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운명의 로또 [단편] 1/2 (by. 별유)

급한 운명의 로또 [단편] 1/2
by. 별유
 
 
 
 

 
지이잉- 지이잉-
 
 
조용한 사무실 안.
느닷없이 시작된 진동소리가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던 나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내 건가? 아닐 거야.
딱히 전화 올 데도 없고.
 
 
지이잉- 지이잉-
 
 
누구든 빨리 좀 받아라.
자꾸 신경 쓰여서 다음 문장을 못 읽겠단 말이다.
내가 토익 공부 할 때도
이렇게 집중해서 영어 문장 읽은 적이 없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영문 이메일만 읽고 있....
 
 
지이잉-
 
 
....... 어잉?”
 
뭐야, 내 거였어?
 
하필이면 서류뭉치 사이에 껴있던 내 휴대폰.
애처롭게 온몸을 떨어대며
주인을 찾던 게 바로 너였구나.
 
미안.
 
 
[예원쓰]
 
 
, 이 기집애 말 엄청 많은데...
 
잠시 망설이다 시간을 확인하곤
전원 버튼을 눌렀다.
65. 5분만 통화하고 일 마무리하면
8시 전엔 퇴근할 수 있겠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어 왜
 
여보세요? , 뭔 전화를 그렇게 받냐?”
 
바쁘다. 용건만 간단히
 
기집애가, 반갑지도 않아? 내 목소리?”
 
하루 이틀 듣냐? 저번 주에도 통화했잖아
 
그건 저번 주고!!”
 
할 말 없음 끊는다
 
야야! 할 말 있어! 완전 있어!”
 
뭔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싫어
 
뭔 줄 알고?”
 
그냥 다
 
, 너 저번에 내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었잖아!”
 
그거 저번 달에 만료된 거 아니었냐
 
쿠폰이니? 뭐 그런 걸 따져
 
뭔데. 짧고 간결하게 말해
 
들어줄 거야?”
 
봐서
 
.......”
 
돈은 안 꿔준다
 
그런 거 아니거든?”
 
차도 안 빌려 줄 거야
 
나도 차 있어
 
아 빨리 말해 그럼
 
너 화내기 없기다
 
화나게 하지를 말든가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낀 채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서류를 훑어보던 중
옆 부서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먼저 갈게- 라고 말하는데, 뭐랄까, 그 모습이 마치
엄청 얄밉고 엄청 재수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밝은 미소로 그녀를 떠나보냈다.
 
사회생활은 곧 이중생활이니라.’
우리 엄마가 가르쳐준 철학이자 가치관이었다.
 
흠흠. ㅇㅇ
 
“.......”
 
너 소개팅 안 할래?”
 
언제
 
? 진짜? 진짜 하게?”
 
. 나 요즘 계절 타
 
오오- 남자가 고프시다?”
 
언젠지나 말해
 
누군진 안 궁금하고?”
 
내가 따질 처지냐?”
 
니 처지가 어때서
 
오늘 이거 다 못 하면 내일 야근해야 될 처지
 
... 암울하네
 
너 내 이상형 대충 알지?”
 
아니?”
 
알잖아
 
. 느낌 오는 남자?”
 
 
니가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딱 봤을 때 느낌이 오는, 대충 그런 거
 
그건 니가 직접 만나보고 느끼든가 해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사실은 ㅇㅇ
 
 
오늘이거든?”
 
뭐가
 
소개팅
 
“.......”
 
“7
 
“.......”
 
한 시간이나 남았네? 하하
 
 
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다른 게 싫다는 건 아니고
뭐든지 좋은 것부터 말했다가
나중에 슬쩍 안 좋은 걸 말하는 스타일? 이랄까.
 
예전에 한창 취준할 때도,
 
이번에 공채 많이 뽑는대
 
오 웬일이냐. 잘 됐다 야.
항공사가 많이 뽑는 거 흔치 않은데
 
그치
 
어딘데? 아시아나? 대한?’
 
대한
 
축하한당 서류는 잘 넣었음?’
 
아니
 
‘?’
 
대한 빼고 다 넣었어
 
‘.......’
 
다행히 그 해에 붙어서
지금은 스튜어디스 여신이 됐지만
아무튼 그 때 생각만 하면 어이가 없...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참.
 
 
뒤지고 싶냐?”
 
크흐흐흫
 
땜빵하란 소리잖아. 누구 땜빵인데 내가
 
내 동생
 
예진이?”
 
. 그 기집애가 오늘 소개팅 있는 거 까먹고
제주도로 놀러간 거 있지
 
취소하면 되잖아
 
근데 남자가 너무 괜찮아
 
너라도 나가 그럼
 
어우 야, 나 요즘 썸 타는 오빠 있는 거 몰라?”
 
몰라
 
베프한테 관심 좀 나눠줘라. ?”
 
베프한테 땜빵이나 시키는 주제에
 
그래서. 안 할 거야?”
 
“.......”
 
내가 아는 선배가 추천한 사람인데,
되게 괜찮대. 남자답게 생기고 성격도 좋고
 
.......”
 
그 선배가 신경 써서 해준 건데
취소는 못하겠고 미루는 것도 영 찝찝하고 해서...
어떻게든 마무리는 해야겠어서 그래.
가보고 별로다 싶음 그냥 밥만 먹고 헤어져. ?”
 
장소나 문자로 보내놔
 
진짜??!? 진짜지 너??”
 
. , 나이는?”
 
서른하나
 
이름
 
이광수
 
알았어
 
진짜 얼굴 안 궁금해? 사진도 안 보고 싶고?”
 
잘 생겼어?”
 
... 착하대
 
아니 얼굴
 
착하대
 
“.......”
 
참 착하대
 
세 번 착하면 미련한 건데.”
 
푸흐..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아니다, , 그냥 사진 보내줄게 봐봐
 
됐어. 바빠. 지금 튀어나가도 늦겠구만
 
어 그러게. 얼른 가 일단
 
장소나 보내라고
 
오키 오키
 
덕분에 야근하게 생겼네. 참 고맙다 베프야
 
다음엔 네 소원 들어줄게!”
 
끊는다
 
!!!!”
 
 
-
 
 
...”
 
한숨을 쉬며 시간을 확인하던 것도 잠시,
 
[예원쓰]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65-2
예진이 이름으로 예약해놨으니까
그런 줄 알아!! 파이팅!!!!!!!
 
주소가 담긴 메시지를 받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자를 만나야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해야 인생이 즐겁고
 
인생이 즐거워야 오래 살지.”
 
가방에 기획안을 넣고,
또 다른 기획안을 넣고,
회장님이 쓰신 자서전을 넣고
(회식 자리에서 내용 물어보니까)
라이벌 호텔이 내놓은 마케팅 보고서도 넣고
(참고로 나는 스탠퍼드 호텔 마케팅팀 소속)
올 여름 시즌을 겨냥한 호텔 식음료부서
기획서도 넣고...
그렇게 뭔가를 계속 넣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 살아서 뭐하냐
어차피 일만 할 거...
 
그리고 서류 밑에 깔려
거의 생을 마감하다시피 한
파우치를 간신히 꺼내며 말했다.
 
운명하셨습니다
 
 
 
 
.
.
.
 
 
 
 

아 긴장 돼
 
퇴근길 러시에 걸려
반포대교에서는 저녁하늘을
올림픽대로에서는 지나가는 외제차를 구경하다
가까스로 도착한 어느 레스토랑.
 
“658. 딱 좋네
 
왠지 느리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얼굴 상태와 옷 매무새를 확인했다.
 
아침부터 유난히 치마가 입고 싶더라니
 
치마는커녕 세상 칙칙한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 어딘가 모르게 안 돼 보였다.
 
화장도 별로고.. 머리도 별로고.......
하아, 망했어 망했어...
연애하긴 글렀어... 시집도 글렀어...”
 
벽에 머리를 콩콩 박으며 좌절하던 것도 잠시
- 하는 소리와 함께 도착한 엘리베이터.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올라타려는데
 
지금은 안 될 것 같고...
이따 한 8시 넘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건물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잠시만요!”
 
그리고 문이 닫힐 때 쯤 모습을 드러낸 남자.
 
깜짝 놀라 급히 열림 버튼을 누르니
다시 문이 열렸고,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며 내 옆에 섰다.
 
좋은 향이 났다.
급히 뛰어 들어오면서 바람을 몰고 왔는데
온통 좋은 향뿐이었다.
무슨 향수지? 되게 좋네. 스킨 냄샌가?
 
“.......”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옷도 잘 입고.
-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네.
아까 들어보니 목소리도 좋던데.
 
.......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난 소문난 금사빠였다.
누군가의 긴 손가락에도 반했었고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셔츠에도 반했었으며
두툼한 입술에도 반했었었다.
 
-었었다. (그것마저도 오래 됐단 뜻)
 
그리고 사실 내 이상형은
아까 예원이에게 말한 느낌 오는 남자가 아닌
 
처음 보는 낯선 남자였다.
 
지금 내 옆에 서있는 이 남자처럼.
 
 
지이잉- 지이잉-
 
 
엘리베이터 안의 적막을 깨는 진동 소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귀에 대자
진동이 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
 
오늘따라 뭔 전화가 이렇게 오냐.
평소엔 너무 조용해서 고장났나 싶더니
 
아 쫌,”
 
근데 이 망할 휴대폰이 대체 어디까지 들어간 건지
가방 안에 손을 넣고 아무리 휘저어도 잡히질 않는다.
 
하아.......”
 
점점 격해지는 나의 손놀림에 놀란 듯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
 
!!”
 
 
-
 
 
아 씨.......”
 
결국 내 힘을 견디지 못한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고,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삼키며
튀어나온 서류들을 주우려는데
 
“.......?”
 
옆에 있던 남자가 나보다 더 빨리
서류를 줍기 시작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대박 대박 대박
완전 대박
뒤통수도 잘 생기고
손가락도 잘 생기고
 
여기...”
 
감사합니다!”
 
 
-
 
 
내게 가방을 건네는 남자.
이제야 눈 좀 마주치려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만다.
 
눈치도 없어요 이 망할 승강기
 
그럼,”
 
...”
 
남자는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가버렸고
나는 혼자 남아 미처 하지 못한
욕을 씨부렁거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예원쓰]
 
 
아 왜
 
만났어?”
 
지금 도착했어
 
근데 얼굴을 몰라서 어떡하냐.
알아볼 수 있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근데 내가 지금 쫌 불안한 게,”
 
뭔데 또
 
그 선배가 연락이 안 돼
 
?”
 
그래서 혹시... 오늘 소개팅 해주기로 한 거
까먹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너 진짜 뒤질래?”
 
이건 단순히 내 추측이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금?
이 미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터덜터덜 걷던 찰나,
레스토랑 입구에 서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급히 소리를 낮췄다.
 
오늘 나 팽 당하면 너 죽인다 진짜
 
... 무섭게 그러지마
 
평생 시집 안 가고
처녀귀신 돼서 쫓아다닐 거임
 
지금도 귀신같긴 해
 
뒤졌어
 
야 일단 가서 기다리기나 해봐. ?”
 
그럴 거야 기집애야
 
파이팅
 
꺼져
 
 
-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찔러 넣고
입구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살짝 자리를 비켜주는 남자.
 
어서 오십시오. 예약 하셨습니까?”
 
 
성함이?”
 
... 김예진이요
 
김예진 씨... ? 두 분이 일행이십니까?”
 
?”
 
“.......”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님께서도 아까 김예진 씨라고...”
 
,
 
두 분... 일행 아니세요?”
 
“...., 그게...”
 
“.......”
 
저희가 지금 확인해본 바로는
김예진 씨로 예약된 테이블이 하나라서요.
혹시 착오가 생긴 건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아니요. 맞습니다 일행
 
?”
 
가시죠.”
 
.......”
 
그럼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오 마이 갓
.......
 
이 남자가 오늘 그 남자라고?
내 소개팅 상대?
이광수?????
 
대박
완전 대박
진심 이거는, 그냥 대박.
 
!!!!!!!!!!!!!!!!!!!!!
!!!!!!!!!!!!!!!!!!!!!
 
예원아 사랑한다
처녀 귀신 말고 수호신이 돼서 지켜줄게.
역시 내 베프. 하나뿐인 절친.
김밥에 단무지 같은 녀석. 순대에 간 같은 녀석.
삼계탕에 인삼 같은 친구.
 
 
 

이쪽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안내해준 테이블에
조용히, 천천히, 눈치를 보며 앉았다.
 
그리곤 살짝 고갤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
 

신기하네요
 
? , . 그쵸?”
 
미친. 방정 떨지 말고
침착하게 말하라고 이 멍충아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창욱이라고 합니다
 
?”
 
?”
 
성함이... 이광수 씨라고.......”
 
, 얘기 못 들으셨나 보네요.
광수 형 대신 나왔거든요 제가
 
?”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 드렸어야 되는데
 
.......”
 
형이 급하게 출장을 가게 돼서요.”
 
그러셨구나
 

많이 실망하신 것 같은데...”
 
? 아닌데요?!!?”
 
“.......”
 
제발 침착해 ㅇㅇ
없어 보이려고 한다 너 지금
 
그게 사실, 저도 대신 나온 거라서요
 
?”
 
저는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정말요?”
 
. 그게 그렇게 됐더라고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앞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아니
찔끔찔끔 마셨다.
 
“.......”
 
“.......”
 
주문할까요?”
 
!”
 
 
제발요.
 
 
 
.
.
.
 
 
 
제가 아까 보려고 한 건 아닌데..”
 
?”
 
엘리베이터에서 가방....”
 
아 네
 
서류를 보니까 호텔 관련된 내용이더라고요.”
 
. 제가 호텔에서 일하거든요
 
...”
 
스탠퍼드 호텔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멋있으신데요?”
 
제가요? 에이, 맨날 사무실에 쩔어 있...”
 
에라이 이 등신아
그냥 입 다물고 밥만 처먹는 게 낫겠다
 
“......는 건 아니지만
일이 많아서... 야근도 많고.......”
 
 
피식-
 
 
? 웃었다.
왜 웃지? 내가 웃긴가?
웃기는 이미지로 가면 안 되는데?
내가 막, 너무 편해지면 안 되는데!!!
 
.......
근데 웃으니까 또 귀엽네
 
.......
 
 
그래 보이더라고요.
서류가 너무 많아서 놀랐어요
 
... 저도...”
 
?”
 
흠흠. , 무슨 일 하세요?
저만 바쁜 건 아닌 것 같고,”
 
저는 회계 법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럼... 회계사?”
 
 
 
심지어 엘리트야!!!!!!!!!
뭐야, 이거 사기캔데?
진짜 사기꾼 아니야?
이런 캐릭터가 지구상에 있었다고?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우와...”
 
내 반응에 부끄러운 듯 고갤 숙이던 것도 잠시,
다시 날 보며 하는 말이
 

저도 맨날 사무실에 쩔어있는데요 뭐
 
-란다.
그것도 아주 귀엽게 씨익 웃으며.
 
, 쩔어 계시는구나.......”
 
. , 잠시만요
 
갑자기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든 남자.
전화가 온 듯 해
괜찮으니 받으세요란 신호를 보내자
고갤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금방 오겠습니다
 
 
남자가 화장실 쪽으로 사라진 걸 확인 하자마자
황급히 물을 들이켰다.
 
죽는 줄 알았네.
....... 아 심장 떨려
 
내가 아무리 남자를 오랜만에 만난다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떤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미치겠네
 
내 인생에 있어 역대급 남자를 만나서 그런가
심장도 떨리고 손도 떨리고
머리도 떨리고 다리도 떨리고..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닌데
 
어디 가서도 기 안 죽고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해서
사람들이 장군이라 부르는데.
철면피? 종종 그렇게도 부르고.
뻔순이도 있고.
 
근데 이 남자 앞에선
완전 무장해제 된 기분이다.
모르는 사이에 금사빠 기질이 더 심해진 건가.
이러면 곤란한데.......
 
 
지이잉-
 
 
[예원쓰]
야 만났어?
 
 
. 이 사랑스러운 기집애같으니
 
 
[ㅇㅇㅇ]
 
[예원쓰]
진짜? 어때? 괜찮아? 맘에 들어?
 
[ㅇㅇㅇ]
너 이 기집애야
 
[예원쓰]
별로야? ㅠㅠㅠㅠ
 
[ㅇㅇㅇ]
짱이야
 
[예원쓰]
?? 뭔 소리야
 
[ㅇㅇㅇ]
역대급이라고!!!!!!
 
[예원쓰]
진짜? 역대급?????
그 정도라고??
 
[ㅇㅇㅇ]
완전 대박. 야 땡큐다 땡큐
 
[예원쓰]
사진으로 봤을 땐 별로였는데...
너 눈 낮아진 거야?
 
[ㅇㅇㅇ]
광수 아니고 창욱 씨.
 
[예원쓰]
?
 
[ㅇㅇㅇ]
완벽한 땜빵이 나왔어.
얼굴은 말 할 것도 없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죄송합니다. 업무 전화 때문에..”
 
, 괜찮아요!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뭐
 
 
[예원쓰]
어떻게 된 거지? 뭐야?
 
[ㅇㅇㅇ]
이따 전화함 ㅃㅇ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던져 놓고
앞에 앉은 남자를 쳐다봤다.
크흐.. 보면 볼수록 잘났단 말이지.
 
또 회사 들어가 보셔야 되나요?”
 
,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때문에 일이 미뤄지거나 그러면..”
 
급한 일 아니라서 괜찮아요.
내일 해도 되는 일입니다
 
“.......”
 

진짠데.”
 
진짠데.’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나도, 그도 씨익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좋아서?
좋아서.
 
 
와인 한 잔 할까요?”
 
좋아요
 
 
 
.
.
.
 
 
 
쉬는 날엔 주로 뭐하세요?”
 

글쎄요. 최근에는... 영화보고 책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영화랑 책 되게 좋아하는데
 
어떤 장르 좋아하세요?”
 
좀비요
 
?”
 
좀비 나오는 거
 
나는 사실 와인에 약했다.
분위기에 취하는 편이라 어떤 술이든
주면 꼬박꼬박 받아 마시곤 했는데
유독 와인은 나랑 잘 맞지 않았다.
소맥에 길들여져 비싼 술은 안 받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났다.
 
제가 최근에 좀비물을 봤거든요
 
... 안 무서우세요?”
 
무서웠죠. 근데도 봤죠
 
왜요?”
 
그냥요
 
“........”
 
너무 징그럽게 분장을 잘해서 그런지
신기하더라고요
 
...”
 
사실 제가 새벽에 축구를 보는 편인데
날짜를 잘못 안 거 있죠.
그래서 잠도 안 오고해서 TV로 본 거였어요
 
축구 좋아하시나봐요
 
! 저 바르샤 팬이에요
 
?”
 
왜요?”
 
저돈데
 
진짜요??”
 
 
대박!!!”
 
하하. 그러게요
 
새벽에 경기 보면서 막 소리 지른 적 없어요?
전 자주 그러는데
 
저도 그래요
 
우와... 신기하다
 
뭐가요?”
 
그냥, 전부 다요.”
 
“.......”
 
헤헤
 
뭐가 신기하냐면요.
조용히 책 보는 거 좋아하실 것 같은 분이
소리 지르면서 축구 본다는 게 신기하고요.
 
또 그런 분이 제 앞에 앉아 계신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헤헤. 웃음이 그냥 나올 정도로 신기해요.
 
ㅇㅇ
 
?”
 
우리 이제 와인 그만 마실까요?”
 
 

“....괜찮아요?”
 
 
안 괜찮죠
 
 
“...푸흐.......”
 
웃지마요
 
, 죄송합니다
 
헤헤
 
“.......”
 
지창욱 씨
 
 
가까이 와 봐요
 
?”
 
이렇게
 
양 손을 턱에 괸 채
몸을 더 앞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그러자 머뭇거리며 날 따라하는 이 남자.
 
왜 그런 말 있잖아요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그러니까 자세히 봐야죠.
예쁜지 안 예쁜지 알려면
 
“.......”
 
“.......”
 
예쁜데.”
 
“.......”
 

예뻐요. ㅇㅇ
 
.......
.......
 
방금 뭔가 쿵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 .
심장인가?
심장인가 보다.
 
손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뜰 만큼
머리도 아팠다.
 
이 남자 눈빛이 그랬다.
 
 
.......”
 
“.......”
 
방금 완전 심쿵
 
“.......”
 
대애애박...”
 

.. 다 내 잘못이에요.
와인 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제가 원래 술을 쪼끔 하긴 하는데,
와인이랑만 덜 친한 거예요
 
그렇구나
 
 
“.......”
 
“.......”
 
크흐...”
 
어어!! 또 웃네?”
 

흠흠. 미안해요 자꾸 웃어서
 
웃지 마요...”
 
안 웃을 게요
 
더 반할까봐 무섭다구요.
금사빠 앞에서 함부로 웃는 거 아니라니까..
 
ㅇㅇ씨 이제 우리 일어날까요?”
 
.......”
 
차 가져오셨어요?”
 
아 맞다! 저 차 있어요!!”
 
... 대리는 좀 위험한데
 
갖고 오지 말 걸.......”
 
괜찮아요. 일단 나가죠
 
네네- 대답하며 옆에 있던 가방을 먼저 들었다.
그러자,
 
제가 들게요
 
쏙 빼서 자기 팔에 걸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이젠 나까지 부축하려 한다.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
 
가방도 저 주세요
 
들어드릴게요. 괜찮아요
 
저야 말로 괜찮은데
 
너무 무거워서 그래요.”
 
“.......”
 
갑시다
 
 
엘리베이터 안,
 
결국 가방을 차지한 이 남자는
계속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옆에 딱 붙어 서있었다.
 
뭐가 저렇게 좋은 거지?
혹시.......
 
내 가방이 마음에 들었나?
 
아니겠지 설마.
 
 
ㅇㅇ씨 집이 어디세요?”
 
저요? ... 용산 쪽이요
 
아무래도 대리를 부르는 게 낫겠죠?”
 
지금요?”
 
 
잠깐만. 대리는 지금 부르면 금방 올 거고,
그럼 우린 이제 세이 굿바이 한단 소린데...
 
왜 내 전화번호를 안 묻지?
다시 만나잔 얘기도 안 하고.
 
.......
나 까인 거야??!?!?!?!
 
 
?”
 
저기요
 
 
우리...”
 
“.......”
 
좀 걸을 까요?”
 

걸으실 수 있겠어요?”
 
! 저 완전 멀쩡해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술 쫌만 깨고 가려고요
 
그러죠 그럼
 
....... 비참하다.......
이렇게 까이다니.
이렇게 젠틀하게 까이다니
 
미련도 못 버리고 같이 걷자고 한 너도 참,
 
불쌍하다 ㅇㅇㅇ
 
 
 
 
후우.......”
 
갈까요?”
 
네에...”
 
결국 건물 밖으로 나온 우리.
갑자기 차가운 공기를 마시니
술이 확 깨면서
더욱 더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예원아 나 까였어...
 

춥거나 다리 아프거나 하면 말씀하세요
 
..”
 
왜요. 대리 부르는 시간도 아까워서
빨리 택시 태워 보내게요?!?!?!! 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마지막이라도 품위를 지키고 싶어 참았다.
 
“.......”
 
“.......”
 
“.......”
 
ㅇㅇ?”
 
 
, 아무 말씀 없으시길래..”
 
“.......”
 
걷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잘 걸어요
 
...”
 
생각이 많을 때도 걷고요
 
지금처럼.
 
저기...”
 
“.......”
 
이상형이 어떻게 되요?”
 
이상형이요?”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어디 들어나 봅시다
 
....... 저는.......”
 
키 큰 여자?”
 
키는 상관없는데
 
그럼. 이쁜 여자?”
 
 
시댕. 너무 빨리 답을 알아버렸다.
 
“.......”
 

근데 사실 저는 그냥
딱 느낌이 오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느낌? , 개나 줘버려
 
그리고,”
 
“.......”
 

처음 본 여자
 
.......?
 
? 뭐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피해
날 자기 쪽으로 당겼고,
나는 그대로 남자의 바로 앞에 서게 됐다.
 
 

괜찮아요?”
 
“........”
 
ㅇㅇ?”
 
아니요
 
? , 안 괜찮으세요?”
 
. 너무 안 괜찮아요 저 지금
 
어디가 어떻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요!!!”
 
.. 많이 놀라셨구나.
지금도 그러세요? 아 어떡하지?”
 
네 지금도 그래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심장이 참 잘도 남아나겠네요
 
?”
 
....... 심장마비 걸릴 것 같으니까 좀만,”
 
“.......”
 
이렇게.”
 
천천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곤 고갤 들어 앞을 쳐다봤다.
 
ㅇㅇ,”
 
지창욱 씨
 
“.......”
 
나 지창욱 씨 좋아할 것 같아요
 

?”
 
내가 약간 금사빠인 것도 있고, ,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 것도 있고
특히 매너 좋은 남자한테 약한 것도 있는데요.
근데 지금은 막, ...”
 
“.......”
 
진짜 같아요
 
“.......”
 
그러니까 지금 말 해줘요. 나랑 또 만날 건지
 
“...?”
 
나한테 연락할 거예요?”
 

지금....?”
 
 
조심스럽게 남자의 눈빛을 읽었다.
당황스러움과 난처함이 동시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겠지.
이 여자 보기보다 진상이네.’ 혹은
잘못 걸렸어.’ 혹은
미친X...’
 
남자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이마를 긁적였다.
그리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 넣으며
서서히 입을 뗐다.
 

ㅇㅇ, 우리 오늘 처음 본 거 알죠
 
 
서로 계획에 없던 소개팅이었고
 
 
일 하다 나와서 정신도 하나 없었고
 
 
근데 방금 저한테 고백... 같은 거 하신 거고
 
그랬던 것 같아요
 
“.......”
 
맞아요 고백. 그러니까 지금 거절해야 돼요.
기회 드릴 때 하세요
 
쭉 나열한대로
처음 봤고, 계획에도 없었고,
오늘이 지나면 또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오늘 당신한테 고백할 겁니다.
, 이미 했구나.
 
그리고 거절도 오늘 당할 거예요.
그래야 헛된 희망 안 키우죠.
지금 내가 사는 인생만으로도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취해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싶지 않거든요.
 

괜찮겠습니까?”
 
진짜 하게요?!?!?!!”
 
이런 SHIT. 망했다.
술 처마시고 괜히 객기 한 번 부려봤다가
눈앞에서 차이게 생겼네.
 
와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어
 

푸흐.......”
 
?
 
누군 지금 초조해서 머리 쥐어뜯게 생겼는데
웃어? 웃음이 나와?
 
흠흠
 
아 떨려...”
 
ㅇㅇ
 
 

내일 몇 시에 볼까요
 
“.......”
 
데리러 갈게요.”
 
진짜요? 진짜? 진짜로??”
 
 
우왁!!!!!!!!!!!!!!!!!!!!!!!!!!!”
 
 

 
 

28년 살면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지나가는 사람들은 천사가 따로 없고
날 비추는 이 가로등 불빛은
하늘에서 내려준 금빛 환영이 분명할 것이오,
 
고로 나는 지금
 

천국에 있느니라-
 
 
가 아니라,
 
대박!!!!!!!!!!!”
 
그냥 여기저기서 날뛰고 있었구나.
사람들은 나의 우렁찬 외침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다 또 다시,
 
어어, 조심!”
 
엄마야!!!”
 
달려오는 차를 피해 내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긴 이 남자.
 

괜찮아요?”
 
.......
이번엔 아까보다 더 가까워...
위험해.. 위험해... 위험하다고.......
 
“...........”
 
한 시도 눈을 못 떼게 하시네요
 
제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좋단 뜻이었어요.”
 
.......”
 
또 심쿵.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올라오기도 전에 나는,
 
살짝 남자를 올려다보곤 웃으며 말했다.
 
저도 좋아요.”
 
크흐
 
 
 
.
.
.
 
2/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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