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02 (by. 몽글구름)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몽글구름입니다.
이번 편에는 중간 중간 과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점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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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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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假面)-02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고요한 시간 새벽 2시 반.
 


 

블랙커피가 담긴 머그잔에서부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멍하니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다,
머그잔을 들어 올려 습관처럼
호호- 불어 한 모금을 마셨다.
 

 

, 뜨거워!
 

 

지금 이 잔이
몇 잔 째 인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잠을 쫓기 위해 억지로 마시고 있었다.
 

 

타탁 타탁-
 

 

조용한 내 방안을 가득 메우는
자판 두들기는 소리.
 

한참동안 앉아서,
과제를 하고 있을 때였다.
노트북 옆에 놓아둔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변백현이름 세 글자가,
반짝거리면서 빛나고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른 뒤,
자주했던 습관처럼 스피커폰으로 바꿔놓고
여전히 과제를 하며 말을 꺼냈다.
 

 

, 웬일이야?”
 


-웬일은. 과제 다 했어?
 

 

, . 지금 뭐 거의 끝나가고 있지.
- 완전 졸려!”
 

 

-, 박찬열!
그거 만지지 말라고! 아 이 새끼!
 

 

박찬열이라는 이름이
내 귓가를 파고 들어오자,
난 자판을 두드리던 손이 자연스레 멈추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졸렸던 내가
그의 이름 석 자에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심지어 심장이 살짝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잠이 깨어버린 것과 심장의 두근거림은
카페인 과다섭취로 인한 증상일거야-라고
내 스스로를 합리화를 시켰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가 박찬열을 좋아한다는 것을.
 

 

박찬열이랑 같이 있어?”
 


-오늘 자기 밤새서 과제 할 거라고,
노트북 들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서는.
-! 그거 만지지 말라니까
왜 자꾸 만지는 건데!
 

 

신경질적인 백현이의 짜증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는 찬열이의 장난 섞인 말까지.
괜스레 듣고만 있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아웅다웅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그려졌다.
학교에서도 종종 그래왔으니, 뭐 안 봐도 비디오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왔다고,
예전에 찬열이가 내게 말해준적이 있었다.
 


-? ㅇㅇ랑 통화하는 거면
잠깐 나 좀 바꿔줘!
 


내가 왜! ㅇㅇ 지금 과제 때문에 바쁘대!
ㅇㅇ, 내가 이따 다시 연락할게!
아 그거 좀, 그만 좀 만지라고!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두 사람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 통화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책상위에 올려 진 블랙커피가,
조금 전 보다 연한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잔을 양손으로 감싸니 손이 따뜻해져왔다.
금세 전해지는 온기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 따뜻하다!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
몇 개월 전의 기억에 희미한 미소가
내 입술에 걸려있었다.
 

 

 

 

*
 

 

 

아직까지 겨울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듯,
그날의 바람은 제법 매서웠다.
 

 

'Orientation Training',
즉 일명 줄여서 ‘OT’를 위해 모인
예비 대학생들이 모인 버스 안이었다.
 

 

- 완전 기대된다!
 

 


그러게. 같은 대학교에 같은 학과라서,
OT까지 같이 가고!
완전 우린 운명이다?”
 

 

사람들이 늘 말하던 ‘OT’‘MT’
경험할 수 있단 사실에
우리 둘은 매우 들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우리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
.
.
 

 

 

 

‘OT’의 묘미는
밤에 벌이는 술판이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같은 조를 이루었던 우리는,
 


, ㅇㅇㅇ
너 완전 술 잘 마신다?”
 

 

뭐래- 정수정.
나보다 벌주 더 많이 마셔놓고!”
 

 

대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내걸고
그날 밤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시계를 보던 수정이는,
자정이 조금 넘어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12시 넘었다.
- ㅇㅇㅇ, 가자!”
 

 

어딜?”


 

내가 친구 소개 시켜줄게!”
 

 

내 손을 끌고
다른 방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취기가 살짝 올라온 나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를 질질 -끌고 가는
수정이의 뒤를 쫓기 바빴다.
 

방 호수를 한번 확인하더니,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다만 힘 조절이 안됐는지
문을 쾅- 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열어젖혔다.
 

생각지도 못한 큰소리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쏠렸다.
 

수정이는 개의치 않는 듯,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 바빠 보였다.
 

 

! 나왔다!”
 

 


! 왔어?”
 

 

- 빨리 들어와!
? 옆에는 누구?”
 

 

여기는 나랑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 ㅇㅇ.”
 


그럼 지금은 안 친하냐?”
 

 

수정이의 말을 듣더니 누군가,
능글거리며 대꾸를 했다.
목소리를 쫓아 시선을 돌려보니,
잘생긴 남정네가 앉아있었다.
 

 

- 생긴 게 여자애보다 예쁘게 생겼냐?
큰 눈망울이며,
오뚝한 콧대까지.
 

 

잠깐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공중에서 그 애와 시선이 마주쳐버렸다.
당황한 나와 달리 예쁘게 웃어 보이며,
 

 


안녕? 난 박찬열이라고 해.
반가워!”
 

 

그가 나를 향해 인사를 먼저 건넸다.
그의 인사에 내손은 나의 생각과 달리,
 

 

반가워,
ㅇㅇㅇ.”
 

 

그에게 이미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순간 뭐가 부끄러웠는지,
난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이내 난 고개를 살짝 숙여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감추어버렸지만,
수줍은 미소만큼은 가릴 수가 없었다.
그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었다.
 

 

 

.
.
.
 

 

 

난 내가 게임을 그렇게 못한다는 것을
‘OT’를 가서 처음 알았다.
 

 

.”
 

 

미치겠다.
이게 벌써 몇 번째 벌주인지.
 


! ㅇㅇㅇ 걸렸다!”
 

 

쭉쭉- 마셔!”
 

 

글라스 한잔 가득 따라져 있는
폭탄주만 봐도,
벌써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셔라~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본인들은 게임에서 안 걸렸다고
아주 흥이 돋는지,
 


쭉쭉쭉,
쭉쭉쭉-!”
 

 

내게 자꾸 마시라고
엄청나게 재촉을 해대고 있다.
 

 

변백현, 지금 마실 거라고!
그만 좀 재촉해라!”
 

 

내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백현이는
계속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이거 마시고
나 그대로 뻗어버리는 거 아니야?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
앞에 놓여 진 글라스를 잡으려는 순간,
 


흑기사!”
 

 

누군가 손을 들고
내게 흑기사 요청을 해왔다.
 

, 구세주여!
 

 

자연스레 소리가 났던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를 향해 방긋- 웃고 있는
찬열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쟤는 잘생겼는데,
웃는 모습까지 예뻐!
거기다 어쩜 매너까지 저렇게 좋니!
 

 

술에 취했던 와중에
그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대신 마셔 주면 소원 들어주기!”
 

 

그건 당연하지!”
 

 

찬열이는 벌주로 만들어진
폭탄주를 들고 가더니,
거침없이 쭉쭉- 들이켜 마셨다.
 


크으-!”
 

 

씁쓸한 알코올 맛에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나를 한번 쳐다봤다.
난 고마움의 표시로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후로도 찬열이는
몇 번의 벌주를,
나를 대신해서 마셔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두들 술에 취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끝을 모르고 올라오는 취기에,
빈자리 있으면 나도 눈 좀 붙여볼까- 란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내 시선은,
찬열이와 눈이 마주치자
움직일 줄을 몰랐다.
 

나를 쳐다보던 찬열이는
갑자기 엄지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나오라는 소리인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문밖으로 나간 찬열이를 따라 나섰다.
복도로 나가자,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는,
찬열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
 


- 나 술 좀 취한 거 같아서,
바람 쐬러갈 건데.”
 

 

말을 흐리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까 뭐 흑기사도
해주고 했으니까,
소원으로 바깥바람
같이 쐬러 가자고.”
 

 

아무 말이 없던 내가
부정을 표시하는 줄 알고
말을 우물쭈물-거리는 찬열이었다.
 

키도 큰 녀석이 그러고 있으니
제법 귀여워보였다.
 

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나의 행동을 보던
그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숙소 근처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우리의 숙소는 지방에 위치했고
산속에 있던 덕인지,
하늘에는 무수히 많이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산 밑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추운 것 같다.
그치?”
 

 

내말에 자신의 점퍼를 벗어주려는
그의 손을 제지시켰다.
 

 

, 됐어! 벗으면 너도 추울걸?
괜히 감기 걸리지 말고.”
 

 

내말을 끝으로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주변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찬바람을 쐬니 술도 좀 깨는 것 같고,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 발걸음을 나란히 하던 그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괜찮은 거지?”
 

 

그럼!
나를 대신해서 술도 마셔주고,
진짜 고맙다!
아까 계속 마셨으면,
나도 애들처럼 뻗었겠더라.”
 

 

내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찬열이,


괜찮아보여서 다행이네!
진짜 걱정 많이 했는데.”
 

 

피곤한지 눈이 반쯤 감겨있었다.
그의 말을 끝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다소 힘이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미소마저도 예뻤지만.
 

 

왜 그의 말에 심장이 요란스럽게 쿵쾅거리는지,
진정시키느라 나 혼자 애를 먹었다.
 

 

 

*
 

 

 

오후4시에 강의가 끝나자,
늘 그렇듯 학생들이 우르르- 빠르게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같은 교양을 듣던,
찬열이 내 옆에 서서 가방을 챙기는
나를 기다렸다.
 

 

이틀 전에 연극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역할 분담을 하려 모였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말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만,
 

 


나는 대본 만드는 것엔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난 소품 준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난 둘 다 상관없으니까
먼저들 골라봐.
난 남는 역할을 할 테니.”
 


ㅇㅇ 넌 어떤 게 더 나아?”
 

 

? 나도 대본 쓰는 건
자신 없는데.”
 

 


그럼 나랑 같이
소품 담당할래?”
 

 


- 변백현,
넌 어떻게 너 마음대로 정하냐?”
 

 


- 내가 내 마음대로 정해!
그냥 ㅇㅇ 의견을 물어본 거지.
하여간 넌 너무 오버스러워!”
 

 


내가 뭘 오버스러워!
어이없네, 진짜!”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땐,
때로 싸움까지도 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와 찬열이는 서로 얼굴을 붉혀가며
싸우려고 하는 둘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둘을 진정시키고 해결방안을 모색한 결과,
일명 사다리타기로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까지 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다리를 탔다.
 

 

, 결론은
나와 찬열이는 대본작성을 담당하게 되었고,
수정이와 백현이는 소품준비와
중간발표를 담당하게 되었다.
역할이 분담되고 나자,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자!”
 

 

내게 말을 건네며
예쁜 미소를 짓는 찬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역시 장학생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넌 좀 짱인 듯!”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찬열이를 칭찬했다.
그런 내 칭찬에 멋쩍었는지,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연극 대본을 만드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날 배려해,
도움이 될까싶어 사랑에 관련된 연극을
예매했다고 했다.
(수석으로 들어온 찬열이를 예뻐라 하는
강 교수님께 조언을 구한결과,
연극을 보는 것이 대본을 만들 때,
꽤 도움이 되기 때문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본관에서 벗어나, 정문 쪽으로 향할 때였다.
 


어머- 찬열아!”
 

 

누군가 콧소리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찬열이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선배님, 안녕하세요.”
 

 

한 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선배라는 사람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찬열이의 손을 잡아끌며 이야기를 했다.
 

 


이번 주 주말에 교양 과제하기로 했잖아.
그 과제 지금 할래?
나 안 그래도 오늘 강의 끝났는데.”
 

 

한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초롱거리는 눈으로 찬열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지금 여자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선배의 손을 억지로 빼내었다.
 

 

가자, ㅇㅇ.”
 

 

그는 옆에 멀뚱멀뚱 서 있던
내 손을 잡고 정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를 여자 친구로 소개했던 것 때문일까,
지금 현재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뛰다시피 빠르게 걷는 걸음 때문일까,
내 심장이 요란스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정문을 빠져나가고도
우리는 한참을 손을 잡고 걸어갔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싶은 마음에,
고개를 돌려 찬열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례한 선배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
표정이 한껏 구겨져 있었다.
 

 

, 찬열아.
이 손 좀 놓아줄래?”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는 내 얼굴 때문에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들킬까봐,
손을 놓아달라고 그에게 말을 했다.
 

 

, ? ! 미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맞잡은 우리의 손을 쓰윽- 쳐다봤다.
이내 이성이 돌아온 듯 그는
맞잡고 있던 손을 빠르게 놓았다.
 

 


! 그리고 아까 그 선배 앞에서
여자 친구라고 말해서,
그것도미안해.”
 

 

그리고 내게 거듭 사과를 했다.
 

 

사실 그 선배를 교선(교양 선택)에서
처음 만났거든?
그런데 교선 두 번째 시간부터
자꾸 내 여자 친구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을 하더라고.
선을 그어도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래서 아까 나도 모르게 ㅇㅇ,
너를 내 여자 친구인 것처럼 말해버렸네.
진짜 미안해.”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너의 여자 친구가 되었던 그 짧은 시간이,
난 좋기만 했는데 말이다.
 

 

기분 나빴더라도 이해 해주라.”
 

 

너의 말에 난 괜찮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버스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투툭,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 콧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투툭- 투툭,
 

 

방금 내가 느꼈던 것이
잘못 느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볼과 손등에서 물기가 묻어있었다.
 

 

? 웬 비야?
 

 

갑작스런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늘은 그런 나를 비웃듯,
얄궂게도 주룩주룩- 꽤 많은 양의 비를
퍼붓고 있었다.
 

 

찬열이는 내 손을 잡고 근처에 있는
가게의 처마 밑으로 몸을 피신시켰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내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고,
몸이 부르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내 안에 깊이 새겨진 무언가가 가슴을 짓눌러왔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 나도 모르게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자꾸만 귓가를 건드리는 빗소리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금방이라도 내 세상이 빙글빙글- 돌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가방 속을 뒤적거렸다.
늘 가지고 다니던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알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고,
그냥 꿀꺽- 삼켜버렸다.
 

 

그때의 공포가 나를 덮쳐와,
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도망치고 숨을 수가 없기에,
눈물을 참으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듯,
짧아져 버린 숨을 의식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저기 ㅇㅇ, 괜찮아?”
 

 

나를 걱정하듯 물어오는 너의 물음에,
 

 

저기요, 괜찮아요?”
 

 

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가는 기억 하나.
 

 

- 거기 119?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여기 위치가, xx예요. 빨리 와주세요!
머리에서 피가 너무.”
 

 

흐릿해져가는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목소리.
 

 

! 맞아,
그때 사이렌소리도 들렸었지?
 

 

, 여기요!”
 

 

김 대원, 이동식 베드!”
 

 

어떤 사람의 목소리와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잠깐 들렸던 게 내 기억의 끝이었다.
 

 

꽤나 긴 시간동안 잠에 빠졌던 것 같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새하얀 천장이 나를 먼저 반겼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으으.”
 

 

어머! ㅇㅇ!”
 

 

핼쑥해진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복도로 뛰어나가며,
 

 

저기요! 선생님!!”
 

 

의사선생님을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알싸한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코를 휘감았다.
 

모든 감각들이 하나씩 깨어남에,
눈매의 끝에 걸려있던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던 걸까?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나를 감싸 안았다.
 

 

 

.
.
.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올라왔다.
엄마는 커튼을 정리해주면서,
 

 

의사선생님이 말하기를
조금만 더 늦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 했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넌 모를 거야.
사고 났다고 신고해준 학생이
너 걱정돼서 며칠간 병원을 찾아왔었어.
물론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이다가 가긴했지만.”
 

 

- 진짜?
엄청고마운 사람이네.”
 

 

- 그때 이름이랑 번호를 물어봤어야했는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기억을 잃기 전에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
찬열이 너 맞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내 옆에 서 있는 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많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너에게,
 

 

그때, 진짜 고마웠어.”
 

 

난 그때 하지 못한 인사를,
진심을 담아 전했다.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 채,
 

 

괜찮아졌다면서.”
 

 

벌써 만들어진
빗물 웅덩이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직도 이렇게, 아파하면 어떡해.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뺑소니 사고를 냈던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보란 듯이 잘 지내야지.”
 

 

왜 너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걸까.
 

 

연극은 다음에 보고
오늘은 집으로 먼저 가자!”
 

 

, 아니야.
그냥 예정대로 연극 보러 가자!
나 이겨 낼 수 있어! 괜찮아.”
 

 

내말에 그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렇게 무리 안 해도 돼!
아직도 이렇게 덜덜덜- 떨고 있으면서.
집으로 가자,
데려다줄게!”
 

 

그러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접혀져있던
3단 우산을 꺼내, 활짝- 펼쳐보였다.
 

 


좀 좁긴 해도, 같이 쓰자!
이리와!”
 

 

천천히 그가 들고 있는
우산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좁은 우산사이로 들어가니,
우리 둘은 서로에게 밀착해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간질거리는 심장이 무리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약기운 때문인지,
아까 덜덜덜- 떨리던 몸은 많이 안정을 찾은듯했다.
무언가 마음도 차츰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빗물에 식어가는 나를 구해준 찬열이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든든했을 뿐이다.
 

 

왜 먼저 아는 척 안했어?”
 

 


어쩌면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괜히 아픈 기억을,
헤집어놓기도 싫었고.”
 

 

그랬구나. 한번 우리 집에 놀러와!
우리엄마한테 너를 만났다고 하면
아주 좋아하실 거야!”
 

 

내말에 그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 찬열아.”
 

 

?”
 

 

나중에라도 그 교양 선배 때문에
여자 친구 핑계될 거라면,
편하게 나를 여자 친구로
소개해도 된다고.”
 

 

, 아니야.
아까 그렇게 말해놓고도
괜히 미안하더라고.”
 

 

내말에 사양하듯,
그는 두 손을 바쁘게 저어보였다.
 

 

미안해하지 말고.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오히려 너에게 큰 도움을 받았잖아.”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다 고맙다!”
 

 

 

집에 걸어오던 길이 이리도 짧았던가.
벌써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 고마웠어,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긴.
조만간 날 좋은날 다시 연극 보러가자!
대본걱정은 너무 하지 말고.”
 

 

서서히 멀어지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몸을 돌려 아파트입구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ㅇㅇㅇ!”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무수히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오고 있었다.
 

 

? 백현아.”
 

 

그가 아파트 입구까지 다다르자,
그제야 거친 숨을 한참동안 쏟아내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하아넌 왜 전화도 안 받아!
내가 얼마나 걱정한줄 알아?”
 

 

?”
 


비오는 날,
많이 무서워하잖아.”
 

 

그의 머리카락 끝에서는
물기가 쉬지 않고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 우리 전필(전공 필수)끝나고
나 집에 간다고 할 때,
ㅇㅇ 넌 교양 남았다고 이야기했었잖아.
내가 집 도착한지 얼마 안됐는데, 갑자기 비가 오더라.
너 걱정 되서 우산 들고 학교까지 뛰어갔었는데.”
 

 

, 전화 온지 몰랐어. 미안해.”
 

 


괜찮았어?
무섭지는 않았고?”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그는,
 

 

안 그래도 같이 교양 들었던
찬열이가 데려다줬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저번에 내가 이야기 해줬던 것이
꽤 마음에 걸렸었나보다.
아까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올 때,
우산을 쓰지도 않고
손에 접힌 우산을 들고 뛰고 있었으니.
 

 

백현아, 미안.”
 

 


그래. ㅇㅇ 네가, 괜찮으면 됐지.
나 먼저 간다.”
 

 

고개를 숙여버린 탓에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짧은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는 내게 왔을 때처럼 똑같이,
우산을 쓰지 않고 손에 든 채,
그 차가운 빗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누군가가 꺼내 쓴
가면새빨갛게물들어 있었다.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독자님들께서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사실 가면이란 소설은 그리 길지는 않아요.
예상은 한 4화까지 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님들의 댓글이 힘이 많이 되니까,
자유롭게 글 남겨주세요^^
 
작가는 여기서 이만 줄일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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