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 - 배드엔딩 스티커 (by. 락준)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호러물입니다. 무서운 사진은 없고
 제 기준으론 무섭다기보단 기묘한 이야기 정도지만
 일단 경고는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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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전설>
■ 배드엔딩 스티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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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에 배드엔딩인 게 어느 거예요?”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들린
 뒷골목 헌책방에서 00는 책방 주인에게
 그렇게 물었다.
 
 
 
“......”
 
 
 
카운터 뒤에 앉아 한가롭게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주름에 파묻히다시피 한 
작은 두 눈을 그녀에게 향했다.
 
 
 
아가씨, 배드엔딩을 좋아하나보지?”
 
 
 
, 전 베드엔딩인 이야기밖에 안 봐요
해피엔딩은 너무 뻔하고 시시하잖아요
 
 
 
00의 대답에 노인은 눈을 더 깊이 주름 속으로 
파묻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취향 참 특이한 아가씨로구만
 
 
 
제 취향이 특이하다구요?”
 
 
 
그러자 00가 고개를 갸웃하며 노인에게 되물었다.
납득할 수 없단 듯이.
 
 
 
글쎄요, 이 세상에 남의 불행을 재밌어하는 사람이
과연 저뿐일까요? 해피엔딩이란 건 말하자면 이야기가
 긴장감을 다 잃고 난 뒤에 끝나는 거잖아요.
꼭 단물 빠진 껌처럼요. 그런 게 대체 뭐가 
재밌단 건지 전 옛날부터 이해가 안 됐어요
 
 
 
입을 삐죽이며 상대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애매하게 중얼거린 00가 다시 노인을 돌아봤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배드엔딩인 책 주세요.
장르는 상관없어요. 소설이든 만화든
결말이 확실한 배드엔딩이기만 하면 다 좋아요!”
 
 
 
00의 요구에 노인은 흐음 하며 머리칼만큼 
새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중에서 배드엔딩인 책을 몇 권
 추천해줄 수도 있네만... 
아가씨한텐 이게 더 좋을 거 같구만
 
 
 
씨익, 수염 사이로 거의 다 빠진 이가 드러나게 웃은 
노인이 카운터 옆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그건, 스티커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흔히 파는 거 같은 어딜 봐도 평범한
하지만 이런 번화가 뒷골목의 헌책방에서 팔기엔 좀
 안 어울리는, 빨간색 테두리 안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스티커.
 
 
 
배드엔딩인 책 달라니깐 웬 스티커예요?”
 
 
 
생뚱맞아 보이는 노인의 행동에 00이의 표정과 
목소리에 짜증이 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싱글싱글 웃고 있는 노인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건지, 아니면 웃는 얼굴의 
카리스마인 건지, 그 얼굴을 보자 00는 왠지 더는 
제 성질대로 굴 수가 없었다.
 
 
 
이건 배드엔딩 스티커라네
 
 
 
좀 얌전해진 00에게 노인이 말했다.
 
 
 
배드엔딩 스티커요?”
 
 
 
그래. 이 스티커를 붙이면 어떤 이야기라도 
그 결말을 배드엔딩으로 바꿀 수 있지
물론 원래 해피엔딩인 이야기라도 말일세
 
 
 
네에??”
 
 
 
이런 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지? 당연하지
이건 오직 우리 가게에서만 파는 오리지널 상품이니깐
딴 데선 억만금을 줘도 못 구하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데요
 
 
 
그럼 한번 시험해보게나. 여기 있는 책들 중에서 
아무거나 해피엔딩인 이야기에 아가씨가
 직접 이 스티커를 붙여봐. 어떻게 되는지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스티커 하나를
 뜯어 00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들고 반신반의하며 
시험해볼만 한 책을 찾아 좁은 책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00의 눈에 마침 그림책 한 권이 들어왔다.
 
헨젤과 그레텔 / 아기돼지 삼형제 / 백설공주
 
그림책을 펼쳐 세 가지 이야기 다 모두가
 알고 있는 원래 결말임을 확인한 00가 어린애
 손바닥만 한 스티커를 책 표지에 붙였다.
 
 
 
“...?!?!”
 
 
 
스르륵, 분명 종이로 만들어진 스티커는 
그러나 마치 액체가 녹아 스며들 듯이 순식간에 
책속으로 사라졌다! 스티커를 붙였던 자리에
‘BAD END’ 라는 글자만을 남긴 채.
 
 
 
참고로, 그 글자는 스티커의 주인한테만 보인다네
 
 
 
꿀꺽, 긴장과 기대감으로 00이는 책장을 넘겼다.
 
헨젤과 그레텔. 숲속 과자의 집에서 식인 마녀를 죽이고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온 남매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살인적인 기근에 본인들이라도 굶어죽지 않기 위해 숲에
 버렸던 애들이 멀쩡히 살아 돌아오자
게다가 아들 헨젤은 통통하게 살이 쪄 있기까지 하자
 자식을 잡아먹기로 결심한 부모였다.
 
아기돼지 삼형제. 벽돌로 튼튼하게 지은 막내의 집
 굴뚝으로 침입해 들어온 늑대를 끓는 냄비에
 삶아 죽인 뒤, 작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축하파티를 
연답시고 수십 마리 늑대 무리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 상황도 모른 채 스스로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는 어리석은 삼형제의 모습에서 끝.
 
제일 잔인한 건 백설공주였다. 독사과를 먹고 기절한
 백설공주가 하필이면 쓰러지면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어, 그 상처 탓에 아름다운 것들만 좋아하는 
난쟁이들의 유리관에 담기지도 못하고 지나가던 왕자의
 눈에 띄지도 못한 채 두 번 다시 깨어나는 일 없이
 땅속에서 썩어가는 배드엔딩.
 
 
 
우와, 쩐다...!!’
 
 
 
할아버지, 저 이거 있는 거 다 주세요!!”
 
 
 
책을 덮은 00가 다시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스티커는 한 번에 한 묶음씩밖엔 안 판다네
아무래도 악용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니깐 말일세...
혹시 더 필요해지면 또 오게나
 
 
 
어차피 이야기를, 픽션을 바꾸는 거뿐인데
 뭐가 위험하단 건지.
 
 
 
, 되게 비싸게 구네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노인의 말대로 장소를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또 사러 오면 되고, 스티커는
 그 신기한 기능만큼 가격도 비쌌기에.
 
 
대신 덤으로 이걸 주지
 
 
 
00가 한 달 용돈을 다 털어 구입한 배드엔딩 
스티커를 포장하며 노인이 테두리가 파란색인 
스티커를 하나 끼워줬다.
 
 
 
이건 해피엔딩 스티커라네. 이 스티커를 붙이면-”
 
 
 
어떤 책이라도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꿀 수 있단 거죠
배드엔딩 스티커랑은 반대로
 
 
 
예의 없이 말을 끊은 00에 노인이 또 웃었다.
마치 하나를 가르쳐주니 둘을 아는 똑똑한 
아가씨로구만 이란 듯이. 하지만 00는 웃지 않았다.
조금도 좋지 않았으니까. 그녀에게 파란색 스티커는
 전혀 덤이 아니었으니까. 기껏 근사하게 완성된 
배드엔딩을 시시한 해피엔딩으로 바꿔버리다니,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스티커 따위 공짜로 
한 트럭을 준대도 필요 없었다.
 
 
 
“...부디 조심하게나
스티커는 일단 한 번 붙으면 절대 뗄 수 없으니
 
 
 
헌책방을 나서는 00의 뒤통수에 대고 노인이 
경고하듯이 덧붙였지만, 00는 그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러 비싼 돈 주고 사서 붙인 
스티커를 다시 떼고 싶어질 일 따위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 00는 
그러나 곧 곤란해지고 말았다
냐면 그녀가 갖고 있는 책들 중엔 해피엔딩이 거의
 없었으니까. 사실 한 권밖에 없었다. 제목과 표지와 
작품소개만 봤을 땐 어두운 분위기라 배드엔딩인 줄 
알고 잘못 산 책. 하지만 실제 내용은 태어났을 때부터 
불우했던 주인공이 그럼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마침내 행복을 손에 넣는
 결말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겐 눈물 나게 감동적이겠지만,
 00에겐 하품 나게 시시할 뿐인.
 
 
 
이거 끝까지 다 읽고 돈 버렸다 싶었지
 
 
 
딱 한번 읽고 홧김에 찢어버려 되팔지도 못하고
 책장에 처박아뒀던 거였다. 스르륵, 찢어진
 페이지에 배드엔딩 스티커를 붙이자 주인공이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 가득 찬 연쇄살인마가
 되는 흡족한 결말로 바꼈지만,
역시 한권으론 부족했다.
 
 
 
배드엔딩으로 바꾸려면 
우선 해피엔딩인 책부터 사야 된단 거야?”
 
 
 
그건 뭔가 너무 바보 같았다. 이제 그럴 돈도 없고
부모님의 책에 몰래 붙여볼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집안에서 금방 의심받을 짓을 할 필욘 없었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기도 했고.
 
 
 
엄마아빠, 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올게요!”
 
 
 
일요일인 다음날. 00는 눈을 뜨자마자 동네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도서관엔 당연히 책이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기록이 남으니 대출은
 하지 않았다. 그냥 열람실에서 결말을 바꿔보고 
싶은 책을 골라 스티커를 붙이기만 하면 됐다.
 
그날부터 00는 주말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해피엔딩에서 배드엔딩으로 바뀐 이야기들을 
실컷 즐겼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부모님은 
딸이 갑자기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며
 물색없이 좋아만 했다.
 
 
 
______
 
 
 
!”
 
 
몇 주 후 일요일. 그날도 아침부터 동네 도서관에 온
00는 책을 뽑아 돌아서다가 한 여자애와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잘 보고 다녔어야 했는데...”
 
 
 
아녜요
 
 
 
서로 잘못한 거였지만 착하고 예의 바른 여자애는
 정말 미안한 듯이 00에게 허리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
 
 
 
부딪친 반동으로 00는 마침 책에 붙이려 떼서 들고
 있던 배드엔딩 스티커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고, 뒤늦게 알아챈 그녀가 미처 뭐라 말이나 
행동을 취해보기도 전에 접착면이 위로 떨어진 
그걸 뒷걸음질 치던 여자애가 밟아버렸다
소리도 안 나는 얇은 종이였기에 여자애는 밟은 
뒤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걸음을 옮겼고,
 
 
 
“...!!!”
 
 
 
스르륵, 멀어져가는 여자애의 운동화 밑창에 붙은 
빨간색 스티커가 그 주인의 눈에만 보이는 선명한
‘BAD END’ 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흡수돼
 사라지는 걸 00는 그냥 멍하니 지켜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사람한테도 되는 거였어?!’
 
 
 
다시 열람실 의자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00. 
스티커가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붙일 수 있는 거였다니
헌책방 주인은 그런 말은 안 했었는데.
 
 
 
‘...아니지
 
 
 
그 이상한 노인은 스티커를 책에만 
쓸 수 있다고도 하지 않았다.
 ‘붙이면 이야기의 결말을 바꿔준다고만 했지.
 ...그래, 사람의 인생또한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 설마...’
 
 
 
오늘은 주말이라 둘 다 사복차림이었지만 00는 
여자애가 누군지 알았다. 그리고 그 애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박수영, 00와 같은 학교 한 학년 후배.
 
전교는 물론이고 다른 학교에까지 유명한 미소녀.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마저 좋은데 착하기까지 한
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완벽해 질투도 안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해피엔딩으로 
정해져 있는 축복받은 인생.
 
그럼 설마, 이걸로 박수영의 이야기도 
그 결말이 바뀌게 되는 걸까?
 
 
 
이야기는 00의 예상대로 전개됐다. 월요일인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애들이 온통 울고불고 난리가 나 있었다.
 

박수영이 죽었다며.
 
어제 오후 친구들과 시내에서 놀고 헤어져 혼자 
집으로 돌아가다 정체 불명의 괴한에게 
묻지 마 살인을 당했단다. 배드엔딩 스티커가 몸에 
붙은 바로 그날 죽은 거다. 사건은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
 
 
 
00는 소름이 끼쳤다. 정말 소름끼치게,
 
 
 
아하하하핫!! ~!!”
 
 
 
너무너무 재밌고 신났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을 정도로.
 
 
 
이거 진짜 끝내주는 물건이잖아??”
 
 
 
안 그래도 슬슬 질려가던 참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결말을 바꿔봤자 어차피 다 픽션이란 허무함에
하지만, 이젠 현실도 바꿀 수 있는 거다.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내 맘대로. 00이는 마치 제가 신이라도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진짜 신 맞지 뭐.
 
 
 
고마워요, 할아버지. 이렇게 좋은 걸 주셨는데
 짜증내서 미안하네요. 다 쓰면 또 사러 갈게요
 
 
 
, 그럼 다음은 누구로 할까? 박수영은 우연이었지만
 두 번째부턴 타깃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이 책 저 책에 마구 붙여대다 보니
 어느새 00의 수중에 남은 배드엔딩 스티커는 하나뿐
다음 주부터 시작인 중간고사가 끝나야 다시 용돈과 
외출 허락을 받아 새로 사러 갈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즐길 수 있는 기회도 한 번뿐이다
게다가 배드엔딩 스티커는 알바도 못하는 
고등학생에겐 너무 비싸고, 기껏 그 비싼 스티커를
 힘들게 붙여도 상대가 그냥 오다가다 길에서 마주친 
모르는 사람이라면 결말이 바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재미도 의미도 없었다. 친하진 않으면서 얼굴과
 이름은 알고, 자연스럽게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막상 주변에서 적당한 상대를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토요일. 00는 또 동네 도서관에 갔다.
 
 
 
, 안녕하세요
 
 
 
한 사서를 만나기 위해. 00가 주말마다 여기 다니기 
시작하게 되고 난 뒤에 새로 온 젊은 남자 사서는 
이 동네에선 벌써 꽤 유명했다. 어떤 진상 손님이 
와도 언제나 얼굴에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 친절함과,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잘생긴 외모로.
 
진짜 연예인에도 관심 없는 00로선 (요즘엔 어떤 
이유로 좀 관심이 생겼지만) 그와 인사를 나눠본 거도
그의 이름이 김재욱이란 걸 안 거도 오늘이 처음이지만,
 

난다 긴다 하는 남학생들의 고백을 다 거절한
 그 박수영조차 이 남자 앞에서 수줍게 뺨을 
붉히는 걸 본 적 있었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바보 아냐? 아무리 잘생겼어도
 나이 차이가 띠동갑은 넘을 거 같은데
, 어차피 걔는 이미 죽었지만.
 
 
 
학생 주말마다 본 거 같은데 
얘기해보는 건 처음이네요.
주말인데 놀러 안 가요?”
 
 
 
... , 제가 고3이라서요
 
 
 
설마 그가 자신을 기억하리라곤 예상 못해 순간 
방심하고 있다 당황한 00지만, 그의 말대로 벌써 
몇 주째 꼬박꼬박 와서 토일 이틀을 연달아 
하루 종일 열람실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이제 
얼굴 정도는 붕어 아이큐가 아니라면 
기억할 만하다 싶었다.
 
 
 
3? 상풀고?”
 
 
 
 
 
 

그렇군요.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네요
 
 
 
“......”
 
 
 
관심을 갖고 가까이서 살펴보니 확실히 잘생기긴 했다
저런 외모로 왜 모델이나 배우가 안 되고 이런 외친 
동네에 처박혀 사서나 하고 있는 건지. ...이 잘생긴 
남자는 과연 어떻게 죽을까? 교통사고? 심장마비?
 00에겐 참으로 즐겁게도 알아서 살인사건에 휘말려준
 박수영이나, 죽었다는 거만으로 엄청난 화제가 될
 유명 연예인들만 한 자극은 못 되겠지만, (배드엔딩 
스티커를 새로 사면 다음엔 요즘 애들에게 인기 많은 
아이돌을 노려볼 생각이다. 팬싸인회 같은 데 가면 
악수 정도는 해주겠지)
 
 
 
저기,”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은 거면 말해줄래요?”
 
 
 
“...?! , 아뇨...!”
 
 
 
순간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지나치게 당황해버리는 바람에 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그에게 터치하려던 00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럼 시험공부 잘해요. 너무 무리하진 말구요
 
 
 
배드엔딩 스티커를 숨겨쥔 한손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땀이 아니라 물을 부어도 젖지도 찢어지지도 
않는다는 건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재질은 종이가 분명한데 볼수록
 신기한 스티커였다) 할 수 없지, 기록이 남겠지만 
대출을 하는 수밖에.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이 스티커를 붙이면, 그는 오늘 안에 
어떻게든 죽게 될 테니
불의의 죽음이야말로 인생이란 이야기에서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배드엔딩이니까.
 
 
 
“00학생도 이 작가 좋아해요?”
 
 
 
아뇨,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책은 오늘 처음 읽어봐요
 
 
 
스티커를 붙일 기회만 엿보느라 평소에 다른 사람들을 
하는 거보다 반응이 더 무뚝뚝하게 나와버린 00.
 
 
 
재밌을 거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제일 좋아하는 책이거든요ㅎㅎ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친절한 태도로 그녀가
 아무거나 적당히 집어 빌려가겠다고 카운터로 
들고 온 책에 바코드를 찍는 남자 사서.
 
 
 
“......”
 
 
 
그 순간 문득, 00는 이 남자에게 배드엔딩 스티커를 
붙이는 게 좀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스티커가 아까운 
상대도 아닌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사서님!”
 
 
 
하지만 머릴 몇 번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버린 00,
 
 
 
“...???”
 
 
 
... , 다음에도 좋은 책 있으면 추천 부탁드려요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할 말이 있어 부른 척 드디어 그의 몸에 
스티커를 붙이는 데 성공했다!
 
스르륵-
 
붙이자마자 00가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할 틈도 없이 스티커는 사라졌고, ‘BAD END’
사람 좋게 웃으며 다시 돌아서는 넓은 등에 낙인처럼 
새겨진 붉은 글자도 그가 책장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며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다.
 
 
 
______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00의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배드엔딩 스티커를 붙인 지 
하루가 아니라 며칠이 지나도록,
 

남자 사서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거다.
 
주말에만 가던 도서관에 시험공부를 핑계로 
매일 가며 지켜봤지만, 그도 그의 주변도 평소와 
똑같이 평화롭기만 했다.

  
 
혹시 불량품?!’
 
 
 
하긴, 신기한 물건이라고 그런 게 없으란 법은 없지.
하필 그에게 붙인 마지막 하나가 효력이 없는 
불량품이었나 보다.
 
 
 
또 사서 다시 붙여야겠다. 이번엔 확실한 걸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방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00의 눈에, 책상 서랍 구석에서 뒹굴고 있던 파란색 
스티커 하나가 들어왔다. 덤으로 받았지만 평생 쓸 일
 없을 거라 처박아두고 지금까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해피엔딩 스티커. 하지만 스티커를 사람에게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배드엔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본인의 
인생만은 해피엔딩이 좋은 게 당연했으니까
아니, 그런 인간들일수록 제 행복에 관해선 
더 탐욕을 부리는 법이다.
 
스르륵, 손바닥에 붙인 스티커가 ‘HAPPY END’
 글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00는 스티커를 더 사러 갔다.
이번엔 배드엔딩만이 아니라 해피엔딩 스티커도 
살 생각이었다. 물론 해피엔딩은 전부 자신을 위해.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
 
 
 
지익지익, 스르륵스르륵- 해피엔딩 스티커를 사자마자
 다 제 몸에 붙이고 쓰레기는 길에 버린 00가 포장한
 배드엔딩 스티커를 가방에 잘 챙겨넣은 뒤 뒷골목 
헌책방에서 다시 번화가로 나왔다.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인데
이상하게 시내에 사람이 없다. 얼마 전 여고생을 죽인
 묻지 마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아설까?
 
 
 
하지만 난 걱정 없어. 해피엔딩 스티커를 
잔뜩 붙였으니깐. 이러다 나 막 뱀파이어처럼 
늙지도 않고 몇 백 년씩 사는 거 아냐?ㅋㅋ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은 00가 가방에서 며칠 전
 오랜만에 서점에서 구입한 책 한권을 꺼냈다.
 
 
 
재밌을 거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제일 좋아하는 책이거든요ㅎㅎ
 
 
그 남자 사서 때문에 우연히 읽게 돼 자신도 좋아진
 작가의 신간.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인
 스릴러물. 주인공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었지만
아쉽게도 결말이 너무나 확실한 해피엔딩이었다
주인공이 죽이려던 상대에게 오히려 살해당하고,
마을엔 평화가 돌아오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그렇게 똑똑하고 악마 같은 주인공이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버리다니. 중후반까지의
 재미와 긴장감을 결말에서 다 망쳐버렸잖아!’
 
 
 
하지만 괜찮았다. 자신에겐 배드엔딩 스티커가 있으니
책에 붙이기 위해 스티커를 꺼내던 00의 뇌리에,
 
 
 
“...?!?!”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까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잠깐, 이게 해피엔딩이라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악인이 살아남아, 이후에도 계속 사람들을 죽일 걸
 암시하는 결말이라면, 그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배드엔딩이라 불릴 것이다. 이 경우엔 악인인
 주인공이 죽어야 해피엔딩이 되는 거겠지. 이 책처럼.
 
 
 
“00학생
 
 
 
그때 갑자기 00의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우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서님...?”
 
 
 
이런 데서 혼자 뭐하고 있어요?”
 

위험하게
 
 
“...!!!”
 
 
 
-
 
 
 
배드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여고생 
000가 그녀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나 친절했던 남자의 여전히 매력적인
그러나 더 이상 사람 좋아 보이진 않는 미소와,
 
피로 물든 자신의 손바닥이었다.
 

‘HAPPY END’ 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
.
.

※만든이 : 락준님
 
 
<>
 
도시전설은 로맨스 요소가 없거나 거의 없는
 호러물 단편 시리즈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이수혁을 남주로는 
잘 못할 거 같아요. 아무리 픽션이라도 차
 제가 쓰는 글에서 수혁찡이 00이를 해치게 할 순 
없으니까요...(, 애정이 있어서 해치는 건 괜찮음
호러 요소가 없는 로맨스물 단편 시리즈인
()편소설의 정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장편소설로 호러물을 올렸더니 
일부 독자님들의 항의가 있어서 시리즈를 따로 
만들기로 했어요...;;;) 
이 시리즈도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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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전설>
■ 배드엔딩 스티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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