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그 끝에서 [단편] (by. HEART)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오랜만에 단편 들고 왔습니다!
찬찬히 읽어주세요:)

BGM: Memory –



.
.
.


나에게는 7년 동안 만나 온
남자친구가 있다.

1.

경수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다.
1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우리는
서로 닮은 모습에 끌려 친한 친구가 되었고,
2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그렇게 25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경수는 내 곁에 있다.


다들 신기해 했다,
고등학교 때 만난 남자를
어떻게 지금까지 사귀냐고.


우린 서로가 첫 연애 상대이다.
그렇기에 많이 서툴렀지만,
같이 맞춰 나가면서
그 누구보다 편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21개월간 경수가 군대에 있을 때도
꼬박꼬박 경수를 보러 갔고,
변함없이 경수를 사랑했다.


어느덧 나는 취업을 해 직장인이 되었고,
경수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경수를 사랑하지 않는다.



2.



언제부턴가, 너를 봐도 설렘이 없었다.
너를 오랫동안 보지 못해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고,


너를 만나러 가는 것이
그저 귀찮게만 느껴졌다.


정말 내가 식은 걸까, 하는 생각에
니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상상도 해 보고,
니가 내게 헤어지자 말하는 것도 상상해 봤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더라.
7년을 사랑해온 너인데,
그런 니가 내 곁에서 떠난다는 게
아프지도, 무섭지도 않더라.


너를 만나면 편안했다.
내 모든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
가족 같은 존재다, 너는.


그런데 그게 전부다.
더 이상 너로 인해 떨리지도 않고,
니가 다른 여자와 연락을 해도
질투가 조금이라도 나지 않는다.


너와 다른 여자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걷는 상상도 해 봤다.
그런데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식어버린 건지.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해서,
이젠 니가 남자로 보이지 않게 된 걸까.




너도 변해버린 나를 알아차린 것 같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하지만,
너는 이제 내가 오래도록 답장을 하지 않아도
걱정도 하지 않고, 보채지도 않는다.
그저 답장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매주 주말마다 만났던 우리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를 피했다.
이제 너는, 내가 주말에 보자 하지 않으면
먼저 만나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니가 내게 카톡을 남겨 놓고 잠들면
나는 읽기만 하고, 네게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그래도 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음날 아침에 먼저 내게 연락을 한다.


7년 동안 그래왔듯,
너는 매일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7년 동안 매일
나도 사랑한다고, 너에게 말했다.


이제는 사랑해, 라고 말하는 네게
, 이라고만 대답해도
너는 그 말을 들려 달라 하지 않는다.

보고싶어, 라고 말하는 너에게
그랬어, 라고만 답장하는 나에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너와
한 달에 한두 번만 만나고 있다.


너와 만나서도 너를 앞에 두고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7년을 함께해 온 도경수인데,
어색해 지는 건 순식간이더라.


너랑 있으면 편한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또 불편하다.


처음엔 그런 나를 보고
내 손을 잡으며, 놀아 달라 말하던 경수인데
이제 너는, 똑같이 폰을 들고
페북을 켠다.


뭐 먹을까, 어디 갈까 라고 묻는 너의 말에
나는 아무데나, 라고 대답하고 만다.

참 이상하지,
예전엔 그렇게 행복했던 너와의 데이트가
이젠 귀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너는 내 쌩얼이 더 좋다고 했지만,
그래도 더 이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데이트 때마다 화장을 하고 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옷도 대충 입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로 너를 만나러 간다.

그런 나를 봐도 너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3.



들어와


한 달 만에 만나는 우리지만,
꼭 어제도 만난 사람처럼
아무런 감흥없이 앉아있는 우리다.


데이트 장소를 알아 보는 것도 귀찮아,
어느새 매번 서로의 집에서만 만난다.


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폰을 보는 경수다.


오늘 따라 도경수가 좀 차갑다.
하지만 괜찮다,
너는 기분이 나빠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분이 좋아지니까.


무슨 일 있냐고 물어 보려다,
귀찮아서 그냥 경수의 옆에 앉아
익숙하게 티비를 틀었다.


그렇게 내가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도
너는 아무 말 없이,
계속 혼자 폰만 잡고 있었다.


뭐해?”

그냥, 애들이랑 카톡


무언가 쎄한 느낌이 들어,
경수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내가 집으로 들어온 후,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추는 경수다.



4.



우리 헤어지자


너는 단조로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뱉은 첫마디가
헤어지자, 라는 말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하고
한참 고민하던 때에
수십번도 더 그려봤던 상황인데
가슴에 뭔가가 걸린 듯,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왜 너는 내게 헤어지자 말하는 걸까.
분명 어제 까지만 해도 내게 사랑한다 했으면서,
왜 그렇게 차가운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7년을 봐온 도경수니까 잘 안다,
너는 나를 정말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것을.


그런데 왜 지금은,
나를 바라보는 니 눈에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걸까.
숨이 턱 막혔다.


오래 사겼잖아


, 라고 내가 미처 묻기도 전에
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사겼다는 게,
너한텐 이별의 이유가 되는 걸까.
그게 단지 우리가 이별하는 이유인 걸까.


아무 말도 없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폰으로 얼굴을 돌리는 경수다.


7년 동안 만났는데,
7년 동안 만난 우리가 이별한다는 데
너는 어쩜 그렇게 담담할 수가 있어, 도경수.



5.



내가.. 잡으면 잡혀 줄거야?”


멍하니 그런 너를 바라보다,
바보 같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런 나를 너는 꽤나 짜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이미 우리 충분히 오래 사겼잖아


라고 대답한다.

마치 내가 알던 도경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다.

나한텐 단 한순간도 화내지 않고
늘 사랑스럽다는 눈빛만 보내던 너인데,
마치 싫어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나를 쳐다보는 경수다.


친한.. 친구로 지내면 안 돼?”


내가 경수를 사랑하지 않음을 깨닫고,
수백번도 그려왔던 상황이다.
그냥 우리 친한 친구로 남자고,
내가 경수에게 말하는, 그런 장면.


“7년이나 사겼잖아, 어떻게 그래


내가 상상했던 건 이게 아닌데.
머릿속으로 몇 달 간 그렸던 상황에선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도경수는,
틀림없이 그것 만이라도 하겠다고
말할 사람이었다.


경수의 대답을 듣는 순간,
, 내가 멍청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이별이
어떻게 실제로 하는 이별과 같겠는가.


지금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너를 많이 사랑하고 있나봐, 경수야.

미안해, 너를 모질게 대했던 내가 나쁜 년이야.
한 번만 기회를 줘,
아직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어.
정말 잘할게, 경수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붙어버린 입은 열리지 않았다.



6.



데려다 줄게


멍하니 너만을 바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너는 나를 일으켜 세운 다음
내 손을 잡지 않은 채, 현관으로 걸어갔다.
뭔가에 홀린 듯, 그런 너의 뒤를
조용히 따르는 나다.


말없이 너와 나의 집까지 걷는 이 순간을
믿을 수가 없다.
7년 동안, 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함께 걷던 길인데
왜 도경수 너는,
내게 뒷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거야.


들어가


아파트 일층에 도착하자
내게 들어가라고 말하는 경수다.
그런 너를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너는,
귀찮다는 듯 바라보고는
등을 돌려버린다.


경수야.. 도경수..”


니가 더 멀어 지기 전에
니 이름을 불렀다.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들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보는 경수다.


너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내가 솔직히 무슨 자격으로
너를 붙잡겠냐.
몇 달간을 그렇게 힘들게 해 놓고,
그런 너를 외면하기만 한 나인데.




말없는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게속해서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경수다.


안되는데,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데.
니 말대로 우리 7년이나 사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그렇게 니가 내 눈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
나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7.

내가 경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했어도
내가 경수에게 헤어지자 말하지 않은 이유는,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냥 꼭 도경수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7년 동안 옆에서 매일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늘 내 편이 되어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지면 나는 이제
누구한테 기대고, 누구한테서 행복을 찾아.


너랑 헤어진다고 해도
내게 이런 사랑을 줄 사람을
당장 찾을 수 없단 걸 알았다.


그렇기에 나는,
너와의 이별을 미루고, 또 미뤄왔다.


니가 주는 사랑이 좋았다.
너는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게끔 해 주었고,

내가 힘들 때면
언제나 그랬듯 니 어깨를 빌려 주었다.


너와 7년을 함께 했다.
그렇기에 니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매일 연락오는 사람이 없고,
내 일상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으면
꽤나 허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기적이게도 나는,
너랑 헤어지지 못했다.



8.

경수는 나만을 바라봐줬다.
한 순간도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판 적도 없었고,
친한 여사친도 거의 없었다.


늘 경수에겐 내가 먼저였다.
우리가 싸울 때면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미안하다 사과하는 것도 경수였고,
우리 둘 다 힘들 때도
본인의 아픔은 숨기고
내게 의지가 되어줬던 게 경수였다.


알고 있었다,
경수 같은 남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단 것을.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을 또 만나겠는가.


너를 놓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너랑 헤어졌다가,
너보다 별로인 남자들만 만나면
또다시 너를 만나고 싶을까봐.
너와 헤어진 걸 후회할 까봐.


니가 이미 너무나 편하고,
또 너는 내게 모든 것을 다 맞춰 주는데

어차피 결혼하고 나서는 정으로 사는 거라던데,
그냥 이대로 너랑 결혼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내겐 너무나 좋은 남자였으니까.



9.

내가 변한 걸 알아차려도
너는 투정부리지 않았다.

초반엔 계속,
이번 주말에 시간 되냐,
사랑한다 말해달라 하던 너지만
얼마 후부터 그저 묵묵히
혼자서만 내게 사랑을 주는 너다.


내게 더 보채지 않았던 게,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였을까.

아니다, 너는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봐줬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하다는 듯
나를 품에 안았다.


모르겠다, 니가 갑자기 내게 왜 그러는지
나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지만 차마 네게 물을 수는 없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10.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예쁘다, 라고 얘기해주는 너 덕분에
외모에도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무엇을 해도 사랑해 주는 너 덕분에
남들의 시선을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참,
너한테 받은 것만 있고
도경수 너한테 준 게 없다.
7년 동안 나는,
웃기게도 너한테 받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너는 누구보다 좋은 남자친구였다.
솔직히 알고 있다,
나는 좋은 여자친구가
단 한 순간도 아니었단 것을.


나는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나만 아는 사람이니까.



11.

아침에 눈을 뜨고,
그 모든 게 꿈인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경수가 내게 이별을 고했다는 것은
그저 꿈이었다.


몇 달 만에, 경수에게
먼저 카톡을 보냈다.


-꿈에서 니가 나한테 헤어지자 그랬어
-우리 너무 오래됐다고 나한테 헤어지쟤
-잡으면 잡히냐고, 친한 친구로 지내면 안되냐고도 했는데
-니가 너무 많이 와버렸다고 그냥 가버렸어


너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걸까,
내게 아무런 답장이 없다.

바보 같은 나는,
이제야 내 마음을 깨달은 나는

너 없는 삶을 살 수 없는 나를
알아버린 나는,
오늘부터 다시 네게 잘해주겠다고 다짐한다.



12.

-미안.. 내가 나빴어
-많이 슬펐어 여보?
-미안해.. 실제로는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야 약속해
-나는 안 변할 거야
-그런 말 절대 안해

-많이 사랑하고 앞으로도 많이 사랑할 거야
-많이 놀랐겠다.. 내가 나빴네


역시나 늘 그래왔듯
내게 한결같이 다정한 도경수다.

그래, 이게 너지.


-진짜 차가웠어..


라는 내 카톡에,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놈이야
-그건 나 아니야, 맞지
-그럴리가 없어 내가


라고 폭풍카톡을 보내는 경수다.
나였다면 고작 꿈 갖고 뭘 그래,
라고만 하고 말았겠지만


쉽게 불안해하는 나를 잘 아는 넌
이렇게 나를 안심시켜준다.



13.

나는 너를 놓을 수 없다.
니가 나한테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너의 카톡에
바로바로 답장을 해 줬다.


-나 이제 수업 가야돼ㅠㅠ
-미안해 여보
-오랜만에 여보랑 많이 얘기해서 좋다,
-나중에 연락할게 ㅇㅇ아


그래도 너는 이렇게
예쁘게 내게 말한다.

이런 작은 것에도 좋아하는 넌데,
내가 참 몹쓸 짓을 했구나.



14.

내게 도경수란 사람은,
설렘보다 편안함이 떠오르는 사람이며


도경수에게 나는,
7년 동안 변함없이
제일 사랑스러운 여자이자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사랑의 모습이 전부 다 같겠는가,
그저 나와 도경수는
다른 사람이기에
다른 사랑을 하는 것 뿐이다.


커피도 쓴 커피, 달달한 커피, 연한 커피가 있다더라.
카라멜 마끼야또를 먹으면서
커피가 왜 이렇게 달아? 라는 생각이 들어도
카라멜 마끼야또도 커피이듯,
편안하다고 사랑이 아닌 건 아니라더라.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7년 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다.

.
.
.

※만든이 : HEART님

<덧>

여러분!!
8 6일이
상풀에 제 글이 올라온 지
100일이 되는 날이랍니다! 호홍

세고 있던 건 아닌데,
그저께 문득 궁금해져서 봤더니
4 29일에 첫 글이 올라왔더라구요!

계산기 돌려보니까 이틀 뒤가 100일이길래..
100일 기념.. .. 겸사겸사
단편을 들고 왔답니다 흐흐


매번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글쓰기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