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cept (by. 몽글구름)

<작가가 독자님들에게>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번 마지막 작품에 감기 조심하란 인사를 남기고
저 다음날 감기에 걸려서 며칠을 앓았습니다.ㅠㅠ
글 얼른 써서 독자님들 찾아뵙고 싶었는데.
쟁여놓은 글도 없고, 최대한 빨리 써서 왔네요.
사실 제목을 한글로 컨셉으로 썼는데,
자꾸 빨간 밑줄이 생기는 관계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맞는 표현이 콘셉트라네요.
콘셉트라고 써놓고 보니까 
콘센트란 단어가 자꾸 연상되고,
제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랑 자꾸 다른 
느낌이 들어 그냥 영어로 써버렸습니다.
콘셉트라고 읽고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컨셉이라 생각해주세요.
너무 쓸데없는 말이 길었네요. 바로 시작합니다!
 
 
 
Concept
 
 
22세기 초, 세상은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변화했다고
우리 할머니께서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반백년하고도 35년을 더 살았지만,
내 젊은 시절 때는 핸드폰이라는 게 유행했지.
없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고,
항상 손에 쥐고 살 정도였으니 말이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낯설었지만,
그만큼 또 빠르게 변화한 세상에 맞춰,
우리는 스며들듯 그 삶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네모난 작은 상자모양이라고
예전에 말씀하셨잖아요
그걸 귀찮게 일일이 어떻게 들고 다녀요?
지금처럼 손목에 칩처럼
 박혀있는 게 편하잖아요. 그치요?”
 
 
난 손목에 박혀 있는
네모난 작은 화면을 내보이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 벌써 시간이.
할머니, 저 남자친구 만나고 올게요!”
 
 
사실 내가 느끼기엔 할머니가 보여준 옛날 사진과
지금 현재는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세련된 환경이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있었고,
조금 더 삶이 윤택해졌다고 느끼는 정도뿐이었다.
 
 
생각을 끝으로, 난 약속장소까지 빠르게 도착했다.
 
 
 
상냥한 남자, 이종석.
 
 
 
내 남자친구는 벌써 카페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호칭을 부르며 오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고,
덩달아 똑같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나를 반겼다.
 
 
오빠!”
 
 
내 남자친구는 나보다 2살 많은 대학 신입생이었다.
우리는 사귄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아주 풋풋한 커플이다.
 
 
밖에 바람 많이 불던데,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오지.”
 
 
밖에 바람이 이렇게 많이 불 줄 몰랐어.”
 

 
어이구,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말 참 안 듣는다!”
 
 
오빠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그랬지.”
 
 
우리 ㅇㅇ는 안 그래도 충분히 예뻐!
아 그리고, 내가 좀 전에 
우리 ㅇㅇ 좋아하는 자몽에이드로
미리 주문해놨어. 괜찮지?”
 
 
우리 오빠,
참 기억력도 좋다, 그치?”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오빠의 말에 난 기분이 좋아져,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우리는 마주보고 앉은 상태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오면서 봤는데,
여기 근처에 음식점 새로 오픈했더라?”
 
 
아 그래? 난 오면서 못 봤는데.”
 
 
수제 돈가스 집이래.
점심은 거기서 먹어볼까?”
 
 
- 수제래?”
 
 
. 우리 ㅇㅇ, 돈가스 좋아하니까 거기서 먹어보자.”
 
 
그래, 그럼 점심은 거기로!”
 
 
오빠는 세심하게 나를 챙겨주지만,
가끔 애기 취급당한다는 느낌도 종종 받기도 했다.
 
카페에서 벗어나 우리 둘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오빠 손을 몇 주 전에 처음 잡았는데,
그때의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상풀 돈가스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았다.
우리도 빈자리에 자리를 잡아, 기본메뉴 두 개를 시켰다.
우리는 마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지,
서로를 눈에 담아내며 미소 짓기에 바빴다.
그는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우리 ㅇㅇ는 왜 이렇게 귀엽냐?”
 
 
오빠도 참-,
여기 사람도 많은데. 부끄럽게.”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수줍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렇지만 내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 번져있었다.
 
 
한참 점심을 먹고 있는데,
 
 
? ㅇㅇㅇ!”
 
 
누군가 나를 불렀다.
소리 난 쪽으로 시선을 두니,
같은 반 수정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도 여기서 밥 먹었어?”
 

 
, 난 다 먹어서 이제 나가려고 했지.
옆에는 남자친구?”
 
 
, 이쪽은 내 남자친구!
오빠, 여기는 나랑 제일 친한 수정이.”
 
 
내 간단한 소개에 그 둘은 고개를 숙여 서로 인사를 했다.
그녀는 우리의 데이트를 더 이상 방해하기 싫다는 듯,
 
 
점심 맛있게 먹어, 식사 맛있게 하세요!
ㅇㅇ, 나 먼저 갈게.”
 
 
짧은 인사를 던져놓고 같이 왔던 일행과
바삐 음식점을 벗어났다.
 
 
오빠, 아까 봤던 애가 나 소꿉장난할 때부터 친구였어.
성격 완전 좋아 보이지?”
 

 
, 그 친구가 ㅇㅇ 네가 종종 말했던
정수정이란 애야?”
 
 
, 맞아.
역시 오빠 기억력 하나는 끝내준다!”
 
 
엄지를 치켜세워, 오빠 앞에 흔들어보였다.
 

 
그는 이정도쯤이란 듯 어깨를
 으쓱- 한번 올렸다 내렸다.
 
 
오빠의 미리 잡힌 선약 때문에,
점심을 끝으로 오늘의 주말데이트는 끝났다.
자연스레 오빠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음식점을 나왔다.
 
 
더 데이트하고 싶은데,
미리 잡힌 약속이라 어쩔 수가 없네.”
 
 
그는 일찍 데이트를 끝내는 게 못내 미안한지,
연신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다.
 
 
왜 자꾸 미안해하고 그래,
오빠가 며칠 전부터 이야기했던 거잖아.
중요한 약속이라 어쩔 수 없다며.”
 
 
물론 나도 짧게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게 며칠 전부터 약속이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서운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집 앞까지 도착해서야,
미안하다는 오빠를 되돌려 보내고 난 집으로 도착했다.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오빠인가 싶었지만,
 
 
, 수정! 웬일이야.”
 
 
-너 집이야?
 
 
, 오늘 오빠 약속 있다고 해서.
일찍 헤어졌지. ?”
 

 
-아니, 뭐 좀 물어보려고. 아까 자세히 못 봤는데,
너 남자친구 귀 뒤쪽에 
하트모양으로 빨간 점 있는 것 같던데,
내가 본 게 맞아?
 
 
관찰력도 좋은 기지배,
그걸 또 언제 봤대?
 
 
-, 역시! 내가 그런 관찰력 하나는 끝내주지.
, 어때? 좋냐?
 
 
좋지, 그럼.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일걸?”
 
 
-. 그 정도야?
, ㅇㅇㅇ 말하는 거 완전 오글거려.
 
 
자기가 물어놓고 왜 오버야.”
 
 
-그건 그렇고,
너 수학쌤이 내준 과제 다 했냐?
 
 
, 과제? 수학선생님이 뭐 내줬어?”
 

 
-내가 너 잘 때부터 알아봤다!
책가방 뒤져봐라. 분명 프린트 꽤나 나올 거다.
그거 내일까지 다 풀어 오래. 그럼 난 이만 전화 끊는다!
 
 
잠깐, 잠깐만!”
 
 
정수정, 이 매정한 기지배.
책가방을 열어보니, 무려 다섯 장이나 되는
프린트가 깔끔하게 접혀 있었다.
문제수를 보고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 100문제 언제 다 풀지?
 
 
수학 교과서를 뒤적거려가며
문제와 풀이, 그리고 답을 공책에 적어냈고
그렇게 나의 주말 오후를 수학문제와 함께 보냈다.
물론 밤을 지나 잠들기 전까지도 함께였지만.
 
 
 
*
 
 
 
저녁바람은 생각보다 제법 차가웠다.
교복위에 걸친 외투를 목까지 끌어 잠갔다.
수정이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교문까지 함께 걸어 나왔다.
난 교문을 벗어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 남친 도착했대?”
 
 
, 교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가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걸어오자
수정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나도 남친한테 전화나 해봐야겠다.
내일보자, ㅇㅇㅇ.”
 
 
짧은 인사만 남긴 채, 내게서 멀어져갔다.
난 몸을 돌려 오빠 쪽으로 바라봤다.
기분이 좋아진 난 목소리를 한 톤 높인 채,
콧소리를 살짝 섞어 먼저 말을 걸었다.
 
 
, 오빠~ 오늘 웬일이야?”
 

 
왜긴, 보고 싶어서 왔지.
가자, 집으로.”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우리 집 쪽으로 발걸음을 나란히 했다.
 
 
오빠가 학교 앞으로 마중도 와주고,
-무 좋다.”
 
 
그렇게 좋아?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가끔 남자애들이 자기 여자 친구 기다린다고
교문 앞에 서있거나, 같이 걸어가는걸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치이- 내 맘도 모르고.”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용?
오빠도 종종 찾아올게, 너무 부러워하지 마~ ?”
 
 
, 애기 취급하지 마.”
 
 
우쭈쭈-하며 나를 아이 달래는듯 한 말투에,
내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 오빠. 이번 주 주말에
상풀 공원에 벚꽃 만개할거라던데?”
 
 
하긴, 벌써 4월이니 그렇겠다.
그럼 이번 주는 공원에서 꽃구경 좀 하러 갈까?”
 
 
- 좋다, 완전 좋아.
가서 사진 실컷 찍어야겠다.”
 
 
꽃구경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난,
입가에 봄을 머금듯 예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집 앞까지 다다르자 오빠는 나를 자신 앞에 세워두고,
 

 
이번 주 주말에도 재밌게 데이트 해보자,
알겠지?”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심장이 빠르게 요동쳐댔다.
 
 
알겠어. 조심히 가요, 오빠.”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고자
몸을 돌려 인사를 했고,
난 그대로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빨개진 나의 얼굴이 어두운 밤에 가려져,
그가 보지 못하길 바랐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나 혼자 좋은 티를 내기 싫었을 뿐이랄까.
 
 
 
*
 
 
 
낮의 온도가 쉬지 않고 올라갔다.
최고기온이 딱 벚꽃이 만개하기 좋은 온도였고,
시원한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는 기분 좋은 날씨였다.
 
오늘은 그토록 기대하던 데이트 날이었다.
살짝 짧은 원피스치마를 꺼내 입고
위에 얇은 분홍색 카디건을 위에 걸쳤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연하게 화장도 했다.
 
거울을 보니, 내 모습에 제법 만족스러웠다.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미소를
 한번 지어보일 때, 문자가 왔다.
 
 
-ㅇㅇ, 꽃구경하러 가자.
 
 
그는 항상 밑에 도착했을 때,
내게 문자로 먼저 연락을 했다.
가방을 챙겨서 지체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고 문이 열리는 순간,
나를 반기듯 그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오늘 날씨도 좋더라, -.”
 
 
내게 자신의 손바닥을 보이도록 내밀었고,
난 자연스럽게 그의 손 위에 내손을 포개어 올려놓았다.
맞잡은 우리의 손은 보기에 제법 잘 어울렸다.
 
 
가자, 오빠.”
 
 
늘 그렇듯, 꽃이 만개한곳에는 사랑이 가득 흘러넘쳤다.
가족, 친구(이성이든 동성이든), 애인,
그 외에 또 다른 관계까지도.
 
 
적당한 온도, 적당한 바람, 적당한 분위기.
그날은 그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오빠, 오늘 사진도 찍고 실컷 산책도 하자.
아 그리고 배고프면 말해,
내가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싸온 도시락도 먹자.
나 잘했지?”
 
 
도시락 통을 앞으로 내밀며 말하자,
내 말에 뭐가 좋은지
 미소를 머금은 오빠의 표정이 보였다.
동시에 그의 큰 손이 내 정수리 위로 떡하니 올라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생했네.
이따 경치 좋은 곳에서 자리 잡고,
같이 먹자.”
 
 
내 입술과 그의 입술은 예쁜 호선을 그려내었다.
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사진 잘나왔네. ㅇㅇ는 역시 예쁘다, 예뻐.”
 
 
오빠도 멋지게 잘나왔다.”
 
 
우리는 누가 봐도 보기 좋은 커플이었다.
 
 
.
.
.
 
 
벚꽃이 만개한 나무들이 줄지어 쭉- 늘어서 있었다.
난 독사진을 찍기 위해, 계단 두 칸을
 올라가 나무 옆에 기대어 섰다.
오빠는 나를 사진 찍어주기 위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카메라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다른 커플도 사진을 찍으려했던 것인지,
어떤 여자가 나랑 같은 곳에 올라와 있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내가 있는 것을 인식을 하지 못한 듯,
자리를 옮긴다고 움직이다가 나를 밀쳐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난간처럼 폭이 좁은 자리였다.)
동시에 중심을 잃은 나와 그녀는,
결국 둘 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퍼덕-
 
 
생각보다 큰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마냥,
우리를 동물원에 원숭이를 구경하듯 쳐다봤다.
오빠도 물론 놀라서 내 쪽으로 뛰어왔다.
 

 
ㅇㅇ! 괜찮아?”
 
 
아픈 것보다 창피함에 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고개를 한번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곧이어 그의 목소리가 엉뚱한 곳에서 났다.
 
 
, 괜찮으세요?”
 
 
나랑 같이 떨어진 여자의 안부를 묻는 그의 행동에 난,
기분이 상하다 못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떨어지면서 내 치마는 뒤집혔고,
흰 원피스와 분홍색 카디건에는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물론 속바지는 입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상황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얼핏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어,
창피함은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걱정을 하는 그 때문에,
참을 없을 만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내 상황을 본건지 못 본건지,
내가 처한 상황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상대방 여자가 괜찮다는 소리에,
몸을 돌려 그제야 나를 살피는 그가 너무 야속했다.
난 벌떡 일어나, 스스로 내 옷 맵시를 정리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눈물도 걸음속도만큼 빠르게 차올랐다.
서운함, 창피함, 화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나의 마음이 눈 밖으로 흘러나왔다.
 
 
앞서 뛰다시피 걷는 나를,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아 걸음을 세웠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ㅇㅇ, 왜 그래.”
 
 
전혀 문제가 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난 실소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난 미간을 잔뜩 구겨버린 채,
몸을 획- 돌려 그를 매섭게 쳐다봤다.
 
 
, 그래-라고?
내가 그럼 이유 없이 이러는 것 같아? ?”
 
 

 
아니, 말을 해야 알지,
그렇게 가버리면.”
 
 
난 분명 친절하고 상냥한 이미지가 좋다고 했지!
근데 그건 당연히 나에게만 해당하는 거 아니야?
그걸 꼭 일일이 말을 해야 되니?”
 
 
난 숨도 쉬지 않고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었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난 그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을 꺼냈다.
 
 
우리 그만 만나자.”
 
 
다시 몸을 돌려,
전보다 느려진 걸음으로 터벅터벅- ,
힘없는 발걸음은 결국 집으로 향했다.
 
2105415, 80일 간의 우리 사랑은
그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얇고 가녀린 내 검지 손끝에서.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 사람은 나였지만,
난 한동안 떠나간 당신을 생각하며
꽤나 아픈 시간을 보냈다.
그땐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팠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다.
 
 
 
*
 
 
 
따뜻한 바람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걸보니,
여름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교문을 나서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이 
그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
 
 
저 남자애 누구야?”
 
 
몰라, 근데 진짜 잘 생겼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했고,
 
 
어머!”
 
 
! 대박.”
 
 
소리 지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왜들 저러지?
 
궁금했던 난, 스스로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교문을 벗어나자마자 아이들의 시선을 쫓아,
나또한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엔 내 남자친구가 서 있었다.
 
 
 
까칠한 남자, 이종석.
 
 
 
그도 나를 봤는지, 주저 없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코앞까지 걸어온 그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위에 자신의 팔은 얹어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의 아주 자연스러웠던 행동에 나조차도 당황했지만,
 
 
, 뭐하는 거야!”
 
 
주변반응이 더욱 소란스러워지자,
내 얼굴이 금세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자! 근데 너희 학교 애들,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난리야?
정말 시끄러워 죽겠다!”
 
 
여고라서 그래, 남자를 보면 난리가 나지.
그건 그렇고 오늘 마중 안 올 거라면서.”
 
 
그냥 집에 갈려고 했는데, 잠깐 들려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어찌나 빽빽- 거리며 소리를 질러대는지,
아직까지도 머리가 울린다, 울려.”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었지만
그의 찌푸린 인상은 펴질 줄을 몰랐다.
 
 
 
 
신호등 하나를 두고 집 앞까지 다 왔을 때였다.
초록불로 바뀐 신호에 나란히 발걸음을 옮겨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널 때였다.
 
 
빵빵- .
 
 
-하니 내 앞으로 지나쳐가는 오토바이에 깜짝 놀랐다.
멈추라는 듯 내 어깨를 꼭 붙잡는 그의 손이 아니었으면,
한 발짝만 더 나아갔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아니, 저 오토바이 새끼가 미쳤나.
이 새끼야! 운전 똑바로 못해?”
 
 
멀어져가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점을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지자,
 
 
괜찮냐?”
 
 
걱정 어린 그의 물음에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의 손은 내 어깨에서 본드를 
붙여놓은 듯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집 앞까지 도착해서야
그의 손은 내 어깨에서 겨우 떨어졌고,
 
 
얼른 들어가-
, 간다!”
 
 
몸을 돌려 앞서 걸어갔다.
세발자국을 걸었을까,
그는 걷던 걸음을 멈춰 다시 내 앞까지 돌아왔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무엇을 찾는 듯 뒤적거리더니,
내 손에 조그만 봉지 하나를 쥐어주었다.
이게 뭐지-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니,
 

 
이불 목까지 끌어올려서 덮고 자라-
감기 심해져 괜히 고생하지 말고!”
 
 
자신의 말 한마디를 던져놓고, 멀어져가는 그였다.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
내 손에 올려 진 약봉지를 쳐다봤다.
내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저녁에 나 마중 올래? 콜록-.”
 
 
-안가!
 
 
콜록- 얼굴 보고 싶은데.”
 
 
-몰라, 끊어!
 
 
낮에 잠깐 했던 전화통화가 생각이 났다.
두툼한 약봉지를 보자
또 한 번의 미소가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 이유는 기침과 관련된 
약 종류만 6가지나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나의 작은 행동을 알아채고,
 
 
종석아! 고마워, 약 잘 챙겨먹을게!”
 
 
세심하게 챙겨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는 무슨 걸음이 저리 빠른지.
내 시야에서 그의 모습이 손톱만큼 크기가 되었을 때,
 
 
그리고 사랑해.”
 
 
조심스럽게 나의 마음을 표현했다.
 
 
 
*
 
 
 
주말이라 사람이 북적거리는 풀가동 영화관.
 
 
, 나 장르가 공포인건
진짜 싫다니까?”
 

 
그 영화 본 사람들이 귀신 장면 없어서
하나도 안 무섭다고 하는데,
그냥 좀 보자!”
 
 
그래도 싫단 말이야!”
 
 
내가 옆에 있어줄 건데,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
 
 
공포영화는 정말 싫어하는데,
보게 될 상황에 처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미치겠다.
 
 

 
- 무서우면,
이따 손이라도 잡던지.”
 
 
무심한 듯 흘러나온 말이,
 
 
영화보고 나와서,
나 소리 엄청 질렀다고 뭐라고 하지나마.”
 
 
내 마음을 움직였고,
그래서 나 또한 한 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
.
.
 
 
상상력가동이란 제목의 영화였는데,
상력으로 인해 경험하는 공포심을 표현한 영화라고 했다.
물론 그의 손으로 끌어다가 내 눈을 자꾸 가려서,
스토리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람을 조여 오는 공포 상황과
웅장한 소리로 압도하는 사운드.
 
 
보는 내내, 난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결국 목소리가 쉬어버렸다.
귀신은 안 나온다더니, 갑툭튀 하지를 않나,
결국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렸다.
 
아마 1시간 40분가량 나 혼자,
보이지 않는 공포심과 사투를 벌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왠지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기가 빨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했다.)
 

 
그렇게 무서웠냐?”
 
 
힘 빠진 나를 보더니 위로를 해주려는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마냥 말없이,
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준다.
 
 
이거 보이냐?”
 
 
?”
 
 

 
ㅇㅇㅇ, 네 콧물과 눈물의 집합결정체.
, 무섭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다, 그치?”
 
 
어쩜 말하는 그의 표정이 저렇게 얄미울 수가 있을까.
민망했던 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러니까!
내가 무서운 영화는 안본다고 그랬잖아!”
 
 
난 장난 좀 치려고 한 건데,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잖아.”
 
 
, 몰라!”
 
 
여자 친구를 놀려먹을 줄이나 알고,
 
상한 기분 탓에 몸을 돌려 혼자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같이 가, ㅇㅇㅇ!”
 
 
뒤에서 나를 부르는 내 남자친구였다.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자,
자신의 손을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려 흔들어댔다.
 

 
나 손 먼저 씻고.”
 
 
한마디를 남겨놓고 혼자 화장실로 향하는 그였다.
 
 
.
.
.
 
 
날이 너무 더워, 우리는 사이좋게
입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날이 너무 덥다, 그치?”
 

 
, 많이.”
 
 
더위를 유독 싫어하는 그는
살짝 신경이 예민해져있었다.
 
 
오늘 길거리에 사람들이 유난히 많네.”
 
 
평소보다 많은 인파에,
우리의 걸음도 많이 느려져 있었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내 어깨를 거세게 밀치고 지나가자,
 
 
-!”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다.
내 상황을 보더니 그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나를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세우려,
그가 빠르게 몸을 돌렸다.
 

 
, 저기요!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그냥 쌩-하고 지나가시겠다?”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상대방도 지지 않겠다는 듯,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여기 지나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 정도 실수도 이해를 못 해주냐?”
 
 
인상을 팍- 구기며 소리쳤다.
 

 
아니, 이 새끼가 진짜!”
 
 
덩달아 같이 소리치면서 주먹을 쥐고 들어 올리려는
내 남자친구를, 내가 나서서 황급히 말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진짜 큰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종석아, 됐어.
그만 가자!”
 
 
결국 씩씩-거리는 그를
내가 가던 방향 쪽으로 끌고 왔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
그러다가 싸움 날라.”
 
 
여전히 화가 많이 났는지 그는,
 

 
내가 이래주길 바랬던 거 아니야?”
 
 
내게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만 친절하랬지.”
 
 
맞는 말을 골라하는 너 때문에.
 
 
 
*
 
 
 
한껏 달궈진 바람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의 단비 같은 소식에,
 
 
돌아오는 731일 금요일,
여름방학식 할 예정이니 다들 그렇게 알도록. 이상!”
 
 
우리 반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오예- 좋았어.
ㅇㅇ, 넌 방학 때 뭐할 거야?”
 
 
? 글쎄, 아직 생각해본 건 없는데.
넌 뭐하려고?”
 

 
당연하지. 난 다음날 바로 23일로
남자친구랑 놀러갈 거야!”
 
 
남자친구랑 어디로 놀러가기로 약속된 건지,
마냥 신난 표정을 짓는 친구 수정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어디로 갈 건데?”
 
 
비밀! 너도 남자친구랑 계획 짜서
여행이라도 다녀와, 까칠한 남자친구 있잖아.”
 
 
글쎄, 말이라도 꺼내 볼까?
 
 
.
.
.
 
 
날이 너무 덥다고
며칠 에어컨바람을 온종일 쐬었던 것과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이 겹쳐져,
결국 보기 좋게 감기에 걸려버렸다. 그것도 몸살감기.
 
, 오늘 오후에 수족관 데이트가 약속 되어있는데.
 
눈을 뜨고 있으면 머리가 
빙빙- 도는 탓에 눈을 감아버렸다.
열은 나는데, 으슬으슬- 몸이 떨려왔다.
기침은 수시로 새어나왔고
편도선은 부어버려 침을 삼키기도 어려웠다.
약기운에 취한 채 잠이 들었던 난,
초인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띵동-.
 
 
누구세요?”
 
 
갈라질 대로 갈라진
내 목소리가 꽤 애처로워 보였다.
 
 
ㅇㅇ, 나야.”
 
 
종석이의 목소리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힘겹게 걸어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를 본 그는 살짝 놀란 듯 싶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몰골은 완전 최악이었다.
 
식은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핏기 없는 메마른 입술,
미식거리는 속 때문에 생기 없는 피부 톤.
 


우리 오늘데이트 가는 날인데?”
 
 
내가 준비를 안 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서운함을 담아 말을 했다.
 
콜록-콜록.
 
 
미안, 몸살감기에 걸려서
오늘 못가겠다.”
 
 

 
에이- 아팠으면 먼저 연락해주지,
나 오늘 완전 들뜬 마음으로
준비해왔다는 말이야.”
 
 
왜 그의 말이 끝났는데, 눈물이 나는 걸까.
아픈 날 걱정하기보단,
데이트를 못해서 서운하다는 말투와
먼저 연락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핀잔이,
내 마음을 쿡쿡- 찔러왔다.
 
평소 같으면 한마디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날은 모든 것이 다 서러웠다.
내 눈물에 당황스럽다는 듯 
바라만보는 그가 그렇게 야속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될 말을 그에게 해버렸다.
 
 
나 오늘 정말 많이 아픈데,
다른 것보다 내 걱정 먼저해주면 안 돼?
가끔 이렇게 툭툭 말을 내뱉는 너를 보면,
나를 좋아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더라,
우리 그만 만나자. 나 지쳐서 더 이상못 만나겠다.”
 
 
210588, 100일째 되던 날.
우리는 기념일의 달콤함을 맛보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버렸다. 얇고 가녀린 내 검지 손끝에서.
 
 
사랑이 떠남에 울었던 것일까,
몹시 아픈 내 몸 상태 때문에 울었던 것일까.
 
난 벽에 기대어 주저앉은 채,
꽤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려보냈다.
 
 
*
 
 
 
맑고 높은 하늘에 몽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푸르른 어느 날이었다.
날씨와 대비되듯 난 답답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곧이어 내 어깨는 땅으로 
가라앉을 만큼 한껏 내려앉았다.
2학기 들어 봤던 첫 시험을,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완전, 몽땅.
 
 
! 어떻게,
집에 가면 죽었다.”
 
 
 
귀여운 남자, 이종석.
 
 
 
누나, 누나!
ㅇㅇ누나 괜찮아요?”
 
 
자꾸 한숨만 내 뱉는 내가 걱정되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물어봤다.
난 말 대신 고개를 힘없이 가로저었다.
 
 
으음, 우선 어디든 가요!”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그에게,
종이인형처럼 질질- 끌려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스크림가게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잘은 모르겠는데,
우울할 때는 달달한 게 최고래요!”
 
 
그건 그렇지. 이왕 온 김에
나 서울치즈케이크!”
 
 
약간 단순했던 난, 시험에 대한 기억은 금세 지워버리고
신중하게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작은 숟가락 아이스크림을 퍼서 입속에 넣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달달함이 내 입안에 가득 퍼졌다.
 
, 맛있어!
 
원래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는 게,
더 맛있는 법이다. 거기다 공짜일 때는 더욱더.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정신이 팔렸던 난,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에 
발이 걸려 보기 좋게 넘어져버렸다.
 
 
아야-!”
 
 
옆에 서 있던 종석이가 나보다 놀랐는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누나, 괜찮아요?”
 
 
바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누나, 안 쪽팔려 해도 돼요.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내 마음을 읽은 것 마냥,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쪽팔린 건 어쩔 수 없지만.
 

 
가끔 누나보면 애 같아요,
이렇게 칠칠맞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는 너를 보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 왜 웃어요?”
 
 
아니, 애가 애를 걱정하는 것 같아서.”
 
 
허공에서 보기 좋게 마주친 서로의 시선에,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어갔다.
푸르른 하늘아래 난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러자 아이스크림만큼 달콤한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누나!
고개 들어 나 좀 봐요.”
 
 
내가 고개를 들어 종석이를 바라보면,
길가엔 사람도 없겠다- 자연스럽게 그의 입술이
내게로 다가오겠지?
 
 
고개를 들어 올리는 찰나에,
띠링띠링- 자전거의 종소리가 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 분위기 좋았는데. 망했어!
 
 
하필 야속하게도 그 자전거는 
우리 둘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만
열심히 째려보았다.
 
하아.
 
 
 
*
 
 
 
얼마 전 본 시험의 점수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데이트 대신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왔다.
원래 목적은 그렇지만 혼자는 심심하고
둘이 있으면 또 좋으니까, 손을 맞잡고 같이 왔다.
 
 
집근처에 위치한 시립도서관.
 
책장 넘기는 소리와 연필이 종이에 부딪히면서
사각- 거리는 소리만 가득한 공간이었다.
 
우리도 비어있는 곳에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았다.
시험지와 오답노트, 교과서를 펼쳐놓고
열심히 오답문제를 정리하고 있었다.
 
 
.
.
.
 
 
, .
 
틀렸던 문제 중 딱 네 문제를 가지고
한 시간 가까이 씨름하고 있었다.
머리를 싸매며 교과서를 뒤적였지만,
명쾌한 풀이와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 -하고 내 앞에 캔 커피가 올려졌다.
캔 커피에는 귀여운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누나, 피곤하지?’라는 문구를 읽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자연스레 내 시선은 그를 찾아갔다.
 
그런 나를 더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종석이가 있어, 든든하며 좋았다.
 
종석이는 책을 읽다가 
흘끔- 내가 풀던 문제를 쳐다보더니,
귓속말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누나- 나 이 문제 아는데,
도와줄까?”
 
 
내가 한 시간 동안 씨름하던 문제를 알고 있다고?
그것도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종석이가?
왠지 자존심 상한다.
 
그렇지만 자존심 세울 상황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시험지와 오답노트를
그가 앉아있는 쪽으로 쓰윽- 밀어 넘겼다.
 
문제를 읽자, 막힘없이 술술 풀이를 써 내려가는
너의 모습이 꽤나 멋있었다.
 
 
 
 
환했던 낮이 시커멓게 물들어갔다.
가을밤의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한기를 느끼며 낮에 입고 온 옷을 여미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누나 추워요?”
 
 
낮에 따뜻하길래,
좀 얇게 입었더니. 좀 춥네.”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내 가방이 높게 들려졌고,
뭐하냐-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줘요- 가방.”
 
 
됐어, 내 가방 안 들어줘도 돼.”
 

 
그게 아니고, 이거 입으라고요.”
 
 
자신의 겉옷을 내게 내미는 그였다.
 
 
됐어. 추운데 그냥 입고 있어.”
 
 
난 괜찮아요. 에이- 오들오들 떨고 있으면서.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아 입지.”
 
 
생각보다 덜덜- 떨리는 몸에,
진짜 못 이기는 척 옷을 받아 걸쳤다.
 
 
- 따뜻하다, 고마워.
이제 가방 줘, 내가 멜게.”
 
 
에이- 됐어요, 그냥 내가 들어줄게요.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
 
 
새까맣게 변한 하늘아래,
공기들도 차갑게 내려앉은 거리를,
우리 둘이 함께 걸어갔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니,
겉옷을 내게 양보한 그가 신경 쓰여 슬쩍 바라봤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같지만,
 
종석이도 춥겠지?
 
 
춥지? 옷 돌려줄까?”
 
 
됐어요, 누나.
근데 좀 춥다!”
 
 
그치? 잠깐 옷 벗어줄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려는 내게,
도리어 두 손으로 옷을 단단히 여미어준다.
 

 
누나! 추우니까
나 한번 꼭- 끌어안아줘.”
 
 
놀란 난 당황한 표정이 역력히 들어났다.
 
 
추울 때 원래 사람끼리
체온 나누는 거래. 어서-.”
 
자신의 두 팔을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다가가자 그가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의 가슴팍에 내 얼굴이 폭 파묻힌 꼴이 되었다.
분명 그를 안아주려 내가 갔지만 안기는 꼴이 되자,
심장소리가 요란스레 울려 퍼졌다.
점점 좋아지는 내 마음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머릿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맴돌아 잠을 설치고 말았다.
 
 
 
*
 
 
 
이제는 제법 춥다고 말할 수 있는 날씨였다.
겨울로 향하는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원에 벤치에 앉아, 내 남자친구를 기다렸다.
 
저 거리를 걷는 연인들이 저렇게 아름다워 보인다는 건,
내 상황이 썩- 좋지 못하단 소리겠지?
 
 
어느새 바깥바람을 맞은 손이 차갑게 식어갔다.
자연스레 내 손은 주머니로 향하려할 때,
저 멀리서 그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를 바라보자, 환하게 웃는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였다.
나도 똑같이 웃어보려 입술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앉아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은 그가,
 

 
누나, 웬일이에요?
나를 다 기다리고.”
 
 
웃음은 여전히 머금은 채,
나를 쳐다봤다.
 
 
그냥, 그래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 너무 좋다, 진짜.”
 
 
그렇지? 나도 네가 기다려줄 때,
행복했는데.”
 
 
? 누나 말이 그게 뭐예요.
왜 과거형으로 말을 해요.
내가 앞으로도 기다려 줄 건데.”
 
 
그와 마주쳤던 시선을,
앞쪽으로 돌려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착하고 때론 듬직하고 배려심 가득한,
완벽한 네가 온전히 내거였으면좋겠다.”
 

 
난 당신 건데
뭘 걱정해, 누나.”
 
 
그래, 그건 그렇지.”
 
 
내가 말하는 속뜻을 넌 모르겠구나, 그렇겠지.
 
내가 욕심을 내기에 생긴 문제였다.
너에게 점점 빠져드는 내가 무서웠다.
무서워서 내 눈을 가려버리고,
단순히 이 문제를 넘기기엔 내가 초조해지고 불안했다.
내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욕심을 부린 내가, 나를 먼저 챙기는 이기심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리기로 했다.
 
 
여전히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너에겐 미안했지만,
내가 너에게 더 빠지기 전에,
 
 
우리 그만 끝내자.”
 
 
가늘게 떨려오는 내 목소리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21051111. 72일 간의 짧은 우리 사랑은,
내 욕심으로 인해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당신의 귀 뒤에 있는
엄지손톱만한 빨간 하트 버튼을 누른,
얇고 가녀린 내 검지 손끝에서.
 
 
흔들리는 당신의 눈빛에
난 한참을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자꾸 생각나는 마지막 눈빛에
애써 진심이 아닐 거야-란 생각으로 부정해버렸지만,
아려오는 가슴은 어떻게 부정해야 할지 몰랐다.
 
 
 
*
 
 
 
작년보다 매서운 한파가 일찍 찾아왔다.
따뜻한 집에서 밖으로 나갈 채비를 준비하는 나는,
앵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인간형 로봇을 개발했다고 전에
뉴스로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출시 전 시제품시험으로 사용해본 사용자의 90%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로봇 시장의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몽글 기자님이 전해주실 겁니다, 몽글 기자!”
 
 
.
.
.
 
 
125, 주말 아침 난 당신을 만나러 
로봇 대여소를 찾았다.
내게 배정된 그 아이를 만나러왔다.
눈을 감고 서 있는 그 아이를, 한번 바라봤다.
 
곧이어 난 그의 귀 뒤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눌렀다.
눈을 떠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는,
 
 
 
주인님, 반갑습니다.
SR-17(상상력 로봇) 인사드립니다.
이름과 나이를 먼저 설정하시고
질문에 따라 차근차근 원하시는 스타일을
골라주시기 바랍니다.”
 
.
.
.

※만든이 : 몽글구름님
 
 
<>

독자님들께서
재밌게 감상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쓰면서 이게 뭐지? 란 생각이 살짝 들었는데요,
저도 달달한 걸 잘 쓸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란
생각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ㅠㅠ
 
독자님들, 작가에겐 게시글이 참 많은 힘이 된답니다.
 
 
(부족한 표현력이지만)
여러분은 어떤 스타일이 좋으신가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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