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단편] (by. HEART)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오늘은 짧은 단편입니다.
브금 재생해주세요!



BGM: Special-이하이




이수혁
ㅇㅇㅇ




멀리서 니가 걸어오는 게 보인다.
많이 힘들어 보이네,
아마 나 때문이겠지.


일찍 왔네 ㅇㅇ아



카페로 들어와
내 맞은편에 앉은 너는,
잔뜩 긴장한 채로 애꿎은 빨대만 씹는다.


나 권태기야


내 말에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떨구는 널 보니
조금은 미안하지만,


생각할 시간을 갖자


그럼에도 너와 함께 있는 게 불편해
이런 말을 내뱉고 마는 나다.


그와 사귄 지 어느덧 2년 반,
그동안 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매번 서로 미안하다며 화해의 손길을 건네곤
전처럼 금세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결할 수가 없는,
이유도 없는 그런 고비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알 수는 없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지금 권태기라는 것.


사실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나는 그를 떠올리려 하지 않고,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듯한,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수혁이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니, 있기는 있지.
다시 전처럼 그와 돌아가는 것.
하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


“..?”

글쎄, 딱히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겠다.
대체 왜, 나는 권태기를 맞게 된 걸까.


“..알았어


그가 애써 눈물을 삼키는 게 보인다.
니가 얼마나 마음 아파할 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지만,
그럼에도 차마 너를 달래줄 수가 없다.
지금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나 먼저 갈게


약간 화난 듯해 보이기도 한 목소리로
이 말을 내뱉고 그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답답함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나도 짐을 챙겨 일어섰다.


.


/두 달 전



또다, 페북에서
그와 다른 여자의 사진을 보는게.


그에게 여사친이 많은 건 알고 있고,
정말 단순히 친구로만 생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여사친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정말 수혁이를
친한 친구로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수혁이의 외모와 성격 덕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여자는 여자가 잘 안다고 하지 않는가,
우연히 직접 만나본 몇몇 여사친들이
그를 좋아함을 나는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에게 이 얘기를 해주며
친하게 지내지 말라 했지만,
그는 대충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개의치 않고 그녀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래, 수혁이는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 번씩 이렇게 그녀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너무나 화가 난다.


-배수지랑 사진 찍은 거 페북에서 봤어

-..아 그거 그냥 동아리 뒤풀이 때 찍은 거야

-내가 얘랑 친하게 지내지 말랬잖아

-신경쓰지마 ㅇㅇ아,
너 밖에 없는 거 알잖아

-그러면 더욱 내 말을 들어야지
내 마음은 생각 안해?

-..왜 그래 또


그의 말에 화가 나
카톡을 씹고 폰을 던져 버렸다.




이 일로 다투고
우리가 서먹해져 있던 일주일 사이,
또다른 사진을 페북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수혁이를 좋아하는 여자애와 찍힌 사진이었다.
심지어 이번엔 니가 이지은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는 원래 스킨십이 많았다.
나와도 썸조차 타지 않은 시절에
이정도 스킨십은 했으니.
그래서 웬만한 여사친들과의 스킨십은
이해해주고 넘겼다.
나 또한 남사친들과 스킨십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니.


하지만 상대가 이지은이라면,
나는 참을 수 없다.


-엠티가서 찍은 사진 중에
이지은 안고 찍은 거 있네
얘도 내가 얘기했잖아

-ㅇㅇ아
나한텐 그냥 다 같은 친구야

-근데 걔한텐 아니잖아

-아니야 얘도


그래, 니가 보기엔
배수지도 이지은도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겠지.
너는 너무나 둔하니까.


나에게 잠깐 본 것 갖고 어떻게 아냐며
내 말을 무시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그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수혁이의 절친 영광이도,


ㅇㅇ아.. 니 말 듣고 봤는데
니가 말한 셋 다 수혁이 좋아하는 거 맞는 것 같더라
그렇게 티 내는데 왜 여태 몰랐지..”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결국 수혁이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우리는 화해했지만,
곧 새로운 사진으로 또 싸워야 했다.


내가 영광이에게 말한 여자는 셋이었으며,
나머지 한 명, 김태연과 수혁이가
다정하게 셀카찍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한테 미안하다며,
그럼 다시 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걔네랑 친하게 지내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 ㅇㅇ아
왜 그래 진짜,
내가 바람 필 놈도 아니고
너만 사랑하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아는데, 쟤네가 아니라니까.
내가 몇 번을 얘기해야 해

.. 진짜..”


우리는 또다시 다퉜다.
일주일 간의 냉전 상태 후에,
결국 어색함을 못 견딘 수혁이가 내게 와
정말 미안하다면서, 간절히 빌고 나서
우리는 다시 화해를 했다.


.


오늘은 생각할 시간을 갖자 한 뒤로,
처음으로 수혁이를 마주하는 날이다.


사실 그 날 뒤로 나는
굳이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딱히 우리의 관계에 대해 무언가 생각해 본 것이 없다.


그냥, 이렇게 오래 못 봐도
니가 보고 싶지 않은 걸 보니
내가 권태기가 맞구나, 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했을 뿐.




카페 밖에서 안을 찬찬히 훑는 니가 보인다.
이내 나와 눈을 맞추고는,


-딸랑


문을 열고 내게로 온다.


오랜만이야



우리가 시킨 커피가 곧 나왔고,
아무 말 없이 각자
자신의 잔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있잖아


그리고,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수혁이었다.




먼저 입을 열어 놓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괴로운 얼굴을 하고
다시 얘기를 하는 수혁이다.


니 권태기가..
이유가 없는 게 아니더라

“…?”


의외의 말에 놀라,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가.. 몇 달 전에
같은 문제로 몇 번 싸웠잖아


무슨 얘길 하는 걸까,
너와의 추억을 억지로 헤집어 보다
, 그 얘기구나 하고 알아챘다.



“..그걸로 내가,
그 때 너를 많이 지치게 한 것 같아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권태기가 서서히 오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인 것 같기도 하다.


미안해


고개를 떨구는 너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진심이 가득 담긴 그의 말에,
나조차 울컥했다.


내가.. 내가 더 잘할게
너무 늦어버렸지만,
니가 가까이 하지 말라면
이제 절대 말도 섞지 않을게
나한테.. 나한테 제일 중요한 건 넌데..”


하지만 니 말대로,


됐어..”


이미 너무 늦었다.


내 말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니 모습이 보인다.
입술을 꾹 깨물고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는,


미안.. 오늘은 먼저 가볼게
연락할게 ㅇㅇ아


라며 너는,
카페를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랬구나,
그의 말을 들으니
내가 왜 권태기가 왔는지 수긍할 수 있었다.


몇 주, 몇 달의 시간 동안 같은 문제로 다투며
점점 지쳐갔던 나의 마음이,
결국은 그를 떠나게 된 것일까


이유를 알게 되어
권태기가 왜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과 동시에,
씁쓸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접어진 마음이
어떻게 다시 돌아오겠는가, 싶어서.


.




그렇게 그 날 헤어지고,
그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나를 대했다.


시간을 갖자 하기 이전처럼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봐주었고,
시시때때로 내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게 꽤 부담스럽다.
사랑한다고 말하든가,
보고싶다고 말하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나 또 무서운 꿈 꿨어..
또 꿈에서 니가 헤어지자고 했어


라고 카톡을 보낸다든가 할 때 특히 더.


-그랬어아이고


귀찮지만 의무감에 너에게 답장하는 나다.
곧 내게,


-진짜 무서웠어..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말해줘.. ?


이라고 카톡을 보낸 너에게 나는
선뜻, 답장할 수가 없었다.


미리보기로 읽고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싶어
고민하고 있던 차에


-빨리, ?


이라는 카톡을 보고는,
폰을 뒤집어버리고 말았다.


차마 너에게 답장해 줄 수가 없다.
니가 바라는 대답은
그런 일 없을 거야, 겠지만
나는 왜 자꾸 우리의 이별이
가까워진 것만 같을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생각하다,
마침 우리가 오늘 저녁 만나기로 한 게 생각났다.


-아맞다 수혁아
오늘 우리 어디서 보기로 했더라

-..스타벅스

-아 맞다 미안
이따가 봐


꼭 마지막 카톡은 자신이 보내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수혁이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답이 없는 그다.


.




왔어?”


웬일로 나보다 일찍 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다.


응 일찍 왔네



짧은 대화 후
어색하게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다.


ㅇㅇ아



아프게 미소 지어 보이고는
말을 이어가는 그다.


내가.. 지난 몇 달 간 말야,
너한테 못할 짓을 했더라
니가 말했던 걔네들,
니 말대로 나 좋아하는 거 맞더라.


나는 걔네가 진짜 나한테 마음 없다고 생각해서
그거 확인 받고 와서 너 안심시켜주고 싶었는데,
그러려고 걔네한테 물어봤는데


셋 다 그러더라,
여태 몰랐냐고.
자기들이 일부러 티도 많이 냈는데
전혀 몰랐냐 그러더라.


니 말 못 믿어서 미안해.
남자친구로서 니 말을 귀기울여 들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걔네 말 듣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
내가..
널 참 많이,
힘들게 한 것 같더라.”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내가 지난 날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시 떠올라서.


그녀들의 말대로,
수혁이에겐 내가 있단 것을 뻔히 알면서
그들은 그에게 대놓고 티를 냈다.


그렇게 내가 말할 때는 듣지 않더니,
걔네한테 직접 듣고 나서야 너는 믿는구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
이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고


진작에 그랬다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권태기가 온 너를 잡고 싶었는데,
내가 그럴 자격이 없더라.
그걸 알면서도 잡으려고 애썼는데,


..안 되더라.
못난 사람이라서 미안해.”


, 이제 정말 끝인건가.
그와 이대로 이별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득하다.
그 길었던 시간이,
순식간에 정리가 되는구나.


미안..”


미안하다는 내 말에 그는,


아니 넌 잘못한 거 없어,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거야
.., 내 잘못이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제 놓아 줄게,
좋은 사람 만나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헤어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 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거냐, 생각했다.
자기가 더 잘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자기가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다.
상대를 사랑하지만, 붙잡을 수 없을 때
이게 뱉을 수 있는 최선의 말이란 걸.


미안..”


그로 인해 권태기가 왔으면서,
헤어지게 된 것은 마치
나의 권태기,
바로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미안해 하지마,
그냥 우리가 여기까지 인거야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 놈이라 그래


우리가 울고불고 싸웠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조차 나는 이별을
떠올리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미안..”


..결국 우린 끝이 났구나.


너도.. 좋은 사람 만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너 미안하다고 먼저 못 갈 거 아니까
내가 먼저 일어나는 거야,
미안할 거 없으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


라고 말하고 그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는 듯한 표정을 하곤
서둘러 자리를 떴다.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쫓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도 사랑했던 넌데,
누구보다 사랑했던 너인데
이제는 내 마음이 더 이상
너를 향하고 있지 않다.


이별을 했는데,
공허한 느낌 말고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


이유를 알기 전엔
이유를 몰라 해결할 수 없었고,
지금은 이유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는 나를 보내주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결국 우리는,


권태기의 끝으로 이별을 맞이했다.

.
.
.

※만든이 : HEART님

<덧>

요즘 너무 바빠서ㅠㅠ
일주일 넘게 글을 하나도 못 쓰고 있어요..
미리 써 놓은 글 투고하다 다 떨어져서
예전에 써 둔 단편 투고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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