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명 – 02 모래시계 (by. 비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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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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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지창욱
유민규
엄마
 
.
.
.

 
오늘의 운명 02 모래시계
 
 
*
 
 
“......”
 
지금 나는,
 
[20171217]
 
미래로 왔다.
 
ㅋㅋ......”
 
휴대폰 속 날짜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믿고 싶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고,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상황들이다.
 
춥다... 추워......”
 
하지만 여긴 12월이 맞다.
티비도, 날씨도, 그리고 나의 변화까지.
모든 게 겨울을 알리고 있다.
 
연애도, 결혼도, 장수도,”
 
“......”
 
다 못 할 운명이야.”
 
“...쌈장 아줌마 말이 맞았어...”
 
제대로 된 연애도,
괜찮은 남자와의 결혼도,
난 다 못 할 운명이었던 거야.
지금 이대로라면 장수도 못 할걸 아마...
 

 
“......물이라도... 마실래요?”
 
무의식 중에 들려오는 목소리.
 
물 어디 있는지 알아요?”
 
“...여기 내 집이에요.”
 
“......”
 
그러니까...
내가 헐벗고 누워있었던 데가...
...저 남자 침대?
 
야 이 놈아!!!”
 
“......”
 
나한테 뭔 짓거리 한 거야
이 잘생기기만 한 놈아!!!ㅠㅜㅜㅠㅜ
 
그래.
모든 게 다 저 남자 때문이야!!
아침부터 내 다리를 만지질 않나,
지랑 얘기 한다고 우리 엄마 사고까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뭐를요?!”
 
왜 내가 벗고 있었냐고!!!!”
 
나야 모르죠!!!”
 
여기 너네 집이라며어어어!!!”
 
사실, 지금 이 남자도
나와 똑같은 처지인 건 안다.
깜깜한 눈을 뜨니 옷을 벗은 채
나와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마 나만큼 놀랬을 거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우린
같이 도로 한복판에 있었으니까.
 
나도 당황스러워요!!”
 
하지만,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남자 뿐이다.
이 집도 차라리 그쪽 집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알아요. 당황스러운 거.”
 

 
“......”
 
......”
 
거실 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이런 말이라도 해야지...
좀 실감이 날 거 같아서요.
여긴 정말 12월이고,
그 만큼 내 머리카락은
이만큼이나 자랐고......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요.”
 
“...그러게요...”
 
창 밖 눈을 보며 고개를 올렸다.
......맞아!! 유민규는?!
 
첫 눈 맞는 걸 좋아하던
민규가 갑자기 떠올랐다.
휴대폰을 꺼내 최근 전화기록을 살폈다.
뭐야, 12월에 민규랑
전화 한 번도 안 했네?
그렇게 연락처에서
민규의 번호를 찾았다.
 
전화 좀 받아라...”
 
허나 신호만 갈 뿐 유민규
목소리는 티끌도 들리지 않는다.
너라면 내 얘기 믿어줄 거 같았는데...
 
“...에이, 아니다.”
 
혼잣말을 중얼중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유민규래도 6월에서 12월로
왔다는 걸 믿어줄 리가 없지.
 
저기...”
 
?”
 
옆에서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
 
어디서... 타는 냄새......?
 

 
?
 
뭐야......”
 
“......?”
 
에릭이 생각나는 썩은 드립에
표정을 마구마구 구겼다.
이 상황에 그런 장난을 치고 싶나...
, 그런 잘생긴 얼굴로
내 마음이 타고 있잖아요.’
이러면 설레긴 하겠지..
 
킁킁.”
 
?
 
소리를 내며 코에 바람을 넣었다.
진짜 타는 냄새 나는 거 같은데??
무언가가 타고 있는 냄새가
슬슬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쵸? 타는 냄새 나죠?”

. 점점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우당탕탕-!!!
 
“...뭐지?”
 
타는 냄새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는 그때,
문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불이야 불!! 불났어요!!!”
 
??”
 
?!”
 
남자가 현관문을 열자 앞에 서있던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불났다고? 것도 옆 집에서??
 

 
나와요 빨리!”
 
!!”
 
벌떡 일어나 집 밖 복도로 나가니,
머리가 띵할 만큼 타는 냄새가 느껴졌다.
헛기침이 나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뭐해요, 안 오고!”
 
“.........”
 
그 순간, 남자가 내 왼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상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
 
불 났는데 엘리베이터 타게요?”
 
...”
 
순간적으로 멍청해진 나를 타박했다.
 
타는 냄새 때문에 머리는 약간 띵하고,
저기 보이는 숫자 7층만큼
계단을 타야 하는데,
 
“......”
 
난 왜 자꾸 이 맞잡은 손에
신경이 쓰일까.
 
그렇게 우린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소방차가 빨리 와야 할텐데...”
 
“......, 이 손 좀...”
 

 
“..., 미안해요.”
 
아니 뭐...
미안할 것 까지야...”
 
아파트 앞 주차장 쪽에서
남자의 집을 올려다 봤다.
그나저나, 나 얼마 만에 남자한테
설렘을 느낀거지.
 
? 너 설렜어?
미친년.”
 
“......???”
 
그렇게 남자들한테 배신 당하고도
설렌다는 말이 나오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집에 다 들어가네......”
 
남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드니
아까 내가 열어둔 베란다 사이로
까만 연기가 숭숭 들어간다.
 
“......”
 

 
“...맘이 아프다......”
 
실연 당한 표정이야.
내가 막 미안해지네...
 
꼬르르륵-..
 
“......”
 
“......”
 
하지만, 이런 내 맘과 다르게
내 뱃속은 자기주장이 쩔었다.
이 눈치 없는 배꼽시계놈...
 
“...밥 먹으러 갈래요?”
 
?”
 
정말?
 
어차피 내 집이 불난 것도 아니고,
저도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요.”
 
!!”
 
......아 나 너무 좋아한 듯.
 

 
뭐 먹을래요?”
 
내 힘찬 대답에 한 번 웃더니
사랑스러운 말을 한다.
... 너무 행복한 고민인걸.
 
, 아까 사실 해장국 먹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술 안 마셨다면서요!”
 
술 마시고 만지면 다 실수냐?!”
 
나 술 안 마셨거든요??!”
 
그렇게 당당하게 안 마셨다고 하더만!
 
어제 저녁.. , 어제도 아닌가.
어쨌든 그 전 날에 친구 집에서
진탕 마시고 집에 가던 길이었어요.”
 
“...전 날 치고는
냄새가 꽤 나던데요?”
 
내 말에 멋쩍은 웃음을 내며
머리 뒤를 긁는다.
 

 
이래저래 힘들어서,
꽤나 마셨거든요.”
 
“......”
 
우린 얇게 깔린 눈을 밟으며 걸었다.
아직 내 정신은 6월에 있는데,
점점 지금 이 상황들이
낯설어지지가 않는다.
 
근데 지금은 술이 말끔히 다 깼네요.
12월이라 그런가.”
 
...이 남자 때문인가.
 
.. 국밥 먹죠 국밥!”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한 국밥집.
난 얼른 남자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눈을 내리 깔았다.
그냥 바로 집에 갈 걸...
이 어색한 분위기......
 
눈을 슬쩍 남자 쪽으로 트니
그도 멍하니 앉아만 있다.
젠장. 잘생겼네.
 
국밥 나왔습니다~”
 
때 맞춰 나온 국밥을
입으로 후후 불었다.
아까 전 만해도 아이스크림이
땡기는 날씨였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전화나 해볼까...
 

 
“......지창욱이에요.”
 
?”
 
지차욱?
 

 
제 이름, 지창욱이라고요.”
 
“..., ㅇㅇㅇ이에요.”
 
젠장. 이름도 잘생겼구만?
 
“...우리는 왜 6개월을
건너 뛴 걸까요?”
 
“......글쎄요.”
 
왜 하필 우리 두 사람이고,
왜 지창욱씨 집에서 깬 걸까요.
 
이거 봐요.”
 
“...어쩌다 다쳤어요??”
 
그가 내미는 손등을 보니,
위에 큰 무딘 상처 하나가 보인다.
 

 
몰라요, 어쩌다 다친건지.”
 
“......”
 
사라진 6개월 동안 다친 거겠죠?”
 
...,
머리 아파 죽겠다.
이게 무슨 드라마같은 일이야.
 
혹시,”
 
“?”
 
우리가 엄마 대신 차사고가 나서
지금 의식불명상태가 아닐까요?”
 
그래 맞아.
우린 무의식 상태인거야 지금.
그래서 이상한 꿈같은 걸
꾸고 있는거지!
 
“...진심이에요?”
 
“......그럴리가.”
 
...
무슨 저렇게 정색까지 해...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한 공기를 뚝딱한 우리는,
가게 밖으로 나와
그쳐가는 눈을 바라봤다.
 
저는 이만 집으로 가볼게요.”
 

 
“...데려다 줄까요?”
 
푸흐, 됐어요.
여기 우리 집이랑 가까워요.”
 
지창욱씨.
그렇게 매너까지 좋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아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몇 번은 마주치겠죠?”
 
다시 볼 사람이면,
몇 번이고 마주치겠죠.”
 
“......”
 

 
잘 가요, ㅇㅇ.”
 
그렇게 난 우리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엄마!!”
 
얘가 왜 이래?”
 
현관문을 열어주는 엄마를 보자마자
재빨리 품에 꽉 안았다.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ㅜㅠㅜㅜ
 
엄마 숨 막혀 ㅇㅇ~”
 
알았어 알았어.”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엄마한테 얘기 해볼까...
난 몇 시간 전만해도 여름에 있었고,
도로 쪽으로 달려가다
눈을 뜨니 한 남자와 누워있었고,
게다가 6개월 순간이동...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거 아냐...?”
 
, 그냥 됐다 됐어.
일일이 설명하는 거도 귀찮고,
나만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뭐.
 
그래.
그냥 한 낱 꿈이라고 생각하자.”
 
오늘따라 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방은 6개월이 지나도
더러운 건 매한가지네...
 
??”
 
머리를 묶으려 책상 위에서
머리 끈을 찾으니,
민규와 둘이 찍은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 위에다 딱 올려놨는데??
 
“12월의 ㅇㅇ아 어디다 뒀니...”
 
책이 꽂혀있는 책장도 보고,
먼지가 앉아있는 책상 구석에도
보이지 않는 사진.
그렇게 열심히 찾다가,
책상 제일 마지막 서랍에
뒤집혀진 사진이 보인다.
 
어라? 나 유민규랑 싸웠나?”
 
다시 그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두고,
머릴 묶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
.
 
 
내가 깨달은 건 없다.
벌써 밖은 어둑어둑 하고,
내 머리카락은 미친년처럼 산발이다.
 
, 그냥 자자.”
 
몇 시간 동안 누웠다가, 앉았다가,
섰다가를 반복하며.
내 머리를 쥐어뜯고, 긁고, 붙잡아도.
 
ㅇㅇㅇ 인생 막장이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이미 이렇게 결론이 난 일인데
난 왜 그리 오래 생각 한거지?
 
아아아악!!!”
 
시끄러!!”
 
그냥 자자. 빨리.
 
 
*
 
 
... 눈 시려......
 
이거 맛있다!”
 
...맛있다고?
 
문 밖에서 들리는 엄마의
맛있다소리에 눈을 떴다.
엄마는 맛있는 걸
딸이랑 나눠 드셔야지 참...
 
하아아
 
못생기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쭉 펴고,
머리를 긁으며 방 문을 열었다.
 
엄마 뭐 먹어어...?”
 

 
ㅋㅋㅋㅋㅋ보세요 어머니.
ㅇㅇㅇ 바로 일어나죠?”
 
“...유민규......?”
 
아직 덜 떠진 뿌연 눈을 비볐다.
뭐야 진짜 유민규?
 
어우, 얼굴 땡땡 부었네.”
 
너 안 추워...??”
 
쟨 무슨 한겨울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냐.
 
“? 너 잠 덜 깼지.
더워 죽겠구만 춥긴 뭘 추워?”
 
“12월인데 그렇게 입고 온 니..”
 
? 더워 죽겠다고?
 

 
ㅋㅋㅋㅋㅋㅋㅋ뭐라고?
12ㅋㅋㅋㅋㅋ?”
 
“......”
 
분명 어제 긴 팔에
수면바지 입고 잤는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건 짧은 옷...
 
쟤가 아침에 가끔씩 저래.”
 
선풍기도 틀어져 있고...
설마... 나 다시......
 
혹시 오늘 몇 월...?”
 
“6.”
 
“......돌아왔다!!!!”
 
!! 다시!!!
돌아왔다!!!!!
 
진짜?! 진짜 6?!!”
 

 
“...어머니 ㅇㅇ이 많이 이상한데요.”
 
배고파서 저래.”
 
팔과 다리를 쭉 펴고
신나는 마음에 점프를 뛰었다.
역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꿈같은 일이었어!!
 
“2017년은 맞지?!”
 
“......”
 
워후!!!!”
 
혹시 20186월은 아닐까,
바보같은 생각으로 말을 뱉었다.
그러취!! 여긴 176월이지!!!
 
헤헤헿 신낭당!!”
 

 
“......”
 
부엌에 있는 엄마 쪽으로 가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 사랑행ㅎㅎㅎ
 
어이구~”
 
? 이마에 뭐야?”
 
깨끗했던 엄마 이마에 안보이던
작은 상처가 보인다.
 
어제 차사고 나서 다친 거 개딸아!”
 
“......”
 
, 차 사고 났었지...
 
어머니 그냥 절 아들로
키우시는 게 어때요?”
 
나야 땡큐지~”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유민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코너 돌았다가...
 
어제, 아니 자세히 말하면 1217.
내가 깨어났던 곳,
그리고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 ......”
 
가뿐 숨을 쉬며 단 번에
그 아파트에 도착을 했다.
7층이었고,
밖에서 봤을 때 중간쯤이었으니까...
 
띵동-
 
혹시 나만 돌아온 건 아닐까.
...아냐, 그럴 리가 없..
 
덜컥-
 
“......”
 

 
“......”
 
 
아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몇 번은 마주치겠죠?”
 
다시 볼 사람이면,
몇 번이고 마주치겠죠.”
 
 
 
우리,”
 
“......”
 
 

 
다시 볼 사람이었네요.”
 
“......”
 
ㅇㅇ.”
 
 
.
.
 
_비하인드 스토리_
 
 
 
저는 이만 집으로 가볼게요.”
 

 
“...데려다 줄까요?”
 
푸흐, 됐어요.
여기 우리 집이랑 가까워요.”
 
그렇게 ㅇㅇ씨가 집으로 갔다.
 
... 이 병신...”
 
데려다 줄까요 말고
데려줄게요!! 라고 했어야지!!
 
표정은 왜 자꾸 굳혀지는 거야
......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아까 그 손을
눈에 보이게 올렸다.
 
나 무슨 배짱으로 손 잡은거지...”
 
“......, 이 손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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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든이 : 비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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