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그날까지 [번외] (by. 몽글구름)

<읽기전에>
 
소재가 ‘17살 차이가 나는 아저씨와의 이야기입니다.
다소 조금 부담스럽고 불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많은 분들께서 들이
 글을 읽어주시는 게 좋지만,
소재가 마음에 걸리신다면 뒤로 가기를 누르셔도 됩니다.
(혹시나 이 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다면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ㅠㅠ)
 
 
‘* * *’ 표시는 시점 변화로 참고하고 읽어주세요.
중간에 넣은 BGM은 꼭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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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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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그날까지(번외)
 
 
 
 



 
 
이른 아침에 도착한 인천공항.
가족들이 유학길에 오를 나를 
배웅해준다고 같이 따라와 줬다.
탑승수속을 알리는 소리에,
엄마는 나를 와락- 끌어안아주었다.
 
 
,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울렁거림이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가 내게 사랑을 고백하자,
난 코끝이 시큰해졌고 주르륵- 금세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아주는 엄마의 품은 정말 따뜻했다.
 
 
알아요, 엄마. 나도사랑해.
우리 가족들도 많이 사랑하고!”
 
 
그리고 지철오빠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오빠는 나 오늘 떠나는 거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까.
얼마 남지 않은 탑승시간에
정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냈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혹시나 늦게 도착해,
오빠가 지금이라도 뒤에서 나를 바라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없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는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떨어진 고개를 들 힘은 없었다.
낮은 한숨을 길게 한번 내쉬고
다시 앞만 보고 걸어갔다.
 
자꾸 이곳에 미련이 남는 건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오빠의 얼굴을 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감싸 안으며 내 속을 거세게 휘저어댔다.
 
그로부터 두, 세번 더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어깨가 땅에 가까울 만큼 축 쳐져서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가족들의 모습이 온전히 보이지 않고서야
난 마음껏 눈물을 흘려보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도 보란 듯이
자꾸만 새어나왔다.
 
 
.
.
.
 
 
 
몸을 실었던 비행기가 착륙을 하자,
새로운 땅에 발을 한 발짝 내딛었다.
 
풍겨오는 낯선 공기에 몸을 움찔거렸다.
주변을 한번 돌아봐도
한글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없는 낯선 풍경들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각 나라의 언어를 쓰는
낯선 사람들까지 온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내겐 익숙한 것이 없었다.
 
 
 
결국 와버렸구나,
길게 내쉰 한숨은 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퉁퉁 부은 눈 사이로
또 한 번의 눈물이 빠르게 흘러내렸다.
난 눈물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더 이상 울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여기서 참고 견뎌내야만 했다.
 
 
.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벗어나자,
홈스테이 주인이 팻말을 들고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난 축 쳐져있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려 미소를 만들었다.
영어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그 주인 차에 몸을 실었다.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하늘에 떠오른 해가 눈부시게 빛났다.
 
 
.
.
.
 
 
 
따로 마련된 내방에 들어와,
창밖의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미 해는 쉬러 들어간 듯,
어두컴컴해진 하늘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여기 하늘도 한국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아무리 밖을 쳐다봐도
나 홀로 멀리 떨어졌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내가 늘 바라봐왔던 같은 하늘에 대고
난 두 손 모아 간절한 나의 소망을 빌어보았다.
 
 
하늘에 신이 있다면
부디 내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다시 만날 그때는 우리가
다 같이 행복할 수 있기를.
 
 
 
 
* * *
 
 
 
 
 
불과 며칠 되지 않았다,
네가 내 곁을 떠나간 지는.
시계는 고장 난 장난감마냥
삐거덕- 거리며 더디게만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길어서야,
내가 그 긴 기다림을 어떻게 기다려야할지,
어떻게 버텨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감히 생각해 볼 수조차 없다.
 
 
이별을 하고서야
사랑했던 내 마음의 크기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난 홀로 이 긴 밤을 ㅇㅇ, 너로 적셔나갔다.
 
이별이란 이 길 끝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까?
 
내 욕심을 담아,
다시 만날 그때는 부디 우리가 함께이길 바래본다.
 
 
 
 
25개월 후
 
 
 
 
한해의 마지막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인만큼 사람들은
 꽤 들떠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사람들은 
한 달 전부터 사진촬영을 예약했고,
오늘은 꽤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물론 1년 전 쯤,
몇 편의 광고에 참여해 연예인들의 
사진을 몇 번 찍어본 덕과
영화포스트 촬영 때문에 유명해져 
사람들이 더 몰리는 탓도 있겠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예약자의 촬영이 끝나고,
난 작업실에서 카메라를 정리하며
사무업무와 소품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말은 건넸다.
 
 

 
오늘 예약되어 있던
촬영은 다 끝난 건가요?”
 
 
예약 장부를 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가며
확인하던 직원은,
 
 
, 오늘 마지막은 9시 반에
두 분이 예약되어 있네요.”
 
 
자신도 난감하다는 듯,
살짝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예약을 왜 이렇게 늦게 잡았어요.
잘 좀 이야기 하시지.”
 
 
평소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탓에
난 살짝 예민해져있어,
직원에게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커플사진을 찍는다고 이야기하던데,
워낙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직원에게
더 이상 싫은 소리는 못 하고,
 
 
오늘 약속 있다면서요.
이만 퇴근하세요.”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 그래도 아직 촬영 한 팀이 예약되어 있잖아요.
끝나고갈게요.”
 
 
됐어요- 혼자해도 충분하니까,
이만 들어가요!”
 
 
그래도 예약 받은 건,
전데 좀.”
 
 
미안한지 말끝을 흐렸지만,
이내 외투와 가방을 챙기는 직원이었다.
난 빨리 퇴근하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
 

 
내일도 출근인거 알죠?”
 
 
남들에겐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내일도 일할 예정이라는 것을
살짝 돌려서 이야기를 했다.
 
 
,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기 퇴근시켜주셔서 감사하고요,
작가님 내일 봬요.”
 
 
말뜻을 알아챈 건지 아니면
약속시간이 얼마 안남은건지,
직원이 황급히 자신의 물건을 챙겨
문을 닫고 나갔다.
 
철컥- 소리를 끝으로,
작업실엔 조용하고 적막한 공기만 남을 뿐이었다.
 
 
 




 
 
예약된 시간까지 2시간 넘게 남았기에,
잠깐 잠이라도 청할 요량으로,
작업실 구석에 마련된 작은방으로 지체 없이 걸어갔다.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는 수면제통을 꺼내,
수면제 몇 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이윽고 간이침대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왼쪽 팔을 구부린 채,
눈 언저리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ㅇㅇ의 
마지막말이 머리에 맴돌았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져,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날은 ㅇㅇ가 유학길에 발을 디딘 날이었다.
자정이 넘기 전에 걸려온 국제전화에,
난 숨도 쉴 새 없이 재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ㅇㅇ? ㅇㅇ맞지? ?”
 
 
오빠.”
 
 
그래, ㅇㅇ. 잘 도착했어?”
 
 
나 오늘 떠났는데,
왜 배웅 안 해줬어요?
나 비행기타기 전까지
오빠 엄청 기다렸었는데.”
 

 
기다렸어? 미안해.
내가 가면 ㅇㅇ 네가 떠나는데
전혀 도움이안 될 것 같아서 그랬어.
그래서 나타날 수가 없었어.
미안하다.”
 
 
…….”
 
 
그래도 잘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이왕 힘든 결정 내리고 갔으니,
견문도 넓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 .”
 
 
알았어요. 오빠 말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많이 배워서돌아갈게요.
그리고 또,
해줄 말 없어요?”
 
 
무슨 말을 원하는지 눈에 훤히 보였지만,
 

 
잘 도착했다니,
그걸로 족하지 뭘.”
 
 
힘들게 내린 결정에,
나에 대한 감정으로 휘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난 하고 싶은 말과 진짜 해주고 싶은 말을
애써 내속으로 삼키기 바빴다.
 
내 대답에 ㅇㅇ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새어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냈는지,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 서려있었다.
 
끝까지 이성적인 내 태도에 서운했을 ㅇㅇ,
 
 
오빠 말대로 나 진짜 공부에만 매진할거예요.
이 전화를 끝으로 앞으로 전화도 안 할 거고,
혹시나 그렇다고 그걸로 서운하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쉬지 않고 말을 뱉어냈지만,
ㅇㅇ는 정작 단호하게 말을 끝맺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힘들겠지만서로 기다려 보자라는
말 한마디 하는 게그렇게 어려워요?
흐흡, 그게 그렇게, 흐흑.”
 
 
결국 통화너머에 ㅇㅇ의 울음소리를 끝으로
우리는 그 어떠한 통화도 할 수 없었다.
 
 
사랑 앞에서 나이 많은 게 죄가 되었다.
젊고 어린친구들처럼 앞뒤 생각하지 않고
사랑고백을 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 내게 최우선은 ㅇㅇ,
네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과
학업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
그 두가지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2년하고 거의 반년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대화는 내 가슴속에 묻어났기 때문에
기억이 선명할 만큼 생생했다.
 
상황마다 변했을 ㅇㅇ의 표정과
감정들은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아직도 난 그 아픔에 젖어 허우적거리고 있다.
잊으려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때 말해줄 걸 그랬다.
 

 
ㅇㅇ, 아저씨가 참 많이 사랑했고,
아직도 여전히사랑한다.”
 
 
힘없이 새어나오는 목소리엔
후회가 가득 묻어있을 뿐이었다.
 
 
.
.
.
 
잠깐 잠에 들었나보다.
깨어나 시간을 확인해보니,
채 한 시간밖에 자지를 못했다.
 
한 번 깨면 다시 잠도 안 오는 걸 알기에,
몸을 일으켜 작업실로 향했다.
따뜻한 커피를 머그컵에 한잔 타고,
텅 빈- 작업실에 아무 의자나 꺼내어 앉았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잠시 눈을 감았다.
 
 
ㅇㅇ, 도대체 언제까지 연락 안 할 거니.
아저씨는 네가 너무 그리운데,
정말 너무 보고 싶은데.
 
 
이내 자꾸 솟아오르는 그리움에,
테이블 서랍 깊숙이 넣어둔 ㅇㅇ의 사진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무치는 마음을 달랠 뿐이었다.
 

 
우리 ㅇㅇ, 이때 정말 예뻤는데.
 
 
우리 ㅇㅇ, 이땐 정말 귀여웠지.
 
이 표정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네.
 
 
어느새 내 입술은 예쁘게 휘어져 있었다.
 

 
잘 지냈겠지?
정말보고 싶다.
 
 
테이블위에 사진을 올려놓고,
눈물이 새어나올 것 같아 마른세수를 했다.
그때, 작업실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예약된 시간 10분 전이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 오늘 ㅁㅁㅁ 이름으로 예약하신 분인가요?”
 
 
예약한 손님을 맞이했다.
 
 
, 안녕하세요.”
 

 
커플사진 찍는다고 들었는데,
여자 친구분은?”
 
 
지금 오고 있는 중이래요.”
 
 
그러면 여자 친구분 오면,
같이 콘셉트를 정하고 사진을 찍을 거예요.
그게 낫겠죠?”
 
 
, 그래요-란 대답을 꺼내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그였다.
 
 
생각보다 되게 넓네요?”
 
 
반 년 전쯤에 확장공사를 했거든요.
위층에 세트장도 몇 개 만들었고요.”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을 거두고,
이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으음그렇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되게 동안이시네요?”
 
 
혼잣말인 듯 혼잣말 아닌,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게 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정색하실 필요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공기를 뚫고,
문이 열리는지 청명한 종소리가 귀를 흔들어댔다.
자연스레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꿈속에서 애타게 그리던 ㅇㅇ
너의 모습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땐,
자연스럽게 잘 지냈어?’란 말을 수도 없이 연습했건만,
지금은 그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코끝이 시큰거려왔고
이내 빠르게 눈가엔 그리움이 차올랐다.
이미 내 표정은 엉망으로 구겨져버렸고,
슬픔은 참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수백 번, 수천 번 혼자 조용히 불러보던
주인 없던 이름이,
 

 
…ㅇㅇ.”
 
 
갈라지는 목소리 따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듯,
이제야 제 주인을 찾은 것 마냥
그 이름이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오빠.”
 
 
가늘게 떨리던 ㅇㅇ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자,
그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아차렸다.
 

 
현실을 직시하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엉켜버려,
이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남자친구까지 생겼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렇게 예쁜 너를 누가 가만 두겠니.
 
 
내가 그때 조금만 감정적으로 내 마음을 표현했더라면,
내가 지금 네 옆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원래라면 콘셉트를 잡고
세트장을 고르려 생각했건만,
지금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내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카메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우리 오랜만인데,
인사도 안 해줄 거예요?”
 
 
ㅇㅇ는 카메라 앞이 아닌,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발걸음을 했다.
ㅇㅇ는 숙여버린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아,
내 고개를 살짝 들게 만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공중에서 마주친 우리의 시선은,
서로를 오롯이 담아내듯 따스함이 묻어났다.
 
 
오빠 그때 이후로 정말 연락 안 해서,
화났어요?”
 
 
나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 좋아서.
예쁘게잘 컸네!”
 
 
내 눈에 흘러내리는 슬픔을 ㅇㅇ,
자신의 손으로 닦아내주었다.
 
 
오빠왜 이렇게 야위었어요!
잘 지내고있었어야죠.
난 잘 지내려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래잘했어,
대견스럽다.”
 
 
내 사랑을 빼앗긴 속상함은 전혀 가시질 않았다.
자꾸 울컥울컥-치밀어 올랐지만,
더 이상 눈물은 보일 수 없어
아랫입술을 깨물어, 억지로 슬픔을 참아냈다.
 

 
- 둘이 서봐.
아저씨가 사진 예쁘게 찍어줄게.”
 
 
그 말에 ㅇㅇ는 나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ㅇㅇ를 쳐다보자,
 
 
- 뭐해! 빨리 찍어줘!”
 
 
먼저 온 남자에게 말을 꺼내며,
ㅇㅇ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던 내게 팔짱을 꼈다.
 
그 남자는 알겠다는 듯,
세팅된 카메라 뒤에 서서 소리친다.
 
 
- 찍을게요!
하나, , !”
 
 
찰칵- 찰칵.
 
 
여러 번의 촬영 끝에,
더 이상 카메라 셔터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곧이어 그 남자는,
 
 
나 간다, 내일 콜 해!
둘이 좋은 시간 보내라!”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편 채
(손으로 전화기 모양으로 만들고),
자신의 귀에 대고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발에 불이라도 붙은 듯,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그 남자가 가고나자,
작업실에 내려앉은 차분한 공기에 적막감만 맴돌았다.
짓누르는 차가운 공기에 무엇을 어찌해야 될지 몰라,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때, ㅇㅇ는 내 앞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내 쪽으로 종이를 내밀었기에 받아들긴 했는데,
무엇이냐는 제스처를 취하자,
 
 
나 고등학교 졸업할 때, 성적표예요.
한번보세요- 나 차석으로 졸업했어요. 잘했죠?”
 
 
ㅇㅇ는 신이 나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뒷장은
대학교 1학년 때 성적표예요.
평점 4.25로 나왔을 때,
장학금도 한번 받았어요.
어때요? 나 정말 잘했죠?”
 
 

 
내 앞에 쉬지 않고 이야기하던
예전의 네 모습이 그렇게 그리웠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말 꿈만 같다.
 
어느새 내 입가는 예쁜 호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근래 들어 가장 오랜 시간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빠가 공부 열심히 하래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만 파고들었어요.”
 
 

 
장하다, 진짜. 잘했어, ㅇㅇ!”
 
 
예전처럼 쓰다듬어주려다 멈칫-했다.
허공에서 길 잃은 내 손을 ㅇㅇ가 잡고,
 
 
오빠- 이럴 땐, 쓰담쓰담 해주는 거예요.”
 
 
자신의 머리위에 올려놓는다.
난 부드럽고 천천히 ㅇㅇ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웠다, 우리 예전 모습들이.
 
 
오빠, 나 진짜 너무 그리웠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휴우.”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하기에,
ㅇㅇ의 손목을 잡고 의자가 있는 곳까지 끌고 와,
ㅇㅇ를 앉히고 맞은편에 자연스럽게 나도 앉았다.
 
 
앉아서 말해, 힘들게 서 있지 말고.”
 
 
ㅇㅇ는 나와 마주친 시선을 피하지 않고,
결코 쉬지는 않았지만 또한 성급하지 않게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우리가 굳이 이별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잘 컸다-란 생각으로,
반짝이고 있는 ㅇㅇ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 요새는 장거리 커플들도 참 많던데.”
 
 
한참을 실컷 말하다가, 갑자기 말끝을 흐린다.
테이블에 교차시킨 팔로 기댄 채,
내 몸을 앞쪽으로 살짝 들이밀었다.
 

 
아가씨!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자신 쪽으로 얼굴이 가까워졌던 것에
부끄러운 건지,
 
 
그러니까 전처럼, 연애해요!
대신 장거리 연애요!”
 
 
ㅇㅇ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마쳤다.
예전에 느꼈던 똑같은 그 떨림이,
온몸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인 공기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래 그러자.
그래야겠더라, ㅇㅇ.”
 
 
그동안 느꼈던 숱한 후회와 아픔을
또 경험하고 싶지도,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아저씨가 애가타서 안되겠더라.”
 
 
다른 남자의 옆에서 웃고 있을
네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기에,
나 또한 용기를 냈다.
 
 
근데 아까 같이 왔던 남자는,
남자친구 아니야?”
 
 
진지하게 질문한 내게,
 
 
!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입술을 내밀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걔는 같이 홈스테이 하는 친구예요!
나 거기 가서도 오빠밖에 없었어요!”
 
 
하는 말마다 어쩜 이렇게 예쁜지,
승천하려는 광대를 애써 눌러댔는데,
이런 내 표정을 보고 오해했는지,
 
 
진짜예요! ㅁㅁ가 나 거기 고등학교 들어갔을 때
같은 반이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같은 대학에 같은 과니까.
한번 물어보세요, 내가 지금 전화 걸어줄게요!
, 나 지금 너무 억울하다.”
 
 
ㅇㅇ는 열심히 해명을 하고 있었다.
지금 짓고 있는 ㅇㅇ 너의 표정과 행동,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됐어, 우리 ㅇㅇ 믿어!”
 
 
나도 한결같이, ㅇㅇ 너만을 기다렸거든.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기 바빴지만,
간만에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ㅇㅇ, 저녁 먹었어?
아저씨는 배가 좀 고픈데.”
 
 
에이- 아저씨 아니래도.
이 시간까지 밥도 안 먹고 뭐했어요!
그러니까 볼 살이 쪽 빠졌지.
, 사람 속상하게.”
 
 
오므린 입술이 쭉- 내밀어,
속상한 티를 내는 모습에,
 
 
앞으로 잘 챙겨먹을게,
걱정 마세요!”
 
 
웃음이 살포시 터져 나왔다.
 
작업실을 빠르게 정리한 후,
우리는 그리웠던 만큼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연인들이 즐비한 거리를 같이 걸어갔다.
 
 
.
.
.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온 거리를 함께 걷고 있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 가 없다.
 
 
나 근데사고쳤어요.”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고백하는 ㅇㅇ때문에,
내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사고? 뭔데.”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ㅇㅇ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엄마한테 나 남자친구 있다고고백했어요.
엄마가 내일 남자친구 한번 집에 데려오라고 하던데.”
 

 
, 올게 왔구나!
어쩌겠어,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만약 아저씨가 고백 안받아줬으면
어쩔 뻔 했어?”
 
 
오빠를 믿었죠.
그런데 확신했던 건 오빠 작업실 테이블에
내 사진 올려 진걸 보고,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구나- 란 생각이 들던데요?”
 
 
마냥 귀엽기만 한 어린아이에서,
여우같은 행동을 하는 성인이 된 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그시 쳐다봤다.
 
 
나 아직 거기서 2년 더 다녀야 돼요.
오빠를 그냥 두고 가기 불안해서,
엄마한테 못 박아두려고요.”
 
 
이성적인 사랑대신,
욕심을 내서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사랑을 해보려한다.
분명 우리 앞에 넘어야할 산이 높고도 많겠지만,
우리는 두 손을 잡고 더디더라도
한 발짝씩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딛으려한다.
 
 
지그시 쳐다보던 내 눈빛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ㅇㅇ는 나를 더욱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허공에서 마주친 우리의 시선이 미묘하게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ㅇㅇ의 허리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맞붙은 입술은 순식간에
조금 더 격렬한 키스로 바뀌었고,
우리는 마치 한 몸이 된 듯,
한참동안을 떨어질 줄 몰랐다.
 
 
커다란 종소리를 내며,
시계탑이 12시를 가리켰다.
그제야 우리의 입술을 떨어졌고,
 
 

 
메리크리스마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크리스마스의 인사를 건넸다.
 
 
다시 만날 그때는,
내가 그린 미래가 현실이 되어있으리라 믿는다.
 
 

 
사랑해, ㅇㅇㅇ.”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BGM은 심규선의 부디입니다.
사실 본편의 댓글을 보고 번외를 요청하시는 독자 분들께는
죄송하게도 번외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설정이 너무 과해서 부담스럽다는
 이야기에 사실 망설였습니다.
번외를 써서 또 한 번 독자님들께서 불편해하는 상황이
발생할까하는 마음에서였죠ㅠㅠ
물론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깨달은 바도 있지만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번외요청을 하셔서,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위에 읽기 전 공지를 달아놓고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많은 분들께서 원하신 엔딩이
해피엔딩일 거 같아서 쓰긴 썼습니다만,
만족하실지는 모르겠네요.ㅠㅠ
생각보다 글도 안 써지고 내용은 산으로 
가서 중간쯤 다 뒤집어놓고
새로 쓰느라 나름 힘들었어요.ㅠㅠ
몇 분의 독자님들과도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빨리 왔답니다.^^
맨날 하고싶은 말이 왜이렇게 많은지ㅠㅠ
여기서 이만 줄일 게요.^^ 이만 물러갑니다,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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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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