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벚꽃 노으리 (by. 포그린)


평소보다 일찍 핀 벚꽃.
캠퍼스는 벚꽃 날리는 소리로 가득하고
이어 솔로인 당신의 마음을 지피는
커플들의 애정행각 공세.
떨어지는 벚꽃 한 잎을 손에 쥐며
괜찮다, 외롭지 않다 다독이는 당신.
어느새 손에 쥔 벚꽃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고
그 위로 새어 나오는 허탈한 웃음.


이번 벚꽃축제는 특별한 날로
각인되길 은근 바라고 있는 당신!
바람에 날려 당신의 옷깃에 닿은
벚꽃처럼 인연도 그렇게 무심코 와 닿았으니





1. 당신이 태생부터 
짝사랑해 온 소꿉친구,
20, 이종석





, ㅇㅇㅇ,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냐?”



학교 가는 버스에 나란히 올라타 앉은
종석이 내 이어폰 한쪽을 툭 빼며 묻는다.
오늘이몇 요일이더라…?
그래, 목요일
이번에도 설마 소개팅에 나갈 때
입을 옷 골라달라고 만나자는 건 아니겠지?

저 자식은 항상 내 앞에서
딴 여자 자랑질이다, 항상.
자신의 꿈은 이 세상 모든 여자를
품에 한번씩 안아보는 거라나 뭐라나.
그럴 거면 프리허그가 차라리 더 빠를 텐데, 나참

대학에 들어 와서는
거의 매주 소개팅을 받는 듯 하다.
근데 막상 마음에 차는 여자는 없는 모양이다.
매번 돌아와선 이번 소개팅에 나온
여자는 눈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둥,
아줌마틱하게 웃는 다는 둥, 투덜투덜거렸으니까.



종석을 향한 내 마음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늘 한결같은데
이 녀석은 눈치가 없는 건지, 내가
이성으로 안 보이는 건지, 넘어오질 않는다.



이제 거의 자포자기 상태다.
차라리 밀당이라도 있다면
지루하진 않을 텐데

짝사랑은 갈등 없는 드라마와 같다.
그래서 지친다.



. 또 소개팅 나가시게?
나도 좀 소개시켜줘라.
맨날 나만 쓸쓸하게 내버려두지 말구.”



여느 때처럼 무심한 눈초리로
종석의 눈동자에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오늘따라 한층 더 밝게
씨익 웃는 그다.
장난기 섞인 미소와 동시에
그가 내 양 볼을 손으로 잡고
옆으로 살짝 늘리며 말을 꺼냈다.



으히히-. 우리 ㅇㅇ이,
그 동안 내가 너무 혼자 내버려뒀지?
알아, 알아, 다 알지, 그럼, ㅇㅇ이 마음!”



아으-. 이그 므으아. 이그 느크 므래에-!”
(아우-. 이게 뭐야. 이거 놓고 말해-!)



내 볼을 양 옆으로 쭉쭉 잡아 당기는
종석의 손을 겨우 겨우 떼어놨다.
얘가 왜 이래…?!



토요일에 약속 없단 것도 다 알아!
심심할 땐 누구를 부른다?”



“….이종석.”



목소리가 그게 뭐야~
더 크게!!”



“…이종석..!”



하여간
자기 이름 세뇌시키는
능력은 여전하다.






이제야 내 친구 답네.
이번 주 토요일, 내가 전화 거는
시점을 기준으로 A공원에서 만나는 거다!”



나 그때…”



말대답은 사절.”



종석은 다시 한번 씩 웃으며
내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리고는
내 무릎 위에 떨어진 한쪽 이어폰을
자신의 귀로 가져간다.
이렇게 우리 둘은 생전 처음으로
버스에서 나란히 같은 음악을 공유하며
학교로 향했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옴에 따라
과제와 팀플이 작렬하는 가운데
하루, 이틀이 후딱 지나고
종석과 내가 약속했던 토요일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혹시 모를 기대감에 부풀어
화장이고 옷이고 엄청 신경 썼는데
한 시간, 두 시간, 여덟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통 오질 않는다.
그럼, 그렇지.
벚꽃과 함께 마음도 딴 여자에게로
샌 게 틀림없다.



낮잠이나 자자며 자는 둥 마는 둥
누워 있는데 화장대에 놓아둔 핸드폰이 울렸다.
벌떡 일어나 핸드폰으로 달려가던 나는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찧었다.
이 놈의 덜렁이 기질!



[“지금 당장 A공원으로 나와라 오바.”]



누워 있어서 부슬부슬해진 머리를 착
가라앉히고 집을 나섰다.
밖은 어느새 캄캄해져 있었다.
저녁 10시나 됐으려나…?



A공원에 들어서자 마자 저 멀리
벚꽃나무 아래에서 나를 반기는 종석이 보인다.






오올~ 오늘따라 유난히 차려 입었다, ?
내 친구가 이렇게 이뻤었나?
저녁은. 먹었냐?”



, 대충. 근데 넌 왜 이렇게
사람을 늦게 불러 내냐.
아침부터 이러고…”



. 실수.
아침부터 준비했다는 건
알리고 싶지 않다.
단지 자존심의 문제 때문인 걸까.






그럼 사과의 의미에서.”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허리를 낮춰
내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추는 종석.



장난이 좀 과한 거 아니냐…?”



장난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해야겠네.”



종석이 생긋 웃고는 내 한쪽 손에
깍지를 끼고 힘껏 흔든다.



가자, ㅇㅇㅇ!
벚꽃 보러!”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이 상황이 지금..”



솔직히 이런 날이 왔으면
하고 상상하긴 했지만 막상
실현되니 정신이 몽롱하다.






내가 여태껏 왜 널 못 봤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앞으로 토요일, 아니 매일을 너한테 반납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우리 저기 벤치에 앉아서 제대로
찐한 사랑을…”



죽는다, 이종석!”



말은 그렇게 내뱉으면서도
나는 그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벚꽃 흩날리는 밤의 거리를 걷는 동안
종석의 눈동자는 벚꽃 대신 나를 담고 있었으며
쉴 새 없이 볼과 이마에 뽀뽀를 해댔다.




2. 당신에게 대놓고 
관심 있는 선배,
24, 김우빈



오늘 제출할 레포트를 벼락치기로
작성하느라 하룻밤을 꼴딱 샌 나.
화장은 붕 떴지,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지, 참 못 볼 꼴이다, 오늘.



과제를 강의실 앞쪽에 올려 놓고
터벅 터벅 돌아와 맥없이
책상 위에 엎어졌다.



.



무언가가 내 머리맡에 놓이는 소리.
살짝 눈을 떠 보니 책상 위에
덴마크 우유가 고스란히 놓여 있다.
나는 급히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뭐야, 누가 놓고 간 거지, 우리 동기 중에…?
는 개뿔, 고학번 선배, 김우빈 씨께서
손수 놓고 가신 우유다.



내 옆자리에 앉아 짓궂게 웃으며
윙크를 살짝 날리는 걸 보면.






굿모닝, ㅇㅇㅇ.
갓 도착한 신선한 우유에요, 새내기 님.”



저 선배, 엠티 때부터 봐도
영 내 스타일 아닌데 요새 자꾸 치근덕대는 것 같다.



마음만은 감사하지만,
밤샜더니 지금 목구멍으로
뭐가 들어갔다 하면 다 튕겨져 나올 판이에요.”



아니, 무슨,
우리 새내기 님 식도에
스프링이라도 장착돼 있단 건가.”



휴우-. 알았어요, 알았어.
집 가서 마실 게요.”



한숨을 푹 내쉬며 어쩔 수 없이
우유를 가방에 고이고이 넣었다.
그제야 살짝 찌푸렸던 인상을 푸는 우빈 선배.
이거 불편해서,



강의 시간 내내 수업 내용이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규칙적인
헤드뱅잉을 하다가 결국 책상 위로 엎어졌는데
그 뒤로 기억이



쩝쩝 거리는 소리와 함께
코끝을 찌르는 음식 냄새에
눈이 절로 떠졌다.






살아 있었네.”



흐이익! 깜짝이야!
, 사람 놀라게 여기서 뭐 하는 거에요?!”



수업이 끝난 텅 빈 강의실엔
나와 우빈 선배만이 남아 있다.
이로써 오늘의 수업을 날려 먹었구나, 에헤라디야~
선배는 바로 내 앞자리에서
몸을 내 쪽으로 하고 우유와 삼각김밥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뭐야, 그럼 나 자는 것도 다 봤겠네?

내가 바로 앉자 내 등 뒤에서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켓.
선배의 것이다.



내 자켓 주워줘. 이왕이면 먼지까지 툭툭 털어서.”



내가 자는 새 자켓까지 걸쳐 주었나 보다.



자꾸 이럼 애들이 의심해요.
안 그래도 혜진이가 자꾸 의심한단 말예요.
선배가 은근 나만 챙기는 것 같다구.
매 시간마다 제 책상 위에만
우유 놔 주고, 갑자기 허락도 없이 머릴
쓰다듬지 않나.
제가 그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는지 아세요?
애들이 이상하게 본다구요.”






“….그래서. 결론은?”



여전히 무심한 눈빛에,
재밌다는 듯 사악하게 올라간 입꼬리다.
어느새 삼각김밥 4개를 뚝딱 해치운
선배는 우유로 여유롭게 입가심을 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저한테만 막 너무 잘해주지 마시라구요.
선배가 원래 새내기들 잘 챙긴다는 건 아는데,
저만 새내기에요? ?
다른 애들도 저한테 하듯이 챙겨주세요.
저 이러다 미움 받습니다, 동기들 사이에서.”



그건 선배 마음이고.
참고로 난 새내기 부탁 안 들어준다.
일방적인 보살핌이랄까.”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선배.”



너 다음 수업 없지?”



왜요, 또오-.”



담당교수가 너 좀 데꼬오란다.
너 깨거든 바로 데려 오라고 그러시던데.”



교수님이요…? 무슨 일이지…”



평소 담당교수와 가까운 사이인 선배이기에
곧이곧대로 믿은 난 정말 바보다.
건물을 나온 시점부터 수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학교 뒷골목에 있는 산책로로
나를 이끌고 가는 선배다.
담장을 따라 벚꽃이 주욱 늘어선 모양이
마치 우리 둘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 했다.



교수님 어딨어요? 교수님이 저 찾으신다면서요.”



“…..”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내 옆에
바짝 붙어 말없이 걸어가는 선배.
참다 못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교수니이임!!!”



소리 좀 낮춰라. 벚꽃 다 지겠다.”



그러면서 언제 주웠는지
벚꽃 가지 하나를 내 입술 앞에
갖다 댄다.



이거 꺾으면 벌금 무는 거 아시죠?”



떨어진 거 주운 거야.
그리고 난 이미 물었다, 벌금.”



무슨 벌금을요?”






지금 하고 있잖아.”



“….?”



영문을 몰라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올려다보자 내 어깨에 팔을 휘감는 선배.



너랑 꽃구경 하잖냐.
, 사진도 찍고 싶은데.”



, 이봐요
이러고 걷다가 동기라도 만나면…”



니가 나한테 벌금 물릴 차례야.”



, 저기, 저기, , 혜진이 아냐?!”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여자아이는 우리 과 동기, 혜진이와
몇몇 여자들
내 어깨에 팔을 여유만만하게 두르고 있는
선배를 보자 수군거린다.
, , 이제 어떡….



내가 머뭇머뭇하며 등을 돌리려는 순간,
선배가 내 팔을 세게 잡아당기곤
입술에 진한 키스를 했다.
발 밑으로 벚꽃 한 잎이 툭 하고 떨어졌다.
뒤이어 동기들의 더 뚜렷해진 수군거림.



입술을 뗀 선배가 내게 묻는다.






벌금 얼마나 물릴래?”





3. 귀여운 과외돌이,
19, 홍종현



올해 고3에 들어섰으나
공부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
한없이 천진난만한 우리의 과외돌이.
그를 만나러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 마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 산 넘고 물 건너
그의 집으로 향한다.



중간고사 기간인 우리 과외돌이를
달래려 달달한 케이크 하나도 센스 있게
손에 쥐었다.
내가 택한 케이크는 봄향기 물씬 풍기는
상콤발랄 딸기 케이크!
초코를 좋아할지도 모를 종현이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은, 순전히 내 취향대로다.



어쨌든, 오늘도 무사히 집 앞까지
도착한 난 초인종을 한번 꾹 누른다.



종현아, 선생님-.”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없자
다시 한번 꾹-. 띵동-.





!!”



옴마, 깜짝야!”



내 어깨를 툭 치는 기척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니
교복차림의 종현이 해맑게 웃고 있다.



푸헤헷.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그렇게 놀라는 거에요?”



무슨 생각이라니.
선생님 간 떨어뜨릴 일 있어?”



아무 생각 않고는 이만한
충격에 놀랄 리가 없는데.
수상한다, 선생님-.
설마 내 생각했나?!”



어이구, 어이구, 퍽이나.
빨리 들어가기나 하셔.”



, 오늘은 야외 수업해요.
이렇게 날씨도 쨍쨍하고
벚꽃도 흐드러지게 폈는데.
요즘 저 우울하단 말예요오-.”



짐짓 인상을 쓰며 앙탈에 가까운
어조로 말하는 종현.
나는 그런 그 앞에 케이크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시험만 되면 꼭 그러지.
그럴 줄 알고 케이크 사왔다.
그니까 빨리 들어가서 먹자.
빨랑 문 열어.”



무슨 맛이에요?”



딸기.”






? 딸기? 에게, 뭐야..
쌤 맘에 드는 걸로 골랐죠?
전 초코가 좋은데, 쪼꼬.
고딩 입맛을 설마 그새 잊으신거에요?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다구?
, 실망이야, 쌔앰-.”



셋 셀 동안 문 열어라-?”



더 이상 그의 말에 하나 하나 답해 주다간
집 안에 발을 들이긴커녕
계속 수다만 떨다 끝날 삘이다.
워낙 말 많은 학생이니까, 종현이는.







싫어요, 싫어.
오늘 공부는 틀렸어요.
나 다시 엘배 타고 내려갈 거야.”



그러다 니 성적도 같이 내려간다?”



괜찮아요. 더 이상 내려갈
성적도 없는데요, .
쌤도 같이 꽃구경 가요!
오늘 같은 날엔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위너지, 위너.
빨리 타세요, ~
문 닫히겠다아-.”



언제 버튼을 눌렀는지
종현은 그새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내게 살살 손짓을 해가며.



, 너 다시 안 내려?”





그럼 옆 산책로에서 봐요, !”



내가 그를 끌어내릴 기세로 다가가자
엘리베이터 문을 잽싸게 닫는 종현이다.
-.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는 수 없지, .
대신 오늘만이다, 홍종현, 너 이 자식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옆 산책로로 걸어갔다.
산책로 입구 벤치에 종현이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울 쌤이 최고라니까!
오늘 일은 엄마한테 비밀이에요~
걸리면 우리 둘 다 끽- 이니까.”



그렇지,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그러니, 종현아
유난히 아들 공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그의 어머니.
아들이 과외 선생 따라서 한가하게
꽃구경하며 다녔단 사실을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둘 다 끝장이다.



, 우리 셀카 찍어요, 셀카!
쌤이랑 같이 찍고 싶었어요~”



종현이 얼른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됐어, 임마. 너나 실컷 찍어.
쌤 봄 됐다고 피부 트러블 생기고
장난 아닌 거 알잖아.”






왜요? 그래도 이쁜데. -.”



종현에게 못 이긴 채
화려한 벚나무를 배경으로
셀카까지 찍어주고 산책로를
한 바퀴 비잉 돌았다.
걷는 내내 종현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조잘거리기 바빴다.



, 걷고 나니까 배고프다!
쌤두 배고프죠?”



별로.”



-. 어쨌든, 과외돌이가
배고프다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케이크 상자를 열어볼까요~?
저기 저 벚나무 밑에 있는 벤치로 가요!”



종현은 즐거운 것도 많은지
실실 웃는 얼굴로 쪼르르 달려가 벤치에 앉았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우리는 포크가 없는 대신
상자에 들어 있는 플라스틱 칼을 이용해
요령껏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 잠시만요.”



한참을 맛있게 먹던 종현이
내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뭐가 떠오른 듯 케이크 상자 위에
떨어진 벚꽃 잎 하나를 줍는다.
그러고는 냅다 내 입술에 벚꽃을
갖다 붙이는



뭐야. 나 입에 뭐 묻었어?”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내 아랫입술에
그대로 붙어있는 걸 보아하니



, 그거 알아요?”



“…?”



가만히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현의 입술이 아주 잠깐,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거품 키스가 아니라
생크림 키스도 있다는 거.”



내 입술에 묻어 있던 생크림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대신
생크림과 함께 내 입에 달려 있던
벚꽃 잎이, 수줍게 올린 그의 손에서
산들거렸다.





4. 아랫집 훈남,
23, 안재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랫집 이사 오는 소리에
시끌벅적했던 아파트다.



지나가다가 우연히도
아랫집 이사짐을 슬쩍 봤는데
무슨 책들이 그리도 많은지
만물박사 아님 철학자 한 명이
이사 오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CD음반은 또 어찌나 많은지
요즘엔 인터넷으로 다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음반을 택한다는 건
분명 누군가의 빠순이나 빠돌이 임이 분명하다.



사랑하고 싶어요~ 우우~
사랑 받고 싶다구요오~
나의 님은 어디에~ 이 행성 어딘가엔
존재하겠지~ 나 이러다 진짜 
마녀 되는 건지도 몰라~”



오늘 아침도 어김 없이
나의 한을 자작노래로 분출해 버린다.



, ㅇㅇㅇ, 그 노래 좀 그만 부르면 안 되냐?
무슨 노래가 그따구야!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



, , , 오빠의 잔소리.



듣기 싫음 이어폰 꽂든가!
동생이 성능 좋은 걸로 선물해줬잖아.
하여간활용을 못 해요, 활용을.”



됐다, 됐어.
윗집 소리 다 들리는 거 봐라.
니 소리는 아랫집에 안 들릴 줄 아냐.
쪽팔리게, 진짜.
노래라도 잘 하면 몰라.”



아랫집에 들리면 들리는 거지, .”



너 같은 사람이 층간소음의 주범인데, 어휴-.”



오빠의 짜증을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나.
벚꽃과 커플이 가득한 잔인한
캠퍼스로 등교할 시간이다.



1층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자마자
얼마 안 가 다시 열린 문.
아래층, 7층이다.






훤칠한 키, 준수한 얼굴의 남자는
양 쪽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그가 멘 가방.
빨간 바탕에 갈색 줄이 그어진 가방이
내 것과 똑같다.
그는 가방이 같든 말든 신경 쓰이지 않는지
아님 알아채지 못했는지
엘리베이터 거울을 들여다 보며
머리 모양새를 가다듬었다.



어색한 기류 속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드디어 1층에 도착.



남자가 먼저 내렸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가다가
게시판 공지사항 종이에 펜을 끄적였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외로울 때 항상
나오는 습관이다.
게시판에 익명으로 아무거나 끄적이기.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이렇게 적어두고선 남자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훈남과 같은 가방을 멨다니
영광, , 할렐루야~

이런 거에 설레는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외로웠나 보다.
불쌍한 나 자신….



이 참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저기요.”



그의 옆으로 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 보였다.
그러자 의아하게 나를 내려다 보는 남자.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살며시 빼낸다.



?”



안녕하세요. 아래층에
새로 이사오신 분이죠?
이번에 처음 본 것 같아서…”






아아, 네에-. 혹시.. 윗집 사시는..?”



내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묻는 남자다.



, 맞아요, 맞아요.
윗집 801,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전 안재현입니다.
701호구, 이웃사촌인데
친하게 지내요.
제가 이 동네는 생전 첨이라…”



그럼요~ 근데, 우연의 일친지
저희 둘이 가방 똑같네요!”



나도 참 주책이지


재현이라는 사람도 우리 둘의
가방을 번갈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진짜 그렇네요?
이 가방 멘 사람 첨 봤어요.”



저두요.”



그렇게 우리 사이엔
소소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우연인지 인연인지 몰라도
다니는 학교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재현 오빠-나보다 세 살 위니 오빠다-
영어영문학과, 나는 불어불문학과.
과도 어쩜 그리 환상적으로 맞는지



각자 수업을 들으러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재현이라는 남자로 한동안
요란스러웠다.
오랜만에 심장이 제 기능을 하는 기분이다.



수업시간이 후딱 지나고
해가 진 후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와 마주치길, 은근 바라고 있다.



밤공기가 턱하니 가라앉은 길가를 걷고
있는데 옆을 쌩하니 지나치는 자전거에
밀쳐 넘어졌다.
나도 참, 바보 같다.
고작 자전거 하나에 밀려 넘어지다니.
균형감각에 구멍이 생긴 것 같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까진 무릎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ㅇㅇ 씨, 괜찮아요?”



내 앞으로 와 자세를 낮춰
무릎의 상처를 호호 불어주는 남자.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남자다.



괜찮아요. 이거 가지고, ..”



심하게 까졌는데
안 되겠다. 제가 이런 거 치료는 전문이에요, .”



그는 싱긋 한번 웃고는 주변 벚나무에서
벚꽃 한 줌을 누가 볼까 얼른 뜯어
돌아왔다.
그러고는 내 손에 벚꽃들을 옮겨주는 그.



이거 손에 꼬옥 쥐세요.
그 다음 눈 감아봐요.”



“…?”



, 그냥 제가 하라는 대로 일단
해 보세요. 효과 장담 하니까.”



그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일단은
눈감고 보는 나.
내 손에 쥐어진 벚꽃의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다음 절 따라서 주문을 외우는 거에요.
러버스레폴링레이디마트.”



, 러버스레 폴…”



러버스레폴링레이디마트.”



러버스..레폴링..레이디마트..!”



이제 눈 떠요.”



뭐에요. 상처 하나도 한 나았잖아.
효과 장담한다면서요~에이, 엉터리!”



내가 짓궂게 웃으며 말하자
어렴풋이 웃어 보이는 그다.



“…이루어질 거에요.”



일단 믿는 셈 치죠.
상처 오늘 안으로 안 나으면
제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가요, 이제.”



그는 그저 소리 없이 웃으며
나를 일으켜 세울 뿐이다.



그렇게 그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향한 날도 어제라는 개념으로
밀리고 새로운 아침이 찾아온 오늘.



울 오빠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자작노래를 한바탕 크게 부르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다.
당연 무릎의 상처는 낫지 않았다.
재현 오빠한테 무슨 소원 말하지?



어제와 마찬가지로 7층에서 선 엘리베이터.
그가 올라 탄다.
어제와는 달리 다소 긴장한 표정의 그다.



이것 봐봐요. 상처 아직도 안 나았어요.
어제 이상한 주문이나 외게 하고 말야.”






어제 외운 주문, 오늘 이루어질 거에요.”



무슨 주문이었는데요?
그게 뜻이 있는 주문이었어요?
왜 난 몰랐지..”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는 남자.



6, 5, 2… 1.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동시에
남자가 앞장 서 내린다.
그리고 게시판 공지글을 가리키는 그.

어제 내가 낙서해 놓은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글귀 아래 무언가가 쓰여 있었다.



제가 그 쪽 손, 잡아도 될까요?



멀뚱히 게시판 앞에 서서 글귀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있으세요?
없으면 전 어떠세요?”



고갤 들어 본 그의 얼굴은
햇빛에 반사돼 희미해 보였지만
분명 나직이 웃고 있었다.

.
.
.

※만든이 : 포그린님

<작가말>

안녕하세요! 상콤한 봄날입니다 하하
어떻게, 벚꽃구경은 잘들 하고 계신지요.
작년에 비해 벚꽃이 참 일찍 피는 것 같아요.
솔로인 작가는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곧 있을 중간고사 기간에 벚꽃 만개하고
연인들마저 눈에 띄면 그건 날 두 번이나
죽이는 거자나자나, 엉엉
시기를 잊은 벚꽃 덕분에 이번 중간고사는
기쁜 마음으로 치를 수 있겠군요! ^^
제가 무슨 말을 늘어놓고 있죠? 흠흠..
 암튼! 며칠 전에 <꼬꼬마 꽃미남들> 프롤로그만
덜렁 내놓고 돌아오지 않는 작가,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이렇게 글 쓸 틈이 안 날 줄은 몰랐네요
과제와 팀플이 한 무더기씩 몰려오고
또 제가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는데
그쪽 일도 만만치 않구요
꼬꼬마 꽃미남들은 아무래도 늦으면
방학 때쯤 찾아 뵐 것 같네요 ㅠㅠ 그래두
연중은 아니니까~
걱정들 마시구! ㅎㅎ
오늘 이야기는 어땠나요.
좀 달달했나요?
달달해야 할텐데~
벚꽃 만개한 지금, 솔로인 분들이 있다면
이 글 보시구 달래시길키키
그리고 올해는 꼭 좋은 사람 만나시길!
포그린이 독자님들께 사랑이 이루어지는
마법을 겁니다~
야얍!
벚꽃 나들이, 혼자라도 외롭지 않아요.
나에겐 소중한 친구들이 있쎠
그래, 사랑보단 우정이죠 ^^^^
언제 또 돌아올지 모르는 작가,
이번 편에선 독자님들 댓글에
일일이 댓 달아드리겠습니다!
투표도 있으니 한번씩 격려의 차원에서
해주시고 가시구요!
그럼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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