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그림자 [단편] (by. 몽글구름)


달달하지 않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밑에다 써놓을게요.
 

 

 

 

또 다른 그림자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조심하라는 듯,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을 훤히 비추는
새하얀 달이 떠오른, 새벽 3.
 

어둠의 뒤를 놓칠세라 재빠르게 따라오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은 고요한 적막감.
 

또각또각-
 

일정하지 않은 내 구두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려 펴져
골목길을 가득 메워가고 있었다.
 

 

비틀비틀.
 

술을 얼마나 마신건지,
숨을 쉬는 이 순간도 알코올 냄새가 쉬지 않고
내 코를 건드리고 있었다.
다른 여학생들처럼 몰래 버리거나,
흑기사를 자청했어야 됐는데.
 

눈치 없이 선배들이 주는 술을
곧이곧대로 받아 마신 결과였다.
 

 

부대끼는 속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땅의 울렁거림,
땅이 파도의 물결처럼 위아래로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우- 미치겠다.
 

 

자취방 근처에
도착할 때 쯤 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쳐
아스팔트 바닥에 세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이쿠- 아파라.
 

 

일어나려해도 평형감각이 상실된 건지,
도무지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괜찮으세요?”
 

 

그때, 내 시야 안에 들어온 어떤 누군가의 손.
 

 

, . 죄송합니다.”
 

 

자연스레 내밀었던 손을 잡고
난 일어날 수 있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손은 제법 컸고 생각보다 따뜻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보고 갔어야하는데.”
 

 

제가 더 죄송하죠.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남기고 골목길 코너를 돌아
자취방 문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에 달린 번호 키를
 

띡띡띡띡-,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를 천천히 눌렀고,
몇 걸음 못 걸어가 침대위에 쓰러지듯
그대로 잠들었다.
 

 

 

 

 

선배들은 자취방 번호 키의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익숙하고 정확하게
 

띡띡띡띡-,
 

비밀번호를 눌러서 내 방으로 쳐들어왔다.
대여섯 명 정도의 선배들이
양손 가득 술병을 들고 와서는,
 

 

후배님, 중간에 빠지면
선배가 섭섭하지. - 받아.”
 

 

쭉쭉- 들이켜.”
 

 

계속 따라주는 탓에
소주잔이 비어있을 틈이 없었다.
 

 

- 미치겠네.
 

 

- , 선배님 그만 주세요.
?”
 

 

난 그곳에서 도망치듯 쏜살같이 뛰었고
뒤에서 따라오는 선배들 모습에,
소리를 지르면서 악몽같은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 꿈이었구나!
 

 

, 진짜 다행이다.
 

 

번쩍 떠진 눈이, 곧 무거워져
느릿느릿- 깜박이며,
침대 옆 작은 탁상위에 올려 진
시계에 시선이 쏠렸다.
 

 

!!
 

 

, 하필 오늘 강의는
9시부터인 거야.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경악했다.
 

 

, 이건 인간적으로
화장이 너무 심하게 번졌다!
화장도 안지우고 잔거야?
ㅇㅇㅇ, 미쳤다. 미쳤어.
 

 

빠른 속도로 씻고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전공서적 두 권을 가방에 쓸어 담 듯 챙겨서,
빠른 속도로 자취방을 벗어났다.
 

 

 

.
.
.
 

 

 

결국 한 시간이나 늦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울렁거리고 쓰린 속을 붙잡고
강의실에 도착하니, 쉬는 시간이었다.
 


 

ㅇㅇㅇ, 네가 웬일이냐?
지각을 다하고.”
 

 

- 몰라. 숙취 땜에 죽겠다. 으아-.”
 

 

- 마셔라.”
 

 

책상위에 올려 진 초코우유를 보자,
난 반사적인 행동처럼 숨도 쉬지 않고,
꿀꺽꿀꺽- 원샷 해버렸다.
 


 

어이구, 어제 내가 중간에 빠지자고 할 때 빠지지.
내가 봤을 땐 넌 마지막까지 달렸을 거야. 그치?”
 

 

선배들이 자꾸만 술을 따라주는걸 어떡해.”
 

 

그니까 이 기지배야, 적당히 내숭을 떨어야지.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으니까
자꾸만 따라주는 거 아냐.”
 

 

아아- 몰라.”
 

 


 

네 남친이 어제 너랑 연락 안 된다고
나한테 전화 왔더라.
그래서 내가 너 과모임에서 술 마시다가
12시전에 집에 간다고, 일어나서 갔다고 이야기했어.
아무래도 술기운에 취해 자느라
연락 안 된 거 같다고 둘러댔으니까,
앞뒤상황 잘 끼워 맞춰라.
아무생각 없이,
새벽 늦게까지 술 마셨다고 말하지 말고!”
 

 

, . 정수정 완전 땡큐!”
 

 

때마침,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난 책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어젖혔다.
전공서적과 필기구를 꺼내고
가방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가방 안에 들어있는 종이에 시선이 갔다.
 

한번 접혀있는 한 장의 종이에는
한 문장이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게 뭐지?
 

 

멍한 정신으로 한참동안 종
이에 적힌 내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돌처럼 굳어있자,
수정이는 이유가 궁금했는지 
곁눈질로 쪽지를 쳐다봤다.
순식간에 눈이 동그래지더니,
입모양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 ㅇㅇㅇ 고백 받은 거야?
라고 입만 뻥긋거렸다.
 

 

 

 

강의가 끝나자 순식간에 수강생들이
썰물 빠지듯,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제야 수정이는 내게,
 

 

, ㅇㅇㅇ.
아까 그 종이 뭐야?”
 

 

내게 요란법석하게 어깨를 쳐대며,
본인의 궁금증을 물었다.
 

 

나도 몰라.
가방에 들어있더라?”
 

 


 

어머- 어머, 혹시 어제 술자리에서
누가 네 가방에 몰래 넣어두었나 봐!
웬일이니!”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게 아니면 가방에 있는 쪽지를
네가 모를 리 없잖아!
ㅇㅇㅇ, 짐작 가는 사람 없어?”
 

 

어제와 새벽에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려는데,
기억이 안 났다.
뭐 사실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 .
 

내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자,
 


 

ㅇㅇㅇ, 오늘부터 레이더망 잘 켜고 다녀라!
까닥하다간 질투 많은 너의 님이 알아차릴라.”
 

 

그때 복도에서부터,
 


 

자기야!”
 

 

나를 부르는 내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그 종이를 구겨서 강의실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자기야, 나왔어!”
 

 

예쁜 미소를 지어보이는 백현이를 보자,
나도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았다.
 

 

자기야, 미안해.”
 

 

기분 좋은 건 좋은 거였고,
미안한건 미안한 거였다,
 

 

어제 술 먹고 일찍 들어간다고 가긴했는데,
연락을 못하고 깜빡 잠들었지 뭐야.”
 

 

내가 미안해하면서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자,
사랑스러운 내 남자친구는,
 

그럴 수 도 있지.
대신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미안해하는 나를 도리어 달래주며 이해해주었지만,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내 단짝은,
 

 

-.”
 

 

콧방귀를 뀌어대며 뒤에서 웃을 뿐이었다.
 

 

 

 

*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던 난,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어제 하루 숙취로 인해
(전날의 피로도 풀리지 않았고,
당일 날은 더 피로함을 느껴)
일찍 잤던 탓에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느긋하게 준비를 하는 이유는,
오후에 늦은 시간에 강의 하나가 전부이기에
마음이 여유로웠다.
그래도 오늘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시간에 맞춰 자취방을 나섰다.
 

 

.
.
.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볼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솔솔 부는 바람에 봄이 왔음을 한 번 더 실감했다.
 

이어폰을 꽂은 귀에,
그 속을 파고들어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학교에 도착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 왔어?
이쪽으로 와, 내가 자리맡아 놨다!”
 

 

수정이는 나를 반기듯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고맙다! 전필(전공필수)만 아니면
째고 싶은 날씨다. 그치?”
 

 

맞아, 데이트하기
딱 좋은 날씨던데.”
 

 

뒷자리에 앉아 전공서적을 꺼내려
가방을 열려는 찰나에,
 


 

! 오늘은 가방에 쪽지 없었어?”
 

 

수정이는 궁금한 듯,
반짝거리는 눈빛을 내게 쏘아댔다.
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전공서적과 필기구를 꺼내는데,
 

 

그럴 리 없.”
 

 

!!
 

 

한번 접혀있는 종이가 또 들어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종이를 꺼내어,
써져있는 글을 눈으로 쫓기 바빴다.
 

 

정말 사랑합니다.’
 

 

뭐야, 이거.
 

 

뜬금없는 사랑고백에,
설레기는커녕 찝찝한 기분이 나를 감싸 안았다.
 

 

이건 또 언제넣어둔 거야.
난 어제 가방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어제 집 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렸잖아,
리포트 작성 때문에.
참고할만한 자료 찾는다고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다가
가방 무겁다고 잠깐 내려놨을 때,
그때 넣어둔 게 아닐까?”
 

 

그래, 그때 의자 위에
가방 잠깐 올려놓긴 했지.
방금 전 내 질문에 쉬지 않고
대답해주는 수정이가 의심쩍어,
 

 

정수정!
너 나 놀려먹으려고
장난치는 거 아냐?”
 

 

살짝 떠보듯 질문을 던져놓았다.
그에 수정이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더니,
 


 

, 내가 그런 장난을 왜 치냐.
리고 글씨체를 봐라! 내거랑 같은지!”
 

 

자신이 노트에 필기한 글씨체를
내게 내밀어 보이며, 버럭 성질을 냈다.
기분이 많이 나빴던 모양이다.
 

 

야아- 장난이지.
그렇다고 그렇게 화를 낼 필요가 있냐?
미안해- ?”
 

 

교수님이 들어오셨기에,
더 이상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교수님이 열심히 강의를 하는 가운데,
난 그것보다 종이에 온 신경이 쓰이는 탓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종이는 뭐지?
 

누가 장난치는 건가?
 

남자친구가 몰래 넣어놓은 걸까?
 

 

두 시간동안 난 쳇바퀴 굴러가듯,
똑같은 생각을 하기 바빴다.
결국 마지막엔 관자놀이만 꾹꾹 눌러댔다.
 

 

아우- 머리아파!
 

 

결국 강의는 그렇게 끝이 났고,
수정이와 함께 팀플을 하기위해
학교 측에서 마련한 휴게소
상상력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내가 강의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혹시 너의 님이 서프라이즈로 종이를
네 가방에 넣어둔 게 아닐까?
저번에 너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면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뭔가 찝찝한 기분이야.”
 

 

그래도 한번 물어봐!”
 

 

안 그래도 아까 낮에 연락했는데,
어제 실용음악과 과모임이라 술 겁나 마셨다더라.
술 좀 깨면 연락한대.”
 

 

우리 과도 그렇고 실용음악과도 그렇고,
왜 과모임을 평일에 하는 거야? 그치?”
 

 

그러게. 팀플 끝나고
저녁 먹으러 가자!”
 

 

.
.
.
 

 

팀플을 끝내고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교수님은 무슨 과제를 이렇게 많이 내주냐?
- 완전 스트레스!”
 

 

그니까, 난 집 가서
자료 수집해야 돼.”
 

 

, 까먹을 뻔했다!
난 집 가서 K교수님 과제 마무리해야 돼.
미치겠다. 넌 다했어?”
 

 

난 주말에 이미 끝내놨지!”
 

 

내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얼굴 옆에 가져다댔고
수정이를 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 내일까지니까 난 밤 새야겠네.”
 

 

수정이는 더욱 시무룩해질 뿐이었다.
 

 

마무리만 하면 된다더니,
밤을 왜 새?”
 


 

원래 시작이 반 아니겠냐?”
 

 

설마 하나도안했어?”
 

 

자료만 좀 찾아놨지,
.”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배가 고팠던 우리 둘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열심히 먹던 수정이가,
 

 

ㅇㅇㅇ! 얼른 가방 열어봐!”
 

 

뭔가 생각난 듯 급하게 말을 꺼냈다.
 

 

밥 먹다가
웬 가방타령이야?”
 


 

그게 아니고!
또 그 사이에 가방에 종이 들어있나
확인해보라고!”
 

 

하도 재촉하는 수정이에게 등살이 밀려,
음식을 씹으면서 난 내 가방을 열어젖혔다.
 

 

뒤적뒤적-
 

 

없다, 없어!”
 

 

- 그래?”
 

그럼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신경 써서
내 가방을 철통같은 경비로 지켜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솔직히 사랑한다.’는 좀 오버 아닌가?”
 

 

그러게, 누가 그런 종이를 넣어놨는지 궁금하다!”
 

 

 

.
.
.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틀어 올려 수건으로 감싸버렸다.
집에 있는 전등을 꺼버리고
대신 스탠드 전등으로 노트북 앞을 환하게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그잔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렇게 갖춰놓는 건, 집중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래, 새벽까지 자료수집하면 꽤 모으겠지?
힘내자, 아자!”
 

 

검색어를 바꿔가며
여러 가지의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
 

 

집안에는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와
마우스의 딸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자취방은 꽤나 고요했다.
 

 

 

시간이 꽤 흘러,
생각보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모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자료를 압축시켜놓았고,
친구의 메일로 정보를 보낸 뒤,
시계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시계바늘은 벌써 새벽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품을 한번 늘어지게 하고,
침대위로 몸을 날려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알람소리를 듣고
한참을 침대위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또 다시 울리는 알람소리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침대위에 앉아있었다.
 

 

아우- 피곤해 죽겠네.
 

 

좀비처럼 느릿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갔지만,
결국 들어가자마자 부랴부랴- 씻고나왔다.
침대에서 너무 늑장을 부린 내 탓이다.
간단하게 화장을 하고,
오늘 제출해야 될 과제를 가방에 쑤셔 넣고
운동화를 신고 자취방을 빠른 속도로 벗어났다.
 

 

학교에 도착하자,
눈 밑이 퀭한 수정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난 손을 흔들며 신이 난 목소리로 수정이를 반겼지만,
 

 

헤이! 정수정!”
 

 

그녀는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만
내게 내뱉을 뿐이었다.
 


 

, 나 진짜 밤새서 과제 다 끝냈다!
오늘 휴강 문자 받았어?
이것만 제출하고 가면 된다고 하던데.”
 

 

그니까 휴강하는데,
과제도 다음 주에나 걷지. 그치?”
 

 

내말이 그 말이야!”
 

 

과제 제출하고 한숨 자던가!
다음 강의까지 시간 좀 남았잖아.”
 

 

학과 사무실 안에 앉아 있는
조교 쌤에게 과제를 제출하려,
가방에서 인쇄된 리포트를 꺼냈다.
 

 

-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자,
수정이가 그 물건을 주웠는지
내 앞쪽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한번 접힌 종이였다.
난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아들었다.
 

 

나 진심으로 당신 사랑해요.
생각보다 난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어요.
내가 누군지 궁금하죠?’
 

 

그 종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난 너무나 소름끼쳤다.
또 어느새 그게 내 가방에 들어있던 건지.
새하얗게 질린 내 안색을 보자,
 

 

ㅇㅇㅇ, 괜찮아?
너 안색이 왜 그러냐?”
 

 

나를 걱정하듯,
물어오는 수정이에게 그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 써져있던 글씨를 읽더니
금세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거 미친 싸이코 아니야?”
 

 

수정이는 그 종이를 내게서 빼앗아,
아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수정아, 근데 나 너무 무섭다.”
 

 

알 수없는 공포가 나를 옥죄어오자,
난 몸을 오들오들- 몸이 떨렸다.
수정이는 나를 달래주기위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으며, 그런 날 꼭- 안아주었다.
 

 

.
.
.
 

 

 

오늘하루의 모든 강의가 끝나고
나를 데리러 온다는 남자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학교의 어느 벤치에 앉아있었다.
 

 

너 오늘 피곤하잖아.
그만 가봐! 백현이 금방 온다고 했어.”
 


 

혼자 있을 때
미친 싸이코 나타나면 어떻게 하려고.
안 돼, 안 돼!
그냥 너 남친 올 때까지 기다려줄게!”
 

 

괜스레 풀이 죽어있는 나의 어깨를,
 

 

인기 많은 게 원래 힘든 거야.
기운 내라, ㅇㅇㅇ!”
 

 

두세 번 토닥여주며,
나를 안심시키기 바빴다.
 

 

나를 봤는지 저 멀리서부터
애칭을 부르며 뛰어오는 내 남자친구, 변백현.
 


 

자기야!”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자,
덩달아 축 쳐져있던 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이 기지배 봐라?
기껏 같이 있어줄 땐 우울모드로 있더니,
남친 얼굴 봤다고 바로 배시시- 웃는 거 봐라!”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야.”
 

 

어느새 내 코앞까지 온 백현이에게
수정이는 작정이라도 한 것 마냥,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어떠한 가감도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백현이는 점점 얼굴이 굳어갈 뿐이었다.
 

 

내 남자친구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며,
수정이와 학교 앞에서 인사를 마치고
우리 둘은 나란히 길 위를 걷고 있었다.
 

맞잡고 있는 손을 더욱 세게 쥐어 잡은 백현이는,
 


 

나 솔직히 좀 서운하다!”
 

 

자신의 시선을
땅에 고정시키고 말을 꺼냈다.
 


 

그렇잖아. 내가 너랑 제일 가까운 사이인데,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다른 사람을 통해서 ㅇㅇ,
네 이야기 듣는 거 생각보다, 기분 별로더라!”
 

 

미안해! 난 종이 내용도 그렇고
사실 가벼운 장난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자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봐,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앞으로 크던 작던 일이 있으면
그냥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줘.
난 자기의 일에 관심이 많단 말이야.”
 

 

알았어, 그럴게.”
 

 

얼른 들어가!
혹시나 누가 문 열어 달라고 하면
절대 열어주지 말고!
또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알겠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취방 앞에서 백현이의 당부를 끝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내일 봐!”
 

 

예쁘게 웃어 보이며 인사를 했다.
내말에 곧 예쁘게 웃어 보이더니,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얼른 들어가!”
 

 

자신의 손을 머리위로 흔들며
내게서 멀어져갔다.
 

 

 

슬슬 어둠이 다가오듯,
해는 이미 붉은 빛을
온힘을 다해 뿜어내고 있었다.
 

 

- 오늘 하루도 다 갔구나.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샤워를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요새 며칠은 도통 이해할 수없는 일투성이다.
 

종이를 화요일 날
처음 발견했고 오늘은 목요일이니,
그러나 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누군지 모르는 그 사람은 나를 공포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됐다- 됐어,
그만생각하자. 머리 아프다.
 

 

몸에 묻어 있는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있었다.
곧이어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 화장 다 지웠는데,
왜 하필 영상통화야.”
 

 

에라- 모르겠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최대한 얼굴 잘 안보이게
팔을 쭉 뻗어서 통화를 해야겠다.
내 팔이 침대 밖으로 벗어났고
나 어색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 백현아, 어쩐 일이야!”
 


 

-일은 무슨, 그냥 보고 싶어서.
얼굴보고 통화하려고 걸었지!
 

 

아이- 난 또 뭐라고.”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내 볼이 두드러져 보일까,
얼굴엔 웃음은 유지한 채
팔을 좀 더 길게 뻗어보였다.
 

그러다 결국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아이쿠!”
 

 

-? 왜 그래!
 

 

, 아니야! 핸드폰이 떨어져서.
근데 신기하게도 들고 있던 그대로 떨어졌더라.
핸드폰 옆면으로 서있는 거 있지.
신기하지?
뭐 그래도 액정이 바닥에 부딪히지 않은 게 다행이지.”
 


 

-, . 그렇지.
내가 전화로 걸게.
스피커로 통화 받지 말고!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영상통화는 끝나버렸다.
너무 급하게 끊긴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 왜 이렇게 급하게 끊었어?”
 

 

-스피커로 통화하는 거 아니지?
 

 

, 귀에다 대고 통화하고 있어, ?”
 

 

-그럼잘 들어!
 

 

너무 진지해져버린 백현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돼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앞에 다시 만나자고 한 것처럼,
가방만 들고 자연스럽게 나와.
자연스럽게, 알겠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 전화 끊고 뛰어갈 테니까.
꼭 자연스럽게 가방 챙겨서 나와!
알겠지?
 

 

금세 끊기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나름 자연스럽게 혼잣말을 시작했다.
 

 

아니, 또 보러온다는 거야?
잠깐만나갔다 와야겠다!”
 

 

누가 보면 국어책 읽는 줄 알겠네.
 

 

혼자 푸시시-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끝으로 가방을 들고,
나름 자연스럽게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면서 잠금장치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 진짜로 왔네?
무슨 일이야?”
 

 

평소에 가방에 종이가 들어있다고 했지?”
 

 

진짜로 뛰어온 건지
백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확인해봐!”
 

 

갑자기 백현이의 알 수없는 말들에 의아했지만,
가방을 열어 확인해보기로 했다.
 

 

!!
 

 

놀랍게도 거기엔 또 한 번 접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꺼내 확인해보았다.
 

 

당신과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달 나겠어요.
내 전화번호 여기 적어놓을 테니,
꼭 전화 줘요. 010-xxxx-xxxx.’
 

 

백현이는 내 핸드폰을 손에서 뺏어,
종이에 적힌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알 수 없는 행동에,
그저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곧이어 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분명 자취방 안에서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
 

 

!!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까지 방안에 나 혼자 있었는데.
 

 

 

백현이는 내 손을 잡아끌고
경찰서 앞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아, 왜 그래 백현아.”
 

 

놀라지 말고 들어, ㅇㅇ.”
 

 

무섭게 굳어있는
백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까 나랑 영상 통화하다가,
핸드폰 떨어뜨렸잖아. 침대 밑에.”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결국 입술을 떼어냈다.
 


 

그때 사람 눈이 반짝하고 보였어.”
 

 

나 혼자 살던 자취방에는
내 그림자 외에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침대 바로 밑에.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달달한 내용을 써들고 오고 싶었으나,
생각과 다르게
스릴러와 공포소재를 들고 찾아왔네요.ㅠㅠ
아마 글 속에서 의문의 남자는
 술에 취한 ㅇㅇ의 뒤를 따라와
비밀번호 누르는걸 보고, 얼마 뒤 똑같이 누르고 들어가
침대 밑에 숨어있는 설정을 했습니다.
(초반에 꿈꾸는 장면에서
선배들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취방에 들어왔다고 한 장면은,
ㅇㅇ실제 소리와 좀 전까지 선배들과 술 마셨던 장면이
섞이면서 꿈으로 표현된 것이지만,
사실은 의문의 남자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취방에 들어오는
장면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접혀있는 쪽지는 ㅇㅇ가 잠이 들었을 때,
혹은 씻으러 들어갔을 때 넣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다음엔 달달한 글을 찾아올수있기를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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