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 8 (by. 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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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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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은 온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 애를 썼다.
 

하지만 발버둥 치면 칠수록
자신을 옭아매는 검은 기운을
그는 당해낼 수조차 없었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정국의 텅 빈 눈과
울부짖는 ㅇㅇ을 보며
찬열은 좀 더 빨리 손쓰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이제와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꾸만 감기려 하는
자신의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리는 것.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다.
 

 

 

 

.
.
.
 

 

 

 

종석은 한참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찬열에게 다가간다.
 

 

앞에 누가 다가 온지도 모른 채
일에 집중 하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그의 앞에 있던
영상과 서류들을 흩트려 놓는다.
 

 

쯧쯧쯧..
니가 이러니까 애인이 없지.“
 

 

찬열은 꽤나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맞받아친다.
 

 

선배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데 말이죠.“
 

 

..?
너 못하는 말이 없다?“
 

 

찬열은 그의 부라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연다.
 

 

그리고 아무리 왕족이라도
이렇게 일을 방해하시면
접근금지를 걸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누가 보면
하극상의 상황임에도
종석이 웃어넘기는 것을 보면
얼마나 찬열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고~ 우리 찬열이
많이도 컸네!
 

그런데 너 요즘 너무 일만해.
그래서 내가 안 되겠어.
 

나가자.
간만에 한잔하게.“
 

 

한참 집중하던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주범은
대답도 듣기 전에 밖으로 사라졌다.
 

 

찬열이 한숨을 쉬며
손을 한번 튕기자
흩어졌던 서류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오래 앉아있었던 탓인지
찬열이 일어나며
앓는 소리를 낸다.
 

 

술을 그닥 즐기지 않는 찬열은
집으로 가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억누르며
종석을 따라 나선다.
 

 

술집으로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찬열에게로 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술집에서 보는 것은
가뭄에 콩나듯 이기도 하거니와
인간계에서 돌아온 후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종석은 구석진 자리를 좋아했기에
술집 안쪽까지 들어가야 했다.
 

 

시선을 즐기는 편이 아니기에
찬열은 매우 불편했지만
구석으로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이기에
발끝만 보며 종석을 따랐다.
 

 

여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손을 흔드는 세훈이 있다.
 

 

? ..
어떻게 된 거야?
벌써 휴가 끝났어?“
 

 

~ 뭐 그럴 일이 있었어.”
 

 

둘의 대화를 듣던 종석은
 

 

뭐야?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찬열과 세훈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묻는다.
 

 

, 그렇게 까진..”
 

 

세훈의 새침한 표정에
둘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래서 내가 찬열이 만나러 간다니까
데려가 달라면서 보챘구나?“
 

 

큭큭.. .
친해지려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던 찬열은
종석에게 ㅇㅇ의 안부를 묻는다.
 

 

ㅇㅇ이는 잘 지내요?
얼마 전에 구금 풀렸다면서요.“
 

 

. 엄청 잘 지내.
철이든 건지 어쩐 건지
집에서 얌전히 지내고 있어.
 

외출도 산책 정도?“
 

 

~ 장족의 발전인데?
이게 다 우리 찬열이 덕분인가..”
 

 

- ..;; 뭐래냐?”
 

 

세훈의 장난스런 말투에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다.
 

 

그들의 대화에는 별것 없었다.
그저 인간들과 똑같이
농담이 태반이었다.
 

 

술기운이 기분 좋게 올라왔을 즘
종석이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정국이라는 애는 어떤 애야?
 

찬열이 니가 보기에
ㅇㅇ이가 좋아할 만한 애야?“
 

 

왜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
찬열은 종석의 눈을 보지만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는 듯 했다.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해요.
의리도 있고,
인간으로 치면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데
뭐가 중요한지도 아는 것 같고..
 


그런데 ㅇㅇ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좋아해도 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음이 시키는 일인데..“
 

 

찬열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잔에 든 술을 한입에 털어 넣는다.
 

 

그 모습을 보던 세훈은
 


에라이 진지충아~”
이라며 찬열을 놀려댔다.
 

 

어디서 또 그런 건 배워가지고..”
 

 

진지충? 그게 뭔데?”
 

 

인간들이 쓰는 거 있어요.
별로 좋은 말은 아니고..“
 

 

아무튼, 그래 찬열이 네 말대로
좋아해도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국이는 안될 것 같다.“
 

 

종석의 한숨이 깊다.
 

 

왜죠?”
 

 

인간이라서?
, 왕족은 인간이랑
맺어질 수 없잖아.“
 

 

누가 그래?
왕족이 인간이랑 맺어질 수 없다고..“
 

 

아니야?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닐걸?
다만 지양하진 않지.“
 

 

그럼 왜죠?
시스터콤플렉스 때문에?“
 

 

!”
 

 

세훈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웃어넘기는 종석,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는다.
 

 

그 아이 인 것 같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세훈과 찬열은 숨을 죽인다.
 

 

흑마력이..
그 애 몸 안에 있는 것 같아.“
 

 

그들 사이에 적막이 흐른다.
찬열은 물론 세훈 역시
적지 않게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찬열은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스펠 목걸이를 만졌음에도
마력이 흡수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 그에겐
마법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럼 그때 그 마녀의 언어가..”
 

 

찬열의 혼잣말에 종석과 세훈은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인간에게
흑마력이 흡수될 수 있죠?
 

아니 것보다,
정국이는 어떻게 해야 해요?
흑마력을 제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대로 뒀다간..“
 

 

종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에게
흑마력이 흡수된 역사가 없어.
아버지가 백방으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섣불리 건드렸다간
그 아이가 죽을지도 몰라.
 

그리고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조사 중에 있는 거니까
니들도 그냥 알고만 있어.“
 

 

하지만, 그 흑마력이
주인을 찾아도 죽잖아요.
그 아이..”
 

 

죽는다고? 정국이가?”
 

 

보통 매개체를 만나
흑마법사나 흑마녀로 각성하고 나면
그 매개체를 죽여.
 

그게 본능이라고 들었어.
 

만약, 그 흑마력의 주인인
ㅇㅇ이가 돌려받게 된다면
흑마녀로 각성한 ㅇㅇ이가
그 아이를 죽일 거야.“
 

 

하지만, 매개체가 없잖아.
설마 정국이가 매개체 일리가..
그렇다면 진즉 ㅇㅇ이가
흑마녀로 각성을 했어야 하는 거 아냐?“
 

 

흑마녀로 태어날 운명이었다면
그래서 ㅇㅇ이가 어머니가
일부러 각성을 시도한 거라면
매개체 자체가 필요 없지.
 

다만 그걸 담고 있었던
정국이를 공격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을 걸?“
 

 

흑마력 추적자인 아버지를 둔 세훈은
흑마력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세훈 본인 역시
흑마력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나이부터
관심을 가지던 분야이기도 했다.
 

 

그만!!
술맛 떨어지게
그런 얘긴 그만 하자.
 

ㅇㅇ이 얘기하니까
내 동생 보고 싶네.
 

난 그만 갈란다.“
 

 

종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한다.
 

그러다 발이 꼬인 건지 어쩐 건지
비틀거리자 찬열이 서둘러
그를 따라 나선다.
 

 

조심하세요.
얼마 안 마신 것 같은데
벌써 취했어요?“
 

 

안 취했어 임마!”
 

 

그렇다.
늘 취한 사람은
본인이 취하지 않았다 한다고 한다.
 

 

찬열과 세훈은 눈을 마주친다.
둘의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진다.
 

 

종석을 가운데로 두고
그를 따라 나선다.
 

 

뭐냐? 너네 어디 가냐?”
 

 

! 오랜만에 뭉쳤는데
이렇게 가기야?
우리 2차 가야지.“
 

 

찬열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까 그건
종석선배를 데려다 주자는
의미 아니었나?
 

 

아하~ 이런, 쏘리쏘리..
당연히 2차 가야지.
가자!! 내가 쏜다!!“
 

 

찬열의 한숨이 깊어진다.
 

 

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두 사람은
본인이 데려다 줘야 할 것 같은
그런 운명인 듯싶다.
 

 

 

 

-잠시 후-
 

 

 

 

! 찬열이는 몰라도
ㅇㅇ이가 너 엄청 싫어하잖아.“
 

 

엄청 술에 취한 종석이
3차로 본인의 집으로 가자는
세훈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며
비틀거린다.
 

 

뭐라더라?
재수 없는 족제비를 닮았다나?“
 

 

.. . 나 어이가 없네.
이렇게 잘생긴 족제비도 있어?“
 

 

종석은 눈을 부릅뜨고 세훈을 보지만
잘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세훈의 말이 웃긴 건지
웃음을 흘린다.
 

 

찬열은 자꾸만 비틀거리는
두 남자를 양쪽에서 잡고
종석의 집 근처로
텔레포트를 열고는
그쪽으로 종석을 밀어 넣는데
갑자기 종석이 세훈의 팔을 잡고
끌어당기는 바람에
세세람 다 그의 집 근처로 떨어진다.
 

 

..”
 

 

찬열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깊은 한숨을 쉬어낸다.
 

 

종석과 세훈은 또 뭐가 좋은지
떼굴떼굴 구르며 웃기 바쁘다.
 

 

술 취한 두 사람을
이대로 버리고 갈까
진심으로 고민하는데..
 

 

거기 누구야?”
 

 

멀리서 누군가 가로등을 켜며 다가온다.
 

 

? 찬열 오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딱 ㅇㅇ이다.
 

 

.. .”
 

 

우리 오빠는..?”
 

 

종석의 행방을 묻던 ㅇㅇ
곧 바닥에 널브러져 웃고 있는
종석과 세훈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어쩜 이렇게 술을 좋아하나 몰라.“
 

 

ㅇㅇ은 한숨을 쉬며
종석을 일으킨다.
 

 

? 내 동생~~
나 데리러 왔어?“
 

 

종석은 자신을 부축하는 ㅇㅇ에게
매달리려 하지만
ㅇㅇ은 마법으로 종석을 차단한다.
 

 

술 냄새나. 붙지 마.”
 

 

어라?
이게 누구야~
ㅇㅇㅇ 아냐?“
 

 

세훈은 상체를 천천히 일으키지만
빙빙 도는 건지
몸을 자꾸만 누우려 하며
ㅇㅇ에게 말을 건다.
 

 

그래. 오세훈! 나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ㅇㅇ의 한쪽 어깨를 잡는다.
 

 

! 내가 경고하는데..
흑마력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
 

안 그러면 너가 죽던지,
마계가 망하던지
둘 중 하나야.“
 

 

ㅇㅇ은 세훈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꾸만 몸을 흔들며
술 냄새가 풍기는 게
이걸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싶은데
 

 

만약에, 도망치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지?
그러면.. 너가 흡수해.
최대 5분이 너한테 주어 질 거야.
그런 다음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그러고 나서 나를 소환 해.“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ㅇㅇ의 손에 쥐어준다.
 

 

그것은 흑마력 추격자만이 지닐 수 있는
소환권 이었다.
 

 

ㅇㅇ은 그 소환권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언제 자신에게
심각한 말을 했냐는 듯
찬열에게 돌아서 장난치는 세훈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본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Part 8. 위대한 사랑.
 

 

 

 

 

 

준비물을 사서 문구점을
나서던 정국은
갑작스런 어지러움 증에
벽에 손을 짚고 선다.
 

 


왜 이러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잠시 서서 숨을 고른다.
 

 

안정을 찾은 뒤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ㅇㅇ이 사라진지..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찬열의 말을 빌려
마왕에게 끌려간 ㅇㅇ이 떠난 지
한 달하고 보름여가 지난 지금
다시 그 애를 볼 수 있긴 한 건지
궁금하기까지 한 정국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며!
도대체 언제쯤 멀어지는 거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 뱉으며
손에 든 봉투를 힘껏 흔드는데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린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가 자신을 부르는 느낌에
정국은 재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평소엔 가지 않던 길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몸은 그보다 먼저 반응을 한다.
 

 

정처 없이 걷던 정국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이모 카페 근처까지 와있었다.
 

 

눈을 한번 힘껏 감았다 뜬다.
 

 

오늘 왜 이러지?
정신 차려야겠다.“
 

 

이왕 온 김에
이모나 보고가자는 생각에
카페에 들어가니 벌써 퇴근 후였다.
 

 

다시 카페 밖으로 나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쉰다.
 

 

밤 내음이 폐 속 깊숙이 들어온다.
 

 

조금씩 숨을 내뱉던 정국은
무심코 옆을 한번 보고는 발을 뻗어
한 걸음 내딛으려는데
누군가 카페 옆에 쪼그려 앉은 모습에
다시 고개를 돌린다.
 

 

어둡기도 하고
얼굴을 파묻고 있었기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저 파란머리라면
분명 자신이 아는 사람이다.
 

 

ㅇㅇㅇ?”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아주 천천히 들어올린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와 선다.
 

 

정국아..”
 

 

그에 반해 정국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선다.
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겠다.
 

 

...제 왔어?”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한다.
 

 

너 왜 그래?”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진다.
 

 

이상했다.
분명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인데,
달려가서 안고만 싶은데
몸은 거부한다.
 

 

? 뭐가?”
 

 

.. 지금..”
 

 

순간 어디서 나타난 건지
찬열이 ㅇㅇ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몸 뒤로 그녀를 숨긴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정국은 아주 재빨리
ㅇㅇ의 반대편 손목을 잡았지만
찬열이 훨씬 빨랐다.
 

 

박찬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
 

 

정국이 왜 자신에게서
ㅇㅇ을 숨기는 건지 물으려는데
찬열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전정국. 정신 차려
 

 

분명 찬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 그의 큰 몸이
ㅇㅇ을 가리고 있음에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찬열은 정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ㅇㅇ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쥔다.
여차하면 텔레포트를 열어
도망가야하기 때문이었다.
 

 

오빠, 정국이..
왜 저러는 거야?“
 

 

잘 들어.
내가 텔레포트를 열 테니까
바로 들어가.“
 

 

둘의 대화가 무슨 내용인지 모름에도
정국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평소 자신과는 다른 모습에
감정을 수그러트리려 하지만
이미 컨트롤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왜 그러는데?”
 

 

나중에..”
 

 

찬열이 정국의 눈치를 살피며
ㅇㅇ의 손목을 잡고 있지 않은 손을
허공에 휘두르려는 순간
 

 


 

 

정국에게서 빠져나온 검은 기운이
찬열의 목을 잡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순간에 찬열은
ㅇㅇ이 다치지 않도록
손을 재빨리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빠!!”
 

 

빨리.. 지금.. 도망쳐..”
 

 

찬열이 힘겹게 말을 토해냄에도
ㅇㅇ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전정국! 너 왜이래!!
 

찬열오빠!!”
 

 

하지만 정국은
이미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왜 인지 분노가 가득 찬 얼굴로
찬열을 노려 볼 뿐이었다.
 

 

 

 

 

 


 

 

 

 

 

 

세훈이 손에 쥐어준 소환권을
만지작거리던 너는
세훈이 아닌 나를 본다.
 

 

그리곤 옅은 웃음을 짓는다.
 

 

오세훈 데려다 줄 거지?”
 

 

.”
 

 

자꾸만 내게 매달리며
3차를 가자고 소리를 지르는
오세훈의 입을 봉인한다.
 

 

녀석은 술에 취해 제 입에 걸린
봉인을 해제하려 애쓰지만
자꾸만 엉뚱한 마법이 나와
혼자 웃다 짜증을 낸다.
 

 

데려다 주고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세훈을 제 방 침대에 눕혀놓고
너를 만나러 가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너는 분명 정국에 대해 묻겠지.
 

 

난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 애를 멀리해야 한다고 하기엔
아직 정확하지 않은 일이다.
 

 

마왕의 말대로
그의 조상 중에
마녀나 마법사라도 있다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너의 집 앞에 도착하니
너는 여전히 소환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신경쓰여?”
 

 

가까이 다가가자 시선을 내게로 돌린다.
 

 

~ 아니..
이런 거 처음 받아 봐서.
옛날에 비밀 연애 하는 사람들이
이런 거 많이 썼다고 하던데..“
 

 

이럴 땐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천상 여자다.
 

 

그래서, 무슨 얘기 하려고?”
 

 

내 말에 고개를 숙이던 너는
 

 

그냥. 고맙다는 말
한번 도 못한 것 같아서..“
 

 

두 귀를 의심하는 순간이다.
 

 

?”
 

 

나 진짜 철없었어.
 

한때는 마계에서 말썽부려서
인간계로 쫓겨나려고..
그래서 막 일부러
마력 약한 마녀나 마법사들
놀려먹고 그랬었어.
 

엄마 찾으러 가려고..“
 

 

너의 뜻밖의 고백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오세훈도..
아니, 이제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잘 모르고 막 싫어했네.
옆에 있던 오빠도 괜히 미워하고..“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맞아. 난 그때 네가
왜 그렇게 우릴 미워할까 했어.
뭔 잘못을 했다고..
이러다 지하 감옥에
갇히는 건 아닐까 했다.
 

마왕 딸 심기 건드렸다고..“
 

 

-”
 

 

네가 재밌다는 듯 웃는다.
 

 

난 그때 심각했다고..”
 

 

아니 설마 우리 아빠가
그런 일로 지하 감옥에 넣을까..“
 

 

난 그때 마왕님 잘 몰랐잖아.
오세훈이 그나마 친했는데
지하 감옥 갈지도 모른다고
얼마나 겁줬다고...“
 

 

진짜? 푸흐~
오빠도 꽤 순수했네?“
 

 

지금도 순수하거든?”
 

 

~ 그러세요? 큭큭큭
 

 

왜 웃냐? 못 믿어?”
 

 

큭큭큭 믿어. 믿을게.. 큭큭
 

 

신나게 웃던 너는
옛일을 생각하듯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만약에.. 그런 일 모르고 지냈다면
나도 보통 마녀들처럼
오세훈이나 오빠를 좋아했을지도 몰라.
 

나 은근 얼빠잖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무튼 인간계에서
이상한 말이나 배워가지고..
 

..“
 

 

친구들 보고 싶다.”
 

 

발을 바닥에 툭툭 치던 너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손으로 내 팔을 잡는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는다.
 

 

! 언젠가 오빠 인간계 가는 날
나 데려가 주면 안 돼?
 

친구들은 나 몰라도
나는 걔네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기회 되면 정국이도 보고..“
 

 

꽤 가까워진 얼굴에
심장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럽다.
 

 

? .. . 그래.
 

대신! 너 혼자 인간계 가기 없기.
혹시라도 만약에 가게 되면
꼭 나한테 연락하기다.”
 

 

너는 왜 인지 머리를 긁적인다.
 

 

알았어~!
, ... 그러니까..
아무튼 고마웠고..
고마워!“
 

 

볼에 빨간 자욱이 스며든다.
이런 인사가 쑥스러운 거겠지.
 

 

나도 너랑 지내면서 좋았어.”
 

 

!! 이 미친놈아.
좋긴 뭐가 좋았어!
 

 

.. 그러니까 많이 배우기도 하고..“
 

 

. 나도..”
 

 

?”
 

 

나도 좋았다고..”
 

 

.. ..”
 

 

너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나 들어갈게.”
 

 

? .. 그래.”
 

 

너는 가다말고 뒤로 돌아 손을 흔든다.
 

 


나 역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리고 들었던 손을
심장 부근에 갖다 댄다.
 

 

진정해라.
쓸데없이 뛰는 거 아니다.
 

 

 

 

 

 


 

 

 

 

 

 

상황을 이해해보려 애쓴다.
 

 

저 검은 기운은
분명 정국이의 몸에서 나왔다.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국에게선 검은 기운이
조금씩 뻗쳐 나오고 있었다.
 

 

순간 언젠가 세훈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 내가 경고하는데..
흑마력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
 

 

저것이 바로 흑마력?
그게 왜 정국이의 몸에..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기엔
찬열이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나라도
덜컥 겁이 났다.
 

 

안 그러면 너가 죽던지
 

 

내가 죽는 것도..
 

 

마계가 망하던지 둘 중 하나야.“
 

 

마계가 망하는 것도 싫다.
 

 

망설이는 지금 순간에도
찬열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흑마력을 흡수하고 나면
정국이는?
무사한 걸까?
 

 

만약 흑마력을 흡수하고 난 후의 내가
정국이를 공격하면 어쩌지?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쳐간다.
 

 

하지만 내겐 고민할 여유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흑마력..
어떻게 흡수하는 건지 모르지만
 

눈을 질끈 감고
정국에게 달려가 힘껏 끌어안았다.
 

그는 심하게 요동쳤지만
곧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전에 학교에서 정국이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을 때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뭔가 뜨거운 것이 내 안으로
-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며
곧 온몸이 타는 듯 뜨거워 졌다.
 

 

정국의 고개가 내 어깨에
-하고 떨어진다.
 

 

내겐 시간이 없다.
 

 

그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다.
 

 

창백해진 정국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는다.
 

 

따뜻했다.
 

 

미안해. , 만나러 올게.“
 

 

뒤로 돌아 찬열을 찾는다.
 

 

바닥에 떨어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그는
곧 고개를 들어
나를 찾았다.
 

 

내게 달려오려는 그에게
손을 들어 경고를 한다.
 

 

거기 서
 

 

그가 뭐라고 말을 하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
 

 

바보야. 안 돼.’
 

 

바보같이 또 눈물이 쏟아졌다.
 

 

무서웠다.
당장 그에게 어떻게든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무리 내가 아는 것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거였다.
 

 

조심스럽게 텔레포트를 열어
끝까지 그를 주시했다.
 

 

오지 마.
오면 죽여 버릴 거야.
 

알지? 나 한다면 해.“
 

 

그 역시 울고 있었다.
 

 

안 돼. 제발..’
 

 

울지 말라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내겐 그럴 자격도 시간도 없었다.
 

 

“.....”
 

 

그의 마지막 입모양을 보며
잡고 있던 텔레포트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 누구도
따라들어 올 수 없도록
바로 닫아버린다.
 

 

 

 

.
.
.
 

 

 

 

따뜻한 손길에 눈을 떴다.
 

 

정신이 몽롱했지만
 

 

분명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엄마다.
 

 

엄마..”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눈앞의 엄마가 따뜻하게 웃는다.
 

 

우리 딸 많이 컸네.”
 

 

상체를 일으켜 앉아
얼굴에 올려 진 엄마의 손을 잡는다.
 

 

엄마 맞는 거지?”
 

 

꿈인가 싶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다.
 

 

그럼~ 엄마 맞지.”
 

 

엄마~”
 

 

와락 하고 끌어 앉았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는 느낌이
꿈이 아니라 말해주고 있다.
 

 

엄마가 좀 더 꽉 끌어안아 주며
등을 쓸어준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엔
엄마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와
말을 건다.
 

 

엄마. 왜 우리랑..”
 

 

엄마는 그런 내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그리곤 나를 눕히며
내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우리 애기 좀 더 자자.
자고 일어나서
얘기해도 늦지 않아.“
 

 

그래도..
나 엄마랑 좀 더 얘기하고 싶은데..“
 

 

신기했다.
졸리지 않았는데
엄마의 쓰다듬는 손길에
점점 눈이 감겨왔다.
 

 

 

 

.
.
.
 

 

 

 

햇빛이 눈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힘겹게 들어 올린다.
 

 

곁눈질로 살피니 내 방이다.
 

 

안심하고 눈을 감으려는데
불연 듯 엄마가 떠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몸이 휘청거린다.
 

 

왜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누군가 부축을 해온다.
 

 

아빠다.
 

 

아빠.. 엄마는요?”
 

 

아빠는 내 얼굴을 바라 볼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차를 건넨다.
 

 

꽤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어.
마시면 속이 편안해 질게다.“
 

 

내가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다고?
 

 

그러다 순간 머릿속에
뭔가 많은 영상이 스쳐지나간다.
 

 


이게 뭐지?
 

 

그리고 곧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
 

 

다시 아빠의 손길이 다녀가자
언제 아팠는지 편안해졌다.
 

 

천천히..
그래도 된단다.”
 

 

아빠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역시..
엄마의 일은 꿈이었던가..?
 

 

얼마간 침대에 앉아 쉬다
몸이 좀 나은 듯 해
천천히 침대 아래로
발을 떨어트린다.
 

 

천천히 발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는데 밖이 소란스럽다.
 

 

그러더니 방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ㅇㅇㅇ!!!”
 

 

역시나 오빠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오면
머리가 저지경인건지..
 

 

그런데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오빠.. 무슨 일..”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가와 와락 끌어안는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대체 뭐가 감사한 건지
한참을 흐느끼며 울먹였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천천히 내게서 떨어져 나온 오빠는
한참을 내 눈을 들여다본다.
 

 

뭔데~ 왜 그래?”
 

 

그리고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그냥.
내 동생 너무 오래 자서..“
 

 


그리고 예전처럼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뭐야! 진짜~”
 

 

배는 안고파?
우리 먹대장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 배는 안고파.
 

 

그런데.. 나 얼마나 잤어?
아빠도 그렇고..
오빠도 그 얘기하고..
나 아프지도 않았는데..
한 이틀 잤어?“
 

 

.. 한 열 달쯤 됐나?”
 

 

..
 

 

열흘도 아니고 열 달?”
 

 

그래. 벌써 해가 넘어가서
19살이야.“
 

 

? 19?
 

 

지금 몇 년인데?”
 

 

“2017
 

 

손가락으로 꼽아본다.
 

 

몇 개월이 비는데?
오빠 지금 나한테 또 뻥치는 거지?“
 

 

? ... 아닌데..
내가 날짜를 잘못 샜나..“
 

 

아니,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오래 잤어?
설마.. 나 인간계 갔다가
뭐 사고 쳤어?“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
 

 

누가 봐도 수상한 자세로
오빠는 방문을 나섰다.
 

 

.. 오빠는 이제 일보러 가야겠다.
잠깐 온 거야. 그럼 쉬어.“
 

 

도대체 뭐지?
뭔데 저렇게 숨겨?
 

 

 

 

 

며칠 후
 

몸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점심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19살이나 됐다니..
이제 진로에 대해
고민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뭐를 해야 마왕 딸이라
편하게 먹고 논다는
소리를 안 들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꽤 멀리까지 나왔다.
 

집에 갈 생각을 하면
까마득할 정도로..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가려
뒤로 도는데
문득 스쳐가는 얼굴 하나.
 

 


 

 

뭐야, 누구지?
내가 아는 마법사 중에
이렇게 잘생긴 애가 있던가?
 

 

“...토요일에..... 만날까?”
 

 

토요일에 만나자고?
이건 또 무슨 기억이지.
 

 

하지만 아무리 쥐어 짜내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답답해 바닥에 발을 세게 친다.
 

 

도대체 뭐야? .. 짜증나..”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걸음 발을 떼는데
누군가와 마주친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는 얼굴을 봤다고 해야겠다.
 

 

앞에 빙썅 박찬열이
뭔가를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 마음은 뭐야?
빙썅이 반가워?
이 내가?
천하의 ㅇㅇㅇ?
 

 

정신 차려라 ㅇㅇㅇ.
열 달 자고 일어나더니
미친 거냐?
 

 

그가 나를 보기 전에
서둘러 가려는데
내가 너무 쳐다보고 있었나?
 

 


 

 

그가 벌써 고개를 들어
나를 주시하고 있다.
 

 

, .. 다리가 아프다.
..빵집이 이쪽이던가?“
 

 

아무 말이나 짓거리며
그를 지나치려는데
 

 

괜찮아?”
 

 

괜찮냐고 묻는다.
 

 

..느아?”
 

 

너무 놀란 나머지
이상하게 말이 나간다.
 

 

그러자 그가 살폿 웃는다.
 

 

. ..”
 

 

웃는 그와..
 

 


 

어디서 본 건지
슬프게 우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
 

 

뭐지?
왜 이게..
 

 

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온다.
 

 

으아..”
 

 

자리에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하자
그가 달려와 걱정하듯
어깨를 잡는다.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손을 쳐낸다.
 

 

왜이래?
우리가 이런 사이던가?“
 

 

손을 쳐놓고 괜히 미안해져
그의 눈치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지나친다.
 

 

집근처에 도착해
벤치에 앉아 잠시 생각한다.
 

 

그가 울던 모습은 뭐였을까?
 

 

그리고, 나를 보던 그 표정은 또 뭐지?
 

 


 

 

왜 자꾸 그가 맘에 걸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이라면 어마무시하게
욕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나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고개를 들어
아빠의 서재가 있는 방향을 본다.
 

 

아빠. 얘기해주세요.
나한테 무슨 일 있었던 거죠?“
 

 

그때 창문이 열리고
나와 시선을 맞추는 아빠가 보였다.
 

 

오랜만에 아빠가 주는
찻잔을 받아든다.
 

 

보통 차는 우리가 아플 때나
아빠가 할 말이 있을 때
직접 달여 주곤 한다.
 

 

그동안 생각을 해 봤는데..”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아빠는..
 

 

숨기는 것 보다
함께 아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는 구나.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던 아빠는
천천히 향을 음미하다 목으로 넘긴다.
 

 

네가 태어날 무렵
흑마력 기운이
무척이나 세진 엄마는
비교적 안전한 인간계로
너를 낳으러 갔단다.“
 

 

아빠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듣는
나와 엄마의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판단을 잘못 한 것 같다.
 

엄마는 너를 지키기 위해
흑마녀로 각성을 시도했지만
너 역시 엄마를 지키기 위해
흑마력을 밖으로 밀어낸 듯싶어.
 

그래서 흑마력은 오세훈이 아닌
같이 있던 임산부의 몸으로
흡수된 것 같더구나.
 

 

그때 같이 있던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던 것도 같아.
보통 각성하려는 순간
매개체를 없애는 건 알고 있지?
 

그런데도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너는 그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한 듯싶다.
 

그 아이에게 흑마력이
흡수된 걸 보면 말이야.
 

네 친구가 될 것을
알았던 걸지도 모르지.
 

 

내가 조금만 더 세삼하게 봤다면
그 인간 여자가 살았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친구?
그게 무슨 말이지?
 

 

친구라니요?
그게 누군데요?
내가.. 인간 친구가 있어요?“
 

 

아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는 인간 친구가 있다.
물론 지금은
너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그래서요?
그 아이는 흑마법사가 됐나요?“
 

 

아니? 그 아이는 보통의 인간인데
어떻게 흑마법사가 되겠어?
 

그냥 흑마력을 지닌
평범한 남자아이로 자랐다.“
 

 

아빠는 내가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한
내 기억들을 손을 잡고 보여주었다.
 

 

이상했다.
이게 나라고?
 

이렇게 인간들이랑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얘가.. ?
 

 

그곳엔 박찬열과 낮에 떠올랐던
남자가 있었다.
 

 

박찬열..
그래서 아까 낮에 그랬던 건가?
 

 

하지만 아빠가 보여준 영상 속엔
그가 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근데 내가 인간계로 가서
엄마를 찾지 못한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왜 안보여요?“
 

 

흑마력 때문이야.
흑마력의 기운이 강해서
마왕인 나도 널 볼 순 없었다.“
 

 

결국, 내가 흑마력을
가져 온 거예요?
 

아니, 그렇다면 지금은 왜..“
 

 

아빠는 조금은 힘겹게 입을 연다.
 

 

네 엄마 덕분이다.”
 

 

엄마.....?”
 

 

흑마력을 흡수하고
너는 스스로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너도 모르게
네 엄마에게로 간 듯싶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
엄마에게?
 

 

모정인지, 아니면 흑마력 덕분인지
너를 알아본 엄마는
원래 본인 것이었던 흑마력을
스스로 흡수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실로 몇 년 만에
나를 소환하더구나.“
 

 

아빠는 다시 내 손을 잡았다.
 

곧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아가야, 안녕?”
 

 

엄마는 그때 봤던 환한 미소로
내게 인사를 했다.
 

 

네 이름이 ㅇㅇ이라지?
아주 잘 컸더구나.
 

역시 아빠를 닮아서 너무 예뻐.
 

오빠는 엄마를 닮아서
아빠가 많이 속상해했는데
우리 딸이 아빠 닮아서
예쁨 많이 받고 컸겠네?“
 

 

엄마는 어딘가 모르게
많이 힘들어 보였다.
 

 

우리 딸..
한 번 품어주지도 못하고
엄마가 많이 미안해.
 

그래도 우리 아가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엄마...”
 

 

목이 메어와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잠깐
얼굴이라도 볼 수 있어서
엄마는 너무 행복했단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하려고 한 거 엄마는 다 알아.
많이 무서웠을 텐데..
우리 딸 너무 자랑스럽다.
 

근데 아가, 조금 더 살아.
아니, 더 많이 살아.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그렇게 예쁘게 살아가렴.
 

그게 엄마가
우리 아가한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사랑한다. 우리 ㅇㅇ..“
 

 

힘겹게 미소 짓는 모습아 끝이었다.
 

 

아빠.. 엄마는요..?
그래서 지금 엄마는 어디 있어요?
 

다시.. 기억을 잃었나요?
인간계에 계신 거죠?“
 

 

아빠는 조용히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키지 못했다니..
그런 말이 어딨어.
 

 

아무리 마왕도
흑마력을 어쩌지 못한다지만..
 

 

엄마는 지켰어야지.
 

 

아빠. 거짓말이죠?
살았을 거야.
처음에도 살았잖아요.
 

두 번째도 살았어야지.“
 

 

아빠의 소리 없는 흐느낌이
내 등을 적셔왔다.
 

 

한동안 아빠와 나는
그렇게 말없이 흐느껴 울어야만 했다.
 

 

 

 

 

 

며칠을 정신이 반쯤 나간채로 살았다.
 

 

엄마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아침에 눈을 떠도
밥을 먹어도
잠이 드는 순간에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빠와 오빠는 그런 나를
그저 지켜봐 주거나
따뜻하게 안아줄 뿐
나무라거나 충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손님이 찾아왔다.
 

 

예전이었다면 방문 밖으로
집어 던졌을 오세훈이었다.
 

 

그는 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기억을 잃고 바보가 됐다더니
사실인가보네.“
 

 

싸울 기운조차 없었다.
 

 

왜 왔어?
나 바보 된 거 구경하러 왔어?“
 

 

설마~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나..
할 말 있어서 왔어.“
 

 

할 말이 뭔데?”
 

 

, 별건 아니고..”
 

 

뜸을 들이는 그의 눈을 본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 기억 잃었다고 했지.
 

내가 소환권을 하나 줬는데..“
 

 

소환권?
 

 

불연 듯 그가 내게 뭔가 건네던
기억이 떠오른다.
 

 

.. 기억나는 것 같기도..
근데 그게 왜?“
 

 

네가 그때 그..
심이영 마녀님 집에 불시착 했을 때..“
 

 

...?
 

 

눈치를 살피던 그는
한숨을 쉰다.
 

 

그건 기억 안나나 보네.
, 어찌됐건..
 

네가 그때 그 소환권을 써서..
나도 그 마당에 있었어.“
 

 

.. 그럼!!”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가 만약에..
이 사실을 모르면
평생 괴로워할 것 같아서..“
 

 

무슨 사실?”
 

 

네 어머니는
생이 얼마 남지 않으셨어.“
 

 

?”
 

 

네가 나를 보자마자
마력을 강탈해 달라고 했어.
 

그때 네 어머니가
마당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그랬나?
아무튼 밖으로 나오셨는데..
갑자기 너를 알아보셨어.“
 

 

갑자기 나를.. 알아보셨다고?”
 

 

. 알잖아.
네 어머니 기억 잃으신 거..“
 

 

“...”
 

 

그러더니 나를 밀치고는
스스로 마력을 흡수하셨어.“
 

 

그때 안 말리고 뭐했어?”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울분을 토했다.
 

 

내가 이래서 말 안하려고 한 거야.
아니, 내 얘기 못 들었어?
갑자기 나를 밀치셨다고..
증거도 있어. 보여줘?“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내가 이러시면 위험하다고,
저리 비키시라고 했는데..
이미 흡수를 끝내신 뒤더라.
 

그러시더니,
이미 본인은 끝난 몸이라고..
생이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본인이 가져가는 게 맞다고 하셨어.
 

그냥, 네가 나중에 괴로워하지 않게
이 사실만 전해달라고..“
 

 

다시 한 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잘 살아달라고 하셨어.
어머니의 몫까지..
 

그래서, 나도 열심히 살려고..
 

어쩌면 나도 그때 죽었을지도 몰라.
네 흑마력.. 아주 위험했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주인을 잃고 너무 오래있었어.
흑마녀의 사념이랄까?
 

스스로 움직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찬열이도 죽일 뻔 했잖아.“
 

 

느닷없이 등장한 그의 이름에 놀라
세훈을 본다.
 

 

.. 너 기억 안 난다고 했지.
아쉽게 됐네. 걔도.. 인간도..“
 

 

뭐가..?”
 

 

그건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난 그만 가볼게.
내 할 말은 끝났어.“
 

 

세훈이 돌아가고
그가 한 말을 곱씹었다.
 

 

흑마녀의 사념이라..
박찬열을 죽일 뻔 했다고?
 

 

그럼 그가 울었던 장면과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내려하면 할수록
답답하기만 할 뿐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

.
.

※만든이 : 불통님
 
<>

원래 8편이 완결이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작가가 욕심을 냈습니다.
 
무슨 욕심을 낸 걸까요?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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