩌다
저런 놈한테 걸려가지곤.”
 
전생에 내가 나라를 팔아
먹었었나봄.”
 
작작 팔지 그랬냐.”
 
 
세훈은 장난스레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긴장이 풀려 흐물
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었다. 그러고
보니 내 앞의 새내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 혼자 쫄아 있느라
신경을 미처 써주지 못했다.
 
 
누구에요?”
 
? 저 쓰레기?”
 
보검이 형도 별로 안 좋아하고,
누나도 그렇고.....전체적으로
싫어하는 것 같던데요.”
 
박민수라고, 26살인데 작년 말에
군대 간 새끼야. 오래 전부터 언니들
한테 집적대기로 유명했는데, 작년엔
내가 그 대상이 됐거든. 애들이 잘
막아줘서 군대 가기 전까지 별 일은
없었고...하여튼 내가 병적으로 싫어
하는 사람이야. 휴가날짜 계산해보니까
지금쯤이라 설마 했는데 진짜로 나타날
줄은 몰랐네.”
 

 
보검이 형은요?”
 
“.....보검이가 2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거든. 근데 바람났어.
저 선배랑.”
 
 
태용이와 정국이의 눈이 휘둥그레.
작년의 나와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민수선배를 경계하며 학생회 사람
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주시했다.
 
 
형이 뭐가 아까워서...!?”
 
나도 그게 궁금하다.
잘 됐다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어.
그러다 내가 표적이 됐지. ...”
 
 
그가 벌인 만행들은 손에 꼽히지도
않았다. 발가락까지 포함시켜야 간당
간당하게 커트라인이야. 따지고 보면
저 사람 때문에 내 대학 로망이 생각
보다 일찍 깨지게 됐다. 안 보고 있을
때 실컷 쌍엿을 날려줘야지.
 
 

 
저 형, 주사 있어요?”
 
술 취하면 잘 걸?
그래서 일부러 맥였어 애들이.
그건 왜 물어봐?”
 
그냥.”
 
너희 일단 마시고 있어봐.
난 밖에 바람 좀 쐬고 올게.”
 
 
엉뚱한 애네. 나는 외투를 대충
걸치고는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우리 과말고도 많은 학과들이 뒤풀이
를 하러 온 듯, 거리가 꽤 복잡했다.
나는 무리와 따로 떨어져 구석에
홀로 담배를 피고 있는 보검이에게
걸어갔다. 항상 얘는 남들이랑 같이
안 피고 혼자 핀단 말이야. 취향인가?
 
 
나도 담배 한 개만.”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보검인
연기를 머금었다가 내가 나타나자
다른 방향으로 후 불어냈다.
 
강준이라면 절대 안 된다며 단호박을
썰었을 테다. 보검이도 강준이와
비슷한 입장이지만 가끔 내가 우울
하거나 빡돌았을 땐 순순히 라이터에
불까지 붙여주었다. 바로 지금처럼.
 
 
“......괜찮아?”
 
그냥 뭐 개같지. 너는?”
 

 
나도.”
 
 
나는 용가리처럼 연기를 뿜었다.
사실 담배 필 줄 잘 몰라서, 흉내
내기에 불과했다. 그래도 피고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어.
다만 냄새는 죽어도 싫었다.
 
 
어떻게 나왔어?”
 
강준이랑 세훈이가 구해줬어.
진영오빠 이름 대니까 슬
물러나더라고.”
 
, 그 형 진영이 형한테는
고분고분하다며??”
 
몰라. 유일하게 오냐오냐하는
오빠라 그런 것 같애. 박민수
그 새기 학회장 오빠도 포기한
망나니잖아. 딴에는 고맙겠지.”
 
 
진영이 오빠가 너무 착해서 그래.
나는 실험삼아 연기를 도너츠로
만들려다 실패했다. 강준이는
장인 수준이던데.
 
 
너희 군대 가고나면 박민수
제대하겠지...? ....
그냥 휴학이나 해버릴까.”
 
동생들 있잖아.
태용이랑 정국이.”
 
야 걔네들 얼마나 봤다고..!
내일 되면 데면데면해질 줄
누가 알아?”
 

 
흐지부지 끝날 사이는 아닐 것 같아
. 아니면, 내가 군대 좀 늦게 가지
. 애들 제대하면 그 때 가야겠다.”
 
뭐래. 걍 빨리 다녀와. 제일
늦게 제대하면 애들이 너 놀려.”
 
 
누가 담배를 피든, 나는 그걸 지져
끄는 순간에 쾌락을 느꼈다. 그래서
반쯤 태운 걸 발로 밟아 꺼버리고,
허리를 개운하게 치켜 올리며 상가
계단에서 일어났다.
 
 
남주혁은 뭐하고 있대?”
 
백방 취했겠지.
상황보고 2차 가던지 아니다
싶음 걔 집에 데려다주자.”
 
그래.
....근데 저 안에 무슨 일 났어?”
 
 
언뜻 보이는 가게 내부는 한쪽으로
인원이 많이 쏠려보였다. 그것도 내
자리에. 나와 보검이는 무슨 사태인지
알기 위해 서둘러 문을 열어 재꼈다.
 
 
, 뭐하는 거야!?”
 
새내기 대박이야. 저 선배 한 때
술 존나 잘 마셨잖아. 상대가 돼?”
 

 
얼굴 하나도 안 빨간 거 보면
가능성 있는 거 같구만.
새내기에 건다!”
 
맥그리거에 이어서 또? 니 승률
제로에 가까운 건 알고 거는 거?”
 
이 새끼가 걸으면 나는 소리는?”
 
도 박 도 박.”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핫플이 따로 없다. 내 자리에 누가
꿀이라도 숨겨놨어!? 왜 조용히 술
한 잔 못 마시게 하냐고!! 박민수를
수월하게 처리해주나 했더니, 제대로
자리 깔아버렸잖아!
 
나는 같이 낄낄대는 세훈이의 어깨를
붙잡고 험악하게 물었다.
 
 
야 오세훈. 뭔 상황이야?”
 
니 맞은편에 앉아있던 1학년,
마니또가 너 아니랄까봐 패기
쩔었다. 너 없는 사이 민수형이 니
있던 테이블 갔었는데 갑자기 술을 막
따라주는 거야. 그러곤 , 술 저도
좀 해요.’하고 박민수 존심을 건드리대?
 

 
민수형 자존심 빼면 시체잖아.
한 잔 두 잔 하다가 벌써 소주
3병 순삭했다.”
 
 
청소년 딱지 뗀지 얼마나 됐다고
소주병을 궤짝으로 마실 셈이다.
 
정국이 얘는 안 말리고 뭐했나,
나는 태용이 곁에 없는 정국이를
찾으려 고개를 휘적휘적 저었다.
 
 
정국이 어디 갔어?”
 
그 귀염둥이? 나랑 놀기로 했음.
저기 꼈다가 못 볼 꼴 당할까봐
진즉에 피신 시켜놨지.”
 
니 자리에 없는디?”
 

 
어 뭐야. 똥 싸나?”
 
 
오세훈은 누가 있다가도 없어지면
다 똥 싸러 간 줄 안다. 그러다 돌아
오면 쾌변?’이라고 꼭 물어봐.
세훈이와 친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변비야?’하고 물었던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썸녀한테도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안부 묻고 다니는지 궁금해.
 
 
혹시 박보검..오빠에요?”
 
? .”
 

 
저희 주혁이 오빠랑 놀고 있는데
오빠가 친구 데려오라고 해서요.
같이 마셔요!”
 
“00. 얘네가 같이 마시자는데?”
 
태용이는 어쩌고?!”
 
 
내 목소리가 들렸나보다. 술잔을
목구멍에 그대로 때려 넣으려던
태용이의 손이 멈칫하더니
나를 보곤 찡그린 눈빛을 쏴댔다.
구경하지 말고 가라는 뜻이었다.
 
 
! 포기하냐!?”
 

 
아뇨. 마셔요.”
 
괜찮을까....”
 
주혁이부터 살펴보고 오자.
걔 맛간 거 확실한 거 같아.”
 
새내기 토하면 육성재가 치워
줄 거임. 다녀와.”
 

 
훠우~ 친구 팔아먹고
생색 개쩔었다!”
 
 
나는 보검이에게 이끌려 주혁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주혁이는 발그레한 볼을 가지고 양
옆의 후배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작년 신입생 환영회
에서 수정이 언니가 주혁이를 골로
보내버린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너 몇 잔 마셨냐.”
 
크으!!!! 오늘은 한 병 마셨다!!”
 
얘 미쳤나 봐;;;”
 
오빠 너무 귀엽지 않아요?”
 
 
. 내 눈엔 알코올 쓰레기만 보이는
? 그래도 여자애들 앞이라고 무리
좀 했나보다. 정신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걸 보니, 잘하면
두 발로 걸어서 보낼 수 있겠다.
 
 
주핵아. 나 누군지 알겠?”
 
 
풀린 주혁이의 눈에다 대고 물었다.
그는 평소 볼 수 없는 인자함을
지닌 표정으로 답했다.
 
 

 
젼나 큰 달덩~.”
 
“...오늘 니 얼굴에
크레이터를 생겨주마.”
 
술 취했잖아. 참아.”
 
안 취했어 이 새기!!!
놀려 먹는 게 똑같잖아!!”
 
으헤헤헤
 
 
웃어??? 웃겨 인마????’

큰 소리를 치려고 했건만 여자
새내기들도 입을 가리고 웃길래 같이
혼낼 수는 없어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운 좋은 줄 알았다 남주핵.
 
 
“00 언니죠?”
 
 
, 뭐였더라. 나는 기억을 되돌려
마니또 선출 현장으로 가보았다.
많은 남자들이 남주혁을 부러워
하면서 꿍얼대던 그 이름, 그제야
배주현이란 이름을 기억해냈다.
하마터면 건치 소녀라 부를 뻔.
 
 
“....나 알아?”
 

 
그럼요. 학회장 오빠가 과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던 걸요.”
 
그럴 리가!?”
 
으하하하!!!!!”
 

 
자라 제발. .”
 
 
태어나서 누굴 닮기는, 우리 엄마
아빠 닮았지!! 나는 들어본 적 없는
칭찬에 콧대가 높아지긴 커녕 어떻게
받아줘야 할 지 고민했다. 아직 덜
친해서 그런 거겠지?
 
 
연예인 누구 닮은 것 같은데..
그쵸 보검 오빠??”
 

 
난 처음 들어봐. 주현이가
관찰력이 되게 좋네.”
 
제 이름 기억하고 계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니, 진짜 한
번도 못 들어보셨어요? 완전 닮았
는데...제가 이름을 까먹어서 다음에
알아내면 꼭 알려드릴게요!”
 
 
주현이는 다른 테이블에 남아있는
빈 의자를 들고 와 보검이 옆에
앉았다. 보검인 그녀에게 주종이
무어냐 물었고, 주현이는 잘 못
마신다며 사이다를 시켰다.
 
 

 
대학 오면 술 잘 마셔야 할
텐데 큰일이에요. 언니는 좋겠다.”
 
주혁이도 못 마시는데 잘만 다니고
있는 걸. 그리고 우리 과 강요는
안 해서 걱정 할 필요 없어.”
 
오빠들 진짜 멋지다~”
 
 
이름이 애매하게 생각이 안 나던
나머지 여자애들이 자기소개를
간단히 했다. ‘주결경’, ‘ㅁㅁㅁ’,
술을 잘 마시는 건지 안 마신 건지
다들 하나같이 피부가 하얗고 곱다.
 
나는 사이다 뚜껑을 똑 따내고 주혁의
술잔에 속임수로 채워 넣으려 했다.
그러나, 불쑥 들어오는 주현의 컵에
당황해 살짝 흘려버렸다.
 
 
언니 혼자 여자라서 학교
다니기 많이 힘들었겠네요.”
 
처음에 어색해서 그렇지,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앞으로 저희랑 같이 놀아요!
언니 진짜 재밌을 거 같아요~”
 
 
붙임성이 찰떡이다. 팔짱을 끼며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내는데 내가
남자였다면 아마 심장이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나는 주현이에 대한
첫인상을 좀 더 호감으로 올렸다.
 
 
, 뭉치.”
 
 
정수리 위에 손이 올려졌다.
강준이는 뒤풀이에 살짝 지친 얼굴
이었다. , 정정하자면 뒤풀이보다는
민수 선배의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한
얼굴에 더 가까웠다.
 
 
술 깨게 산책 좀 가자.”
 
내가 애완동물이냐?
공손하게 말해봐,”
 

 
아이스크림 사줄게.”
 
!”
 
 
컹컹 멍멍 으르렁!
나는 신나게 외투를 입었다.
 
 
오빠 저는 메로나 먹고 싶어요!”
 
저두요!”
 

 
아 그래? 그렇구나.
야 니도 일어나 남주핵.”
 
시로~”
 
지롤~하지 말고 옷 입어.”
 
 
강준이가 주혁이의 표정을 따라하다
정색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비틀
대며 일어나는 주혁의 뒤로 보검이까지
따라나서려는 듯 휴대폰을 챙겼지만,
여자애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럼 나도
 
보검이 오빠는 저희랑 있으면
안 돼요? 저희 오빠들이랑 아직
친하지가 않아서...”
 
알아서 해.”
 
 
강준이는 남중남고를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를 대하는데 속과 다르게
까칠하게 나와서, 그나마 있던 썸이
다 깨져버렸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명제가 참이 아닌 이유는 같은 남중
남고 나온 오세훈과 육성재는 여자들과
잘만 논다는 것이었고, 강준이도 나를
비롯해 몇몇 언니들과는 잘 지낸다는
것이었다. 아직 저 새내기들이랑은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삐딱선을 타는
걸까....나는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어디 편의점 갈 거냐 물었다.
 
 
요 앞에 아이스크림 할인점.
아니 그보다, 너 박민수 올 줄
알고 오기 싫다고 한 거야?”
 
촉이 안 좋더라고. 나 정말
돗자리 깔아야하나 봐. 이런
거 맞추는 것도 능력 아냐?
로또 사야지!!”
 
육성재 꼴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게
훨씬 나았을 걸, 괜히 오자고해서
미안.”
 
야 니가 미안할 게 뭐가 있냐?
오히려 고맙지. 그 새끼 떼어내
줘서. 숫자팸 합작 죽여줬다.”
[숫자팸 : ()강준, 오세훈
육성재 성을 떼어 만든 그룹]
 
 
10시를 훌쩍 넘어 거리는 갈수록
추워졌다. 입김에 콧김까지 흥하고
나올 지경이었다.
 
 

 
누나!”
 
 
가는 길에 잠시 잃어버렸던 정국이가
목도리에 목이 파묻힌 채 발견되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맞은편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어대며, 내 앞까지 한달음에
왔다.
 
 
너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어?”
 
. 4학년 누나들이랑 놀다가
집에 간다고 하시길래 버스 정류장
까지만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박민수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나보다. 하여튼 민폐
덩어리네.”
 
 
누가 데려갔나 했더니 수정이 언니
였구나. 나는 태용이의 현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 전달했다. 그리고
어쩌다 태용이가 그런 도발을 걸게
되었는지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태용이가 누나 없을 때 그랬어요.
주사가 자는 거라, 재워버리면 누나
한테 진상 안 부리니까 술도 덜
마셨겠다 한 번 건드려보자고.”
걔가 왜 그런 짓을 해?”
 
누나가 마니또잖아요.”
 
순서가 바뀐 거 아냐?”
 
 
바코드 찍는 소리가 우리 대화에
맞춰 소리를 낸다. 강준이는 허공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문득
정국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면서 왜이래;
 
 

 
, 얘가 걔네. 내가 그 때
말했던 니 스타일.”
 
저요?”
 
“!??!?!”
 
...귀엽고, 깜찍하고, 울리..”
 
남주혁!! 서강준한테
몸통 박치기!!”
 

 
하잇!!!”
 
나 말고 등시나!!!”
 
 
평소 나한테 쌓인 한을 술김에
풀어내는 게 분명했다. 나는
충격에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면서
그만 지나가던 남자를 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
 
아이고!!! 이 빌어먹을 놈아!!!”
 
 
쪽팔려 미쳐!!! 나는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뒤도 안 보고 다시 무리에 합류했다.
 
 

 
괜찮아? 발 밟힌 거 아냐?”
 
아니야. 가자.”
 
 
한참이 지나서야 미안함에 눈을
돌렸다. 남자를 치는 순간 대충 키가
크겠거니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 비율이 좋은 거겠지?
 
피해를 면한 강준이가 입김을
파파 뿜어내며 내 머리를 약하게
쥐어박았다.
 
 
화상아. 그러게 왜 남주혁을
시켜서 입을 막으려해?”
 
“....~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
 
내가 직접 하는 수도 있었네ㅎㅎ
 

 
아이스크림 다친다~”
 
찌발. 아이스크림만
아니었어도..!”
 
 
그의 손엔 검정 봉지가 들려있었다.
강준이는 봉지를 둥글게 돌려댔다.
봉지 안에는 아이스크림들이 종류
별로 뒤엉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까짓 꺼 뺏으면.....!
 
 
, 누나! 주혁이 형
토하려고 해요....!!!!!!”
 
!?!??”
 
 
다급한 정국이의 SOS.
눈가가 경련하듯 떨렸다.
강준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
 
야야야야야ㅑㅑ!!!!
하수구 찾아 하수구!!!!”
 
아이스크림 빼고 봉지 줘!
주혁아 여기다가 토해!!”
 
 
나는 봉지를 든 손을 뻗으면서도
엉덩이를 내뺐다. 비위가 약해
그의 토사물을 보거나 냄새라도
맡게 된다면 같이 봉지를 붙잡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나 토......”
 
그래 주혁아!!
할 거면 빨리 해!”
 
...”
 

 
등 두드려 줄까요!?”
 
삼켰어...”
 

 
야 그걸 왜 삼켜...!”
 
 
길 한복판에 더러운 꼴을 보이고
다음 날 페북스타로 뜨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하나, 주혁이의
말에 내가 속이 안 좋아질 뻔 했다.
당분간 넌 말하지 마라.
 
 

 
장하다. 아이스크림 먹어.
그리고 말하지 마.”
 
“(끄덕)”
 
 
아주 쌩지랄을 했다. 잘하면 인터넷에
친구 오바이트 도와주는 의리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열과 성을 다한
영상이 떠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
 
양심도 가출 나가고, 어이도 나가고,
정신도 나가고, 이러다 내 머릿속엔
뭐가 남아있으려나.
 
술 깨자고 나온 산책인데 울렁거림만
가중시켰다. 나는 관자놀이를 짚어
대며 술집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게 앞은 왁자지껄하게 과
사람들이 전부 나와 있었다.
 
 
갱준! 2차 간대!”
 
어디 감?”
 

 
노래 부르러. 방 나눠서 갈 거
같은데 학회장 형이 알아서 나누래.”
 
 
나는 주혁이를 세훈이에게 던져
주고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태용이는?”
 
여기 있다.”
 
 
내 시나리오에는 술에 떡이 된
태용이가 혀를 꼬아가며 나오는
거였다. 근데 잘못 가도 한참을
잘못 갔어. 그는 너무 멀쩡했다.
 
 
너 괜찮아?! 토했냐?! 취했지???
반말하는 거 보니 취했네!!!”
 

 
안 취했고 안 토했고 괜찮아요.”
 
, 얘가 이제부터 기계과의
술통이다. 인사드려라.”
 
진짜 박민수 이긴 거야?”
 

 
미친 거지.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게 소름이다. 리스펙~!”
 
 
성재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
켰다. 그곳에는 만취된 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박민수가 진영오빠
에게 기대어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한쪽은 생수만 마신 것처럼 멀쩡하고.
꼼수 부린 게 아닐까 의심을 해도
될 만큼, 차이가 극명했다.
 
 
, 고맙다....정국이한테 대충은
들었거든. 그치만 앞으로는 이렇게
무리 안 해도 돼.”
 
무리 안 했어요. 대신에,”
 
?”
 
 
태용이는 눈을 내리깔고 땅을 쳐다
보다 나와 눈을 맞춘다. 그리고
말하길,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학회장 오빠의 말을 인용했다.
 
 

 
누나, 밥 사주세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의 미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니또이기도 하고, 박민수도 퇴치
해줬으니까 굳이 철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끄덕이려고 했어.
 
나는 내일이라도 사줄까 싶어 학생증
카드에 잔액이 얼마 남았는지, 근처
ATM기기에서 확인하기 위해 자그마한
클러치를 뒤졌다. 지갑을 열었다가
파우치를 꺼내도 보고, 뒷주머니에
있나 지퍼를 열어보기까지.
 
 
“...., 없어!!!!!”
 
니 정신머리?”
 
학생증!!!!”
 
 
학생증이 증발했다.
 
 
 
 
.
.
.
 
 
 
 
 
학생증 떨어졌다.”
 
누가 술 취해서 떨어뜨렸나봐.
000? 기계공학이라 적혀있고..
.....아까 부딪친 걔 아냐?”
 
눈도 좋아. 이거 학생증, 페북
페이지에 제보하면 알아서 페메 와.
그나저나 괜찮게 생겼는데, 내가
제보해도 되냐?”
 

 
정욱아 그래봤자 안 생겨...”
 
너무햇
 
“(극혐)”
 
카드 그대로 갖다놔. 주인이
없어진 줄 알고 찾으러 올 걸?”
 
“........”
 
? 황민혀언~가자고오~”
 

 
“...내가 내일 주인 찾아줄게.”
 
 
 
 
 
.
.
.
 
※만든이 : 콩이님 
 
<>
 
 
등장인물이 확 늘었네요!
세훈이나 성재의 경우 비중은 차차
늘겠지만 같이 다니는 무리가 아니기
때문에 분량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민현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태용이가 상풀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았는데...
 
여자친구들의 이름은 최대한 겹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혹시 겹치시나요?
ㅠㅠ 이래저래 걱정이 많네요.
그리고 게시글 보다가 투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보고 계셔서...ㅎㅎ
힘이 납니다! 03으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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