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즈 메리지 13 (by. 양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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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메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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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메리지::
Burj marriage
 
 
13. 그런 사이
 
 
 
>[뭐해?]
 
질투를 고백한 이후 서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묻고 답하는 날이
하루 이틀을 더해가고 있었다.
 
찬열의 메시지에 네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 대신 그냥 있어, 이제 퇴근해? 적어내린
메시지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루를 보내는 내내 찬열의 퇴근만을 기다린
ㅇㅇ은 주고받는 메시지 몇 통에도 생전
처음 연애하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연애가 뭐 별 거 있겠어? 하던 마음은 어느새
저만 아는 마음 한 편에 고이 접어뒀다.
연애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우정이나
일방적인 동경, 짝사랑과는 분명 달랐다.
 
저도 모르게 발끝에 힘을 주고 마는,
어딘지 막 간지러운 느낌.
 
실실거리는 웃음이 절로 새는 사이,
메시지 창의 숫자 1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찬열에게서 전화가 왔다.
 
 
 

, 화장 안 했는데
 
 
 
그것도 무려 영상통화가 걸려온 것이다.
 
 
 
얘는 갑자기 뭔 영상통화를 해.”
 
 
 
중얼거리면서도 얼결에 눌러버린 통화버튼 덕에
핸드폰의 화면은 곧장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에
기댄 찬열의 모습을 꽉 채웠다.
 
ㅇㅇ의 작은 화면은 방의 천장만을 보인 채였다.
 
 
 
-“뭐야, 얼굴 어디 있어.”
 
잘 있어.”
 
-“보여줘.”
 
싫어. 왜 갑자기 영상통화를 해.”
 
 
 
나 지금 못생겼단 말이야. ㅇㅇ이 볼멘
목소리를 내자 제 얼굴을 가득 들이민
찬열이 입가를 위로 번졌다.
 
, 얘가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가.
ㅇㅇ 모르게 앓는 소리를 안으로 삼켰다.
 
 
 
-“얼마나 못생겼는지 좀 보자.”
 
안 보여 줄 거거든.”
 
-“보고 싶어서 영상통화 한 건데,
너만 나 보기 있냐.”
 
. 좋은데?”
 
 
 
웃기시네. 그런 뻔뻔함은 어디서 배웠어?
찬열이 묻자 너한테 배웠다는 말이 곧잘
돌아온다.
 
그 말에 찬열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운전대를 안고 있던 몸을 일으켜 벨트를 맸다.
핸드폰은 차량 거치대에 고정한 채다.
 
이러다가는 천장만 보이는 화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푹 빠진 제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대로 언제고 눌러앉아 있을 것만 같아서.
 
 
 
-“나 오늘 하루 종일 너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거든?”
 
 
 
핸드폰 화면 속, 그런 찬열의 모습을 본 ㅇㅇ
투정 섞인 목소리에 운전할 거면 이제 끊으라며
통화 종료의 뉘앙스를 풍기는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찬열은 핸들을 꺾고 바퀴를 움직였다.
 
운전하면서 통화하면 위험할 텐데.
 
제가 끊으면 그만인데도 보고 있으니
또 끊기가 아쉬워지는 ㅇㅇ이 주차장을
나서는 찬열에게 운전 중에 통화하는 거
불법 아니냐며 괜한 말을 한다.
 
 
 
-“불법 저지르는 것도 불사하게 만드는 건
너니까 나 걸리면 벌금은 네가 내.”
 
얼만데?”
 
-“내주게?”
 
나 때문이라는데 내줘야지.”
 
 
 
다치지 않게 운전이나 잘 해.
 
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게
열일곱의 ㅇㅇ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찬열은 시원한 입매로 이를 드러낸 채
웃었다.
 
저를 그렇게도 싫어하던 ㅇㅇ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ㅇㅇ과 결혼을 앞둔 연인의 모습으로
통화를 하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아서.
 
운전에 집중하느라 여직 천장만 보여주는
화면에 시선을 주지 못하면서도 뭐하고 있냐
묻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너 보고 있어.”
 
-“나도 너 보고 싶어.”
 
그래도 안 돼.”
 
 
 
ㅇㅇ이 단호한 목소리를 내자
찬열이 보란 듯이 입술을 비죽인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꼴인데 화장 안 한
맨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어서 ㅇㅇ
찬열의 어떤 술수에도 넘어가지 않기로
굳게 다짐을 했다.
 
 
 
-“저녁은 먹었어?”
 
생각 없어서. 너는?”
 
-“생각 없어서?
너 밥을 왜 이렇게 안 챙겨먹어.”
 
 
 
신호를 기다리느라 차를 잠깐 세운 틈에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 찬열의 얼굴에
금세 걱정이 번져있다.
 
끼니때마다 밥을 챙겨 먹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ㅇㅇ이었다.
 
제가 밥을 먹고 안 먹고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건 제 언니뿐이었으니,
언니가 죽고 난 뒤로는 그저 살기위해
먹는 행위에 그쳤다. 내킬 때만 먹는 것.
 
그래서 제가 끼니를 챙겨먹는 것에 대해 걱정
담긴 잔소리를 내는 찬열이 좀 얼떨떨했다.
 
살짝 구겨진 미간, 조금 삐져나온 입술.
너는 이런 얼굴로 나를 걱정하는 구나.
ㅇㅇ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집에 있다 보면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아까 점심은 먹었어?”
 
. 빵이랑 주스.”
 
 
 
무슨 빵을 먹었냐는 말에 샌드위치용 빵을
먹었다고 대답하니 몇 조각 먹었냐, 한 조각
먹어놓고 저녁은 왜 생각이 없냐, 끊임없이
이어지던 말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곧장 한숨 섞인 목소리가
안 되겠다, . 한다.
 
 
 
?”
 
-“나 지금 너네 집으로 갈 거야.”
 
?”


 
-“저녁 나랑 같이 먹어.”
 
 
 
대충 준비해. 집 앞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
제가 대답도 안한 일방적인 통보를 뱉은 찬열이
전화를 끊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ㅇㅇ은 전화가 끊긴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후다닥 욕실로
향했다. 서둘러야 했다.
 
 
 
, 이렇게 갑자기가 어디 있어!”
 
 
 
분주해진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는 ㅇㅇ이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어딘지 좀 떨리기까지 하는
이상한 조급함이 꽉 말아 쥔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머리는 아침에 감았으니까.”
 
 
 
세수까지 마친 ㅇㅇ이 도도도 경보하듯 걸어
화장대 앞에 앉아 마른 얼굴에 스킨과 로션
바르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걔네 회사에서 우리 집까지 얼마나 걸리지?
벽에 걸린 시계와 거울 속 제 얼굴을 번갈아
보며 얼굴을 두드리는 손이 다급해졌다.
 
그러다가 금방이라도 전화가 울릴 것 같아
벌떡 일어나 이불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가 끊긴 지 십 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한 번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눈 깜빡할 새에 십 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화장을 어떻게 해야 되지. 대충 준비하라고
했는데 풀 메이크업을 하는 건 좀 웃기겠지.
뭐 그럴 시간이 없기도 했다.
 
색조화장은 과감히 생략하기로 하고 피부화장을
끝낸 ㅇㅇ은 또 벌떡 일어나 옷장 앞으로 향했다.
 
 
 
, 뭐 입어.”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ㅇㅇ은 제 옷장
앞에 멀뚱히 서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찬열을 만날 때마다 늘 격식을 차리느라 주로
원피스를 입었었는데 갑자기 집 앞으로 온다는
상황에서 격식을 차려 입는 것도 웃기잖아.
대충 준비하라고 하기도 했고.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대책도 없이 백지장이 된
머릿속은 빠른 사고를 하지 못한다.
 
그저 옷장 안을 멍하니 바라보느라 적당히
채워진 옷가지들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다.
 
 
 

아가씨 약속 있으세요?”
 
 
 
누군가 제 방에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별 다른 소득 없이 옷장을 뒤적이던 ㅇㅇ이었다.
 
거울 앞에 서 제 몸에 옷을 대보던 ㅇㅇ
가사도우미의 등장에 놀란 눈을 한 것도
잠시 다급한 목소리를 뱉었다.
 
 
 
아줌마 저 어때요?”
 
? ,예쁘세요.”
 
이렇게 입어도 괜찮을까요?
너무 편해 보이나.”
 
 
 
청바지는 좀 그런가? 중얼거린 ㅇㅇ이 상체에
대고 있던 흰 티를 침대 위로 던지고 다시
옷장을 뒤져 시원한 소재의 블라우스를 꺼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한 얼굴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가사도우미의 입가가 슬며시
위로 번졌다.
 
지금처럼 생기가 넘쳐 밝은 기운을 뿜는
ㅇㅇ을 본 게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그렇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모습이니 좋은 일이 아닐까, 예상하는 바이다.
 
어딘지 분주하고 부산스러운 모습에 가사도우미가
괜찮으시면 제가 봐드릴게요. 입어 보세요. 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래주실래요? 하며 작게 웃는
얼굴이 세월 속에 잠든 소녀의 얼굴과 닮아있다.
 
제 언니의 죽음 이후 영원히 잠든 줄로만
알았는데, 그 작고 예뻤던 소녀를 다시
깨운 게 누굴까. 누구라도 좋았다.
 
 
 
어때요? 괜찮아요? 너무 차려입은 것처럼
안 보였으면 좋겠는데.”
 
딱 좋아요. 너무 예뻐요, 아가씨.”
 
가방은 뭐가 좋을까요? 이거? 아니면 이거?”
 
이거요.”
 
 
 
왼손에 들린 가방을 가리킴과 동시에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헉,
소리를 낸 ㅇㅇ이 화장대 위에 올려놨던
핸드폰을 향해 도도도 뛰듯이 걸음을 옮겨
발신인을 확인하니 역시나 박찬열이다.
 
얜 뭐 이렇게 빨리 와.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한 손에 가방을 든 채 통화버튼을 누르고
벌써왔냐 묻자 숨소리가 왜 이렇게 거치냐며
웃음 섞인 말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도착했어?”
 
-“. 집 앞이야. 준비 다 했어?”
 
, 거의. 미안한데 오 분만.
금방 나갈게.”
 
 
 
준비는 거의 다 끝났는데도 급해진
마음에 냅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냥 이대로 나가면 되나? 화장대 앞에 서서
눈만 깜빡인 채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작은 가방 안에 핸드폰과 카드지갑, 립스틱
하나를 챙겨 넣으면서도 자꾸 뭔가가 빠진
기분이 들었다.
 
 
 
저 이대로 나가면 될까요?”
 
. 충분해요.”
 
입술 색, 괜찮아요?”
 
 
 
ㅇㅇ의 물음에 가사도우미는 말없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려 화장대 거울에 제 모습을
한 번 더 비춰본 뒤에 ㅇㅇ은 제가
정신없이 어질러놓은 방을 나섰다.
 
저를 도와준 가사도우미에게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고.
 
 
 
다녀오세요.”
 
, 다녀올게요.”
 
 
 
어질러진 방 안에 혼자 남은 가사도우미는
방문을 열고 나간 ㅇㅇ의 안타까운 지난날을
떠올렸다.
 
충분한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이였지만
부모 대신 잘 보살펴준 제 언니 덕분인지
밝고 착하게 자라준 ㅇㅇ이었다.
 
언니가 죽은 뒤로는 저도 따라 죽으려 했던
적이 열 손가락을 넘었다. 그 여린 아이가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말을 잃었었을까,
 
상처로 얼룩진 ㅇㅇ의 세월을 돌아보며
주책맞게 코끝이 찡해진 가사도우미가
코를 훌쩍이며 고인 눈물을 얼른 닦아냈다.
 
이제라도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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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은 찬열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 위에서 곧장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꿨다.
 
보고 싶은 건 둘째 치더라도 ㅇㅇ이 뭘 제대로
먹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거니와 생각해보니
저와 있을 때를 빼고는 끼니를 챙기는 일도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뭐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니겠나,
얼굴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가는 길에 초밥을 사갈까 하다가 이왕 먹일 거
그냥 고기를 먹이자, 하고 액셀을 좀 더 밟았다.
 
ㅇㅇ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조급해지기 일 수였다.
 
저녁 나랑 같이 먹어. 이 말을 당연하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찬열은 그 행복을 살아온 평생, 처음으로
몸소 느끼고 있었다.
 
아직 ㅇㅇ을 만나기도 전인데 만나러 가는
그 길 위에서 온 얼굴이 제 멋대로 실룩거렸다.
 
큰일인데, 이러다간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할 것 같다.
 
 
 

,
 
 
 
이런 제 자신이 스스로도 우스워 저를 향한
어이없는 웃음이 난데없이 입 밖으로 샜다.
 
ㅇㅇ을 보러가는 길이면서도 ㅇㅇ
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했다.
이런 제가 정말 제 정신인 걸까.
종국엔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구나,
하는 사랑의 신비에 대해서.
 
ㅇㅇ은 언제나 제 기준치를 훌쩍 넘어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를 안달 나게 하는 유일한 사람.
그러니 신비를 논할 만하다. , 그렇고말고.
 
 
 
-“벌써왔어?”
 
 
 
집 앞에 도착해놓고도 혹시나 해서
십 분을 더 기다렸다가 건 전화였다.
 
방 안을 뛰어다니기라도 한 건지 평소에 듣기
힘든 거친 숨소리가 벌써 왔냐는 물음과 함께
귓가를 울린다.
 
 
 
뭐했는데 숨소리가 이렇게 거칠어.”
 
-“도착했어?”
 
. 집 앞이야. 준비 다 했어?”
 
-“, 거의. 미안한데 오 분만.
금방 나갈게.”
 
천천히.”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천천히 나와도
괜찮다는 제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린 ㅇㅇ이다.
 
 
 

뭐가 그렇게 급해, ㅇㅇ.”
 
 
 
십 분을 기다려놓고 오 분이라고 못 기다릴게
뭐야. 입가에 꾹 힘을 준 찬열이 시계가 채워진
손목을 들어 일곱 시를 조금 넘어선 시간을
확인하고는 운전대를 끌어안았다.
 
노래 두 곡이면 금방 지나갈 오 분이
다섯 시간이라도 되는 듯 했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찬열이었다.
제가 누군가를 기다리게 했으면 기다리게 했지
누구도 제게 기다림을 종용한 적이 없었다.
 
기다리라는 말에 천천히 나오라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오다니.
 
ㅇㅇㅇ은 박찬열의 유일한 예외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 이미 그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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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하는 두꺼운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ㅇㅇ이 문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찬열이 입 꼬리를
씨익, 위로 올렸다.
 
대충 준비하라고 했더니 뭘 또 저렇게 예쁘게
하고 나와. 차창 너머로 저와 눈을 맞춘 ㅇㅇ
후다닥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수줍은 입술을 앙 다문 채다.
 
온종일 틈만 나면 제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던
얼굴. 보고 싶어 죽겠던 ㅇㅇ이 제 눈앞에서
새침하게 저를 쳐다보고 있다.
 
 
 
뭐해?”
 
너 보잖아.”
 
그러니까 왜 그렇게 빤히 보냐고.”
 
 
 
혹시라도 연한 화장에 제 얼굴이 못생겨
보이나 해서 ㅇㅇ이 고개를 뒤로 주춤 물렀다.
 
뭐야 진짜저를 빤히 보는 찬열을 덩달아
멀뚱히 보던 ㅇㅇ이 심각해진 얼굴로 제 손
하나를 내밀어 찬열의 곧은 시선을 가렸다.
그러자 곧장 손을 잡아 내리는 찬열이다.
 
 
 
왜 가려.”
 
너가 대충하고 나오래서, 시간도 없고.
근데 그렇게 빤히 보면 좀,”
 
 
 
내가 민망하잖아. 퉁명스럽게 덧붙여진 말에
찬열이 시원한 입매를 위로 올리며 웃었다.
 
 
 

대충하고 나오랬더니 너무 예뻐서 보는 건데.
안 돼?”
 
 
 
여과 없이 던지는 말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분간이 어려운 ㅇㅇ은 뭐래, 잡힌 손을
빼내며 말없이 안전벨트를 채웠다.
잔말 말고 출발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사이라 해도
간지러운 말은 말 그대로 간지러운 말이다.
 
ㅇㅇ은 세훈이나 성경을 뺀 이성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거니와
그런 말에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찬열을 통해 듣는
예쁘다는 말은 어딘지 좀 부끄럽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듣는 좋은 말이라서
그런가, 입에 발린 소리들이 달기만 하다.
 
그걸 티내지 않으려는 ㅇㅇ이었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마음이야 애써 숨겨 봐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입 꼬리가 그 반증이다.
 
 
 
네가 너무 좋아.”
 
 
 
그런 ㅇㅇ을 보고 있으면 고백의
말이 절로 입 밖을 새나갔다.
 
방금도 막 그런 참인데, 그 소리에 애써
정면을 향하던 고개가 이제야 제게로
오롯이 향했다.
 
밑도 끝도 없이 뭐야. 들린 말이 좋으면서도
괜한 말을 건네면 접힌 눈을 똑바로 맞춘
찬열이 그냥, 너무 좋다고 ㅇㅇㅇ. 다시금
제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냈다.
 
, 자꾸 이러면
곤란해지는 건 아무래도 저뿐이다.
 
 
 
나도 뭐라고, 무슨 말을 해줘야 돼?”
 
 
 
ㅇㅇ이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제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제 앞에 떨어지는 문장이 듣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어쩐지 좀 멋쩍어 그렇다.
 
연애의 감정이 처음인 제가 혹시라도 찬열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눈치껏 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그래서 묻는 것이다.
몰라서 그러는 거니 알려달라고.
 
순진무구한 시선이 찬열에게로 곧게 향했다.
 
 
 
안 해줘도 돼.
너한테 뭐 바라고 한 말 아닌데.”
 
근데 왜 자꾸 그런그런 말을 해.”
 
몰라 나도. 너만 보면 그냥 튀어나와.”
 
정말 그게 다야?”
 
뭘 바랐으면 좋겠어?”
 
 
 
찬열이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고 물으니
잠깐 고민하느라 좁아진 미간으로 눈을 맞춘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ㅇㅇ이다.
 
좋다는 말에 뭐라도 해줘야 하냐는 물음은
또 처음이다. 자꾸 처음을 만드는 ㅇㅇ
저는 또 좋아 죽겠고.
 
그걸 못 참고 웃어버린다면 왜 웃느냐고
물어올 ㅇㅇ인 걸 이제는 어느 정도 예상
할 줄 알게 됐다.
 
연애의 감정 자체가 처음인 ㅇㅇ
그 처음을 감당하며 또 다른 처음을
알아가는 찬열.
 
그래서 찬열은 뭘 바랐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작게 고개를 저은 ㅇㅇ에게
다정한 얼굴로 눈을 맞춘 채 그럼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기면 된다고,
 
앞으로도 종종 듣게 될 테니 그렇게 심각한
얼굴 할 필요 없다며 친절히 답해줬다.
 
그 말에 ㅇㅇ은 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나서도 어딘지 영 석연찮아 앉은
시트에 몸을 바로 하는 찬열을 향해
꿋꿋이 목소리를 냈다.
 
 
 
혹시 뽀뽀 받고 싶어?”
 
 
 
이제 밥을 먹으러 가볼까 말하려던 찬열의
입술이 별안간 귀에 박힌 문장에 꾹 다물렸다.
 
해줄까?’도 아니고 받고 싶어?’라는 문장을
 해석하려는 듯 찬열은 잠시 멈칫한 채로
두 눈을 깜빡였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서다.
그럼에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칠까, 곧장
안 받고 싶은 건 아닌데.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린 찬열이 해줄 거야? 되물었다.
 
 
 
해주려고 물은 거야.”
 

집 앞인데?”
 
아무도 없잖아.”
 
 
 
네가 곤란할까 물은 건데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이 저를 향한다.
 
그 단호한 얼굴을 빤히 보다가 찬열은
더 참지 못하고 푸흐흐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째 며칠 전 제 집무실에서의
저와 ㅇㅇ이 떠올라서 그렇다.
 
그걸 인지 못한 ㅇㅇ은 운전대에 머리를
기댄 채 큭큭거리며 웃는 찬열을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싫으면 말고.”
 
누가 싫대.”
 
 
 
좋아서. 네가 너무 귀여워서.
사실 더한 걸 하고 싶어서.
 
떠오르는 말들은 모조리 삼킨 찬열이
숙였던 상체를 일으켜 ㅇㅇ 쪽으로
몸을 좀 더 기울였다.
 
아무래도 안전벨트를 한 ㅇㅇ보다 제가
다가가는 게 수월할 거 같아 다가간 건데
어째 다가간 만큼 고개를 뒤로 물리는
ㅇㅇ이다.
 
 
 
해준다며.”
 
 
 
찬열은 ㅇㅇ의 뜻 모를 얼굴을 흉내 냈다.
 
제가 밀고 당기는 것조차 모르는
그 순진무구한 얼굴을.
 
그런 얼굴을 하고서 왜 뒤로 가냐 묻자
고개를 뒤로 물려놓고도 제 말에는
꼬박꼬박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갈 건데 네가 오니까 그렇지.”
 
 
 
더 가까이 다가올까 찬열의 어깨를
붙든 채였다. 제 어깨를 붙든 작은
손에서 따듯한 열기가 전해졌다.
 
전해진 열기는 찬열의 바싹 마른 마음에
욕망을 피우기에 딱 좋은 온도다.
 
장난삼아 다가가 놓고 얼른 닿고 싶은
욕망의 불이 급박하게 치솟았다.
 
 
 
뒤로 좀만 가.”
 
해줘야 갈 건데.”
 
자세가 불편해서 그래.”
 
너는 꼭 사람을,”
 
 
 
못 참게 해.
 
내뱉지 못한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 걸렸다.
더 못 참겠던 저보다 빠르게 움직인 건
ㅇㅇ이었다.
 
제 두 볼을 감싼 손과 제 입술에 닿았다 떨어진
입술은 믿기 힘들었지만 모두 ㅇㅇ의 것이다.
 
그게 얼떨떨하면서도 이제 우리가
<이런> 사이인 걸 이렇게 증명해주네.
싶어서 희열 같은 게 찬열의 마음
이곳저곳을 뜨겁게 채웠다.
 
누가 먼저 입을 맞춰도 거리낄게 없는 사이.
입맞춤이 당연하게 오고가는 사이.
 
찬열은 거기로부터 오는 기쁨을 숨길 수 없는지
위로 번지는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안 어울리게도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
 
말 진짜 많아, 박찬열.”
 
 
 
더는 머뭇거릴 일 없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한 번 더 입술을 맞춘 ㅇㅇ이 어쩌면
소녀였을 적부터 생각해오던 속내를
내뱉으며 작게 웃었다.
 
그 소리는 ㅇㅇ을 괴롭히던 열여덟
무렵에도 몇 번 들었던 말이었다.
 
너 진짜 말 많구나. 시끄러우니까
그 입 좀 다물라는 소리야. 저 먼 곳에서
그 소리가 환영처럼 다시 들리는 듯 했다.
 
열여덟에는 한심함과 귀찮음이 섞였던
목소리가 스물일곱에는 설탕 뿌려진
사탕이라도 되는지 달다.
 
찬열은 바로 코앞의 ㅇㅇ이 못내 사랑스러워
제 입으로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 미소였다.
 
 
 

네가 이러면 내가 어떻게 참아.”
 
 
 
숨길 수 없는 건 피어나는 미소뿐만이 아니다.
더 깊고, 더 오래, 천천히 닿고 싶은 마음.
 
따듯한 두 손의 열기 안에 갇힌
볼이 더없이 뜨거운 거 같은데
너는 알면서도 모르는 얼굴이다.
 
작게 웃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찬열이
코앞의 거리를 더 좁히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면 입술이
닿는 건 곧장 이다.
 
얼굴을 감싸던 작은 두 손은 어느새
팔을 움직여 찬열의 목을 감쌌다.
 
거기에 탄력이라도 받은 듯 찬열은 손을 내려
ㅇㅇ이 메고 있는 안전벨트를 풀어냈다. 작은
몸을 부서질 듯 안고 싶은 마음에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작은 장애물이 소리를 내며 사라진 뒤로는
제 목을 감싼 ㅇㅇ의 허리를 끌어 몸 쪽으로
가까이 안았다.
 
더 붙고 싶은 욕망에 작은 몸을 그대로 들어
제 무릎 위로 앉히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시간을 잊은 입맞춤이 장소마저 잊고 농도를
높여가고 있을 때쯤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에
두 사람은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들고 천천히
떨어졌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가슴이 두근두근 쉴 새를
모르고 뛰었다. 도무지 절제를 모르게 만드는
ㅇㅇ이었다.
 
눈 둘 곳을 모르고 방황하는 시선을 가만히
내려 보던 찬열이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입을
열었다.
 
 
 
이제 집에 가자.”
 
 
 
밥 먹으러 안 가? 나 이제 막 나왔는데?
말 하지 않아도 대뜸 이제 집에 가자고
뱉은 찬열을 향한 눈이 그렇게 물었다.
 
그 눈을 읽고 슬쩍 웃은 찬열이
너네 집 말고, 답하며 짧은 입맞춤을
끝으로 ㅇㅇ의 허리를 놔줬다.
 
여직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ㅇㅇ이 눈을 깜빡이며 그럼? 말끝을 올린다.
 
 
 
우리 집.”
 
……너 사는 집? 지금? 갑자기?”
 
 
 
밥 먹자며, 할아버님이랑 아버님이
나 오라고 하신 거야? 놀란 얼굴이
금세 사색이 돼 허리를 곧추세웠다.
 
저를 만난 이래로 물음표가 붙은 말이
이렇게 와다다 쏟아진 건 또 처음이다.
 
제 의도와는 다른 영 엉뚱한 질문에
찬열은 ㅇㅇ이 제가 본가에서 나와
사는 걸 모르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하긴, 말 한 적이 없으니 알리가 없지.
약간 김이 샌 얼굴로 찬열이 작게 웃었다.
 
 
 
아니, 거기 말고요.
나 혼자 사는 우리 집. 독립한 지 꽤 됐거든.”
 
……,”
 

거긴 너 오라고 해도 내가 안 데려가.”
 
?”
 
 
 
둘만 있는 게 좋으니까.
 
진심 섞인 좋은 핑계를 내세워 제가
곧 죽어도 싫은 사실 하나를 애써 숨겼다.
 
너는 몰라도 돼. 네가 몰랐으면 해.
언젠가 알게 되더라도 그게 아주 나중이었으면
좋겠다는, 어쩌면 너무도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본가의 숨겨진 모자를 떠올릴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난 이제 가여운 엄마보다
너를 더 먼저 떠올려.
 
응어리진 분노를 덜어낸 만큼 네가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그 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농담조의 말을 뱉으면서도 어딘지 좀 차분해진
찬열이 안전벨트를 매자 얼떨떨한 얼굴을 한
ㅇㅇ도 곧장 안전벨트를 따라 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찬열이 천천히 액셀을 밟으니
핸들을 꺾은 대로 자동차의 바퀴가 움직였다.
 
이대로 찬열이 사는 집으로 가는 걸까?
ㅇㅇ은 여직 제가 찬열의 집에 간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가긴 간다만 얼떨떨한 정신이 채
가시기 전이라 그렇다.
 
 
 
……근데, 집에 가서 뭐해?”
 
밥 먹어야지.”
 
 
 
찬열이 뱉은 <나 혼자 사는 우리 집>에 대해
열심히 곱씹으며 생각의 여과를 마친 ㅇㅇ
조심스레 건넨 물음에 명쾌한 답이 돌아오는 건
금방이다.
 
 
 
왜 꼭 너네 집에서, 아니, 집에 밥이 많아?”
 
 
 
명쾌하게 돌아온 답에 당황이라도 한 건지
말이 이상하게 꼬였다.
 
찬열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람을 뱉으며 웃었다.
 
 


 
진지한 얼굴로 뭐라는 거야.
우리 집에 밥이 많냐고?”
 
 
 
되물으니 작게 한숨을 쉰 ㅇㅇ
그러니까 내 말은엉겨 붙은 단어를
떼어내듯 골머리 앓는 표정을 지었다.
 
 
 
저녁을 굳이, 왜 너네 집으로 가서
먹냐는 말이야
 
그거야 내가 굳이 너한테
요리해주고 싶으니까.”
 
……네가 직접 해준다고?”
 
. 너 고기 좀 먹이게.”
 
 
 
나 스테이크 잘 구워. 덧붙여지는 말에
ㅇㅇ은 이제야 뭔가를 깨달은 양 아하는
단발성의 소리를 냈다.
 
찬열은 깊은 뜻 없이 한 나 혼자 사는 우리
이란 말을 저 혼자 깊게 생각한 탓이다.
진한 입맞춤 뒤에 따라 붙은 말이라 더 그랬다.
 
찬열에게 그 속을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하마터면 찬열에게 놀림을
받을 뻔 했으니 더는 섣부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 ㅇㅇ이 입술을 앙 다물었다.
 
곁눈질을 하던 찬열은 그 모습을 보며
ㅇㅇ 모르게 속으로 웃었다.
 
아까 샌 줄 알았던 김이 다 샌 건
아니었구나, 웃는 제 모습이 들킬까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 채다.
 
 
 
Burj marriage
 
 
 
찬열의 집으로 가기 전 들린 곳은 대형
마트였다. 주차장에 세운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카트를 끌고 식료품 코너로 향했다.
 
두 사람 다 어색할 법도 한데
또 그렇지도 않았다.
 
찬열은 혼자 나와 산 시간이 햇수로 7년 째
였고, 유학생활을 한 ㅇㅇ도 그건 마찬가지
인지라 카트를 끌며 장을 보는 모습이
어느 정도 익숙해 보였다.
 
카트를 미는 찬열과 그 옆에 선 ㅇㅇ.
 
마트 내 사람들이 흘긋거리며 여유롭게
장을 보는 두 사람을 훑어 내렸다.
 
둘 다 길쭉한 데도 한 사람은 평균 이상으로
커 우뚝 솟은 머리통 덕에 시선은 은연중에
더 쏠렸다. 지나가던 젊은 여자들은 모델
아니냐며 저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 수군거림과 쏠린 이목을
모르는 건 둘 뿐이다.
 
 
 
와인 사갈까?
집에도 몇 병 있긴 한데.”
 
. 좋아.”
 
 
 
카트 속 야채더미 위로 스테이크용 고기를
담은 찬열이 전보다 무게가 실린 카트를
다시 앞으로 밀었다.
 
그 옆으로는 나란히 선 ㅇㅇ이 한국에
와 오랜만에 들린 마트 안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시선이 바쁘다.
 
와인이 진열된 코너에 도착해서는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앞쪽에서 시음
행사 중인 와인을 한 잔 받아마셨다.
 
 
 
어때?”
 
괜찮아.”
 
 
 
운전할 찬열 대신 맛을 본
ㅇㅇ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따로 마시고 싶은 거 없으면 그냥 이거
사갈까? 찬열이 묻자 곧장 작은 잔을 건넸던
직원에게 이거 한 병 주시겠어요? 한다.
 
냉큼 행사 진열대 밑으로 손을 뻗은 직원이
ㅇㅇ을 향해 와인 한 병을 건네자 그걸 받아
카트 안으로 조심스레 넣는 찬열이다.
 
 
 
젊은 부부가 장 보러 나왔나보네.
무슨 기념일이라도 돼요?
와인을 다 사러오고.”
 
 
 
살가운 직원이 건넨 말에 찬열은
시원한 입매를 숨기지 못하고 웃었다.
 
남들 눈에 저들이 연인 이상으로
보이는 게 못내 좋아서 그렇다.
 
 
 

저희 결혼기념일이거든요. 1년 됐어요.”
 
 
 
갑자기 뭔? 대뜸 튀어나온 헛소리에
올려다본 얼굴이 평온하기 그지없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싱글벙글 넉살도 좋지.
 
눈이 마주치자 여섯 살 난 애같이 웃는
얼굴에 ㅇㅇ도 그냥 웃고 말았다.
 
한 번 보고 말 사이에 이런
거짓말쯤이야 큰일은 아니니까.
 
 
 
어머, 풋풋해라. 아직 신혼이구나.
애는 아직 없고?”
 
오늘 분위기 좀 내보려고요.”
 
하긴 애 있으면 분위기 내는 것도 힘들지.”
 
 
 
없을 때 즐겨. 호탕하게 웃는 직원을 따라
, 그래야죠. 듬직한 목소리를 낸 옆구리를
쿡 찌르자 그제야 카트를 움직이는 찬열이다.
 
그 자리에서 몇 걸음을 떼 직원과
멀어졌을 때쯤 재밌냐? 물으니 우리더러
젊은 부부라잖아. 찬열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나는 너랑 그렇게 보이는 게 좋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뭐가 좋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거니까.”
 
 
 
잠깐 저를 내려다본 찬열의 입술이 예쁜
호를 그렸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이제는
따라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계산대에 카트에 담았던 물건을 올려놓는
찬열을 보며 ㅇㅇ은 속으로 찬열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라 좋다는 네 말.
그 말에 부정이라고는 한 톨도 생기지
않는 마음이 신기한 순간이었다.
 
나도 그걸 바라. 널찍한 등을 바라보며
ㅇㅇ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어차피 너랑 그렇게 될 거지만,
결혼을 하고 함께 살게 되겠지만,
 
<어차피>라는 단정의 말 안에 부디
행복하게 오래오래가 전제로 깔려있기를.
 
정말로, 될 수 있는 한
너랑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어졌어, 나는.
 
 
 
Burj marriage
 
 
 
차가 몇 대 없는 지하 주차장에 내려 한 손에
짐을 든 찬열과 승강기에 타고나서야 ㅇㅇ
, 제가 찬열의 집에 오긴 온 거구나.
절실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뭔데 이렇게 어색한 걸까. 위로 향하는
숫자를 바라보며 애꿎은 입 안만 씹었다.
 
옆집에 살던 세훈의 집에 갔을 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집에도 들어가기
전인데 긴장이라도 한 건지 입술이 말랐다.
 
찬열이 손을 고쳐 잡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내는 봉투의 소리가 유난히 크다고
생각할 즈음 끝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할 것
같던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두 사람 몫의 구두 소리가 복도를 짧게 울리고
잠금 장치를 해제한 찬열이 문을 활짝 열고
먼저 들어가라는 고갯짓을 했다.
 
 
 
그럼, 실례.”
 
 
 
가지런히 놓인 손님용 슬리퍼를 신고
들어선 집 안은 넓고 깨끗했다. 높은
천장이 탁 트인 기분을 들게 했다.
 
꼭 저 같이 해놓고 사네.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는 작은 뒷모습을 보던
찬열은 주방으로 걸음을 옮겨 들고 있던 짐을
식탁 위로 올려놨다.
 
그리고는 곧장 뒤를 돌아 냉장고를 열어
쓸 만한 식재료의 유무를 확인했다.
 
 
 
"마실 것 좀 줄까?"
 
 
 
찬열의 물음에 괜찮다는 목소리가
거실 언저리에서 들려왔다.
 
그 사이 소동물적인 발걸음은 적당히
넓은 거실을 지났다. 대충 훑으니 방이
여러 개이긴 한데 거기까지 둘러볼 여유는
좀체 생기지 않아 ㅇㅇ은 기웃거리던
걸음을 찬열이 있는 주방으로 돌렸다.
 
어느새 찬열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셔츠 손목의 단추를 풀어 팔을 단단히
걷어붙인 채다.
 
 
 
"구경 다 했어?“
 
". 혼자 사는 거 좋을 거 같아."
 
 
 
나쁘지는 않지,
일단 신경 쓸 사람도 없고 편하니까.
 
재료를 준비하는 손은 분주하면서도
ㅇㅇ이 심심할까 간간히 눈을 맞추며
신경을 쓰는 찬열이다.
 
 
 

이 집에 여자 손님은 네가 처음이야.”
 
와 진짜? 신빙성이 하나도 없다.”
 
 
 
제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ㅇㅇ
영혼 없는 감탄사에 찬열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신빙성이 하나도 없다는 건조한
말투에 진심이 느껴져서 그렇다.
 
 
 

나 너한테 그 정도야?”
 
설마 내가 처음일 리는 없잖아.”
 
설마 네가 처음 맞는데.
나 집에 사람 잘 안 들여.”
 
?”
 
 
 
외로워서. 있다 없으면 외롭잖아.
그냥 흘리듯 뱉은 말이 고스란히
마음에 닿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 잘 알아서 그렇다.
 
저도 언젠가 사무치게 느껴봤던 것.
 
누군가 있다 없을 때의 허전함.
어떤 노력으로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보이지 않는 구멍.
 
재료를 준비하는 데만 집중한 찬열의
의연한 얼굴이 왠지 다르게 보였다.
 
그러니까 평소 제가 생각하던
박찬열과는 좀 다른 느낌.
 
너도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구나.
어쩌면 너도 마음 어딘가에 좀체
메워지지 않는 큰 구멍 같은 게
있는 걸까.
 
 
 
뭐 좀 도와줄까?”
 
.”
 
뭐 도와줄까.”
 
거기 앉아서 나 봐주는 거.”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찬열이 저를
멀뚱히 쳐다보는 ㅇㅇ과 눈을 맞추고
장난스레 입 꼬리를 올렸다.
 
 
 
요리하는 남자가 그렇게 섹시,”
 
 
 
말소리도, 위를 향했던 입 꼬리도 닿은
입술과 동시에 멎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ㅇㅇ이 찬열의 두 볼을 잡고 무작정 입을
맞춰서 그렇다.
 
잠깐 붙었다 떨어진 얼굴이 금세 제가
한 일을 모른 척, 뻔뻔하게 저를 향한다.
 
그래서 찬열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확한
이해와 파악을 하기도 전에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고 짐짓 심각한 얼굴을 했다.
 
직전까지 웃고 있었으면서.
 
 
 
나 진짜 너 고기 먹이려고
우리 집 온 거거든.”
 
알아.”
 
알면 그러지 마. 갑자기 그렇게 막 그러면
내가 좋긴 한데, ? 그러다가 큰일 나, .”
 
 
 
여기 사방이 막혔거든.
 
물론 제가 한 행동이 찬열을 시험에 들게
한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얼굴이라 찬열은
그저 무언가를 꾹 참는 듯 심난한 표정을
한 채 재료를 씻을 요량으로 뒤쪽에 난
싱크대로 향했다.
 
그냥 레스토랑으로 갈 걸 그랬나.
괜히 집으로 온 것 같다는 후회 막심한
생각을 떨쳐내는 게 힘들어 고기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나는 지금 ㅇㅇㅇ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
식빵 한 조각을 한 끼라고 먹은 ㅇㅇㅇ이랑
제대로 된 저녁을 먹기 위해, 그러기 위해.
 
찬열이 제 머릿속을 환기시키려 곧장
물을 튼 것도 잠시 결국 아무 것도
씻지 못한 채로 수전이 내려졌다.
 
멎은 물소리와 함께 집 안을 부유하는 정적.
작은 한숨과 함께 숙였다 올려지는 심란한
머리통 하나.
 
 
 

.”
 
? 뭐 안 사왔어?”
 
 
 
왜 저러나 싶어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멀뚱한
두 눈에 어느새 뒤를 돌아 제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오는 찬열이 대뜸 ㅇㅇ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이번엔 짧은 입맞춤이 아니라 곧장 닿은 틈새가
열리고야 마는 키스의 단계다. 찬열의 팔이 앉은
ㅇㅇ의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당기자 그대로
일어나 안겨오는 ㅇㅇ이다.
 
차 안에서의 더 닿지 못한 아쉬움을 기억하는
몸이 작은 몸을 틈 하나 없이 꽉 안았다.
 
엉거주춤 어깨를 붙들었던 손은 허리춤으로
내려와 제 자리를 찾았다. 나누는 숨결이
뜨거웠다. 피어오르는 흥분에 정신이 혼미
해질 것만 같았다.
 
두 사람 다 집에 온 애초의 목적이
키스라도 되는 듯 배고픔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큰 품에 안겨 닿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키스했다.
 
겨우 떨어진 입술이 코끝에 짧게 입을 맞췄다.
 
 
 
……고기 구워준다며.”
 
꼬신 게 누군데.”
 
난 그냥 뽀뽀가 하고 싶었을 뿐이야.”
 
 
 
말 그대로 ㅇㅇ 딴에는
계산 없이 한 행동이었다.
 
제 딴에는 그동안 외로웠을
찬열에 대한 작은 위로 같은 거.
 
그저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순간순간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넌 내가 지금 얼마나 참고 있는지 모르지.”
 
 
 
식탁에 짓눌린 엉덩이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저를 가뿐히 들어 식탁 위로
앉힌 찬열이 코끝을 맞대고 작게 웃었다.
 
식탁 모서리를 잡은 두 팔 안에
작은 몸을 가둔 채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웃었다기 보다는
퍼석한 웃음소리와 함께 뱉어진 한숨 같았다.
 
 
 
뭘 그렇게 참는데?”
 
몰라서 물어?”
 
알 거 같긴 한데
 
 
 
몰라서 묻는 거냐고 곧장 되돌아온
목소리에 주눅이라도 든 듯 했다.
 
 
 
그냥,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작게 움직이는 입술에 찬열은 하는 수 없이
한 번 더 제 입술을 진하게 내렸다 뗐다.
 
떨어진 얼굴이 뜨거운 한숨과 함께
곧장 ㅇㅇ의 목덜미에 파묻혔다.
 
 
 

……알 것 같긴 뭘 알아.”
 
 
 
지금 제가 무슨 정신으로 참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고역인지, 너는 모를 거야.
 
어깨에 비벼지며 닿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박찬열.”
 
 
 
붙들었던 옷자락을 살짝 흔든 ㅇㅇ
차분히 저를 부르자 여전히 고개를
묻은 채 뭉개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 좀 봐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ㅇㅇ
찬열의 두 볼을 붙들어 파묻은 얼굴을
제 어깨에서 떼어냈다.
 
 
 
배 안 고파?”
 
배고파?”
 
나 말고 너 말이야.”
 
 
 
지금 배고픈 게 문제일까.
 
찬열이 ㅇㅇ에게 잡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ㅇㅇ이 아무리 연애라는 감정자체가
처음이었어도 자라면서 보고 듣고 읽은 게
있는데 제 앞의 찬열의 행동과 달아오른
분위기에 대해 아무렴 무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모르는 것에도 눈을 뜨게 만드는 게
무릇 사람의 본능인지라.
 
 
 
그럼 안 참으면 되겠네.”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해?”
 
넌 왜 내가 모른다고 생각해?”
 
 
 
이 정도는 나도 알아. 어림짐작일 뿐이겠지만.
굳이 뒷말은 뱉지 않은 ㅇㅇ이 굳은 얼굴의
찬열을 보며 작게 웃었다.
 
제 딴에는 아주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본능에 이끌려.
 
 
 
참지 않아도 돼.”
 
……
 
해도 돼, 뭐든.”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눈을 오래도록 마주했다.
 
그 시선 안에 저 자신이 오롯이
들어찬 걸 확인한 찬열이 더 지체 않고
제 두 볼을 붙든 손을 천천히 잡아
내리며 작은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여유를 부리며 웃고 싶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더 웃음이 나질 않았다.
 
손바닥에 닿은 입술이 뜨거웠다.
 
큰 손에 손가락을 모두 잡힌 채 바닥을
향해 내려진 손을 제 쪽으로 끌며 찬열이
뒷걸음을 쳤다.
 
 
 
허락 받은 거니까.”
 
 
 
잠시 여유를 찾고 웃는 건 찬열 뿐이다.
 
조용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홀린 사람처럼
ㅇㅇ은 찬열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손등을 쓸어내리는 오묘한 간지러움,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시선을 나누며
익숙하게 한 손으로 풀어헤친 넥타이가
바닥으로 소리도 없이 떨어지고 나서야
닫혀있던 방문이 열렸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이었다. 반쯤 걷혀진
암막커튼 사이로 밤의 푸른빛만이 다시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숨결을 나누면 나눌수록 아쉬웠다.
 
, 촉 잘게 입술을 맞대면서
찬열이 입술을 움직였다.
 
 
 
다 벗길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뱉어지는 말과는 다르게 제게 향한 두 눈은
한없이 다정해 ㅇㅇ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놀랄까봐, 무서울까봐
최대한 ㅇㅇ을 배려하는 찬열이었다.
 
차오르는 제 본능을 애써 억누르면서.
 
 
 

지금부터.”
 
 
 
다시 내려진 고개가 달아오른 입술에 닿았다.
손을 뻗어 어깨를 살짝 누르자 ㅇㅇ이 순순히
잘 정돈된 시트 위로 엉덩이를 내렸다.
 
한쪽 무릎을 침대에 걸친 채로 제 혀를
받아내는 ㅇㅇ의 달뜬 얼굴을 내려 보고
있노라면 찬열의 아래가 금세 묵직해졌다.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이러고 싶은 건 진작 들켰다만.
 
찬열이 얇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천천히, 조심스레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큰 손이 제 손톱보다도 작은 단추를
풀어내다가 여린 피부에 닿기라도 할 때면
눌린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게 못내 좋아서 긴 척추를 따라 뒷목까지
소름이 번개처럼 내려졌다 사라졌다.
 
마지막 단추까지 모두 풀어지자 슬쩍
미소를 안고 떨어진 찬열이 제 한 손에
알맞게 들어차는 얇은 목을 감쌌다.
 
목선을 따라 손을 내리면 다 풀린 채 어깨에
걸쳐있던 블라우스가 제 운명을 다한 것 마냥
스르륵 시트 위로 낙하했다.
 
ㅇㅇ은 얇은 천이 제 살갗에서 떨어지는
이상한 서늘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것도
잠시 허리를 감싸며 귓가에 바짝 붙은
찬열의 입술에 몸을 떨었다.
 
 
 
.”
 

더 내봐, 소리.”
 
 
 
낮고 음험한 목소리였다.
 
귓가를 따라 내려온 입술이 하얀 목에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흔적을 옅게
남기고 목선을 타오르며 잘게 입을 맞췄다.
 
허리에 머물던 손은 등 한가운데에 난
길을 타고 오르다 이내 손끝에 걸린
속옷의 후크를 풀어냈다.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툭 떨어진 속옷에
어쩔 줄 모르던 ㅇㅇ은 두 팔을 들어
찬열의 목을 감싸며 뒤로 몸을 기울였다.
 
덕분에 풀썩, 같은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몸이 겹쳐졌다. 다리가 엉켰다.
 
퍼석한 웃음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울리며
어두운 곳에서도 푸른 시선이 얽혔다.
 
 
 
부끄러워?”
 
조금.”
 
그럼 너도 벗겨.”
 
 
 
아래서 올려다 본 얼굴이 제가 입은
와이셔츠를 작은 턱짓으로 가리켰다.
 
가만히 숨을 고르던 ㅇㅇ이 손을 들어
목 밑까지 잠긴 단추를 두어 개쯤 남기고
모두 풀어냈을 즈음 찬열의 입술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젖은 혀를 밀어 넣었다.
 
그 노골적인 침범에 놀란 듯
단추를 풀어내던 손이 멈췄다.
 
찬열도 그걸 아는 건지 ㅇㅇ의 볼을 달래듯
쓸어내리다 셔츠를 쥔 채 멈춘 손을 풀어
다시 제 목을 감싸게 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단추 몇 개는
스스로 풀어 셔츠를 벗어냈다.
 
그런 식으로 남은 옷들이 하나 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떨어졌다. 서로가 서로의 옷을
벗겨내며, 다급한 손길이 여의치 않을 땐
스스로 벗어가며.
 
 
 
박찬열, ,”
 
 
 
누구도 닿지 않았던 곳에 처음으로 찬열의
손이 닿자 ㅇㅇ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본능적으로 가슴팍을 밀어내며 밭은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차게 울렸다.
 
어디 하나 뜨겁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가득 도는 방 안에서도
ㅇㅇ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빨갰다.
 
찬열은 또 사과처럼 달아오른 얼굴이 예뻐
밭은 숨을 내쉬는 ㅇㅇ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가슴 위에 머무는 손은
여직 멈추지 않은 채였다.
 
 
 
하지 마, 아니, 그거, 그만, ,”
 
 
 
생경한 느낌에 ㅇㅇ이 정신을 못 차렸다.
그 느낌을 참지 못하고 큰 손을 제지한
작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
 
우는 눈을 한 ㅇㅇ을 내려 보던
찬열의 눈이 짙어졌다.
 
그런 눈은 반칙이지.
 
묵직하던 아래가 더 불편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주친 침묵이 길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안 할게. 손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채 머리에 새겨지기도 전에
손끝이 머물던 곳으로 곧장 혀가 닿았다.
허리가 절로 튕겨져 올랐다.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은 채 탄탄한 맨
어깨를 밀어내봤자 밀어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작은 손에서 풀려난 큰 손이 골반을 쓸자
참고 참았던 신음이 찬열의 귓가를 울렸다.
 
그렇게 푸른빛 가득한 어두운 방 안에서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폭죽이 터졌다.
 
두 사람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폭죽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했고.
 
 
.
.
.

※만든이 : 양멍님
 
<>
 
정말 오랜만이지요 :)
 
감기를 걱정하던 계절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돼서야 다음 편을
들고오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게 바쁘고, 멘탈이 감당하지
못할 일들의 연속으로 제 마음을
돌보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다려주신 분들 모두 너무
감사드려요. 잊지 않고 부르즈 메리지를
읽으러 와주신 분들도요.
 
날이 많이 덥습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기에 너무 괴로운 날씨네요.
 
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아프지 마시고,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다음 편은 이번 편처럼 너무 늦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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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메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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